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聖地 · 선교사/1.國內 성지순례歷史교회文化탐방

★ 강화성지[전체]-5 <교산교회 ·고인돌 · 연개소문>

영국신사77 2007. 9. 26. 12:01

      강화도 성지와 유적지 순례 5 <교산교회 ·고인돌 · 연개소문 유적비>

 

 

                               4. 교산 교회

 


  ① 1887년 서울에서 노병일이 인천에 내려와 契를 조직하여 선교-미국 선교사가 봐준다고 하자 계꾼 50여 명이 모였고 곗날은 주일, 모이는 장소는 교회


  ② 계원 중 강화 양사면 시루미(甑山증산) 출신 이승환이 주막을 경영하며 계에 가입.  계원 1명이 곗돈 타먹고 도망하자 교회 평판도 추락하고 뿔뿔이 흩어졌으나, 이승환과 1명만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듣고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됨


 ③ 1892년 미 감리교 G.H.Jones(趙元時) 선교사가 인천에서 갑곶 나루를 통해 강화에 들어오려다 남문에서 쫓겨남.


*  강화 유수-“우리는 당신네 선교사들이 왜 왔는지 잘 알고 있소. 우리는 당신들이 가져온 것을 원치 않소. 빨리 이곳을 떠나시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거요”- 협박에 가까운 거절
 (신미양요 때 초지진 포격사건, 정족산성 점령, 유물 약탈  등이 일어난 지 20여년이 지난 때)
          


   ④ 1893년 개신교를 대표하여 감리교가 강화 읍에서는 배척 받고,  변두리를 통하여 처음 들어오게 됨.


   ⑤ 존스 선교사가 이승환에게 세례 받으라 권하자, 처음에는 다음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사양


      ⓐ술파는 장사,

      ⓑ노모보다 천국가는 좋은 일에 먼저 받을 수 없다.


   ⑥ 후에 이승환은 술집 처분하고 강화도로 돌아와, 어머니를 전도하고 세례 받기로 작정


   ⑦ 존스 선교사가 이승환의 안내로 강화 북쪽 양사면에 도착하여 다리목[교정(橋頂)]으로 가려고하자, 그곳 경주 김씨 김 초시가 서양 오랑케가 자기 땅을 지나가 야소교[기독교]가 들어오면 네 집을 불살라 버리겠다고 위협하자, 어머니를 업고 배에 가서 선상 세례를 받음(보름 달빛 아래 세례 받아 강화의 겨자씨란 칭호를 얻음)


 ⑧ 존스가 전도인 이명숙, 전도부인 백헬렌을 시루미로 보내 이승환의 집에서 집회를 시작(인천 내리교회 약사에 기록)


 ⑨ 김초시(김상임)-40세에 강화부 승부 초시에 등과, 관직에 나가지 않고 향리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선비

                              
 존스가 형님이라 부르며 한문 성경을 주고 가자, 파고 들어

“옳구나. 이것이 바로 내가 정감록에 심취하여 난세에 구명할 수 있는 곳, 十勝地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 성경 안에 십계명이 있고 십자가에 영생이 있으니 十字架之道가 다름아닌 십승지로다”


또한 믿기 시작한 천민들의 생활 태도가 바뀌고 마을 분위기가 바뀐 것에서 기독교의 힘을 느끼고, 유교를 벗어 던지고 존스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음.


김초시의 개종으로, 다리목 마을 전체가 복음화됨


자기집 앞 마당에 12칸 짜리 초가집 예배당을 짓고, 이승환의 집에 모이던 교인들이 옮겨옴


시루미 천민(甑山)+다리목 양반(橋頂)→橋山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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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위일체 하나님을 상징하는 세 줄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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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돌 유적지> & <연개소문의 유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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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개소문의 유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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