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대왕과 아리스토텔레스
우리 나리 속담에 ‘꽃을 훔치는 사람과 책을 훔쳐가는 사람은 도적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끔 저는 책장을 훑어보다가 그 중에 돈을 주고 사지 않은 책들이 꽤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빙긋이 웃곤 합니다. 그게 모두 남의 책을 몰래 들고 왔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지만 뭐 그리 자랑할 만한 얘기는 아닐 것입니다. 또 다소 뻔뻔스러운 말씀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모든 사물에는 각기 주인이 있는 것이요, 특히 책이라고 하는 것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막상 저의 책이 없어졌을 때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고 며칠 동안 잠을 못 이루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그리스의 철학자요, 흔히 과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잠시 얘기해 볼까 합니다.
원래 마케도니아 왕실의 어의(御醫)의 아들로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17세에 아테네로 건너가 플라톤(Platon) 밑에서 20년 동안 학문을 연구함으로써 대성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가 알렉산더대왕의 가정교사였다는 사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망이 높아지자 마케도니아의 필립왕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초청하여 그 당시 13세이던 자기 아들 알렉산더의 교육을 부탁했습니다.
알렉산더가 20세가 되어 마케도니아 왕으로 즉위하자 지중해 연안의 정복 전쟁은 그 막이 올랐습니다. 서기 전(前) 335년부터 시작된 페르시아전쟁 때에는 아리스토텔레스도 직접 전투에 종군했으며, 이때 노획한 전리품들을 모아 리케이온(Lykeion) 근처에 도서관과 박물관을 세우고 후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 아리스토텔레스는 강의실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기보다는 학교 구내의 오솔길을 걸으며 얘기하듯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이들을 ‘소요학파(逍遙學派)’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원래 영민(英敏)한 사람이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받아 더욱 학문이 높아질 수가 있었고, 또 이를 늘 감사하게 생각해서 전쟁터에 나가서도 선생님을 잊지 않고 문안편지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알렉산더대왕은 스승으로부터 답장을 받았는데, 그 편지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나도 이제 늙었으니 내 학문을 책으로 정리하여 후학들에게 전해주고 싶노라.”
고 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알렉산더대왕은 즉시 붓을 들어 스승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글을 보면,
“선생님과 같은 고명한 학자의 글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다고 해서 좋을 것이 없고, 저에게 말씀으로 들려주신 것만으로 충분하니 책을 쓰는 일을 즉시 중지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제자의 편지를 받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가지로 생각하던 끝에 결국 책을 쓰기로 결심했고, 이때로부터 20년간에 걸친 사제간의 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얘기 중 어느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지 저는 모릅니다. 대왕의 부탁을 받고서도 학자의 양심에 따라 후세에 글을 남긴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자적 자세도 훌륭한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지식에 대한 알렉산더대왕의 무한한 욕망도 또한 가상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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