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를 찾아서] 해외성지 (18)-그리스도교 지하무덤 로마 '카타콤베' "박해의 여정은 주께 가는 길…두렵지만 기뻤다" | ||||||||
◈ 지하 묘지에 가득찬 성(聖) 상징들 로마에서 가장 크고 비중있는 카타콤베 가운데 하나인 성 칼리스토 카타콤베는 지하 묘역만도 4만 5천 평, 지하 5층까지 이어진 묘역 내 갱도의 총길이가 20㎞가 넘는 거대한 규모의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묘지이다. 바닥은 사암과 용암이 섞여 있어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데, 공기가 들어가면 단단해지는 습성으로 인해 묘지 흙으로는 안성맞춤이다. 대낮에도 깜깜하여, 한가닥 낮은 광촉의 전깃불이 없으면 내부를 밝혀준다. 묘역 내부 갱도는 교행이 겨우 가능할 정도로 좁고, 좌우에는 무덤들이 켜켜이 들어서 있다. 카타콤베의 무덤은 다 석관이다. 대부분의 석관에는 순교자, 교황 등의 글씨가 쓰여져 있거나 각종 그리스도교 상징들이 새겨져 있다. 어깨에 양을 메고 있는 구세주 그리스도와 그가 구원한 영혼을 나타내는 선한 목자상,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알파벳 키(Ⅹ)와 로(Ρ)를 합친 모노그램, 하느님께 받은 사명이 두려워 도망가다가 고래 뱃속에 빨려들어갔다가 살아난 예언자 요나의 모습, 그리스어로 물고기 즉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형상인 익투스(ⅠΧΘΥΣ), 세상만물의 처음이자 끝인 주님을 나타내는 알파(Α)와 오메가(Ω), 인생은 죽음이 종말인 슬픈 여정이 아니라 낡은 세계를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임을 나타내는 배 그림 등을 거의 모든 석관에서 볼 수 있다. 석관에 그리스어가 많이 쓰여진 이유는 로마 시대 언어는 라틴어이었지만, 지식인은 그리스어를 많이 선호했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 시련없는 영혼은 순수한 기쁨 몰라 우리나라처럼 위에서 파고들어가서 밑에 매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인들은 지하 공간을 확보, 드나들 수 있는 길부터 미리 내고 좌우 공간에 석관을 밀어넣는 매장관습을 지녔기에, 묘역을 계속 확장해나간 것으로 보인다. 성 칼리스토 카타콤베에는 아주 작은 석관이 40% 가까이 된다. 보통 작은 석관은 어린이 관이거나, 화장하고 난 뒤 남은 유골을 담은 석관이다. 로마 시대에는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했으나 교우들은 육신의 부활을 믿었기에 매장을 더 선호했다. 카타콤베 내부는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자칫 하다간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다. 박해시절 숨어있던 그리스도인들은 뒤쫓아 들어온 로마 병사들을 미로와 같은 카타콤베 갱도를 이용해서 따돌리기도 하였다. 이 성 칼리스토 카타콤베에는 10여 명의 순교자, 16명의 교황,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명 그리스도인이 불멸의 삶을 누리고 있다. 수난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모이고 죽고 묻힌 이들은 세상 여정을 끝내고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 “밤하늘의 별처럼, 한포기 들풀처럼 사라지는 게 인생, 무에 그리 아둥바둥 허겁지겁 사십니까. 우리는 여기에서 행복한 삶을 영원히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무수한 석관들을 만나면 잊고 살았던 순수한 영혼을 찾게 된다. 시련없는 영혼, 세상사를 좇는 탐욕의 일상은 영성적인 삶의 충만을 느끼지 못한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찾아오는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이 카타콤베에 서면 세속의 영화보다 불멸의 영광을 간절히 원했던 순교자의 불타는 넋을 마주할 수 있다.
◈ 성녀 세실리아의 유해 조각상 감동적 성 칼리스토 카타콤베에는 교황의 무덤도 있지만, 가장 인상적인 무덤은 성녀 세실리아의 무덤이다. 세실리아 성녀는 오른쪽 어깨를 땅에 댄 채 옆으로 쓰러져 있는데, 목에는 도끼 자국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죽는 순간에도 오른손 세 손가락으로 삼위일체를 나타내고 있다. 음악의 수호성인으로 우리나라 가수 인순이도 세례명이 세실리아이다. 세실리아의 노래는 듣기만 해도 성령의 은혜를 듬뿍 전해주기로 유명하다. 동정으로 사는 것이 여의치 않게 되어 결혼을 하게 된 세실리아는 혼례와 동시에 남편과 시동생을 개종시켰다. 세실리아의 남편과 시동생은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순교를 당하였고, 세실리아 역시 얼마 후 순교하게 되었다. 예수 이후 기독교계 최초의 순교자는 돌에 맞아 죽은 스테파노이지만, 목이 잘려 순교한 최초의 교인은 세실리아이다. 세실리아는 원래 뜨거운 수증기로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지만, 하루가 지나도 죽지 않아 치명시키기로 하였다. 그러나 도끼로 세 번이나 내리쳐도 목이 잘리지 않아 사흘 동안 목숨이 이어졌다. 이 사흘 동안 세실리아는 자기가 살던 집을 교회로 쓰라고 봉헌하였는데 트라스테베레에 있는 성 세실리아 교회가 바로 그곳이다. 9세기 경에 세실리아의 유해를 이 교회에 안치하였고, 현재의 교회에 세실리아 성녀의 유해가 발견될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재현한 조각상이 세워져 있는데 세실리아의 유해는 순교한 지 천년이 지나도록 그 모습 그대로였는데, 성 칼리스토 카타콤베의 조각상은 재현품이다. 글 사진·로마에서 최미화기자 magohalmi@msnet.co.kr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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