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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글성경 보급과 교회 성장은 이국 땅에서 생애를 바치고 목숨을 내걸었던 이들의 피땀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회사 학자들은 천주교가 개신교보다 100년 먼저 전래됐지만, 개신교보다 교세가 적은 것은 결정적으로 성경을 빨리 보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정도다.
첫 번째 의견은 1832년 네덜란드선교회 소속 귀츨라프가 충청도 지역에서 한국인의 도움으로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했다는 것. 그러나 주기도문을 성경 전체로 볼 수 없는데다 자료마저 남아있지 않아 근거가 미약하다.
둘째는 1866년 토머스 선교사 순교 사건이다. 토머스 선교사는 대동강에서 순교할 당시 한문성경을 조선인들에게 뿌렸다. 훗날 이 한문성경을 받은 한 사람의 조카가 기독교인이 되어 레이놀즈와 함께 성서 번역 사업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나 한글성경 번역과 직접적 관련이 없어 논지의 근거가 미약하다.
1879년 3월에는 한국인 번역자 중 한 명이 세례를 요청했는데 이것이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세례 사건이다. 안타깝게도 자료에 이름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는 묵묵히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를 마음에 품은 한국 기독교 역사의 산증인일 것이다. 말씀의 능력은 복음에 무지한 조선인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도구로 만들었다. 이후 백홍준과 전직 관리, 서울 출신 학자 등이 번역 작업에 참여했다. 이들은 나중에 목숨을 걸고 성경을 가슴에 품은 채 조선 땅에 입국한다. 이제 나의 모든 영혼은 그 안에 있다…."(매킨타이어의 'The Corea Version', 1881).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
2008.07.03 18: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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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을 찾아라!" 대한성서공회는 한동안 우리말 성경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와 '예수셩교젼셔'의 원본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웠다. 6·25 후 성서공회 건물 화재로 귀중한 자료를 상당수 상실했기 때문이다. 대한성서공회는 당시 '몇 억원을 주고서라도 원본을 찾아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애타게 원본을 구하고 있었다. 희귀본이라 할 수 있는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는 당시 3000여부가 반포됐었다. 다행히 이 책은 미국성서공회 귀중도서 자료실에 2권, 영국성서공회 자료실에 2권이 소장돼 있었다. 대한성서공회는 이 사실을 알고 영국성서공회에 2권 중 하나를 보내줄 것을 수년간 요청했다. 그렇게 10여년 간 끈질기게 요청하자 마침내 영국성서공회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동반자 관계를 지켜온 것을 고맙게 여기며 귀 공회에 이 책을 선물로 드린다"는 반가운 편지와 함께 1998년 원본 1권을 보내왔다. '예수셩교젼셔' 역시 소장하지 못하다가 1987년 우연히 성서공회 창고에서 양장 제본되어 있는 원본을 찾아냈다. 이 원본은 현재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성서공회 창고의 콘크리트 금고에 안전하게 보관돼 있다. 이들 원본의 특징을 보면 절 표시가 전혀 없으며 띄어 쓰기도 되어있지 않다. 다만 '하느님' '쥬' '예수' 등 존경하는 이름이나 칭호 뒤에 빈칸을 두는 대두법(擡頭法)이 적용되어 있다. 짙은 평안도 사투리가 많이 쓰인 것도 특징이다. 종이는 그 무렵 사용하던 당지나 한지를 사용했으며, 외줄 끈으로 네 번 꿰매 제본했다. 참고로 '셩교'는 성교(聖敎)의 개화기 발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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