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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목사의 성서 속 도시이야기(5)] 바울의 1차 전도여행지 살라미

영국신사77 2007. 3. 18. 11:27
[이원희 목사의 성서 속 도시이야기(5)] 바울의 1차 전도여행지 살라미
[국민일보 2005-03-28 15:14]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첫번째 전도여행에서 들렀던 구브로 섬(행 13:4∼4)의 답사를 위해 그레데섬의 이라클리온 공항으로 향했다. 구약성경(겔 27:6∼7)에 엘리사 섬과 깃딤 섬의 다른 이름으로도 나오는 구브로 섬은 오늘날 키프로스다. 성경시대에 이곳은 직물과 황양목(도장나무),상아로 유명했다. 그레데에서 지중해 맨 동쪽에 있는 키프로스로 가려면 배를 타고 갈 수도 있으나 하루를 잡아야 가능했기 때문에 비행기를 이용하기로 하고 그레데에서 아테네발 오전 11시 비행기에 올랐다. 지중해를 내려다보며 아테네에 도착한 후 곧바로 남키프로스로 가는 오후 1시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아테네를 이륙한 비행기는 1시간20분만에 라나카 공항에 도착했다.

오늘날 키프로스(구브로 섬)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다. 남키프로스 라나카 공항에는 많지는 않지만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입국 수속을 밟고 있었다. 수속 후 알아보니 키프로스는 세계적인 관광지여서 예전에는 돈을 적게 소지하면 입국이 거절된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입국 수속을 마친 우리 일행은 렌터카를 이용하기로 하고 공항에서 차를 빌렸는데 남키프로스는 영국처럼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었다. 그러나 일행 중에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는 차를 운전해본 목사님이 있어 다행스럽게 나사로 무덤교회가 있는 숙소로 차를 몰았다. 20여분만에 숙소에 도착은 나는 짐을 풀자마자 바로 옆에 있는 나사로 무덤교회를 방문했다. 성경 인물의 성화들이 교회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교회 강단 옆 지하로 내려가자 나사로 무덤이 있는 석관이 있었다. 성경에는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가 어디서 다시 죽었는지 기록이 없으나 전승에 따르면 키프로스에 와서 전도하다가 순교하여 라나카에 묻혔다. 나사로 석관에는 ‘친구 나사로가 잠들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교회를 나와 먹을 것을 준비해 숙소에 돌아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든 것은 새벽 3시30분이었다.

이튿날 나는 바나바의 고향이자 사역지인 북키프로스의 살라미(살라미스)로 가기 위해 라나카에서 50㎞쯤 떨어진 니코시아로 향했다. 키프로스는 남북으로 갈라져 있어 북쪽은 터키가 점령했고 남쪽은 그리스로부터 독립해 있다. 그래서 이전에는 국경을 넘어갈 수 없었으나 내가 갔을 때는 북키프로스에서 남키프로스로 입국은 안돼도 남키프로스에서는 북키프로스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니코시아에 도착한 나는 국경초소에서 입국시 여권에 터키 지역의 스탬프를 찍으면 다시 입국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출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오자 살라미로 가는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 기사들은 살라미까지 왕복하는데 50파운드(약 100달러)를 요구했다. 60달러에 흥정한 후 택시에 오르자 우리나라 총알택시처럼 시속 140㎞로 내달렸다. 택시의 운행거리를 보니 53만8천㎞나 되었다. 국경에서 40㎞ 떨어진 살라미까지 25분도 채 못돼 도착했다.

살라미에 도착한 나는 먼저 바나바의 무덤과 그 바로 옆에 있는 바나바수도원(교회)을 찾았다. 바나바는 이곳 살라미 출신으로 바울과 함께 안디옥 교회 선교사로 파송돼 고향인 이곳에 와서 전도했고 말년에 유대인의 폭동 때 돌에 맞아 순교,이곳에 묻혔다고 전한다. 이것은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성경 외적인 귀중한 정보였다. 교회 안은 나사로 무덤교회와 같이 많은 성경의 인물들이 성화로 채워져 있었다. 교회를 방문한 후 조금 떨어진 지중해 해안가에 있는 살라미(살라미스) 유적을 찾았다.

구브로 섬의 동쪽 연안 파무구스타(Famugusta)만에 위치한 살라미(Salamis)는 이 섬의 중요한 항구이다. 이곳 역시 바보 항구처럼 일찍이 베니게(페니키아)에 의하여 설립된 곳으로 주전 400년께 에바고라스(Evagoras? BC 410∼373년)가 구브로의 태반을 지배하고 살라미를 수도로 정했다. 주전 58년 로마의 속령이 됐고 상업도시로 번영하였다. 신약시대에는 섬의 수도를 바보(Paphos)에 넘겨줬다. 116년 유대인의 반란으로 트라야누스 황제에 의해 성읍이 파괴되었고 다시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그후 648년 아라비아인에 다시 파괴된 이래 지금까지 폐허가 되었으나 아직도 야외극장과 상당수의 현무암 원주기둥이 산재해 있다. 유적지 바로 옆 바닷가에는 많은 사람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오후 5시까지 남키프로스로 가기 위해 서둘러 차를 몰아 국경으로 향했다. 차는 국경 통과시간 45분전에 도착하여 별 어려움 없이 국경을 넘어 라나카의 숙소로 돌아왔다. 나사로 무덤에 이어 바나바의 무덤을 볼 수 있었던 키프로스. 나사로와 바나바가 전한 복음은 지금도 키프로스에 남아 주민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느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