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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윤리의 핵심과 바울서신에 나타난 윤리적 강조점

영국신사77 2007. 10. 22. 18:21
                    바울 윤리의 핵심과 바울서신에 나타난 윤리적 강조점


                                                             1. 들어가는 말

  초대교회 이래로 교회는 지금까지 '믿음 없는 행함'과 마찬가지로 '행함 없는 믿음'에 대항하여 싸워 왔다. 때로는 믿음 없는 행동주의(actionism)가 기독교 신앙을 세속적인 복지 멘탈리티로 변질시키는 위험과 싸우기도 하였고, 때로는 기독교를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거나 은둔하는 내세 종교로 여김에 대해 경계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교회가 어떤 세속적인 이념을 신봉하는 사회 단체나 비밀 종교 단체가 아니라 선교·봉사 공동체이며, '하나님을 위한 교회'일 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세상을 위한 교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는 어떤 이해도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우

 

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오직 믿음'(sola fide)으로만 죄인이 구원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사랑

 

으로써 역사하며(갈 5:6), 재림하실 주님은 예수 믿는 자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믿었는가를 묻는 것이 아

 

니라 무엇을 행했는가를 물을 것이다(마25:31 이하).

 

 

  그리스도인이 "믿음 없는 행위자나 행함 없는 신자가 되지 않기 위해"(M. Luther, WA 45, 689) 신약성

 

서의 윤리, 특히 바울서신의 윤리를 살펴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연구 과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믿

 

음'을 드러나게 강조하는 바울조차도,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서로 나눌 수 없는 통합적인 관계로 이해하

 

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를 밝히기 전에 바울의 윤리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전제들을 먼저 살펴보도

 

록 하자.



                                          2. 바울 윤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전제


  바울의 윤리적인 진술들은 바울서신의 어느 한 곳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바울서신

 

에 산재(散在)되어 있다. 그것은 바울의 윤리 진술이 윤리학 강의록이나 윤리적 입장을 표명한 성명서가

 

아니라, 바울서신의 원(原) 수신자인 신앙 공동체나 그 일원(一員)에 대한 구체적인 권면이기 때문이다.

 

 

  바울서신이 본래 성경을 기록할 의도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세워진 교회를 교화(敎化)하기 위해 기록

 

상황서신이라면, 바울서신에서 어떤 윤리적인 체계가 발견되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윤리'를 논(論)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울의 윤리가 어떤 윤리 체계를 가지고 있

 

기 때문이 아니라, 그 윤리적인 진술들이 어떤 맥락 속에서 다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세부

 

적인 윤리 지침 내지는 구체적인 권면은 바울서신 안에 아무렇게 열거되어 있거나 진술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행동에 근거되어 있다. 즉 바울은 일반적인 윤리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권면하는 "교회의 윤리"(H.-D. Wendland, Ethik

 

des Neuen Testatments, 1970, p. 3; W. Schrage, Ethik des Neuen Testaments, 21989, p. 13)를 다룬

 

다.

 

 

  이런 점에서 바울의 윤리는 인간의 독자적인 이성이나 양심으로부터 전개되는 '자율적인 윤리'가 아니

 

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의롭다 여기시는 하나님의 의와 자비에 근거를 둔 '신학적 윤리' 내지는

 

'기독론적인 윤리'요, 구원을 목표로 삼는 어떤 '목적 윤리'가 아니라, 의롭다 여김을 받은 인의자(認義

 

者)에게 요구되는 일종의 '결과 윤리'이며, "감사할 수 있음의 윤리"(W. Nauck, "Das ou^^n-

 

paräneticum," ZNW 49[1958], p. 135)이다.

 

 

  바울의 윤리적인 권면은 늘 그리스도 안에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행동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니까 바

 

울의 윤리는 그 밖의 신약성서의 윤리와 마찬가지로 신학 안에 통합되어 있다. 그래서 바울 윤리의 문제

 

는 이미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은총을 말하는 '직설법'(indicative)과, 그 기초 위에서 요구되는 '명령

 

법'(imperative)의 관계를 규명하는 문제이다.

 

 

  바로 이것이 논의되고 있는 바울 윤리의 중심 문제이다. 논리적인 전개에 부합되게 다음 단락에서 바

 

울에게 있어서 직설법-명령법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3. 바울의 경우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


  앞서
밝힌 것처럼 바울의 윤리적 진술들은 규명하기 쉽게 따로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바

 

울서신 안에 흩어져 있다. 따라서 바울 윤리를 조사할 때, 방법론적으로 산재되어 있는 윤리적인 진술들

 

을 각 서신의 맥락에서 뿐만 아니라, 전체 바울서신의 맥락 안에서 그 관련 의미를 밝혀야 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부 바울서신(예를 들면 로마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서, 그리고 후기의 골로

 

새서와 에베소서)은 그 거시 구조(macrostructure)에서 분명하게 구분되는 두 부분을 보여 준다. 이 서

 

신들의 앞 부분은 케뤼그마 내지는 교리, 즉 기독론이나 종말론을 다루고 있고, 뒷 부분은 윤리를 취급

 

한다. 또 그 밖의 바울서신에서도 교리적 진술과 윤리적 진술이 함께 나타난다. 이 두 가지 진술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면, 바울 윤리에서 문제는 결국 이 두 진술의 관계 설정 내지는 관계 해명이다. 환언하면,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는 구원의 은총에 대한 '직설법'과, 인의자에게 부과되는 의로운 삶의 요

 

구인 '명령법'의 관계가 바울 윤리의 핵심적인 문제이다.

 

 

  먼저, 문제 제기에서 현재의 논의 국면에 이르는 이 문제에 대한 연구사를 간략하게 언급하고, 그런 다

 

음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를 밝혀줄 표준적인 본문인 로마서 6장 12-23절의 석의적 의미와 신학적인

 

의미를 살펴보자.




                        3.1.
바울에게 있어서 직설법과 명령법 관계의 연구사


  바울서신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곳곳에서(갈 5:25; 고전 5:7-8; 롬 6:12ff; 빌 2:12f 등) 직설법과 명령법

 

이 함께 나타난다. 예를 들면 갈 5:25에서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직설법)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

 

니"(명령법)라든가, 고전 5:7에서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직설법)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

 

룩을 내어 버리라"(명령법)처럼, 직설법과 명령법이 동시에 한 문장에서 언급된다.

 

  직설법과 명령법의 이러한 공존(共存)을 처음으로 바울 윤리의 논의 주제로 삼은 사람은 스위스 바젤

 

의 신학자 베른레(Paul Wernle, 1872-1939)였다. 그는 이미 일어난 구원 약속인 직설법과 사도 바울의

 

권고인 명령법의 관계를 '모순'으로 규정하였다(P. Wernle, Der Christ und die Sünde bei Paulus, 1897).

 

이로써 양자의 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 이상의 의미를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를 조화롭지 않은 모순으로 이해한 베른레와 다르게,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은 양자를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공속(共屬) 관계에서 해명을 시도한다. 즉 불트만

 

은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를 내용적으로 불가피한 "이율 배반" 혹은 역설로 규정한다(R. Bultmann,

 

"Das Problem der Ethik bei Paulus," ZNW 23, 1924, pp. 121-140).

 

 

  그에 의하면 직설법과 명령법이 형식적으로는 서로 모순된 것처럼 보이나, 내용적으로는 빌 2:12f에서

 

와 같이 서로 공속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명령법은 인의(認義)의 사실 위에 세워져 있으며, 직설법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불트만은 이 문제를 기본적으로 실존주의적인 인간론

 

적 관점에서 볼 뿐 아니라 의와 죄를 경험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그것을 인의자의 윤리적인 행동과 전

 

체 삶에서 분리한다. 이로써 경험적인 행동 차원에 비해서 하나님의 인의 선언이 앞서기는 하지만, 하나

 

님의 의 실행에 대한 인간의 참여라는 관점이 축소되고, 그것이 단지 2류의 것으로 전락하게 된다. 또 불

 

트만은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를 "된 자가 되어라"(Become what you are)로 이해함으로써 인간론(더

 

정확하게는 실존론)적인 관점 이외에 종말론적인 관점과 기독론적인 관점을 간과한다. 



  이러한
불트만의 입장에 대해 보른캄(Günther Bornkamm, 1905-1990)은 드러나게 비판하지 않지만,

 

그런 견해를 너머 간다. 보른캄에 의하면, 권면의 당위성은 세례 받을 때 선물로 주어진 새 생명의 잠재

 

성 안에 그 근거를 두고 있지만, 그 잠재성은 인간론적인 관점보다 더 큰 관점 안에 나타난다(G.

 

Bornkamm, "Taufe und neues Leben bei Paulus," Das Ende des Gesetzes, 1963, pp. 34-50 참조). 옛

 

시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하기는 하였지만, 새 시대가 아직 보편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그래서

 

직설법과 명령법의 이율 배반은 결국 인간론 뿐만이 아니라 ,기독론과 성령론을 포함하는 종말론적인

 

변증법 위에 세워져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현존하는 주님일 뿐 아니라 기다려지는 분이며, 성령은

 

마지막 때의 선물인 동시에 "보증"이고,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이지만 아직도 기다리는 자이기 때

 

문이다.



  케제만(E. Käsemann)은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에 대한 불트만의 해명 시도가 인간론적으로 축소되

 

었다고 보른캄과 다른 각도에서 비판한다. 케제만은 직설법이 너무 일방적으로 선물로 간주되고 이로써

 

선물이 너무 쉽게 선물 수여자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비난한다. 그에 의하면

 

명령법은 단순하게 추가되거나 부가된 어떤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직설법과 함께 주어져 있는 것이다.

 

직설법을 단지 명령법의 근거로 생각한다면 명령법은 하나님께서 '가능성'으로 주신 것을 실현하라는

 

요구에 불과할 것이다. 오히려 명령법은 "직설법 안에 통합되어 있다"(E. Käsemann, An die Römer,

 

41980, p. 167). 게다가 케제만은 종말론적이고 우주적인 하나님의 의를 단지 '선물' 뿐만이 아니라 '능

 

력'으로 이해함으로써 그것을 선물 공여(供與)자이신 하나님과 분리시키지 않는다. 그로 인해 조건이나

 

전제 없는 구원의 약속이 부가적으로 한정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통해 마지막 때 하나

 

님의 의를 실현하는 데 뛰어들어(롬 6:12ff) "의의 열매"(빌 1:11)를 맺을 수 있다. 이로써 케제만은 직설

 

법과 명령법의 변증법을 인간론적으로 보지 않고 기독론의 관점으로부터 올바르게 이해한다.



 

  요약하면, 베른레에 의해 제기된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는 '모순'(베른레)으로 규정될 수 없으며 '이

 

율 배반' 또는 '역설'(불트만)의 관계로도 적절하게 해명될 수 없다. 구원의 선물과 그것을 주시는 하나

 

님을 분리하지 않는 통합적 해석 모델(케제만)이 이에 대한 바울의 진술에 일치할 것이다. 그러면 바울

 

이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전형적인 윤리적 진술인 롬 6:12ff의 본문으로 눈을 돌

 

려 보자.




                               3.2.
롬 6:12-23에서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


  바울
윤리의 핵심 문제인 직설법과 명령법의 통합적인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먼저 이 주제를 다루는

 

표적인 본문인 롬 6:12-23을 요약적으로 석의하고, 그런 다음 신학적인 결론을 찾아 보자. 




                                            3.2.1.
요약적 본문 석의

  (12절)
세례를 다루는 앞 단락(1-11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2.6절)을

 

다음, 이제 죄가 더 이상 "죽을 몸"(sw'ma qnhtovn)을 주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역설한다. 여기

 

'몸'은 인간을 다스리는 주권이 교체되는 자리이다.

 

 

  모든 사람은 몸을 입고 있으며 죄를 지을 수 있다. 세례 받은 자도 유혹 받을 수 있으며, 또한 마땅히

 

죽는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을 기다린다. 이때 육체의 부활을 선취(先取)함인 몸의 순종이 먼저 요구된

 

다.



  (13절)여기서 세례 받은 자의 자유로운 결정 아래 '주권 교체'가 언급된다. 단수로 표현된

 

'죄'(aJmartiva)는 그 복수의 의미인 '죄과'가 아니라 '죄의 권세'이며, 여전히 수세자를 위협하는 실재

 

(實在)이다. 이때 명령법이 중요하게 생각된다.

 

 

  너희 지체를 죄에게 "드리지 말고"(mhdeV paristavnete, 현재 직설법)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

 

라"(parasthvsateՅ, 단순 과거 명령법). 수세자는 이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수세자는 하나님의 병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과 선물을 주신 하나님은 결코 분리

 

될 수 없다. 



  (14절) 그 두 가지 이유가 언급된다.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이미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이요, 다른 하

 

나는 수세자가 더 이상 "율법 아래"(uJpoV novmon) 있지 않고 "은혜 아래"(uJpoV cavrin) 있기 때문이

 

다.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은 더 이상 '죄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하며 '죄 아래 있지 않

 

다'는 것은 '은혜 아래 있음'을 의미하는데, 이때 '은혜'는 인의(혹은 칭의), 화해, 성령 은사 받음의 상위

 

(上位) 개념이다. 또 바울의 경우 '죄로부터 자유함'이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음'을 뜻한다. 



  (15절) 여기서 분명한 선택이 요구된다. 곧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라는 1절의 질문

 

이 다시 제기되며, 그것은 "그럴 수 없느니라"의 대답으로써 이전의 진술보다 더 강하게 부정된다. 이것

 

을 바울은 16-23절에서 더 자세하게 서술한다. 



  (16절) '죄로부터 자유함'이란 다름 아닌 '주권 교체'를 의미한다. 주권 교체가 수세자에게 일어나야 한

 

다. 그것은 인의자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에서 일어난다. '순종'(uJpakohv)이란 '믿음'(pivsti")의

 

다른 표현이요, '믿음'의 동의어이다(롬 1:5; 10:3; 11:30 참조). "믿음이란 은혜 아래 있는 새로운 삶을 실

 

천하는 것이다. 믿음은 순종으로 사는 것이다."(Ernst Fuchs, Die Freiheit des Glaubens, 1949, p. 63).

 

이런 순종은 죄의 권세와 맞서 싸운다. 죄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다른 선택이다. 바로 이 믿음의 순종이

 

의(dikaiosuvnh)로 인도한다. 그러니까 구원에 합당한 삶을 요구하는 과제가 구원의 현재 안에 포함되

 

어 있다. 



  (17절)
이제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이 된 것에 대한 감사가 뒤따른다. 



  (18절)
세례 받은 자는 의의 종이다. 수세자가 받은 의는 그 자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 되

 

게 한다. 곧 가능하게 된 주권 교체가 명령법의 전제이다. 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어떤 상태가 아니라, 하

 

나님에 의해 새롭게 열리는 삶이다. 



  (19-23절)
이 단락에서 '그때'(tovte)와 '이제'(nu'n)가 대립되어 있다. 이러한 대립은 수세자에게 '주권

 

교체'를 요구하는 '세대 교체'와 관련되어 있다. 19절과 22절에서 '인의'와 '성화'의 관계가 나타난다.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aJgiasmov")이다. '거룩함'은 하나님께로 들어가는 통로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위를 통해 가능하게 된다. 바로 이 '거룩함'의 개념에서 직설법과 명령법은 함께 만난다. 곧 '성화'는

 

'경험된 인의'이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서 인의와 성화는 하나님의 사역 안에 있는 한 단위이다.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은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종된 자를 영생에 이르도록 인도한다. 

 




                                                        3.2.2.
신학적 결론



  바울은 이 단락에서, 순종을 위하여 죄의 권세로부터 벗어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다룬다. 이때 '죄로

 

부터의 자유함'이란 '죄의 권세로부터의 자유함'을 의미하며, 그것은 내용적으로 순종을 위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음을 뜻한다. 주어진 구원의 선물(Gabe)과 그것을 받은 자에게 부과되는 과제(Aufgabe)는

 

둘 다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의 상태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함께 일어난다. 그러니까 인

 

의와 성화는 구분되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화란 세례 받은 이후 수세자들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늘 새롭게 경험하는 인의이기 때문이다. 



  오랫
동안 인의와 성화의 관계를 연속적 내지는 발전적 구원의 단계라는 관점에서 직선적으로 여겨 왔다. 즉 인의는 성화의 전제로, 성화는 인의의 후속 단계로 생각되었다. 그것은 인의를 기독론적으로나 종말론적인 관점이 아니라 단지 인간론 내지는 실존론적인 관점에서 바라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의를 선물 받은(의롭다 여김 받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고 선물을 선물 주신 자로부터 분리하여 인의를 바울이 강조하는 죄의 권세로부터 그리스도에게로의 주권 교체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울에 의하면 성화는 인의의 다음 단계로 시간상 후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의와 함께 일어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선물에 관해 말하는 직설법이 단순하게 명령법의 전제가 아니요 명령법은 단지 직설법에서 유래되어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명령법이 선물 받은 자에게 선물의 확증으로 순종을 요구하는 한, 명령법은 직설법과 동시에 일어난다. 직설법과 명령법을 시간적인 순서에서 인과론적으로 보고 성화를 단지 인의의 다음 단계로 여긴다면 그것은 본문에서 전개되는 바울의 사상과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직설법과 명령법을 교호(交互)적인 통합성 안에서 이해할 때 본문의 단락뿐 아니라 전체 바울의 사상에 부합된다. 확실히 바울은 자신의 신학 핵심인 '하나님의 의'를 죄인을 의롭다 여기시는 심판주 하나님의 '선물'로 여길 뿐 아니라 인의자(認義者)가 실제로 의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본다. 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믿음의 의'가 단순하게 죄인을 의롭다 여기시는 '법정적인 인의'(iustificatio forensis)일 뿐 아니라 칭의자를 실제 의인(義人)되게 하는 '효과적인 인의'(iustificatio effectiva)로 이해한다. 따라서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를 인의-성화의 도식을 따라 관념론적인 표어인 '된 자가 되어라'로 이해하는 것보다 세례시 인의자에게 일어난 죄의 권세로부터 그리스도에게로의 주권 이양(移讓)이라는 관점 아래 인의와 성화를 상호 교호적인 통합적인 관계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울의 원래 의도에 가까울 것이다.



                                      4. 바울의 윤리적 진술 설교시 고려해야할 유의점


  위에서
서술한 바울 윤리에 있어서 핵심적인 기본 이해를 바탕으로 바울의 윤리적인 진술과 권면을 다루는 본문을 설교할 때 고려해야할 몇 가지 유의점을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바울의 윤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행위라는 토대 위에 세워져 있다. 즉 바울이 말한 권면의 근거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다(롬 12:1).

  둘째, 바울은 일반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 권면한다. 그래서 바울의 윤리는 일반인에게도 적용되는 보편 타당한 권면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여김 받은 수세자를 여전히 지상에 살고 있는 실존의 죽을 몸 안에서 보는 인의 사건의 포괄적인 설명이다(롬 3:21ff; 6:2-11. 12-14; 12:1f; 갈 5:5).

 

 

 

 

  셋째, 바울에 의하면 명령법은 하나님의 구원 행동인 직설법으로부터 나왔다. 하지만 직설법과 명령법의 교호적인 통합성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끝까지 유지되어야 한다(롬 6:12ff).

  넷째, 하나님의 선물은 선물 받은 자를 붙잡아 섬기게 하는 선물이다(갈 5:13; 롬 6:12ff).

  다섯째, 바울서신이 상황서신임을 감안한다면 바울의 윤리는 현대 윤리학적인 의미에서 체계화될 수 없다. 하지만 바울은 윤리적인 규범을 언급하는데, 그 최고의 규범은 사랑이다(갈 5:14; 롬 13:8-10; 14:1-15:13).

  여섯째, 그리스도인의 시간은 자신이 그리스도인 됨을 보여 주는 증명의 시간이다(갈 5:25).

  일곱째, 바울은 '일반적인 권고'와 '시사적인 권고'로 구분되는 헬라적인 '권고'(parenesis) 양식을 이용하였다(빌 4:8). 그러나 바울은 일반인에게 적용되는 '권고'(parenesis)가 아니라 세례 받은 인의자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행동에 근거를 두고 있는 '신적 권면'(paraklese)에 관해 말하고 있다(롬 12:1).

  여덟째, 바울의 윤리에서 '양심'에 따른 자발적인 순종이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때 양심의 판단은 최고 규범인 사랑에 의해 결정된다(고전 8장과 10장).

  아홉째, 바울의 윤리는 기독론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과 계명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표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바울의 윤리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의 윤리이다(빌 2:5ff; 고전 11:1; 살전 1:6f).

  끝으로,
바울 윤리의 고유성은 윤리에서 구원 사건이 차지하는 중요성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즉 바울은 '구원 에토스'와 '세상 에토스'를 통합하였으며 윤리를 신학 안에 통합하였다. 



                                                                         5. 맺는 말


 

  사도 바울의 윤리적 권면은, 그리스도인들을 돌보는 목회적인 동기에서 뿐만 아니라, 구원의 선물을

 

받은 자가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드려 자신에게 일어난 주권 교체에 부합되게 함으로써, 선

 

물을 주신 하나님과 분리됨이 없이, 자신에게 부과된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의의 병기라는 것을 알리려

 

는 바울의 선포적인 동기에서, 즉 직설법이 명령법과 함께 내적으로 불가분으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

 

는 통합적인 직설법-명령법 관계를 깨우치려는 교화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바로 이것이 바울서신에 나타나는 윤리적인 본문을 설교할 때 고려해야할 가장 중요한 바울 윤리 이해

 

의 핵심이다.

 

 

 

                                                                                           출처 블로그 > 성경과의 데이트, 신학과의 데이트
                                                                                           원본 http://blog.naver.com/ssnhy/40013677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