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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를 찾아서 12-국고성 비돔과 람세스

영국신사77 2008. 8. 20. 00:09

 

              성지를 찾아서 12-국고성 비돔과 람세스 
출처 블로그 > ♡~작은기쁨~♡
원본 http://blog.naver.com/plusgen/50006431852

 

창세기 50장과 출애굽기 1장 사이에는 이스라엘민족의 잃어버린 시간이 존재한다.이 시대에 이스라엘민족은 고향을 떠나 이집트에 체류하다가 모세의 지휘 아래 출애굽을 감행했다.당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국고성 비돔과 람세스(라암셋)'을 건설하면서 히브리 노예들을 가혹하게 부렸다고 성서는 증언하고 있다(출애굽기 1:11).그들은 이집트 감독들의 엄한 감시 아래 흙을 이겨서 벽돌을 만들어 국고성을 건설했다.영국의 이집트탐사재단은 바로 이 흙벽돌로 만들어진 고대 이집트의 국고성 흔적을 찾기 위해 1882년 설립됐다.

1873년 겨울 어느날 아멜리아 에드워즈(Amelia Edwards)라는 영국 여성수필가는 친구들과 함께 `펠루카'라 불리는 전통적인 돛단배를 타고 알렉산드리아를 출발해 이집트 탐사에 나섰다.나일강을 따라 2개월간 이집트 전역을 여행한 그녀는 영국으로 돌아온 후 `나일강 1천 마일을 거슬러'라는 제목으로 여행기를 출판했다.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집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그후 그녀는 계속해서 이집트 유적에 관한 글을 발표했으며,특히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가운데 쓰러지고 황폐해지는 유적들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그녀는 영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집트에서도 성서의 고센땅으로 여겨지는 삼각주지역을 발굴해야한다고 주장했다.이러한 그녀의 노력이 이집트탐사재단의 설립이란 열매를 맺었다.처음에는 이 단체를 `삼각주탐사재단'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초기의 이집트학자들은 성서에 등장하는 고센땅의 흔적을 밝히고 싶어했다.

이집트탐사재단은 그들의 첫번째 발굴지로 이스라엘민족이 건설노동자로 고생했던 국고성 비돔을 택했다.그런데 문제는 그 넓은 고센땅의 어느 곳에 비돔이라는 도시가 있었느냐는 것이었다.이 역사적인 이집트 성지발굴의 책임자는 스위스 출신의 에두아르 나빌(Edouard Naville)이었다.1883년 1월 나일강의 물이 어느 정도 줄어들어 삼각주지역의 발굴이 가능해졌을 때 나빌은 첫번째 발굴에 나섰다.그는 우선 고센땅이 삼각주지역에서도 가나안에 가까운 북서지역임을 알아냈다.그리고 그곳에 흩어져 있는 텔,유적지들을 샅샅이 조사한 끝에 `텔 엘-마스쿠타(Tell el-Maskhuta)'를 비돔으로 여기고 발굴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출토된 비문에 의하면 원래 비돔은 고대 이집트어로 `페르-아툼 테쿠'로 `테쿠에 있는 태양신 아툼의 신전'이라고 기록돼 있다.이집트어의 테쿠는 히브리어로는 `숙곳'으로 발음될 수 있고,숙곳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민족이 출발한 장소(출애굽기 13:20)였다.이에 따라 그는 그곳을 비돔으로 확정지었다.

이곳은 아랍어로 `우상들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여러 종류의 석상들이 흩어져 있던 유적지였다.또 이곳은 히브리 족장시대의 배경이 되는 이집트 15왕조 힉소스민족의 중심도시였다.이곳은 파괴된 후 계속 폐허로 남아 있다가 기원전 610년경부터 로마시대까지 요새로 재건됐다.네코 2세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황제는 나일강 하류와 홍해를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했는데 비돔은 이 운하 근처에 위치한 요충지였다.3개월간의 발굴이 끝난 후 나빌은 1885년 `국고성 비돔과 출애굽 경로'라는 제목의 발굴보고서를 출판했다.

한편 비돔과 짝을 이루는 또다른 국고성 람세스는 람세스 2세가 건설한 하이집트의 수도였던 `피람세스'를 말한다.또 구약성서에서는 야곱의 가족들이 총리대신으로 출세한 요셉의 배려로 거주했던 이집트의 한 지방을 고센땅 중에서도 “라암세스의 땅”(창세기 47:11)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또한 이곳은 람세스 2세의 고향이었으며,기원전 13세기에 그가 건설한 `람세스의 궁전'이라는 뜻의 피람세스는 삼각주지역에서도 가장 화려했던 왕도였다. 물론 지금은 폐허가 되어 옛날의 영화를 찾아볼 길이 없다.

두 개의 국고성 중에서 비돔은 1883년 나빌에 의해 처음으로 발굴됐지만,람세스는 지상에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기에 비교적 최근인 1970년대 이후에야 그 지리적 위치가 어렴풋이 확인됐다.70년대 완공된 아스완하이댐 때문에 삼각주지역의 지하수면이 높아져 저지대는 연중 6개월 정도 침수되곤 했다.람세스도 벼농사를 하는 논과 밭이 있는 곳에 위치했기에 그 위치를 찾기 어려웠다.

독일의 이집트 학자인 에드가 푸쉬(Edgar Pusch)는 독일 펠리제움박물관의 후원으로 1987년부터 나일강의 한 지류였던 펠루시움 강변에 위치한 칸티르라는 곳에서 대규모의 궁전 유적지를 발굴하기 시작했다.그는 이 유적이 람세스 2세의 궁전과 신전 유적이며,따라서 그곳이 피람세스,즉 람세스 궁전이 있던 출애굽기의 국고성 람세스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에드워즈 여사와 나빌,푸쉬 등의 노력으로 구약성서의 신앙적 기초가 되는 출애굽사건의 현장인 국고성 비돔과 람세스가 발굴됐다.이를 통해 우리는 고대 이집트문명 속에서 성서를 직접 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김성교수(협성대 성서고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