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성막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주지 않는다. 이는 성경이 자료집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사건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막의 건립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한 언급이 주어진 것은 이것이 갖는 구속사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반면 성막 건립 후 성전으로 대체될 때 까지의 역사가 모호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에 대한 규례를 철저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모세시대의 성막이 솔로몬 성전으로 대체될 때 까지의 성막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본다.
◈ 성막의 역사
1. 성막의 건립 성막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명령대로 만들어 졌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도착한 때가 3월이며(출19:1) 성막의 봉헌이 그 이듬해 1월1일에 있었다.(출40:2) 이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보여 주심으로(출40:34) 당신이 성막에 임재하심을 나타내셨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를 보호하셨을 뿐만 아니라 성막의 이동 시점을 계시하셨다(출40:37-38)
2. 광야의 성막 이스라엘은 성막 봉헌 후 50일간을 시내산에서 더 머물렀으며, 그 해 2월20일에 이동을 시작했다(민10:11). 이 때 레위인은 법궤등 성막의 기구들을 어깨에 메고 옮겼으며(민4:5), 성막 본체는 해체하여 주로 수레에 실어 이동했다(민7:1-11). 광야 여행 도중 그들의 이동경로는 부분적으로 확인되나(민33:16-49) 성막을 세운 장소는 불명확하다. 이는 항상 전쟁을 염두에 두며 행군을 준비하는 가운데 정규적으로 희생제사를 드리거나(암5:25) 정상적으로 성막을 세우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3. 길갈의 성막 요단강을 건넌 후 가나안 정복이 진행되는 동안 성막이 임시로 안치된 장소는 여리고 근처의 길갈이었다(수4:16; 5:10; 9:6).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았고 땅이 무덤으로 더렵혀 지지도 않았으므로 적당한 장소로 여겨졌을 것이다.
4. 실로의 성막 가나안 정복이 일단락된 후 성막은 에브라임 지파의 성읍인 실로로 옮겨졌다(수18:1). 여기서 성막은 '여호와의 전'으로도 불리워 지는데(삼상1:9), 이는 이곳이 고정된 장소였음을 암시한다.
한편 사사 시대에는 성막이 실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에 다른 예배 처소를 만들었으며(삿18:31) 실로에서의 제사 역시 형식에 그친 정도였다(삼상2:14). 이러한 배교로 인해 법궤는 블레셋에게 빼았겼으며(삼상4:11) 실로도 함락되었다(시78:60, 렘7:12). 그러나 성막을 블레셋에게 빼앗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5. 모호한 시기 실로 함락 후 성막은 다시 길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사무엘과 사울이 길갈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는 기록에서 암시받을 수 있다(삼상10:8).
그러나 이와 별도로 성막의 주요 성물의 하나인 법궤는 블레셋사람의 손에서 반환되어 벧세메스에 잠시 머물렀으며(삼상6:19) 기럇여아림에 20년 동안 있었다(삼상7:1-2).
6. 놉의 성막 놉땅에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었으며 그에게 여호와께 드렸던 거룩한 진설병이 있었다는 기록(삼상21:1-6)을 볼 때 사울 시대에 성막이 놉땅에 있은 적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7. 기브온의 성막 옛적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다윗 당시 기브온 산당에 있었다(대상21:29).
8. 성막의 병존(竝存)시기 다윗은 기럇여아림에 있는 법궤를 두기 위해(삼하6:11) 시온에 성막을 새로 만들었다(삼하6:17). 따라서 당시는 제단이 있는 기브온의 원래 성막과 법궤가 있는 예루살렘의 새로운 성막이 병존했을 것으로 추측된다(왕상3:1-3).
9. 성전의 건립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립함으로써 성막의 기능은 성전으로 옮겨졌다. 따라서 B.C.1445년에 만들어진 성막은 B.C.959년까지, 즉 487년간 예배의 처소로 존속했다. 그 이후에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의 종교적 유물로 보관되었으나(왕상8:4)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에 의한 성전 파괴시(B.C.586)없어진 듯하다.
◈ 성전의 역사
성전은 성막(Tabernacle)의 발전 형태다. 이스라엘 역사상 성전은 세 번에 걸쳐서 세워졌다. 솔로몬 성전(B.C.959; 왕상6:1-38), 스룹바벨 성전(B.C.516; 스6:15-18), 그리고 신약시대의 헤롯 성전(B.C.20-A.D.63)이 바로 그것이었다. 또한 이런 성전들은 다 무너졌다.
하나님의 상징적 임재 처소인 성전이 무너질 때마다 이스라엘은 크게 놀랐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놀랄 일이 못되었다. 왜냐하면 돌과 쇠로 만든 건물 자체가 하나님이나 아니면 하나님의 처소였던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순종할 때만 하나님이 그속을 당신의 처소로 삼아 주신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요 우리 주님의 사역의 예표이며 그 흥망의 역사가 이스라엘 신앙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이스라엘 성전의 역사를 함께 모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솔로몬 성전 출애굽한 지 480년 만인 B.C.966에 착공하여 총공사 기간 7년6개월 만인 B.C.959년, 예루살렘의 모리아산(Mount Moriah)위에 이스라엘 역사상 제 1성전이었던 솔로몬 성전이 준공되었다(왕상6:1-38).
그러나 이 성전은 준공된지 373년만인 B.C.586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제3차 침공 때 남 왕국 유다의 멸망과 함께 완전히 훼파되었고, 성전의 금, 은, 놋 기명과 보물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졌다.
흥미로운 것은 훗날 헤롯 성전은 이 솔로몬 성전과 같은 달, 같은 날 즉 아빕월(포로 귀환후 니산월로 이름이 바뀜 : 태양력 3-4월에 해당됨) 9일에 멸망했다.
2. 스룹바벨 성전 이스라엘 역사상 제 2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은 B.C.586년 솔로몬 성전이 함락된 후 B.C. 516년에 건축한 것으로, 옛 성전에 비해 크게 초라했다.
또한 포로 귀환 이후 바사(persia) 식민지 상태에서 건축한 것으로, 학개서에도 언급되었듯이 그 과정에 우여 곡절이 많았다.
또한 B.C.167년 중간사 시대에 헬라인들에게 크게 모독 당하기도 했었다.
3. 헤롯 성전 이방인 이두매(Idumea) 출신인 헤롯은 유대인들에 대한 유화 정책으로 헤롯 성전을 건축하였다. 옛 성전 터전위에 B.C.20년에 착공하여 외형은 9년만에 완성되었으나 세부공사는 A.D.63년경에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한편 예수님은 이같은 헤롯 성전을 가리켜 이것을 헐면 3일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었다. 이것은 하나님 임재 처소의 상징에 불과한 건물 자체를 가리키신 것이 아니라, 그 건물에 임재하시는 하나님 자체이신 당신을 죽이면 삼 일만에 다시 사실 것을 빗대어 말씀하신 것이었다(요2:19).
아무튼 근 80년이 넘게 걸려 세워진 이 헤롯 성전은 그 성전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불신의 결과, 그저 죽은 건물로 존재하다가 완공된지 불과 수년 후인 A.D.70년에 로마군에 의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저항하던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함락되고 성전을 불타 버렸다.
그런데 성전에 있던 금들이 화재속에서 녹아 돌 사이에 스며 들었고, 로마 군인들이 이 금을 찾기 위해 모든 돌을 다 해쳐버려 돌 위에 돌이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헤롯 당시 성전의 바깥 벽 중 일부 약 450m 정도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이를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이는 유대인들 이 이곳에 와서 성전이 파괴된 것과 나라를 잃은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여 통곡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거룩한 장소이다. 오스만 시대부터 이스라엘은 물론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곳에 순례차 와서 소원이 적힌 쪽지를 벽의 돌 틈새에 끼워 가며 기도를 한다. 로마 시대에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 압비월 9일 하루만 이곳에서 기도하는 것을 허락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