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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바사 제국(페르시아)에 살았던 에스더와 모르드개

영국신사77 2009. 1. 4. 20:51
바사 제국(페르시아)에 살았던 에스더와 모르드개

  구약 에스더서의 저자 에스더의 역사성에 대해 많은 성경학자들이 의심을 가지고 있는데 필자가 이곳에 살면서 에스더서의 무덤을 중심으로 역사성을 밝혀보려고 한다.

  당대 그리이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B.C.5세기 후반부에 페르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페르시아와 그리이스간의 갈등과 반목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였다. 페르시아에 대해 기록한 시기는 에스더 7-9장에 해당되는 기간이었다.

  그는 에스더서에서 볼 수있는 것과 같이 아하수에로 왕을 변덕이 심하고 관능적이며, 때로는 잔인하고 독재적이라고 묘사하였다. 이 내용이 에스더 1장에 나오는 와스디 왕후를 폐위하고 곧이어 에스더를 새 왕비를 맞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란 시라즈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에서 발견된 아하수에로의 비문에는 ‘나는 아하수에로, 위대한 왕, 유일한 왕, 모든 종류의 방언을 쓰는 모든 나라의 왕, 땅 끝까지 이르는 거대한 제국의 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겨울 궁전이었던 이란 남부 수사 도시 수산성을 발굴하던 불란서 고고학자들은 다리오가 제국의 곳곳에서 물자를 동원해 궁궐을 지었다는 내용을 담은 토판을 발견하였다. 그 궁궐은 다리오의 뒤를 이은 아하수에로에 의해 완성되었다.

  아하수에로 통치 초에 수산 궁 내에 마르두카란 사람이 최고 관리였다는 기록이 바벨론 근처 보르시파(Borsippa)에서 발굴된 상형 문자판에 적혀 있다. 이 마르두카는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를 일컫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많은 유다인들이 아닥사스다 1세와 다리오 2세의 통치 기간에 페르시아제국 내에서 주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1세의 술관원이었으며(느 1:11), 또 어떤 이는 각 도의 장관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모르드개가 페르시아 제국에서 높은 관리였다는 것이 허구적인 상상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실제 인물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역사적 증거들이다. 어떤 성경학자는 에스더서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로 유대 여자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다는 것은 바사법에 용납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성경에는 아하수에로 왕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당시 현지 이름은 크세르크스(Xerxes)이다. 그의 비문에 모두 크세르크스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폭군으로서 전제 정치를 하였고, 자기가 보기에 아름다운 여자를 임의로 취하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크세르크스왕 제 7년 이후의 왕후는 아메스트리(Amestris)인데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다는 것은 에스더서의 역사성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크세르크스가 B.C.480에 그리이스와 싸워 패전하고 돌아 와서 궁녀들로부터 위로 받기를 원하였는데 이 때에 에스더가 왕후로 선발되었을 것이다.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의 생각에 따라서 유대인의 원수 75,000명을 죽였다는 것(9 ; 16)은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옛날의 폭군들이 다수의 인명을 살해하는 것은 별문제가 아니었다고 본다.

  유대인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허락한 고레스 왕이 죽고 캄비세스(주전 530-522년)와 다리오 1세(주전522-486년)가 왕위에 올랐다. 아하수에로는 다리오 1세의 아들로서 장남이 아니었지만, 다리오 1세의 뒤를 이어 왕이되었다.

  그리이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주전 484-424년)는 아하수에로 왕이 고대 근동 아시아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효과적으로 다스린 야망 있고 뛰어난 전사이며, 또한 무자비한 통치자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하수에로 왕은 헤로도투스가 그의 페르시아 전쟁사의 1/3(7-9장)을 아하수에로의 그리이스 침략 사건에 할애할 정도로 대단한 왕이었다.아하수에로는 유럽정복에는 실패했지만, 한때는 마게도니아로 진격하여 테르모필레에서 스파르타군을 제업하고, 아테네를 점령하기도했다.

  성경 기자는 실제 사건들의 연대기인 궁중 일기(에2:23)와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에10;2-3)를 언급함으로써 에스더서의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에스더서를 역사 소설, 또는 역사화된 지혜 이야기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은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에스더서에 있는 우연의 일치와 "페리페테이아(운명의 역전)"의 원리는 사건의 표면 아래에 숨어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행동을 잘 드러낸다고볼 수 있다. 에스더서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함축적인 신학을 갖고 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손이 철저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손이 숨겨져 있다. 하나님의 손이 의도적으로 숨겨져있기에 오히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비록 하나님의 통치가 모호한 사건들 가운데 분명히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혼둔의 역사가 아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통제 안에 들어있다. 따라서 세계 제국의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모호한 사건들 중에도 이스라엘의 숨겨진 하나님은 그의 숨겨진 백성을 말살의 위기에서 구원해 주신다. 그러므로 모르드개의 신앙과 에스더의 용기는 정당화되며, 유다인들은 매년 부림절에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면서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르드개는 바벨론 땅에서 태어나 바사국의 도성인 수산(Susan)에 살고 있었는데 삼촌의 고아된 딸 에스더를 친딸처럼 양육하고 있었다. 모르드개가 활동하던 시대 배경을 성경의 흐름 안에서 살펴보면 에스라서 6장과 7장사이에 나와 있다.

  즉,유다 총독 스룹바벨에 의한 제 1차 포로 귀환(주전 537년경)과 학사 에스라에 의한 제2차 포로귀환(주전 458년경) 사이이다. 이때는 일반 역사책에서 ‘크세르세스’(Xerxes)로 알려진 바사 왕 아하수에로가 통치하던 시대였다. 바사 왕 아하수에로의 통치 시절에 아각 사람 하만은 바사 제국의 총리대신으로 왕 다음인 제2인자 위치에 있었다. ‘아각 사람’은 아말렉 왕 아각의 후손을 가리키는 말인데 아말렉족속은 오래 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후미에서 공격하여 큰 타격을 입힌 족속으로 언약 백성 이스라엘의 공적이었다.

  그때로부터 근 천년의 세월이 흐른 때에 바사 제국에서 아말렉의 후손인 하만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하만의 권세가하늘을 찌를 듯했기에 사람들은 하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했다. 하지만 역사 의식이 깊었던 모르드개는 유대 민족의자긍심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원수인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하만이 알게 되자 하만은 적개심에 불타올라 모르드개뿐 아니라 유대 민족 전체를 말살하기로 작정하고 왕의 허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왕비 에스더와 협력하여 하만의 계략을물리치고 동족 유대인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냈다. 그리고 하만은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고 세운 높은 장대에 자신이 매달려 죽고말았고 그 대신에 모르드개가 총리대신이 되어 유대 민족의 큰 영광과 자랑이 되었다 당시 바사국의 총리대신인 하만의 막강한 권세를 감안할 때 일개 포로의 후손에 불과한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감히 대적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모르드개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의 용기로 하만 앞에 끝내 무릎꿇지 않았고 도리어 대적 하만을 무릎 꿇게 만들었다. 모르드개처럼 오늘 그대들도 하나님의 자녀된 자긍심을 가지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