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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를 찾아서] 해외성지(19)-로마 라테란 성 요한 성당

영국신사77 2007. 10. 25. 23:26
[성지를 찾아서] 해외성지(19)-로마 라테란 성 요한 성당
최후의 만찬 현장 지켜본 木제대 보존
  로마 라테란의 성 요한 성당은 아비뇽 사건으로 교황청이 1307년 프랑스로 이전되기 전까지 교황청이 있던 교황좌이었다. 천여 년간 교황좌이던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에서는 역대 교황의 대관식, 착좌식이 열렸고, 이곳에 묻혔다.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중심인 이곳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은 바티칸을 도시국가로 인정한 라테란 조약(1929년)이 맺어진 곳이며, 현재 로마 대주교의 주교좌로 사용되고 있다. 교회에서 ‘은총의 대희년’이라고 부르는 지난 2000년, 교황 고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 라테란 성 요한 대성당으로 이동, 성문(聖門)을 열기도 하였다.
 
  성당 입구 오른쪽 맨 끝에 있는 성문은 “나는 문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던 구약의 내용을 교황 보니파시오 8세가 재현된 이래, 25년마다 열린다. 치외 법권이 인정되는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의 가장 큰 보물은 최후의 만찬 때 사용된 낡은 나무 제대이다.
 
 

     ◈ 황제 친위대가 있던 곳이 성전으로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은 과거 로마 황제의 친위부대, 그것도 첫 기마부대가 있던 라테란 궁전이 교황청으로 변신한 곳이다. 일명 성 지오반니 대성당이라고도 불리는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은 원래 라테란 궁전이었다.

 

  그런데 313년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의 귀족인 라테란 가문의 파우스타와 결혼하면서, 파우스타가 결혼지참금처럼 가져온 라테란 궁전을 교황(실베스떼르 1세)에게 선물하면서 교황좌로 바뀌게 되었다. 교황이 부동산을 갖게 된 첫 사례이기도 하다.

 

  천년 가까이 교황좌가 있던 이곳은 마르틴 루터가 이곳을 뛰쳐나가 종교개혁을 부르짖으며 찢어진 신구교 일치를 위한 라테라노 공의회가 다섯 차례 개최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반달족의 침입, 지진 피해, 화재 등으로 무너지고 파괴되었으나 다시 재건하였다. 최후의 만찬때 사용된 낡은 나무 제대가 보존되어 있어, 부활절 전 성 목요일이면 교황이 이곳으로 이동하여 주님만찬미사를 봉헌하는 유서깊은 교회이다.

 

 

                                              ◈ 12사도상을 볼 수 있어요

 현관 왼쪽에는 다른 곳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상이 있다. 원래 로마의 목욕장에서 발굴된 콘스탄티누스 대제상을 기독교의 큰 공로자임을 감안하여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성전 중앙통로 양쪽 기둥에는 12사도의 석상(별도 박스 참조)이 있다. 6m나 되는 사도들의 석상은 모두 베르니니의 작품으로 열두 사도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12사도의 면면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잘나고, 유능하고, 위대한 힘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 나약하고 급하고 소심하고 손가락질받는 사람을 불러 제자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연약함과 결점을 지녔지만, 자신의 힘을 과신하는 것이 아니라 은총을 주는 하나님께 삶을 의탁했던 사람들을 사도로 삼은 사실은 우리도 얼마든지 무한한 은총의 세계로 자신을 내던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여기에서는 또 한 가지 모자이크화를 눈여겨봐야한다. 이 모자이크화를 보면, 현실세계에서는 교황이 가톨릭의 중심이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성인이 더 존중받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에서 보듯이 모자이크화에는 성인들에 비해 교황이 아주 조그마하게 그려져 있다. 이는 권력이 아니라, 얼마나 순수한 믿음을 지니고, 무상으로 주어지는 은총을 향해 자신을 바칠 수 있느냐는 삶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최미화기자 magohalm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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