예루살렘 (jerusalem) - 성전산(Temple Mount)과 오펠(Op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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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 성전산 전경 -
◎성전산(Temple Mount) 성전산은 모리아산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했다(창22:2). 다윗왕은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이기도 했던 이곳을 은 50세겔을 주고 매입하였고(삼하24:18-25). 주전 950년경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두로와 히람의 도움을 얻어 이곳에 예루살렘 성전(제1성전)을 세웠었다(역대하3:1). 그후 예루살렘의 성전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종교적. 정신적 그리고 민족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주전 586년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 의해 성전을 파괴되었고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 주전 536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 때 포로로 갔던 유대인들이 돌아와 폐허가 된 솔로몬의 성전위에 제2성전을 지었다. 주전 37년부터 주후 4년까지 로마제국에 의해서 왕으로 세워진 헤롯왕은 주전 20년에 성전산을 2배의 넓이로 확장하고 아름답게 꾸몄다. 현재에도 헤롯왕이 건축한 것이 일부가 서쪽벽 밑 부분에 남아있다. 그러나 주후 70년 아브(Av)월 9일. 로마장군 디도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다. 오늘날에도 경건한 모든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 아브월 9일을 슬퍼하며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주후 638년 이슬람교도들은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칼리프 오마르는 이곳을 이슬람교도의 성지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솔로몬의 성전 터에 현재의 바위돔을 세웠고 남쪽에 엘악사 사원을 건축했다. 그 결과 거룩했던 하나님의 성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현재는 이슬람교 모스크가 그 자리에 서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1967년 6일 전쟁 후부터 모든 장소가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매주 금요일 오전에는 이곳에서 수천에 이르는 이슬람교도들의 집회가 열리는데 이대 일반인들은 출입이 통제된다. (1)컵샘(The Cup) 지금이 2m정도로 둥그렇게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둘레를 따라 수도꼭지가 달려 있다. 중앙에는 컵모양을 한 분수대가 놓여있다. 이 컵샘은 1320년에 만들어졌다. 이곳은 순례를 온 사람들이 기도를 하기 전에 얼굴과 손발을 씻는 곳이다. 여자들은 이곳에서 씻을 수가 없다. 현재는 수돗물이지만 예전에는 수로를 통해 솔로몬 못에서 물을 끌어왔었다. (2)여름설교단(The Summer Pulpit) 주로 여름에 설교를 할 때 사용한다. 1456년에 처음 건축되었으며 여러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다. 12세기 초 십자군 시대. 12세기말 살라딘 때. 14세기. 그리고 오토만 시대 때의 건축 양식이 나타나 있다. (3)유서프돔(Yussuf Dome) 여름설교단 duvdpo 삼면이 트인 작은 건물이 있다. 유서프란 이름은 두명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하나는 1191년 이 건물을 짓게 한 살라딘 유서프와 1681년 이를 복구한 유서프 아가의 이름이다. (4)배움의 돔(Dome of Learning) 3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긴 건물로서 지하에는 작은 예배실도 있다. 이곳은 아랍어 공부를 더 집중적으로 하게 하기 위해 다메섹 왕이 1207년에 세운 것이다. (5)바위돔(The Dome of the Rock) 둥근 황금빛 지붕의 팔각형 회교 대 사원으로서 성전산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큰 바위위에 지어진 것이다. 회교도에게는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세 번째로 거룩한 장소로서 시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상적인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이 바위 돔은 예루살렘의 상징물로서 우표나 엽서 그리고 많은 사진이나 작품 속에 나타나있다. 주후 691년 오미아드 칼리프에 의해서 건축된 이후 처음 건물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회교 대 사원이 이곳에 세워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마호메트가 이곳에서 승천했다. 이 바위돔 안에 있는 큰 바위에는 표면에 움푹 패인 곳이 있는데 회교도들은 마호메트가 승천할 때 남긴 자국이라 한다. 그들은 최후심판 때 이 바위에서 나팔이 울려 퍼지고 알라신이 이 바위 위에 나타날 것이라 믿고 있다. 특히 마호메트는 이곳에서 아담, 예수, 요셉, 에녹, 아론, 모세, 그리고 아브라함을 만났고 하루에 5번씩 기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원이 세워진 또 다른 이유는 회교도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기독교이 성묘교회에 대응하는 회교도의 성지를 갖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 있는 통치자들 간에 권력다툼에 의해서 메카나 메디나로 가는 순례객을 막기 위해서 이곳을 회교 성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바위 돔은 높이가 43m나 되는 팔각형 건물로서 한변의 길이는 20m나 된다. 팔각형의 벽면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물구로 아랍어가 가득 쓰여있다. 바위 돔에는 4개의 입구가 있는데 서족에 있는 문이 현재 사용되고 있다.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벗어야 하고 가방과 카메라를 갖고 들어가지 못한다. 건물 안 중앙에는 가로 12m, 세로 15m의 큰 바위가 있고 둘레에는 나무로 된 난간이 둘러싸여 있다. 이 바위가 모리아산의 정상으로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다는 곳이다. 도한 유대인들은 이곳이 세계의 중심이며 세상이 창조될 때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다. (6)예언자의 돔(Prophet''''s Dome) 바위 돔에서 가장 가까운 돔으로 직경 3미터인 남으로 입혀진 팔각형 건물이다. 예언자의 돔은 터어키 통치자 모하메트 벡에 의해서 건축되었다. (7)승천 돔(Dome of the Ascension) 바위 돔의 서쪽에 있는 8각형의 건물이다. 대리석 벽이 둘러 건축되고 안에 기도실이 있었다. 둥근 지붕위에는 십자군 양식으로 또 다른 작은 둥근 지붕의 탑이 있다. 회교도 전승에 의하면 마호메트가 승천하기 전 이곳에서 기도했다는 곳이다. 이 건물은 1200년 맘룩(Mamelukes)에 의해서 파괴되었다가 몇 년 후에 다시 회복되었다. (8)에리야 돔(The Dome of Elias) 전설에 의하면 솔로몬왕이 영혼을 감금해 두었다는 곳이다. 회교도들은 제사를 드릴 대 이곳에서 모였다. (9)영혼의 돔(The Dome of the Spirits) 바닥의 자연석은 속이 비어있다. 회교도의 전승에 의하면 마호메트가 이곳에서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게 설교했다고 하며 죽은자들의 영혼이 이곳에 모여있다. (10)체인 돔(Dome of the Chain) 바위 돔의 4m정도 동쪽에 있다. 이 구조는 바위 돔의 축소판과도 같다. 회교도의 전승에 따르면 다윗왕이 재판을 행할 때 이곳에 앉았었다고 한다. 재판할 때 천장으로부터 쇠사슬이 늘여뜨려져 있어 진실을 말하는 자는 누구나 이 사슬을 만질 수가 있었으나 거짓을 말하는 자는 사슬에 가까이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이곳이 제2성전 시대에 재판석이 있었던 곳이라 하고 회교도 전승은 이 믿음을 강하게 해 준다. 또 다른 전승은 이곳에 국고가 있었던 곳이며 십자군 시대 때 이 구조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에게 봉헌된 예배실로 변했다. 유대인들은 법궤와 아론의 지방이가 이곳에 보관 되어 있었다고 믿는다. 이곳이 살렘왕 멜리세덱을 위한 제단이 있었던 곳이다. (11)황금문 (12)솔로몬 보좌(Throne of Solomon) 황금문 조금 북쪽에 성벽에 접해 있는 두개의 둥근 지붕으로 된 건물이다. 전승에 의하면 성전건축이 진행 중일 때 솔로몬이 이곳에 앉아서 지켜보았다. (13)지파문(Gate of the Tribes) 동쪽 성벽의 맨 북쪽 끝에 있는 문이다. 회교도의 전승에 의하면, 이곳을 발문한 후 이 문을 통해 나간 이스라엘의 12족장들을 따라 이름 지어졌다. 모양이 단순한 이 문은 오토만시대 때 건축되었다. (14)속죄의 문 (Gata of Atonement) 성전 북쪽벽의 두개의 문 중에서 동쪽에 있는 문이다. 이 문위에는 ‘슐탄의 통치하에서 10세기에 건축되었고 1220년에 재건축되었다’는 문구가 있다. 이 문의 이름은 코란에 나오는 이야기에 의해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이스라엘의 어린이들 중에서 죄를 속죄해야 할 때 아랍어로 히타(Hita-속죄)란 말을 하고 이곳을 지났다. 그러면 그들의 죄 사함을 받았다. 그래서 아랍어의 또 다른 이름은 ‘히타문’이라고도 한다. 성전에 직전으로 이르는 문이다. (15)어둠의 문(The Dark Gate) 성전 북쪽 성벽의 맨 서쪽에 있는 문이다. 이문의 이름은 이곳에 이르는 어두운 통로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문의 또 다른 이름은 ‘예언자의 영광의 문’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칼리프 오마르가 처음 예루살렘에 왔을 때 기도하기 위해 이문을 통해왔다. 이 문 밖으로는 사자성문(스테반성문)으로 통한다. 어돔의 문 근처에 이라크 왕 후세인의 아버지 화이잘(Faisal)이 묻혔다 하여 ‘화이잘의 문’이라고도 한다. (16)솔로몬의 돔(Dome of Solomon) 어둠의 문 남서쪽에 옴미야드 때부터 여덟 개의 창문이 있는 팔각형의 건물이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건물 안에 기도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건물 남쪽에는 기도단이 나오고 서쪽에는 쇠로된 난간으로 둘러싸인 바위가 있다. 전승에 의하면 이 바위는 바위 돔의 일부 조각이라 한다. 이 건물은 또한 작은 바위 돔으로 알려져 있다. 아랍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성전이 완성되었을 때 솔로몬 왕이 이곳에서 기도하였다 한다. (17)감옥문(Prison Gate) 이 문은 십자군 시대 때 ‘미가의 문’의 기초위에 1203년에 세워졌다. 회교도의 최고위원회가 이곳에서 가깝기 때문에 ‘위원회의 문’이라고도 한다. (18)철문(Iron Gate) 서쪽벽의 감옥문 다음 문으로서 말발굽의 아치형이 새겨져 있다. 문 밖의 골목으로는 맘룩 시대의 건물들이 있다. (19)상인문(Cotton Merchants Gate) 성전에 있는 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중의 하나이다. 이 문에서 성전 지역에 오르는 계단이 있다. 입구위에는 검은 돌과 흰 돌로 태양의 광선 모양을 한 돌 장미꽃이 있다. 나무로 된 문위에 덮인 구리조각위에는 1336년부터 1337년 사이에 다메섹과 탄키즈(Thakiz)에 의해서 건축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비문이 있다. 이 문은 학개거리(Hagai Street)입구에 있는 시장으로 통한다. (20)목욕문(Gate of the Bath) 상인문 옆에 있는 문으로서 두개의 문이 성전 밖의 한 통로에서 만난다. 이 문의 이름은 오토만 시대말기 까지 사용되었던 목욕탕 근처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는 제2성전 시대 때에도 목욕시설이 있었다 한다. 이 문은 맘룩시대에는 정화의 문이라고도 불렸었다. (21)마드라사 엘우사만야(Madrassa el-Uthmanyya) (22)샘(Fountain od Qayt Bey) 이 곳은 맘룩 시대 때 물을 마실 수 있는 샘이었다. 밑에 가로 세로 5m씩의 정방형 건물위에 팔각형의 건물과 그위에 둥근 지붕에는 꽃들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지붕의 맨꼭대기에는 반달 모양의 것이 있다. 이 건물의 높이는 14m나 된다. 동쪽에 반원형의 계단을 오르면 샘의 입구가 있다. 세개의 다른 면에는 대리석 창턱과 함께 창살이 있다. 샘물은 수로를 통해 솔로몬의 웅덩이에서부터 끌어온 것이었다. (23)모세의 돔(Dome of Moses) 가로 세로 7m씩의 정방형 건물위에 8각형의 낮은 건물과 그 위에 둥근 지붕이 있다. 북쪽 입구에는 1249년에 이 건물을 지은 슐탄살라딘(Sultan Saladin)을 기념하는 비문이 있다. 이 돔은 회교도에 있어서 거룩한 예언자 모세를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24)사슬문(Gate of the Chain) 사슬문은 성전 서쪽벽의 정문이다. 사슬문에는 두개의 입구가 있는데 신성한 문이라 불리는 북쪽 문은 현재 막혀 있다. 남쪽 문이 사슬문으로서 열려 있다. 이들 문은 체인거리(Chain Street)끝에 위치해 있다. 이 문은 제2성전 시대의 문이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것이다. 이 문 안쪽으로 석주들과 첨탑들이 있다. (25)솔로몬의 마굿간(SoIomon''''s StabIes) 성전의 남동쪽 구석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나온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 지하에 예수께서 태어나셨다는 구유가 있었다. 헤롯이 성전을 확장할 때 성전 남쪽 벽을 지탱하기위해 이곳에 기둥을 세웠다. 성전산 지역은 현재 이곳보다 3m정도 더 높이 있다. 이 비워져 있는 공간위에는 빗물이 흐를 수 있는 하수구가 있다. 이 공간은 아마도 헤롯 때에 마굿간으로 쓰였을 것이다 그리고 말들은 남쪽 성벽 밑에 있는 문으로 드나들었다. 이 솔로몬의 마굿간 서쪽으로는 성전으로 올라가던 입구인 훌다문(Hulda Gate)이 있다.
(26)엘 악사 사원(El Aqsa Mosque) 엘 악사 회교사원은 성전산 안에서 가장 크고 인상적인 대 건축물이다. ‘악사’라는 이름의 뜻은 ‘가장 멀다’라는 뜻으로 ‘악사’가 메카에서 가장 먼 사원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 사원은 성지에 있어서 가장 오래되고 세계 회교도의 성지 중에서 가장 성스럽고 큰 것 중의 하나이다. 회교도의 전승에 의하면, 오마르(Omar)가 638년에 옴미야드 칼리프의 아버지는 바위 돔을 지었다. 이 모스크는 전 시계에서 이 곳에 순례 온 수많은 순례객에 의해서 설계되고 지워졌다. 그 당시의 건물은 오늘날의 것보다 훨씬 컸었다. 그러나 이것은 747년과 1033년에 있는 두 차례의 큰 지진에 의해서 파괴되고 중건되었다. 1099년 십자군 정복 이후에는 이 사원은 십자군 왕의 관저로 변했었다. 이곳에서 많은 십자군 시대 때의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1187년 살라딘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정복되었을 때 다시 회교사원으로 변했다. 1927년과 1936년에 두 차례의 지진으로 많은 손상을 입었으나 이집트와 요르단 왕의 도움으로 1948년에서 1951년 사이에 수리되었다. 그러나 1969년 광신 기독교인에 의해서 발생된 화제에 의해 크게 손상을 입고 수년간 수리를 위해 출입이 금지 되고 있다. 엘 악사 사원은 수차례에 걸쳐 수리와 변형을 가해 건물의 양식이 다양하다.
(27)여자들의 모스크(Woman;s Mosque) 이 모스크는 엘 악사 사원의 서쪽에 있는 직사각형의 방으로서 무기저장고와 생활공간으로 쓰이던 곳이다(12.75m). 이곳의 전체 바닥은 십자군 시대 때의 것이 그대로 남아 있고 윗층은 파괴되었다. (28)유서프 아가의 돔(Dome of Yussuf Agha) 유서프가 건축을 명령하여 지었기에 유서프 돔이라고 하였다. 현재는 입장권을 파는 매표소로 사용되고 있다. (29)마드라사 엘파크리야(Madrassa el-Fakhryya) 회교로 개종한 콥트의 한 재판장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것이다. 1330년부터 순례객들을 위한 숙소로 사용되었다. (30)회교 박물관(Islamic Museum) 가로 세로 10.50m의 회교 박물관은 여자들의 모스크 옆에 붙어 있다. 이 건물은 옴미야드(Omayyad)에 의해서 건축되었다. 1871년 터어키와 슐탄 압둘 아지즈에 의해서 증축되었고 1923년부터 회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는 코란과 엘 악사 사원을 비롯한 여러 성전산 여러 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펠(Opel) 오펠은 오펠산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오펠은 제1성전 당시 중앙관서가 도시 중심을 이루었던 곳이다.
성전산의 서쪽벽과 남쪽벽의 바깥 지역까지 확장되어 현재 고고학 발굴이 이루어져 중요 장소마다 설명이 잘 되어 있다.
오펠의 입구는 오물문을 들어가서 바로 오른쪽에 있다. 먼저 계단을 내려가서 성전산 서쪽벽 위를 보면 로빈슨 아치가 있던 돌출부가 있다. 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부른 로빈슨 아치는 성전 맞은편 지역에서 성전 윗층으로 바로 통하는 문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 다리는 없어지고 입구가 있던 곳은 작은 돌들로 막혀 있다. 로빈슨 아치 밑 한 성벽에는 주후 4세기경에 새겨놓은 두 줄의 히브리어 문구가 있다. 이사야 66:14의 말씀을 인용한 말씀이다.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의 뼈가 연한 풀 같으리라."
서쪽 성벽과 남쪽 성벽이 만나는 모서리 부분을 자세히 보면 큰 돌을 엇갈려서 겹겹이 쌓아 올라가면서 안쪽으로 들여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성벽 전체의 안전감을 유지하기 위해 안쪽으로 기울게 한 것이다. 각각의 돌은 보통 5m두께에 10m길이로 30-50톤의 무게이며 그 중 큰 것은 100톤이나 되는 것도 있다. 당시의 토목기술로 어떻게 이 큰 바위를 쌓아 올렸는지는 아직도 불가사이로 남아있다.
모서리 윗부분에는 주먹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관통되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마호메트가 타고 왔던 날으는 말을 묶어 놓았던 곳이라 한다.
남쪽 성벽을 따라 가면 중간을 가로지른 성벽이 있는데 문을 통해 건너편으로 들어가면 비교적 자세하게 고고학 발굴이 이루어진 곳이 있다.
성전산 남쪽 벽에는 엘 악사로 막혀있지만, 문은 선명하게 보인다. 이곳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훌다 문으로 오르는 돌계단이다.
돌 계단은 번갈아 올라가면서 넓었다(90cm) 좁았다(40cm)하는데, 이는 급한 마음으로 올라가지 아니하고 한 칸 오르고 쉬고, 한 칸 오르고 쉬면서 경건하게 오를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계단의 넓이와 높이가 각각 29cm-13cm, 90cm-40cm가 번갈아 있다.
[자료제공 : 이강근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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