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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 227호.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강화 12진보(鎭堡)의 하나이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도로 천도 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이다.
광성보는 조선시대 광해군 때 헐어진 데를 다시 고쳐 쌓았으며, 1658년(효종 9)에 강화유수 서원이 광성보를 설치하였다. 그 후 숙종(肅宗) 5년(1679)에 용두(龍頭), 오두(鰲頭), 화도(花島), 광성(廣城) 등 소속 돈대(墩臺)가 축조되었다.
그후 영조(英祖) 21년(1745) 성을 개축하면서 성문을 건립하고 안해루(按海樓)라 하였다.
고종(高宗) 3년(1866)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프랑스의 극동함대와 공방전이 있었다.
그후 고종 8년(1871) 신미양요<辛未洋擾> 때, 이곳에서 미국의 아세아 함대와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가 벌어졌던 곳이다. 그 해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는 미국 극동함대를, 처음에는 초지진·덕진진·덕포진 등의 포대에서 일제사격을 가하여 물리쳤다. 그러나 4월 23일 미국 해병대가 초지진에 상륙하고, 24일에는 덕진진을 점령한 뒤, 여세를 몰아 광성보로 쳐들어왔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가, 포로 되기를 거부, 몇 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 전원이 순국하였다.
현재 광성보의 경역에는 신미양요 때 순국한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雙忠碑)와 무명 용사들의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 및 당시 파괴된 문루와 돈대(墩臺)를 1976년에 복원하여 세운 강화전적지(江華戰蹟地), 보수정화비(補修淨化碑) 등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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