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강해[종합]/중간사

★★★ 5. 셀루커스(Selucus) 왕조

영국신사77 2007. 6. 3. 22:55

         셀루커스 왕조의 왕들에 대한  다니엘서 11장의 예언

 

 

 

                              <셀루커스 왕조>

 

        셀루커스 1세 (재위 BC  312~281년, 31년)---- (단 11:5)

        안티오커스 1세 (재위 BC 280~262년, 18년)

        안티오커스 2세 (재위 BC 261~246년, 15년간)- (단 11:6)

        셀루커스 2세 (재위 BC 246~225년, 21년간)--- (단 11:7~9)

        셀루커스 3세 (재위 BC 225~223년, 2년간)---- (단 11:10)

        안티오커스 3세 (재위 BC 223~187년, 36년간)- (단 11:10~19)

        셀루커스 4세 (재위 BC 187~175년, 12년간)--  (단 11:20)

        안티오커스 4세 (재위 BC 175~164년, 11년간)-(단 11:21~45)

 

 

 

 

 

                           

                                     셀루커스(Selucus) 왕조시대  

 

  셀루커스 1세에 의해서 세워진  셀루커스(Selucus) 왕조는, 알렉산더의 사실상 후예로, 동서양의 문화교류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안티오커스(Antiochus) 3세[대왕]는 이집트와 수 차례의 전쟁을 거쳐, BC 199년 요단강의 발원지인 파니아스(가이사랴 빌리보) 근처의 전투에서 이집트의 스코파스(Scopas)군에게 승리함으로써, 이집트로부터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게 되었다.[단 11:11~16] 그후 안티오커스 3세는 톨레미 왕조로부터 정권을 인수받고,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팔레스타인을 직접 통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유대 역사에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 이전의 톨레미 왕조가 유대 관습과 전승에 호의적이었던 반면, 셀루쿠스 왕조는 유대인에게 헬라문화를 강압적으로 전파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안티오쿠스 4세[에피파네스:(BC 175~164 재위, 11년간)]치하에서는 친헬라파  대제사장을 앞세워서, 무자비하게 유대교를 탄압하고 헬라문화를 대대적으로 장려하였다. 경기장이 예루살렘에 세워지고 헬라식 이름은 흔한 일이 되어 버려, 유대적 정통주의는 반 계몽적이 되거나 또는 시대에 뒤진 것으로 매도되었다.

 

   그후 안티오쿠스 4세는 더욱 정통적 유대를 탄압하기 위하여, 안식일에 시리아 대군을 예루살렘에 투입하여 유대 정통 세력들을 학살하고, 도시의 성벽들을 파괴하고 새로운 요새인 아크라를 성채에 건조하였다.

 

   그는 더 나아가 하나님 성전을 약탈하고, 대신 하나님 성전에 제우스를 대신 세우고, 돼지 피로 제사를 지내게 하고, 할례를 금하는등 정통적 유대신앙을 말살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극단적인  헬라정책은 내부적으로는 극심한 타락을 가져오게 되었고, 정통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던지게 되어, 마침내 마카비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리하여 BC 167년 안티오커스 4세에 의해서, 유대인을 헬라문화에 동화시키려는 포고령이 내려지자, 유대인 제사장 맛타디아스(Mattathias)와 그의 아들 막카비에 의해서 셀레커스 왕조에 대한 본격적인 반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