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靈論

14. 한국교회와 성령운동-배본철 교수

영국신사77 2007. 8. 17. 22:27

                                                                        한국교회와 성령운동   

                                                                                     장로교의 최근 입장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해방 이전에는 초기 한국교회 대부흥운동과 가옥명(賈玉銘)의 '성령론'으로 이어지는 19세기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전통과 함께, 또 이보다는 좀 늦게 한국에 소개된 카이퍼(Abraham Kuiper), 워필드(B. B. Warfield), 개핀(Richard Gaffin) 등의 영향을 받은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의 전통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직 두 노선간의 신학적 갈등이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까닭은 교회 대중들의 신앙이 일반적으로 초기 대부흥운동의 흐름을 따라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전통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며, 또 다른 이유로는 비록 초기 선교사들에 의해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이 소개되기 시작은 했으나, 아직은 한국교회에 성령론이 신학적 논제로서 무르익지는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해방 이후 이인한의 '신자와 성령'이 1964년에 출간되고 박형룡이 <신학지남>에 1968년에 “성령”이라는 글을 쓰게 되자, 마침내 이 두 저작은 1960년대 이후 개혁파 성령세례론의 양대 축을 조성하게 되었다. 이후의 성령세례론의 갈등은 이 양 노선 간의 해석상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개혁파 그룹 내에서 뜨거운 성령세례론 논쟁이 지속된 과정은 박형룡의 노선에 맞서 차영배가 본격적으로 바르트(Karl Barth), 개핀(Richard Gaffin), 스토트(John Stott) 등의 성령론을 비판하는 작업과 맞물려 진행되었다. 그후 현재까지 개혁파 신학계에서는 성령세례론에 있어서 매우 복잡한 갈등 양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의 복잡한 성령세례론을 최소한 간략히 분류해 본다면, 전술한 바와 같이 개혁파 성령세례론에는 이인한을 필두로 하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되는 전통과, 박형룡을 필두로 하는 중생과 성령세례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전통의 두 가지 커다란 역사적 조류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두 조류의 신학적 성격은 19세기로부터 이어온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전통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선과, 이와 대치된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 사이의 갈등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성령의 은사 문제

  한국교회 성령세례론 논쟁의 핵심에는 성령의 은사 문제가 자리잡고 있었다. 은사의 지속성 문제를 허용할지 여부에 따라, 성령세례에 대한 정의가 또한 명백히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김길성은 1930년대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박윤선의 신학적 고민에 대해서 소개하였다. 당시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노선은 워필드(B. Warfield)의 주장을 따라 은사 중지론의 입장이었는데, 박윤선이 한국에 돌아와 보니 목회적 상황은 방언, 신유 등 성령의 은사적 현상들이 지배적이었기에, 그는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신학적으로는 차영배의 영향을 받아, 마침내 1980년 이래 박윤선의 성령론이 확실히 바뀌게 되었다고 숭실대학교의 김영한은 보았다(김영한, “개혁신학의 성령론”, <성경과 신학> 20권(1996), 655). 차영배는 박윤선의 성령론이 변화된 것은 곧 평양 장로회신학교의 성령론이 전통적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고 표현하였다. 이런 시각에서 신약학자 권성수는 기본적인 개혁주의 신학의 틀에 기초하여, 다음과 같이 능력 수여의 관점에서 중생과 성령세례의 관계를 재조명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런가 하면 총신대학교의 선교학 교수인 김성태는 <신학지남>의 한 논문에서, ‘성령의 외적 은사가 사도적인 표적과 기사로서 사도시대에 마감을 하였는가’ 하는 질문을 던짐으로서, 개혁주의신학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는 최근 적지 않은 개혁주의 신학자들 가운데서, 성령세례와는 관계없이 교회론과 연관해서, 성령의 외적 은사들을 교회적인 은사들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성령께서는 말씀의 토대 위에 세워진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충만한 임재로서 내재하시며 영적 은사들을 수여하시는 것이다..... 선교지 상황, 복음이 심하게 왜곡되고 거부되어지는 상황, 신자들이 핍박받고 몹시 고난당하는 상황속에서, 교회에 주어진 성령의 외적 은사로서 표적과 기사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나타날 수 있음을 적극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 하면서, 은사 문제에 대해서 전통적으로 부정적이던 개혁주의신학의 새로운 시각적 전환을 요청하였다.

                                                                   권성수

  이러한 시점에서 개혁주의 신학계가 ‘성령세례’라는 용어를 사이에 두고 논란을 지속하는 일은 복음적인 성령운동의 확산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이에 대해서 권성수는 말하기를, “자칫하면 성령세례가 제 1축복인가, 아니면 제 2축복인가 하는 용어 싸움에 말려들어, 실제로 성령의 역사를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

  즉 중생을 성령세례로 보고, 그 후에 받는 성령의 체험을 성령충만이라고 할 것인가, 혹은 그 후에 받는 성령충만의 첫 체험을 성령세례라고 할 것인가 하는 용어의 싸움에 지나치게 말려드는 것은, 그리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용어야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실제 성령의 역사를 충만히 누리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과연 그동안 개혁파 신학계 내에서 있었던 성령세례론을 둘러싼 상호 갈등의 조정은 가능한가?

 

  권성수는 “성령세례가 회심과 동시에 일어나느냐 후에 일어나느냐, 그 최초의 증거가 방언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 즉 성령세례의 시점과 방식의 문제는 성령 임재에 부차적인 것이다”라고 함으로서 성령세례의 시기나 임하는 방식 등에 대한 논의보다는, 실제 성령 임재의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적절한 용어 사용과 해석상의 문제에만 너무 억매이지 않는다면, 더 나아가 서로간의 신학적 입장의 차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서로의 전통에 참여함으로 더 풍성한 성령 임재와 사역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제 개혁파 신학계는 그동안의 성령론 논쟁을 마감하고, 상호 전통을 이해하며 존중하는 가운데, 통전적(通傳的)인 성령론 이해의 시기로 돌입해야 할 때라고 본다.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