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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기독교 성지를 찾아서] (下) 로마황제 즐겨찾던 자연이 만든 온천풀

영국신사77 2007. 10. 26. 00:26
[터키 기독교 성지를 찾아서] (下) 로마황제 즐겨찾던 자연이 만든 온천풀


시간의 앙금이 만든 석회암 온천 파묵칼레(Pamukkale)는 사도 빌립의 순교지인 터키 남서부의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 언덕을 순백으로 채색하고 있다.

터키어로 ‘목화의 성’이란 뜻의 파묵칼레는 멀리서 보면 목화를 쌓아놓은 것 같기도 하고 만년설에 덮인 언덕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많은 석회층으로 이루어진 파묵칼레는 수천년 동안 히에라폴리스 언덕에서 솟아난 뜨거운 온천수가 리쿠스 계곡 언덕의 비탈을 흘러내리면서 형성되었다. 온천수에 함유된 산화칼슘 성분이 굳어지면서 중국 쓰촨성의 황룽처럼 계단식 자연 풀장을 만든 것이다.

파묵칼레 최고의 절경은 기하학적 곡선의 턱을 가진 야외 풀 모양의 ‘테라스 풀’이다. 고드름 모양의 종유석이 떠받치는 테라스 풀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풍경은 파묵칼레를 소개하는 책자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하지만 로마의 황제와 귀족은 물론 클레오파트라까지 찾아와 온천욕을 즐겼다는 파묵칼레는 1980년 이후 인근에 온천호텔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온천수가 서서히 고갈되기 시작했다. 쪽빛 하늘을 담은 파스텔 톤의 온천수가 찰랑거리며 넘쳐흐르던 테라스 풀은 바싹 말랐고,순백의 천연 풀장도 물이 말라 누렇게 퇴색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자연유산으로 지정한 1988년 이후에는 석회층의 보존을 위해 파묵칼레에서의 목욕을 금지시키고 맨발로 걷게 했다. 다랑논을 닮은 18개의 커다란 웅덩이 중 아래에 위치한 절반 정도는 온천수가 흘러 넘쳐 아쉬우나마 바지를 걷어 부치고 온천수의 따뜻함을 느껴볼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그러나 파묵칼레 정상 북동쪽에는 비록 크기는 작지만 지금도 수십 개의 ‘테라스 풀’이 자라고 있다. 풀 가장자리 턱의 유려한 곡선과 거울 파편처럼 햇빛을 반사하는 수면은 한 폭의 그림. 특히 해질녘 오렌지색으로 물드는 테라스 풀은 파묵칼레가 숨겨놓은 비경 중의 비경으로 꼽힌다.

히에라폴리스 박물관 맞은편에 위치한 파묵칼레 온천수영장은 비록 석회암층에서 즐기는 온천욕만큼 운치는 없지만 온천수영장 바닥에 로마시대의 기둥 등 유적이 굴러다녀 저 유명한 로마목욕탕으로 시간여행을 온 듯하다.

히에라폴리스엔 유난히 석관묘가 많다. 북쪽 성 밖에 산재한 1200여 기의 다양한 석관묘는 파묵칼레의 온천수와 깊은 관련이 있다. 고대부터 온천수가 류머티즘,피부병,그리고 신경통에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아시아와 유럽에서 병자들이 떼를 지어 모여들었다고 한다. 병을 치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온천 옆에 묻히면서 히에라폴리스는 오랜 세월에 걸쳐 무덤의 도시로 변한 것이다.

석회봉 위쪽에 위치한 히에라폴리스는 기원 전 190년 페르가몬의 에우메네스 2세에 의해 건설됐다.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히에라폴리스는 로마,비잔틴 시대까지 번성했으나 결국 셀주크 왕조에 의해 멸망한다. 도시 전체가 파괴된 것은 14세기의 대지진 때문.

유적 중 가장 볼 만한 것은 야산 중턱에 위치한 원형극장이다. 2세기에 건설된 로마의 원형극장은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보존상태가 뛰어나다. 파묵칼레 시내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관중석에 서서 시계 바늘을 뒤로 돌리면 검투사의 기합소리와 관중들의 환호성이 메아리칠 듯하다.

이밖에도 히에라폴리스에는 박물관으로 변한 목욕탕과 교회 터,바실리카,극장,잡초밭에 나뒹굴고 있는 아폴로 신전의 잔해,그리고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기리기 위해 세운 도미티안 문 등이 푸른 이끼를 훈장처럼 달고 그 옛날의 영광을 증거하고 있다.

원형극장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만나는 팔각형의 건물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건물 중의 하나인 사도 빌립 교회. 사도 빌립은 그의 아들들과 함께 이곳에 집을 짓고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복음을 전파하던 중 우상 숭배자들에게 매를 맞고 옥사했다고 한다. 무덤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사도 빌립은 4명의 딸과 함께 이곳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해질 무렵 히에라폴리스의 푸른 초장에서 만난 풍경 하나가 낯익다. 양떼에 둘러싸인 양치기가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으로 귀가하는 풍경은 성화 속의 한 장면이 아니던가.

파묵칼레(터키)=글·사진 박강섭 기자
kspark@kmib.co.kr

 

 

 

[터키 기독교 성지를 찾아서] (下) 여행메모


파묵칼레는 데니즈리에서 버스로 30분 거리. 이스탄불에서 데니즈리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10분 걸린다. 터키항공(02-777-7055)은 인천∼이스탄불 구간을 매주 3회 논스톱으로 왕복 운항한다. 월·목·토요일 오후 1시2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고,수·금·일요일 오후 7시30분에 이스탄불을 이륙한다. 비행시간은 11시간 정도.

하나투어(02-2127-1306)는 그리스의 아테네와 터키의 이스탄불,에페수스,파묵칼레,카파도키아,앙카라 등을 둘러보는 10일 일정의 패키지 상품을 내놨다(200만∼250만원). 투어몰(02-311-4441)과 자유여행사(02-3455-0156)는 터키 이스탄불,카파도키아,안탈랴,파묵칼레,에페수스 등을 둘러보는 8일 일정의 패키지 상품을 130만∼150만원에 판매한다.

 

 

 

 

[터키 기독교 성지를 찾아서] (下) 사도바울 흔적따라 2000년전 시간여행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에베소서 1장 1절)

2000여 년 전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에게해 연안의 도시인 에페수스(에베소)의 교인들에게 옥중서신(에베소서)을 보냈다. 당시 20만 명이 거주했던 에페수스는 아르테미스 여신 등 우상을 숭배하는 도시로 바울은 전도여행 중 3년간 이곳에서 기독교를 전파하기도 했다.

야생 양귀비가 빨간 꽃을 활짝 피운 꽃밭에 대리석 기둥들이 흩어져 있고 아직도 발굴 작업이 한창인 에페수스는 260∼268년에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해온 고트인들의 약탈과 방화로 철저히 파괴되면서 잊혀진 도시가 되었으나 1863년 영국의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됐다.

이후 황제 도미티아누스를 기리는 신전,전형적인 로마 목욕탕,수세식 화장실,대리석에 새겨진 발자국보다 발이 작으면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유곽 등 로마시대의 건축물들이 마치 20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온 듯 생생하게 발굴됐다.

에페수스 유적 중 가장 웅장한 건물은 켈수스도서관과 2만4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원형극장. 1만2000권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었다는 켈수스도서관은 사도 바울이 군중들에게 설교한 장소라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북쪽 출입구 인근에 위치한 성모 마리아 교회는 두 차례의 종교회의가 열렸던 유서 깊은 곳으로,유스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증축되면서 ‘더블처치’로 불리었으나 지금은 폐허로 방치되어 있다.

에페수스 유적이 위치한 셀주크는 작은 도시로,사도 요한이 동정녀 마리아를 모시고 만년을 보냈다는 곳이다. 에페수스 유적의 출토품을 전시한 에페수스 박물관과 성 요한 교회,동정녀 마리아가 살았다는 집도 셀주크에 있다.

에페수스(터키)=글·사진 박강섭 기자
kspark@kmib.co.kr[국민 06.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