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성전시대의 문헌에 나타난 예루살렘
http://tong.nate.com/travel/4095400 2005.08.29 22:0
Ⅰ. 들어가는 말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중심이 될 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중심이 되는 곳은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선택한 성이다. 예루살렘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성전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거룩한 성'(사 52:1), '의의 성읍'(사 1:26), '여호와의 보좌'(렘 3:17)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이사야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라"(사 2:3)고 말한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도성이다(시 48:1-2; 아 6:4). 탈무드는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찬란한 예루살렘을 보지 못한 사람은 그의 평생에 아름다운 성을 보지 못한 사람이며, 건축된 성전을 보지 못한 사람은 화려한 건물을 보지 못한 사람이다."1) 제2 성전 당시의 예루살렘은 종교 중심지로서 그 중요성이 어느 시대보다도 높아졌다. 성전을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의 종교적인 중요성은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는 유대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고, 멀리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사는 유대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제2 성전이 존재하고 있을 그 당시의 땅 위의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으로 여겨졌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에 궁극적인 구원이 이루어질 소망의 도성이었다. 미래의 구원에 대한 희망과 새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각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제2 성전시대의 예루살렘에 관한 유대인과 주변 세계의 다양한 자료를 통하여 땅 위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하늘의 새 예루살렘을 비교하면서 예루살렘이 어떠한 의미와 상징을 가진 도시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거룩한 성 예루살렘
유대교에서의 예루살렘의 독특한 위치는 성전에 기인한다. 하나님이 선택한 성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었고, 성전 때문에 예루살렘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성전과 예루살렘 성은 분리할 수 없는 밀접한 관계로 성전과 예루살렘 성은 자주 동일시되었다. 솔로몬의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도 성전과 예루살렘의 중요성은 변함이 없었다. 외경 토비트에는 예루살렘의 중요성이 잘 나타나 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희생제물을 드리는 유일한 장소로 선택된 곳이다.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거처하실 성전이 오고 오는 모든 세대를 위하여 거룩하게 따로 지어져 있다." 2)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일 년에 세 번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의 명절을 지키기 위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러한 순례의 첫 번째 이유는 예배와 제사였으나, 명절마다 함께 만남으로써 공동체 인식을 새롭게 하고 교제를 하기 위한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다.3) 예루살렘은 명절마다 먼 곳에서 순례를 온 순례객들로 붐볐다(행 2:5). 명절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희생제물을 바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된 특권이며 자랑이었다.4) 예수님의 부모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왔으며(눅 2:41), 예수님은 초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가르치기도 하였다(요 7: ). 예루살렘 주민은 명절 동안 예루살렘에 머무는 순례객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없었으며, 대신 희생제물의 가죽을 선물로 받았다.5) 명절 기간 중 예루살렘은 순례객들로 붐볐다. 그러므로 명절 중에 베다니와 벳바게같은 예루살렘 주변 마을에 머무르는 것은 가능하지만,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꼭 그 전날 예루살렘 성내에서 숙박을 해야만 했다.6) 예루살렘 순례의 의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먼 곳에서도 명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오곤 했다.7) 이중에는 경건한 이방인들과 개종한 이방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명절에 예배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던 헬라인 몇 명은 마침 그곳에 와 있던 예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싶어했다(요 12:20). 아디아베네 왕국8)의 헬레나 여왕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후에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제사를 드렸으며 예루살렘에 머물기를 좋아했다. 헬레나여왕은 고국에서 죽었으나 그녀의 유골은 예루살렘에 옮겨져 묻혔다.9)
순례객들의 예루살렘 유입은 예루살렘 경제에 도움을 주었다.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든지 토지 소산의 1/10 소위 제2의 십일조를 예루살렘에서 소비해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땅의 소산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10) 매년 성전을 위해서 유대인은 반 세켈의 성전세를 바쳤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주변 노상강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의 헌물을 예루살렘에 수송하였으며,11) 이러한 종교적 열심은 그 지역의 주민과 통치통치자의 방해를 받기도 했다.12) 제2 성전시대에는 이미 지역마다 회당과 율법학교가 있었으나 희생제사는 성전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에 예배자들은 정기적으로 또는 부정기적으로 예루살렘의 성전을 찾아왔다.
예루살렘은 외경에 나타나는 주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외경 마카비하의 주제는 예루살렘 성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자 주님께서 분노하시어 잠시 동안 그 성전을 돌보아 주시지 않고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었다. 그러나 이교 제사를 거절하고 순교한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을 회복시켜 주신다. 마카비하의 저자는 서문을 통해 온 천하에 이름난 그 성전을 회복하고 예루살렘 성을 해방시킨 이야기를 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 마카비상이 하스몬 왕가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라면 마카비하는 예루살렘과 성전을 찬양하기 위하여 쓰여졌다. "주님께서는 성소를 유지하기 위해 백성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백성의 복리를 위해 성소를 택했던 것이다. 그래서 성소 자체도 백성들에게 닥쳐 온 재난을 함께 입었고 후에 그들의 행운도 함께 나누었다. 전능하신 주님께서 노하셨을 때 버림을 받았던 성소가 그 위대하신 주님과 화해하게 되었을 때 다시 그 모든 영광을 되찾았던 것이다." 이와같이 저자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의 방어와 하나님의 보호가 주된 관심이었다.
팔레스타인 출신인 요세푸스는 예루살렘이 지역적으로 "유대 지역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기때문에 배꼽이라고 부른다"고 좁은 의미에서 해석하고 있으나,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필로는 예루살렘을 흩어져 있는 모든 유대인의 중심지로 이해하고 있다. "거룩한 도시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 도시는 나의 조국이며, 유대 지역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인 이집트, 포에니키아, 시리아, 밤빌리아, 길리기아, 본도, 마케도니아, 고린도...에 보내진 거류민(colony)에게도 모국이다." 헬라화된 디아스포라 유대인인 필로가 가진 모국의 개념은 당시 헬라 세계의 보편적인 '메트로폴리스'로 필로는 예루살렘을 모든 흩어진 유대 민족의 종교 중심지로 보았다. 필로에게는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예루살렘의 성전과의 관계는 유대교의 일치와 조화를 위한 기본적이고 이상적인 관계이며,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어쩔수 없이 잠시동안 조국을 떠나 객지에 머물고 있으나 최종적으로는 영원하고 진실한 모국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이며 거룩한 성이었다.
하스몬 왕조가 예루살렘을 요새화시킨 이후 헤롯대왕 시대의 예루살렘은 그 어떤 시대보다 크고 번창한 도시가 되었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이미 헬라 로마인에게도 알려진 유명한 도시중 하나였다. 로마의 플리니(Pliny the Elder, 주후 23/4-79)는 그의 책에서 "예루살렘은 단지 유대에서 뿐만 아니라 동방(Orientis)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로 언급하고 있다. 그는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예루살렘을 보았으며, 그의 지리에 관한 책에는 다른 여러 도시를 기술하고 있으나 그 어떤 도시에도 예루살렘에 보내는 것과 같은 찬사를 한 적이 없다. 예를 들면 제국내의 도시를 열거하면서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가 창건한 도시로, 안디옥은 큰 도시로 언급하고 있으며 다른 도시에 대해서도 도시의 특징을 나열하지만 예루살렘에 대하여서만은 깊은 인상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로마의 역사가인 타키투스(Tacitus,주후후56-c.120)도 예루살렘이 유명한 도시라고 적고 있다. 그는 유대의 수도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며 그 안의 성전은 많은 보화로 가득 차 있으며, 오직 유대인만이 그 문에 접근할 수 있고 제사장만이 문지방을 넘어갈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시는 세 겹으로 보호되고 있는데, 도시를 보호하고 있는 요새가 그 첫 번째이며, 두 번째는 왕궁이고, 세 번째는 가장 안쪽으로 성전이 있다. 성전은 요새처럼 지어져 있어서 티투스가 천연의 요새인 예루살렘을 공격하기란 쉽지 않았다. 스트라보(Strabo, 주전 64-주후 c.20)는 유대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온 지도자로 옳게 묘사를 하였으나 왜곡되게도 모세가 백성을 예루살렘에 정착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예루살렘의 주변은 물이 없는 메마른 땅이지만 예루살렘은 물이 풍부하다고 적고있다. 그 외에도 동시대의 역사가인 리비(Livy, 주전 59- 주후 17), 수에토니우스(Suetonius, 주후 69- 2세기초)도 예루살렘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헬라 로마인의 눈에 비친 예루살렘은 천연의 요새로 화려한 성전이 있고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중심지로, 각 나라마다 이방신의 신전이 있었던 도시는 많았지만 예루살렘은 이에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도시로 알려져 있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성전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제2 성전시대가 끝나기 전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땅의 유대인과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있는 유대인에게 가장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도성으로 여겨졌다. 아름다운 이 도성의 명성은 이방인에게까지 퍼져나갔다. 그리고 땅 위의 영광스러운 예루살렘은 더 크고 아름다운 영원한 하늘의 예루살렘의 신앙으로 확장되었다.
Ⅲ. 새 예루살렘
땅 위의 예루살렘도 거룩한 도성이라 불리웠고 찬란한 영광을 누렸지만 이에 못지않게 장차올 새 예루살렘은 영원하며 최종적인 구원이 성취되는 약속의 도성이라는 신앙으로 확장되어갔다. 구약에는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약속이 반복된다(사 52:1-2; 54:11-17; 스 8:1-8). 에스겔은 환상을 통하여 새 예루살렘과 새 성전에 대한 약속을 받는다(겔 40: - 48: ). 새로운 성전은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의 상징이며, 완성된 구원의 상징이다. 하늘의 예루살렘과 성전은 땅 위의 예루살렘과 성전과 비교되는 개념이다.
마지막 날에 최후의 구원이 이루어질 하늘의 예루살렘(또는 새 예루살렘)은 하늘의 성전(새 성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유대인의 자료에서 하늘의 예루살렘과 하늘의 성전은 종종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으며 두 개를 엄격하게 구별한다는 것은 쉽지않다. 제2 성전시대의 외경과 쿰란자료 그리고 이후의 아가다, 탈굼, 탈무드에서도 종말론적인 예루살렘에 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하늘의 성전은 사람이 지은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지은 영원한 도성이다. 하스몬 왕조 시대에 쓰여진 외경 에녹서에는 불에 의한 징계 이후에 새 성전(집)의 환상이 나타난다. "나는 그들이 옛집을 걷어 올리고 모든 기둥과 대들보, 장식을 취할때까지 서서 보았다... 그리고 양떼들의 주님이 이전보다 더 크고 높은 새 집을 가져오는 것을 보았는데, 새 집은 첫 번째 집이 걷어 올려간 그 자리에 세웠다. 모든 기둥은 새 것이며..." 옛 도성은 사라지고 새로운 도성이 세워진다. "때가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와 예루살렘을 찬란하게 재건할 것이고,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예언한 대로 하나님의 성전도 그 곳에 세울 것이다." 에녹서의 저자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만드신 더 좋은 성전을 기대하고 있다. 새 성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실 처소이다. "그들은 온 마음과 온 영으로 만국 중에서 나(주)에게로 올것이다. 나는 모든 열국에서 그들을 모을 것이며, 그들은 나를 찾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 중에서 나의 성소를 세울 것이며 그들 중에 거하리니,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전은 장차 올 시대의 성전이며 주께서 친히 지을 것이다. 땅 위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성소를 지을 수가 없다. 벤시라서(집회서)에는 마지막 날에 예루살렘 성의 회복과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오는 두 가지의 희망이 나타나 있다. "야곱의 모든 부족을 모으시고... 주님의 거룩한 도성, 당신의 안식처인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소서." 벤시라에서 보는 것처럼 미래의 예루살렘에 대한 희망은 제2 성전이 파괴되기 이전에 생겨났다. 하늘의 예루살렘이 종말론적 구원과 연결되지만 이러한 신앙이 땅 위에 있는 성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는 아니다. 유대인의 18개 기도문의 원시 형태는 이미 제2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형성되었는데 이 기도문에서는 하나님이 지으실 예루살렘을 기원하고 있다. 이 예루살렘은 현재의 도성이 아니라 장차 올 미래의 예루살렘에 관한 축복이다. 비록 예루살렘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예루살렘의 구원은 장차 올 구원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안나는 메시야의 출생을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알렸다(눅 2:38).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쿰란 공동체의 견해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쿰란 공동체는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제사를 거부했는데 그것은 성전이 불결해서가 아니라 거짓된 제사장들에 의해 예루살렘의 성전이 불결해졌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쿰란에서 발견된 「성전 두루마리」(The Temple Scroll)는 쿰란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성전에 대한 이해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이 두루마리는 출애굽기 34:10-16의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계약으로 시작하여 성전과 성전 건축에 관한 규례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성전 건축은 모세가 명령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짓도록 한 성전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두루마리의 율법에는 마지막 날에 주가 친히 그의 새 성전을 지으실 것이라는 신앙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나의 영광 , 축복의 날까지 나는 나의 성전을 창조할 것이며" 주가 친히 세우실 성전은 벧엘에서 야곱과 맺은 언약을 근거로 한것이다. 쿰란 문서중에서「새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람어 단편은 에스겔 40-48장에 나오는 종말론적 예루살렘에 대한 기록을 재 작업한 것이다. 천사와 동행한 저자는 새 도성과 성전을 방문하여 도성의 다양한 건물과 거리를 본 환상을 적고 있다. 도성 안에는 특별히 넓은 광장이 자리잡고 있는데 저자는 순례객들이 초막절에(스 14:16) 충분한 초막을 지을 공간을 염두에 둔 것 같다.
종말론적 예루살렘은 요한계시록에서 새 하늘과 새 땅과 함께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기록된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계 21:2). 영화롭고 정결한 새 예루살렘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보석으로 지어진 성이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계 21:11) 이사야 54:11-12 과 토비야 13:17에도 새 예루살렘은 각종 보석으로 꾸며져 있다. 마지막 날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돌아올 것이며, 예루살렘 성은 다시 회복되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만방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사 2:2-4; 렘 3:17-18). 최후의 구원의 성취와 새 예루살렘은 서로 뗄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유대인의 문학자료에 등장하는 새 예루살렘은 항상 새 성전과 병행하여 나타난다. 그러나 계시록에 나타나는 새 예루살렘에는 새 성전이 생략되어 있다.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 21:22). 계시록의 저자는 다른 유대자료와 마찬가지로 새 예루살렘을 기대하고 있으나, 새 성전은 어린양으로 대치되었다. 그 성은 해와 달이 필요 없는데 어린양 자신이 등불이 되기 때문이다(계 21:23). 예루살렘이 회복되면 해와 달의 빛남이 필요 없어진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예루살렘)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사 60:19). 유대인의 미드라쉬에서도 메시야는 등불로 이해되는데, 시편 132:17(내가 내 기름부은 자를 위하여 등을 예비하였도다)과 이사야 60:3, 19를 근거로 메시야와 등불은 동일시된다. 요한 계시록의 새 예루살렘은 구원의 도성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영원한 도성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Ⅳ. 마치는 말
솔로몬의 성전이 파괴되어서 위축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재건된 두번째 성전, 특별히 헤롯이 보수, 재건한 성전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제2 성전 시대의 예루살렘의 종교적 기능은 제1 성전시대의 것보다 훨씬 강화된 것이었다. 땅 위의 영화로운 예루살렘은 새롭게 도래할 새 예루살렘이라는 신앙으로 발전되어 다양한 문학 작품에 나타나게 되었고, 에세네파와 같은 일부 종파는 예루살렘 자체에 대한 거부라기 보다는 종교인들에 의해 불결해진 예루살렘에서의 종교 행위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도 하나님이 주관하는 회복된 예루살렘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전 파괴 이후 유대인 문학에는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위로와 미래의 예루살렘을 향한 소망이 함께 나타난다. 주후 70년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예루살렘에 대한 기도는 유대인 일상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 식사 축복 기도와 결혼식에서는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시 137:5)는 시편구절이 암송되었다. 유월절과 속죄일에는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탈무드에는 하늘의 예루살렘에 대한 사상이 나타나지 않는데, 아라모임 시대에는 미래의 예루살렘이 하늘의 예루살렘 대신 미래에 인간의 손에 의해 땅에 건설될 예루살렘으로 표현되고 있다. 탈무드 이후 미드라쉬와 아가다에는 다시 하늘의 예루살렘에 대한 사상이 등장한다. 성전 파괴 이전에 다양하게 나타나던 새 예루살렘에 대한 사상이 갑자기 성전 파괴 이후에 사라지게 된 것은 기독교가 새 예루살렘이라는 사상을 사용하게 되자 랍비들이 똑같은 사상을 유대교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후 7세기 이후 모슬렘 제국이 확장되면서 기독교가 아닌 모슬렘 통치 하에서 비교적 종교적 자유를 누리게 된 랍비들은 그 이전의 금지 조항을 알지 못하고 미드라쉬와 아가다에서 새 예루살렘 또는 하늘의 예루살렘이라는 개념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미드라쉬와 아가다에서 하늘의 예루살렘에 대한 근거로 사용되는 구절은 시편 122:3, 창세기 28:17, 이사야 6:1 등이다. 시편 122:3(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은 하늘의 예루살렘과 땅의 예루살렘으로, 이사야 6:1은 하늘에 있는 성전으로 해석되었다. 또한 유대인의 새 예루살렘에 대한 소망의 형태도 매우 다양하다. 예루살렘과 종말의 성전에 관하여, 이스라엘의 현자는 사람의 손으로 지어지는 성전을, 하시딤은 하나님이 지으실 성전을, 신비주의 경향을 가진 민중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올 예루살렘을 기대하고 있었다. 제2 성전시대에 나타난 하늘의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의 사상은 기독교의 종말론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유대교 안에서는 잠시 그러한 사상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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