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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공동체/쿰란문서와 성서해석/바로미

영국신사77 2007. 3. 1. 14:54
쿰란공동체/쿰란문서와 성서해석/바로미 | 성경의사본학
2006.08.08 15:35

감리교신학대학교 성서학연구소

제 24 회  학 술 세 미 나

◈  강  연  자  ◈


이환진 박사 (미국 New York 대학 Ph. D)

왕대일 교수 (감신대 구약학)

송창현 교수 (대구 가톨릭대학 신약학)

배철현 박사 (미국 Harvard 대학 Ph. D)

박미섭 교수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Ph. D)

김덕중 박사 (영국 Aberdeen 대학 Ph. D)

김판임 박사 (독일 괴팅엔 대학 Ph. D)

김창선 교수 (장신대 신약학)

▣ 일시 : 2003년 6월 9일(월) 10일(화) 12일(목) 13일(금) 오후 5-7시

▣ 장소 :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3층 시청각 세미나실

감신대 성서학 연구소 제 24 회 학술세미나


쿰란공동체/쿰란문서와 성서해석


1. 감신대 성서학 연구소 학술모임 발자취 ……………………………… 1

2. 쿰란 공동체와 사해 두루마리 - 개괄적 정리 ………………………  5

   (이환진 박사 - 미국 New York 대학 Ph. D)

2. “쿰란 공동체와 묵시사상(apocalypticism) ……………………… 22

   (왕대일 교수 - 감신대 구약학)

3. 쿰란 공동체와 메시아 ……………………………………………… 33

   (송찬현 신부 - 대구 가톨릭 대학 신약학 교수)

4. [부록] 4Q246에 대하여 …………………………………………… 29

5. 쿰란사본[나보니두스의기도](4QPrNab)해본고대근동문헌전통적:

   4QPrNab, Nab. H 2A/B, 4QpsDanAr,[욥기],[다니엘서] ………… 42

   (배철현 박사 - 미국 Harvard 대학 Ph. D)

6. 성전문서(Temple Scroll) …………………………………………… 51

   (박미섭 박사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 Ph. D)

7. ‘쿰란 공동체 규율서’에 대한 고찰 ………………………………… 70

   (1QS: Serek ha-Yahiad [The Rule of the Community])

   (김덕중 박사 - 영국 Aberdeen 대학 Ph. D)

8. [부록] - 쿰란 공동체의 완전사상에 대한 연구 …………………… 85

9. 쿰란공동체와 세례요한 …………………………………………… 97

   (김판임 박사 - 독일 괴팅엔 대학 Ph. D)

10. 쿰란공동체와 예수 -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나? …………… 111

   (김창선 교수 - 장신대 신약학 교수)

▣  일   정  ▣

날  짜

시    간

강  의  명

강  의  자

9일(월)

1강(5:00-6:00)

쿰란공동체와 두루마리

이환진 박사

2강(6:00-7:00)

쿰란 공동체와 묵시사상

왕대일 교수

10일(화)

1강(5:00-6:00)

쿰란공동체와 메시아

송창현 신부

2강(6:00-7:00)

쿰란문서와 구약성서

배철현 박사

12일(목)

1강(5:00-6:00)

성전문서(Temple Scroll)

박미섭 박사

2강(6:00-7:00)

‘쿰란공동체 규율서’에 대한 고찰

김덕중 박사

13일(금)

1강(5:00-6:00)

쿰란공동체와 세례요한

김판임 박사

2강(6:00-7:00)

쿰란공동체와 예수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나?

김창선 교수




▣  강  연  자  ▣

▪ 이환진 박사 - 뉴욕대학 구약학 Ph.D

▪ 왕대일 교수 - 감신대 구약학 교수

▪ 송창현 신부 - 대구카톨릭대학교 신약학 교수

▪ 배철현 박사 - 하바드대학 고대 근동 언어와 문학 Ph.D

▪ 박미섭 박사 - 히브리대학 구약학 Ph.D

▪ 김덕중 박사 - 영국 Aberdeen 대학 신약학 Ph.D

▪ 김판임 박사 - 독일 괴팅엔 대학 신약학 Ph.D

▪ 김창선 교수 - 장신대 신약학 교수



 

감신대 성서학 연구소(소장 왕대일 교수)

학술모임 발자취




제 1 회 공개강연 (1999년 3월 15일)

        “구약성서와 성(性)”

   강사 - 츠키모토 아키오(Tsukimoto Akio) 교수 (일본 동경 Rykkyo 대학 구약학)

제 2 회 공개강연 (1999년 4월 22일)

         “구약성서의 간음죄”

   강사 - 박종수 교수 (강남대 신학과 구약학)

제 3 회 공개강연 (1999년 5월 13일)

         “야웨와 바알- 고고학적 증거”

   강사 - 에프라임 스턴(Ephraim Stern) 박사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고고학 교수)

제 4 회 공개강연 (1999년 9월 30일)

        “야웨신앙과 성(性) 이해”

   강사 - 방석종 교수 (감신대 구약학)

제 5 회 공개강연 (1999년 10월 21일)

         “다윗-밧세바 이야기에 나타난 성(性), 권력, 하나님의 심판”

   강사 - 부르스 버치(Bruce Birch) 교수 (미국 Wesley Theological Seminary 구약학)

제 6 회 공개강연 (2000년 5월 18-19일)

         “구약 예언서의 세계”

   강사 - 마빈 스위니(Marvin Sweeney) 교수 (미국 클래아몬트 구약학)

제 7 회 학술 대회 (국제 심포지엄, 2000년 8월 31일)

         “구약학과 본문비평”

   강사 - 아드리안 솅커 교수 (스위스 Freiburg 대학 구약학)

          바바라 알란트 교수 (독일 Muenster 대학 신약학)

          민영진 박사 (대한성서공회 총무)

제 8 회 공개강연 (2000년 10월 5-6일)

         “구약학과 고대 셈어”

   강사 - 사이몬 파커(Simon B. Parker) 교수 (미국 Boston 대학교 구약학)



제 9 회 학술 대회 (2001년 5월 7일)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고고학적, 역사적, 신학적 조명”

   강사 - 고세진 박사 (이스라엘 예루살렘 대학교 구약학 교수)

          기드온 아브니(Gideon Avni) 박사 (이스라엘 정부 고고학부)

          김의원 박사 (총신대학교 총장, 구약학)

          강사문 교수 (장신대 구약학)

          왕대일 교수 (감신대 구약학)

          장영일 교수 (장신대 구약학) 

          유영기 교수 (합동신학교 신약학)

제 10 회 학술 심포지엄 (2001년 6월 5, 7일)

         “구약성서와 민중신학”

   강사 - 김원일(Wonil Kim) 교수 (미국 LaSierra 대학교 구약학)

          임태수 교수 (호서대 신학과 구약학)

          우택주 교수 (침신대 신학과 구약학)

제 11 회 공개강연 (2001년 10월 16일)

        “구약성서와 웨슬리 신학”

   강사 - 우택주 교수 (침신대 구약학)

          서명수 교수 (협성대 신약학)

          왕대일 교수 (감신대 구약학)

          김홍기 교수 (감신대 교회사)

제 12 회 공개강연 (2001년 11월 15일)

        “구약 속의 신약, 신약 속의 구약(1)”

   강사 - 방석종 교수 (감신대 구약학)

          왕대일 교수 (감신대 구약학)

제 13 회 공개강연 (2002년 4월 8일)

         “구약성서와 이스라엘의 신앙”

   강사 - 마리 봐커(Marie Wacker) 교수 (독일 Muenster 대학 구약학)

제 14 회 학술 모임 (2002년 5월 10일)

         “구약의 역사지리(Historical Geography)”

   강사 - 안톤 레이니(A. Rainey) 교수 (이스라엘 Tel Aviv 대학교 구약학)

제 15 회 공개강연 (2002년 5월 20일)

         “구약과 설교”

   강사 - 왕대일 교수 (감신대 구약학)

          이성민 교수 (감신대 설교학)

 

제 16 회 학술 모임 (2002년 6월 11일)

        “수사학과 구약의 Narrative”

   강사 - 박철현 박사 (영국 Manchestar 대학 Ph. D)

          유태엽 교수 (감신대 신약학)

          이경재 교수 (감신대 종교철학과)

제 17 회 공개강연 (2002년 9월 30일-10월 2일)

         “동북 아시아에서의 성서이해”

   강사 - 츠키모토 아키오(Tsukimoto Akio) 교수 (일본 동경 Rykkyo 대학 구약학)

          사토 미가쿠 (Sato Migaku) 교수 (일본 동경 Rykkyo 대학 신약학)

제 18 회 학술 모임 (2002년 10월 25일)

         “목회를 위한 성서주석”

   강사 - 고든 웡(Gordon Wong) 교수 (싱가포르 Trinity Theological Seminary 구약학)

제 19 회 공개강연 (2002년 11월 19일)

         “구약 속의 신약, 신약 속의 구약(2)”

   강사 - 왕대일 교수 (감신대 구약학)

          조경철 교수 (감신대 신약학)

제 20 회 학술 세미나 (2003년 2월 12-15일)

         “칠십인역 구약성서 이해”

   강사 - 무라오까(T. Muraoka) 교수 (네델란드 Leiden 대학 고대 셈어)

제 21 회 공개강연 (2003년 3월 27일)

         “영원과 코스모스”

   강사 - 이환진 박사 (New York 대학 Ph. D)

          임진수 교수 (감신대 신약학)

제 22 회 공개강연 (03년 5월 6일)

         “한국의 고전 민담을 통해서 본 구약성서 이야기”

   강사 - 김현철 박사 (미국 Ohio 감리교신학대학 구약학 교수)

제 23 회 공개강연 (2003년 5월 15일)

         “성서해석과 여성신학”

   강사 - 유연희 박사 (미국 뉴욕 Union 신학대학 Ph. D)

          윤철원 교수 (서울신대, 신약학)




 

제 24 회 학술 세미나 (2003년 6월 9-13일)

         “쿰란문서와 성서해석”

   강사 - 이환진 박사 (미국 New York 대학 Ph. D)

          왕대일 교수 (감신대 구약학)

          송창현 교수 (대구 가톨릭대학 신약학)

          배철현 박사 (미국 Harvard 대학 Ph. D)

          박미섭 교수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Ph. D)

          김덕중 박사 (영국 Aberdeen 대학 Ph. D)

          김판임 박사 (독일 괴팅엔 대학 Ph. D)

          김창선 교수 (장신대 신약학)

쿰란 공동체와 사해 두루마리 - 개괄적 정리


이 환 진 박사

(미국 New York 대학 Ph. D)



             ▪들어가는 말

                1. 사해 두루마리의 발견

                2.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

                3. 사해 두루마리의 출판물

                4. 사해 두루마리의 언어

                5. 쿰란 공동체

     5.1 외적 증거 - 에세네 가설

                   5.2 내적 증거 - 사두개 가설

                6. 쿰란 공동체의 사상

                   6.1 운명 결정론

                   6.2 사후의 삶

                   6.3 메시야

                   6.4 “바른 스승”

                7. 쿰란 공동체와 여성

                8. 쿰란 공동체의 성서 해석

             ▪나가는 말

        


■ 들어가는 말


        흔히 에세네파(the Essenes)가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사해(死海) 두루마리는 히브리성서 연구뿐만 아니라 히브리 성서와 신약성서의 읽어버린 연결고리를 이어주는 중요한 분야이다. 따라서 성서 전체를 연구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학문 분야이다. 또한 유다인들에게는 제2성전 시대의 초기 유다교 역사를 밝혀주는데 매우 중요한 분야가 아닐 수 없다. 이 분야를 학자들은 쿰란학(Qumranic Studie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글은 쿰란 공동체는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며, 그들이 남긴 사해 두루마리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1. 사해 두루마리의 발견


        1946년 겨울, 무하마드 아드-디브(Muhammad Adh-Dhib)라는 타아미레(Ta‘amireh) 베드윈 목동은 동료들과 함께 사해 북서쪽 쿰란 지역에서 가축떼를 돌보고 있었다. 없어진 양 한 마리를 찾으러 부근의 자그마한 동굴을 발견한다. 돌 하나를 동굴 안으로 던지자 그릇 깨지는 소리를 듣고 이틀 뒤에 그 동굴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1) 그곳에는 10개의 단지가 놓여있었는데 8개의 단지는 비어있고 두 개의 단지에 천으로 싸여있는 두루마리를 발견하였다. 여기서 발견된 두루마리는 다음과 같다.


        『이사야 두루마리』(1QIsa, 1QIsb)

        『공동체 규칙』(1QS)

        『하박국 주석』(1QpHab)

        『전쟁 두루마리』(1QM)

        『감사 찬송』(1QH)

        『창세기 외경』(1QapGen)


        두루마리들을 발견한 목동들은 1947년 3월 우선 칸도(Kando)라고 부르는 골동품 상인을 찾아간다.2) 칸도는 시리아 정통교회의 교인이었는데 같은 교인인 죠지 이사야(George Isaiah)를 통해 예루살렘 성 마가 수도원의 대주교 아타나시우스 예슈에 사무엘(Athanasius Yeshue Samuel)와 연결된다. 그 시리아교회 교인이 대주교에게 이 두루마리에 대해 이야기한 이유는 이 두루마리들이 시리아어로 쓰여진 시리아 교회의 중요한 옛 문헌일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드디어 베드윈 목동들과 사무엘 대주교는 1947년 여름에 서로 만나 두루마리들의 값을 흥정하였다. 사무엘 대주교는 목동들에게 25파운드(약 100달러)를 주고 『이사야 두루마리』(1QIsa),『훈련교본』, 『하박국 주석』,『창세기 외경』을 구입하였다.

        사무엘 대주교는 여러 경로를 통하여 그 두루마리들의 진위를 알아 보았다. 결국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의 엘르아자르 수케닉(Eleazar L. Sukenik)에게 연결되어 이 네 두루마리가 매우 오래된 문헌인 것을 확인한다. 또한 베들레헴의 골동품 상인들이 오래된 두루마리들을 팔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은 수케닉은 베들레헴으로 잠입한다. 당시는 정치적 상황이 불안하여 유엔군이 팔레스틴을 통치하고 있었다. 위험을 무릎쓰고 베들레헴에 간 수케닉은 진품인 것을 확인하고 세 두루마리를 구입한다. 『감사 찬송』과 『전쟁 두루마리』 그리고 『이사야 두루마리』 단편(1QIsb)을 그는 히브리어판과 영어판을 각각 1954년과 1955년에 펴낸다.3)

        수케닉은 이 세 두루마리가 앞서 확인한 네 두루마리와 같은 동굴에서 나온 것을 몰랐지만 로마인 지질학자 플리니(Pliny, 기원후 23-79년)가 말하는 에세네인들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엘 대주교에게서 네 두루마리를 살려고 했으나 사무엘 대주교는 거절한다. 하지만 그는 1948년 2월과 3월에 예루살렘에 있는 아메리카 동양학 연구소(American School of Oriental Research)가 두루마리들의 사진판을 제작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이 연구소 소속의 존 트레버(John Trever)는 윌리암 브라운니(William Brownlee)의 도움을 받아 『성 마가 수도원의 사해 두루마리』라는 책을 펴낸다.4) 사무엘 대주교는 네 두루마리를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가 우여곡절 끝에 1954년에 판매한다. 처음에 이 두루마리들을 사려고 했던 수케닉의 아들 이가엘 야딘(Yigael Yadin)이 중개인을 내세워 25만달러에 네 두루마리를 구입한다. 결국 쿰란의 제1동굴에서 처음 발견된 일곱 두루마리는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의 “책의 전당”(the Shrine of the Book)이라는 건물에 모두 보존되어 있다.

        이후에 고고학자들은 1956년까지 제1동굴의 부근에 있는 열 개의 동굴에서 곧 모두 11개의 동굴에서 문헌들과 여러 물건을 발견한다. 그리고 인근의 와디 무라바아트(Wadi Murabba‘at)와 나할 헤베르(Nahal Hever) 등 곳곳에서도 여러 문헌들을 찾아낸다. 이렇게 약 10여년의 탐사 끝에 모두 850여 종의 수만 개의 문헌을 발견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은 문헌이 나온 곳은 제4동굴이다. 약 584개의 문헌들이 이곳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5) 따라서 제4동굴은 가장 대표적인 쿰란 문헌을 거의 망라하고 있는 동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두 11개의 동굴에서 발견된 문헌들은 모두 단편이다. 발견된 문헌 가운데 가장 긴 문헌은 제11동굴에서 발견된 『성전 두루마리』(11QTemplea)이다.6) 또 특이한 문헌으로는 보물이 숨겨져 있는 장소를 말하는 얇은 구리 판에 기록된 『구리 두루마리』(3Q15)이다.7)



2.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

 

        모두 11개의 동굴에서 발견된 문헌의 약 1/3은 성서본문이고, 또 1/3은 외경과 위경 그리고 또 1/3은 쿰란 공동체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문헌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까지 기록되거나 필사된 문헌들이다.

        우선 히브리성서(구약) 사본의 단편들은 에스더서와 느헤미야서를 빼고는 모두 발견되었다.8) 느헤미야서가 에스라서와 본디 한 두루마리라고 가정한다면 에스더서만 제외하고는 히브리성서의 모든 책이 발견된 셈이다. 발견된 성서사본들 가운데 가장 많이 발견된 책은 시편으로 36개의 사본이 발견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신명기 사본이 29개, 이사야 사본이 21개가 발견되었다. 창세기(15), 출애굽기(17), 레위기(13)도 많은 수의 사본이 발견된 셈이다.9) 그러니까 쿰란 공동체가 좋아하던 책은 앞서 언급한 시편과 신명기와 이사야 그리고 오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별히 제1동굴에서 발견된 『이사야 두루마리』(1QIsa)는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발견되어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이 옛 본문 전통을 얼마나 잘 보존해 온 것인지를 알 수 있다.10) 성서본문과 관련된 발견물로는 경구함(經句含, ןיליפת)과 메주자(Mezuza, הזוזמ)를 빼놓을 수 없다. 경을 읽을 때 이마나 왼쪽 팔에 매달았던 경구함과 집문설주에 붙였던 메주자 속에는 쉐마(신 6.2-5)를 비롯한 몇몇 성경구절이 들어있다(4Q128-4Q157).11)

        외경과 위경의 경우, 『토빗』(4Q196-200)과 『집회서』(2Q18, 11QPsa)와 『예레미야의 편지』(7Q2)를 들 수 있다. 『토빗』과 『집회서』는 쿰란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리스어 본문 만이 존재하였으나 각각 아람어와 히브리어 단편이 발견되어 본디 이들 언어로 쓰여진 작품인 것을 알게 되었다. 특별히 『집회서』의 경우, 히브리어 본문(게니자판)과 칠십인역과 페쉬타역 본문이 조금씩 다른데 쿰란에서 발견된 문헌들은 이 책 본문의 전승을 밝히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12)

        『에녹서』와『희년서』 같은 위경은 각각 14개와 16개의 사본들이 발견되었다.13) 이렇게 많은 수의 사본들이 발견된 것을 보면 두 문헌은 쿰란 공동체가 좋아했던 문헌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사본은 당시 유다인들의 묵시문학 경향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문헌들이다. 기원전 2세기 중반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이 문헌들은 성서의 다니엘서와 거의 같은 시기에 쓰여졌기 때문이다. 쿰란 동굴에서 이들이 발견되기 전에는 이디오피아 정통교회가 보존해온 이디오피아어 본문들이 가장 정통성있는 본문으로 받아들여졌으나 각각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쓰여진 사본들이 발견되면서 이들 문헌 연구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쿰란 공동체가 남긴 저작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그들의 종교규정에 대한 문헌이고 다른 하나는 성서에 관련된 문헌들이다. 규정에 대한 문헌으로는 『토라 규정』(4QMMT), 『공동체 규칙』(1QS), 『다메섹 문헌』(CD), 『전쟁 두루마리』(4QM), 『감사찬송』(1QH), 『성전 두루마리』(11QTemple) 등이 있다. 성서주석으로는 페솨림(םירשפ)이라는 장르로 묶여지는 『하박국 주석』(1QpHab), 『이사야 주석』(4QpIsa-b, d-e), 『호세아 주석』(4QpHosa-b), 『나훔 주석』(4QpNah) 등이 있고,14) 『창세기 외경』(1QapGen)과 『욥 타르굼』(4QtgJob)과 같은 성서번역이 있다.



3. 사해 두루마리의 출판물


        우선 사해 두루마리의 공인편집본은 영국 옥스퍼드의 클레어렌든(Clarendon)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유다광야 발견물(Discoveries in the Judean Desert) 시리즈를 들 수 있다. 1955년에 제1권이15) 나온 이래도 아직도 간행중이다.16)

        이외에 성서본문은 빼고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된 모든 문헌과 그 영어 번역은 가르시아 마르티네즈와 아이버트 틱켈라르의 편집본을 들 수 있다. 이 편집본이 나오기 이전에는 제4동굴의 문헌을 웨홀더와 아벡이 임시로 편집한 편집본이 많이 사용되었다.

García Martínez and Eibert J. C. Tigchelaar. The Dead Sea Scrolls. Study Edition. Vol. I  (1Q1-4Q273). Vol. II (4Q274-11Q31). Leiden: Brill / Grand Rapid, Mich.:                  Eerdman, 2000.

Ben Zion Wacholder and Martin G. Abegg. A Preliminary Edition of the Unpublished Dead Sea Scrolls. The Hebrew and Aramaic Texts from Cave Four. 4 vols. Washington, D.C.: Dead Sea Scroll Research Council, Biblical Archaeology Society, 1991-1996.


사해 두루마리의 번역으로는 다음과 같은 책이 있다.

Geza Vermes. The Complete Dead Sea Scrolls in English. New York: Allen Lane, The Penguin Press, 1997.

Michael Wise, Martin Abegg, Jr., and Edward Cook. The Dead Sea Scrolls. A New Translation. New York: HarperCollins, 1996.

Florentino García Nartínez. The Dead Sea Scrolls Translated. The Qumran Texts in  English. trans. Wilfred G. E. Watson. Leiden: E. J. Brill, 1994.17)

Theodor H. Gaster. The Dead Sea Scriptures in English Translation. 3d ed. New York: Anchor Books, 1976.

안성림, 조철수. 『사해 문헌(1)』 한국문화사. 1997년.


쿰란동굴과 인근에서 발견된 히브리성서 사본의 영어 번역본으로는 다음의 책이 있다.

Martin Abegg, Jr., Peter Flint and Eugene Ulrich. The Dead Sea Scrolls Bible. New York: HarperSanFrancisco, 1999.  


발견된 각 두루마리에 대한 연구를 안내하는 책으로는 다음이 있다.

Joseph A. Fitzmeyer. The Dead Sea Scrolls. Major Publications and Tools for Study. 2d ed. SBL Resources for Biblical Study 20. Atlanta, Ga.: Scholars Press, 1990.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사해 두루마리에 대한 연구물 목록을 총망라한 책은 다음과 같다.

Florentino García Martínez and Donald W. Parry. A Bibliography of the Finds in the Desert of Judah 1970-1995. Leiden: E. J. Brill, 1996.

B. Jongeling. A Classified Bibliography of the Finds in the Desert of Judah 1958-1969. Leiden: W. J. Brill, 1971.

William LaSor. Bibliography of the Dead Sea Scrolls 1948-1957. Pasadena, Calif.: Fuller Theological Seminary, 1958.


쿰란 공동체와 사해 두루마리 연구의 개론서로는 다음과 같은 책들이 있다.

Hartmut Stegemann. The Library of Qumran. on the Essenes, Qumran, John the Baptist, and Jesus. Grand Rapids, Mich.: Eerdmans / Leiden: Brill, 1998.

Frank Moore Cross. The Ancient Library of Qumran. 3d ed.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5.

James C. VanderKam. The Dead Sea Scrolls Today. Grand Rapids, Mich.: Eerdmans, 1994.

Lawrence H. Schiffman. Reclaiming the Dead Sea Scrolls. The History of Judaism․the Background of Christianity․the Lost Library of Qumran. Philadelphia: JPS, 1994.

Florentino García Martínez and Julio Trebolle Barrera. The People of the Dead Sea  Scrolls. Their Writings, Beliefs and Practices. trans. Wilfred G. E. Watson. Leiden: Brill, 1993.

Hershel Shanks. ed. Understanding the Dead Sea Scrolls. A Reader from Biblical     Archaelogy Review. New York: Random House, 1992.

김창선. 『쿰란 문서와 유대교 - 중요 유대문헌을 중심으로 한 유대학 입문』 서울. 한국성서학 연구소. 2002년. (21-210쪽)


사해 두루마리와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관한 책으로는 다음이 있다.

Joseph A. Fitzmyer. The Dead Sea Scrolls and Christian Origins. Grand Rapids, Mich.: Eerdmans, 2000.

James H. Charlesworth. ed. Jesus and the Dead Sea Scrolls. New York: Doubleday, 1992.


쿰란 공동체의 신학을 잘 정리한 책은 다음과 같다.

Helmer Ringgren. The Faith of Qumran. Theology of the Dead Sea Scrolls. Expanded ed. New York: Crossroad, 1995. 



4. 사해 두루마리의 언어


        사해 두루마리의 문헌 가운데 약 3/4은 쿰란 히브리어로 그리고 나머지 1/4은 쿰란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18) 쿰란 히브리어는 성서 히브리어를 그대로 차용하여 사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쿰란 히브리어라는 말은 성서 사본들을 제외하고 주로 쿰란 공동체의 저작을 중심으로 하는 말이다. 사해 두루마리는 특별히 제2성전 시대에 쓰여진 문헌이기에 주로 후기 성서 히브리어의 특징을 보인다. 이 당시에는 아람어가 공용어로 쓰이던 시기이므로 “아람어의 영향”(Aramaism)이 쿰란 히브리어 속에 많이 들어있다. 쿰란 히브리어에는 성서 히브리어에서 사용하지 않거나 또는 같은 낱말이라도 다른 뜻으로 쓰이는 용어들이 많이 등장한다.19) 이러한 낱말들은 미쉬나 히브리어에서 보편적으로 많이 쓰이는 것으로 보아 쿰란 히브리어는 성서 히브리어와 미쉬나 히브리어의 중간 단계에 위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쿰란 아람어로 쓰여진 문헌으로는 일반적으로 『창세기 외경』, 『에녹서』, 『욥 타르굼』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욥 타르굼』(11QtgJob)은 다른 두 문헌보다 보수적인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쿰란 아람어는 중기 아람어들(나바트어, 팔미르어, 에뎃사어, 하트라어)과 마찬가지로 제국 아람어에서 후기 유대인 아람어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특별히 하펠(Hafel) 대신 아펠(Afel)이 많이 쓰이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라 말할 수 있다.20) 용어나 표현도 쿰란 히브리어와 비슷하게 제국 아람어에서 후기 유대인 아람어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특징을 보인다.21)

5. 쿰란 공동체


        사해 두루마리를 남긴 기원 전후의 유다인 공동체를 쿰란 공동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공동체”(דחיה, 1QS i 1)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쿰란 공동체는 일반적으로 에세네파(Essenes)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에세네 가설은 주로 쿰란 공동체 문헌 이외의 자료를 근거로 주장하는 이론이다. 이에 비해서 쿰란 공동체의 문헌을 근거로 주장하는 이론으로 사두개(Saducees) 가설이 있다. 두 이론이 다 타당성이 있기에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5.1 외적 증거 - 에세네 가설

 

        이 가설은 엘르아자르 수케닉(Eleazar L. Sukenik)이 처음 주장한 가설이다. 기원후 1세기에 살았던 로마인 지질학자 플리니(Pliny the Elder)가 77년에 썼다고 전해지는 『자연 역사』(5.73)에는 이들 그룹을 이렇게 평가한다. 이들은 사해 서쪽 바닷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살았으며, 여성이 없고, 성욕을 금하고 살며, 돈도 없이 종려나무 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삶에어 지친 이들이 이곳으로 날마다 피신하기 때문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없어도 이들은 계속 존속할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유명한 기원후 1세기의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좀더 구체적으로 에세네파의 운명 결정론(predeterminism) 그리고 영혼과 죽음 후의 삶(afterlife)에 대해 말한다.

        

      모든 것은 지식을 지니신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것이 있기 전부터 하느님은 모든 것을 디자인하셨다. 설계하신 대로 모든 것이 생겨난 것이다. 그분이 디자인하신 대로이다. 각 사람은 각자 맡은 임무를 꼭 실행한다. (『유다 고사』 3.15-16)

      몸은 타락하기 쉽고 영원하지 않지만 영혼은 불멸하며 부도덕하지도 않다는 것이 그들의 확고한 믿음이다. 아주 정결한 에테르에서 뿜어나온 영혼은 몸이라는 감옥에 엉키게 된다. 자연스럽게 끌려가는 것이다. 하지만 몸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오랫동안의 종살이에서 풀려나듯 그렇게 영혼은 기뻐하고 높이 나른다. 바다 저너머에 덕스러운 영혼이 살 곳이 있다고 그들은 그리스인들처럼 그렇게 믿는다. (『유다 전쟁』 2.154-155 ) 


특별히 요세푸스가 말하는 운명 결정론과 사후의 세계와 비슷한 내용이 쿰란 공동체의 『감사 찬송』과 『전쟁 두루마리』 등에도 등장한다. 뒤에서 다시 보겠지만 이렇게 그리스어로 기록된 기원 전후의 문헌에서 에세네파로 불리우는 사람들을 쿰란 공동체와 같은 사람들로 보고 수케닉이 주장한 에세네 가설을 많은 학자들이 뒤따른다. 그런데 이 가설의 문제점은 쿰란 공동체가 자신들을 한번도 에세네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곧 “공동체”(דחיה)나 “사독사람들”(קודצ ינב, 1QSa i 2)로 자신들을 부르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그리스어 문헌들을 근거로 쿰란 공동체를 에세네파라고 부를 수 있느냐하는 점이 문제로 남는다. 그리고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쿰란 공동체가 남성 독신 공동체가 아니었다는 점도 문제로 남는다.


  5.2 내적 증거 - 사두개 가설

        이 가설은 뉴욕대학교의 로렌스 쉬프만(Lawrence H. Schiffman)이 주장하는 가설이다.22) 그가 사두개 가설을 주장하는 근거는 『토라 규정』(4QMMT)이라고 부르는 문헌이다.23) 이 문헌은 쿰란 공동체의 지도자가 예루살렘 사제그룹과 갈라지면서 제사 규정과 정결법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11개로 나누어 쿰란 공동체의 의견을 개진한 문헌이다. 이 문헌은 “우리”라는 표현과 “그대들”이라는 화법이 등장하는 문헌으로 유명하다. 이 문헌은 “이들은 우리가 지키고 있는 하느님의 토라에 대한 몇몇 규정이다. 이 규정은 모두 제사와 ...의 정결에 대한 것이다"(B 1-3)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문헌이 문제삼는 예를 하나 들어보기로 한다.


      물을 따르는 규정에 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렇다. 그들은 부정하다는 것이다. 물을 따를 때 그 물은 정결과 부정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B 56-58)


이 규정은 한 그릇에서 다른 그릇으로 물을 따를 때 양쪽 그릇에 있는 물은 똑같이 정결하든지 아니면 부정하다는 것이다. 곧 한 그릇의 물은 깨끗하고 다른 그릇의 물은 부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정결법 논쟁이 미쉬나에서도 발견된다.


      사두개인들은 말한다. 우리는 그대들 바리새인들에게 불평한다. 그대들은 따르는 물(קוצנה)이 정결하다고 말하는구나. (미쉬나 야다임 4.7)


두 내용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나 물에 대한 정결법을 바라보는 쿰란 공동체의 입장이 미쉬나에 나오는 사두개인들의 입장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제사규정이나 정결법과 같은 종교 규정(할라카) 면에서는 사두개인들과 같은 입장에 서있는 쿰란 공동체를 사두개인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쿰란 공동체는 사두개파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 쉬프만의 주장이다. 또한 자신들을 “사독사람들”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미쉬나와 같은 문헌에 사두개인들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잘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잘 간파한 쉬프만은 그의 책에서 에세네파라고 부르는 유다인 그룹은 아마도 그 뿌리가 예루살렘 하스몬 왕가의 사제가문과 같은 사두개인들이었을 것이며, 이들을 플리니나 요세푸스가 에세네파로 불렀을 것이라고 말한다. 곧 같은 사두개인들 가운데에서도 종교 규정 문제로 서로 입장이 갈렸으며, 쿰란 공동체도 이들 갈래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쉬프만은 추정한다.24) 



6. 쿰란 공동체의 사상


        쿰란 공동체의 사상은 크게 운명결정론,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 메시야 사상을 들 수 있다. 쿰란 공동체의 지도자인 “바른 스승”도 여기에 포함시켜 설명하기로 한다.

  6.1 운명 결정론


        운명 결정론(predeterminism)은 앞서 요세푸스도 『유다 고사』에서 언급한 쿰란 공동체의 사상이다. 요세푸스의 기술과 똑같지는 않지만 『감사 찬송』에 다음과 같이 언급된다.


      님의 지혜로 [모든 것이] 영원[전부터 있었지요.]

       그들을 창조하기 전부터 님은 그들이 할 일을 알고 계셨지요.

       [님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아요.] (1QHa i 7-8)

       님은 그것을 모든 [인류의] 후손에게 지정하셨죠.

       영원토록 그리고 영원히 ...

       님의 슬기로운 지식으로

       그들이 존재하기 훨씬 전 님은 그들의 운명을 정해놓으셨죠.

       모든 것은 [님의 뜻]대로 [존재하죠.]

       님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아요. (1QHa i 18-20)


이 운명 결정론은 『훈련 교본』(제3란-제4란)과 제4-6동굴에서 발견된 『전쟁 두루마리』와 『다메섹 문헌』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특별히 다음의 『전쟁 두루마리』는 운명 결정론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처음부터 하느님이 그들을 택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기기 전부터 그들이 어떠한 행동을 할지 하느님은 이미 알고 계셨다. 그리하여 하느님은 그들을 증오하시고 그들이 소멸될 때까지 땅에서 당신의 얼굴을 돌리셨다. 그분은 앞으로 올 세대가 얼마나 오래 살지 알고 계신다. 영원토록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알고 계신다. (1QM ii 6-10)


6.2 죽음 뒤의 삶


        사후의 삶에 대해 히브리성서는 침묵한다. 다만 기원전 2세기 작품인 다니엘서(12.2) 만이 언급할 뿐이다. 다니엘서는 쿰란 공동체의 저작과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한 대로 요세푸스의 『유다전쟁』에도 언급되는 사상이다. 이에 대해 언급하는 『감사 찬송』을 읽어보자.


       야훼님! 님께 감사드려요.

       구덩이에서 나를 건지셨죠.

       아바돈에서 님은 나를

       한없이 높은 곳으로 들어올리셨죠.

       난 판판한 땅에서 걸어요.

       난 알죠. 먼지인 사람도 영원한 모임에 들 수 있는 희망이 있음을.

       님은 큰 죄를 지어 비뚤어진 영혼을 깨끗하게 씻으시어

       거룩한 무리와 함께 하게 하시죠.

       하늘 존재들이 함께 있는 공동체로 들어가게 하시죠.

       님은 사람의 운명을 영원히 정하시죠. (1QHa iii 19-23)

이 시는 죽음 뒤의 삶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다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에 해독된 『메시야 묵시』(4Q521)라는 작은 단편은 죽음 뒤의 삶을 보다 더 분명히 말한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말씀하신 것처럼 이전에는 결코 없었던 놀라운 일을 베푸실 것이다. 그분은 심하게 상처를 받은 이를 고치실 것이다. 죽은 이들을 살리실 것이다(היחי םיתמו).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신다... (4QMessianic Apocalypse 2 ii 11-12)


  6.3 메시야론


        쿰란 공동체의 메시야론은 지난 세기 말 『다메섹 문헌』이 카이로 게니자에서 발견되면서부터 논의가 되어오던 이슈이다.25) “마지막 날 정의를 가르칠 이가 일어날 것이다”(CD vi 10-11)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또한 쿰란 공동체는 두 메시야를 기대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곧 정치적 메시야와 종교적 메시야이다. 하지만 『공동체 규칙』을 읽어보면 또한 어떤 한 예언자를 함께 기다린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토라의 가르침을 벗어나 굳은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한 예언자 그리고 아론과 이스라엘의 메시야들이 올 때까지 그들은 공동체를 처음 배운 그 규정으로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1QS ix 11-12)


“아론과 이스라엘의 메시야들”이라는 표현은 이곳 말고도 『다메섹 문헌』(xii 23, xiv 19, xix 10, xx 1)에도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렇지만 『회중 규칙』(1QSa ii 12, 14, 20)에 “그 메시야”라는 표현 만이 나오고, 다른 문헌에서도 “다윗의 싹”(4QFlor 1-2 i 11, 4QpIsaa 8-10.18)이라는 표현은 두 메시야가 아닌 한 메시야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전쟁 규칙』(4QSM)이라는 단편을 읽어보기로 하자.26)

      예언자 이사야의 [책에 쓰여 있는 대로, “빽빽한 삼림 나무를 도끼로 찍어내듯이 찬란한 레바논 나무들은] 쓰러질 것이다. 그러나 이새의 줄기에서 싹이 하나 싹트고 가지 하나가 나무 등걸에서 자라날 것이다.”(사 10.34-11.1).... 다윗의 싹. 그들은 심판받을 것이다... 회중의 지도자가 그를 죽일 것이다. ...의 군대는 북치고 춤추며... [대]사제는 명령한다... 키팀의 주검... (4Q285 v 1-6)


이 문헌은 이른바 “꿰뚫린 메시야”(pierced messiah)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 본문으로 『이사야 주석』(4QpIsaa 7-10 iii 6-7)과 평행 본문이다. 이 본문에서도 “회중의 지도자”는 이사야 본문의 “싹”과 동일시하는 것을 보면 메시야의 또 다른 호칭인 것을 알 수 있다. 곧 쿰란 공동체가 기대하는 마지막 날의 한 메시야이다. 따라서 쿰란 공동체가 두 메시야를 기대했다거나 한 메시야를 기대했다고 단순화시켜서 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27)

  6.4 “바른 스승”(קדצה הרומ)


        흔히 “의(義)의 교사”라고 부르는 이 인물은 누군지 분명치 않다.28) 그러나 『하박국 주석』(1QpHab ii 8)이나 『시편 주석』(4QpPsa 1,3-4 iii 15)을 보면 “사제”(ןהכה)라고 언급하는 것을 보면 사독 계열의 사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한 “유일한 스승”(דיחיה הרומ, CD xx 1)29) 또는 그냥 “스승”(הרומ, CD xx 28)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자들은 이 인물이 일인칭으로 서술되어 있는 『감사 찬송』을 지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하박국 주석』에서는 “바른 스승”이 “악한 제사장”과 대비되어 언급되는 것을 보면 그 역시 사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30) 또한 일인칭 복수로 서술하기는 하지만 『토라 규정』(4QMMT)에서 예루살렘 사제들과 정결법 문제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보면 그가 사제로서 그러한 관심을 표명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가 언제까지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작품들이 주로 쿰란 공동체의 초기 작품인 것으로 미루어 그가 기원전 2세기 중반, 곧 초기에 공동체를 이끌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가 쓴『감사 찬송』의 한 부분을 읽어보기로 하자.


       나는 너무나 고통스러워요.

       아기를 처음 낳는 여인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듯

       아기집이 이제 막 열려 고통스러워 하는 여인처럼 말이죠.

       아이들은 죽음의 파도처럼 밀려오죠.

       아기를 기다리는 여인은 고통으로 몸부림치죠.

       죽음의 파도를 겪은 뒤에야

       여인은 아기를 낳죠.

       스올의 고통이 밀려온 뒤에야.....

       아기는 파도를 타고 그제서야 나오죠. (1QHa xi 7-10)


이 부분에서 “바른 스승”은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죽음과 사투하는 여인과 비교한다. 곧 죽음의 경험을 통해서 태어나는 아기를 공동체의 탄생으로 은유적으로 말한다.


      하느님! 님은 이른 비처럼 나의 입에

      비를, 생명의 샘물을

      [목마른 이들] 모두를 위해 주셨어요.

      하늘은 열릴 것이예요.

      멈추지 않고 흘러넘치는 시내가 되어 ...

      끝없이 바다로 흐르죠.

      비밀스런 곳에서 갑자기 솟구쳐 올라

      푸른 나무도, 메마른 나무도 함께 마시는

      [생명의] 물이 되죠.

      모든 짐승이 노니는 늪이 되죠.....

      찬란한 정원에는 언제나 열매가 열리죠. (1QHa xvi 16-20)


이 부분은 “바른 스승” 자신의 역할을 은유적으로 말한다. 공동체는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수 샘물로 살아가는 나무와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가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는 희망을 이 시는 담고 있다.



7. 쿰란 공동체와 여성

        흔히 쿰란 공동체는 독신주의를 지켰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남성 독신주의 공동체라는 주장은 특별히 필로나 요세푸스의 언급을 따르는 주장이다.31) 이렇게 외적인 증거 만을 가지고 쿰란 공동체 구성원의 성격을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쿰란 공동체의 여러 문헌에 여성들에 대한 언급이 많이 등장하며 일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언급도 들어있다. 또한 쿰란 공동체가 거주하던 지역의 무덤을 파본 결과 그곳에서 여성들과 어린이들의 유골도 발견되었다.32) 따라서 쿰란 공동체를 남성들만의 독신 공동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33) 우선 『다메섹 문헌』과34) 『성전 두루마리』를 살펴보면 쿰란 공동체에게 결혼과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자신들의 종교 규정(할라카)을 논하고 있다.


      그들이 그 땅의 관습을 따라 진영 안에서 살면서 아내를 맞아들이고 자식들을 가지려 한다면 그들은 토라를 따라 살아야 한다..... (CD vii 6-7)

      홀몸이 된 여성이나 이혼한 여성의 맹세에 대하여. 어떤 여성이든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무엇이든 그 자신의 책임이다. (11QTemplea liv 4-5)

      어떤 남성이든 형제의 딸이나 누이의 딸과 결혼할 수 없다. 금지 사항이기 때문이다.

      (11QTemplea lxvi 15-17)

이렇게 여성과 가족에 대한 언급 말고도 『회중 규칙』을 읽어보면 여성과 어린이도 공동체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이 규칙은 마지막 날 이스라엘 온 회중이 지켜야할 규칙이다. 곧 사독 자손과 사제들, 그리고 일반인들의 길을 떠나기로 굳게 약속한 이들이, 공동체가 되어 규정에 따라 살기로 할 때 지켜야 할 규칙이다. 이 사람들은 악 한가운데에 살면서도 땅을 대속하려고 약속을 굳게 지키는 이들이다. 공동체에 들어오고자 하면 젖먹이든 여성이든 모두다 들어오게 한다. 그리고 굳은 약속을 읽어주고 규칙을 모두 가르쳐 잘못하는 일이 없게 한다. (1QSa i 1-5)


이 문헌은 『공동체 규칙』의 제12란과 제13란일 것으로 추정되는 문헌으로 쿰란 공동체의 규칙 가운데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보인다. 흔히 “마지막 날”이라는 표현 때문에 메시야가 도래하는 미래의 공동체의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생각되나 공동체 자신이 종말 공동체로 이해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공동체의 현재 모습을 말하고 있는 문헌인 것으로 보인다.35) 곧 쿰란 공동체에는 여성도 들어있는 것을 보여주는 문헌이다.



8. 쿰란 공동체의 성서해석


        쿰란 공동체의 성서 해석은 『하박국 주석』과 『창세기 외경』을 예로 들기로 한다.


  8.1 『하박국 주석』(1QpHab)


        『하박국 주석』은 기원전 2세기 경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6세기의 예언을 자신들의 상황에 비추어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알레고리 기법을 전형적으로 보이고 있다. 『하박국 주석』은 “그 뜻은 (이러저러) 하다”(לע ירשפ)는 말로 시작하는 페솨림(םירשפ)이라는 장르에 속하는 문헌이다.36)


      “내가 초소 위에 올라서리라. 망대 위로 올라가 자리를 지키리라.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실지 기다려 보리라. 내 호소를 주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실지 기다려 보리라. 주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신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라. 토판에 분명하게 새겨 누구든지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하라...]” (합 2.1-2) [이 구절의 뜻은 이렇다... ] 마지막 세대에게 일어날 일을 적으라고 하느님이 하박국에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언제가 마지막 때인지는 그에게 알려주시지 않았다(1QpHab vi 16 - vii 2).

      “누구든지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여라”는 구절은 바른 스승(קדצה הרומ)에 대한 구절이다. 하느님은 그에게 당신의 종인 예언자들의 말씀 속에 담긴 신비한 비밀을 모두 알려주셨다. (1QpHab vii 4-5)

      “이 묵시는 정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진다. 끝이 곧 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합2.3ㄱ) 이 구절의 뜻은 이렇다. 곧 마지막 때가 길어질 것이다. 마지막 때는 예언자들이 말한 그 어떠한 것보다도 더 엄청나다. 하느님의 신비는 놀랍기 때문이다. (1QpHab vii 7-8)

      “이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니 비록 더디더라도 그 때를 기다려라. 반드시 오고야 만다.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합 2.3ㄴ) 이 구절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구절이다. 이들은 토라를 실천하는 사람들로, 마지막 때가 더디 오더라도 그 진리를 실천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느님이 정하신 마지막 때는 그들을 위해 정해놓으신 그 순서에 따라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이는 하느님의 신비한 비밀에 따른 것이다. (1QpHab vii 10-13)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합 2.4ㄱ) 이 구절의 뜻은 이렇다. 그들(악한 자들)은 벌을 갑절로 받을 것이다. 심판받을 때 [그들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1QpHab vii 15)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합 2.4ㄴ) 이 구절은 토라를 실천하는 유다 집안의 모든 사람에 관한 구절이다. 하느님은 이들이 시련을 당하고 바른 스승(קדצה הרומ)에게 충실하기 때문에 심판 때 구원받을 것이다. (1QpHab viii 1-3)

      “부유한 재산은 사람을 속일 뿐이다. 탐욕스러운 사람은 거만하고 탐욕을 채우느라고 쉴 날이 없다. 그러나 탐욕은 무덤과도 같아서 그들이 스올처럼 목구멍을 넓게 벌려도 죽음처럼 성이 차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모든 나라를 정복하고 모든 민족을 사로잡지만 정복당한 자 모두가 빈정대는 노래를 지어서 정복자를 비웃으며 비웃는 시를 지어서 정복자를 욕하지 않겠느냐?” (합 2.5-6) 이 구절은 악한 제사장(עשרה ןהכה)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는 처음 제사장직에 오를 때 진실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시작하면서 거만해져서는 하느님을 배신하였다. 부를 쌓으려고 급기야 토라를 저버리기까지 하였다. 그는 하느님께 등돌리고 폭력을 일삼는 자들의 재산을 훔쳐서 긁어모았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아 죄를 쌓았다. 온갖 불결한 일만 일삼으며 가증스러운 짓을 하였다. (1QpHab viii 8-13)


  8.2 『창세기 외경』(1QApGen)37)

 

        기원전 2-1세기의 작품으로 쿰란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 유다인 특유의 틈매우기(gapping)이라는 기법을 사용한 작품으로 모두 22란까지 남아 있다. “나 아브람”이라는 일인칭 화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특별히 『창세기 외경』 19-22란은 창세기 12-15장을 길게 늘인 이야기이다. 『욥 타르굼』(4QtarJob)이라는 작품과 함께 유다인 아람어역 성경인 『타르굼』의 이전 형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38)


       이 모든 땅에 기근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집트에 곡식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 이집트 땅으로 들어가려고 길을 떠났다... [나일]강의 한 지류인 카르몬 강에 도착하였다... 이제 우리는 우리 땅을 ... (xix 10)

       하느님이 한 밤중 환상 속에서 내게 나타나셨다. 내게 이르시기를, “벧엘 북쪽에 있는 라맛-하솔로 올라가라. 네가 살 곳이다. 눈을 들어 동쪽과 서쪽과 남쪽과 북쪽을 바라보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히 줄 이 모든 땅을 바라보라.” 이튿날 나는 라맛-하솔로 올라가 꼭대기에서 그 땅을 바라보았다. 애굽 강에서 레바논과 세일까지, 큰 바다에서 하우란까지, 또한 카데스까지 뻗어있는 그발 온 땅, 그리고 하우란과 세일 동쪽에서 유프라테스까지 펼쳐있는 큰 광야를 바라보았다. 하느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네 후손에게 이 모든 땅을 주리라. 그들이 이 땅을 영원히 물려받을 것이다. 아무도 셀 수 없는 땅 먼지처럼 네 후손을 많게 하리라. 네 후손을 셀 수 없을 것이다. 일어나라. 걸어보라. 그 길이가 얼마나 긴지 그 넓이가 얼마나 넓은지 한번 걸어보라. 내가 그 땅을 너에게 그리고 네 뒤에 올 모든 세대에게 준다. 그래서 나 아브람은 길을 떠나 돌아다니면서 그 땅을 살펴보았다. 기혼 강에서 떠나 해변을 따라 옥스 산에 다다랐다. 큰 염해 [해변]부터 걷기 시작하여 옥스 산을 따라 그 땅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유프라테스 강까지 갔다. 그리고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동쪽에 있는 홍해까지 갔다. 거기서 홍해를 따라 가다가 갈대바다 입구에 다다랐다. 거기서 남쪽으로 내려가 기혼 강에 이르렀다. 거기서 나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내 모든 식구가 건강하고 안전한 것을 알았다. 나는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떡갈나무 숲으로 가서 머물렀다. 헤브론 북동쪽에 있는 곳이다. 거기서 나는 제단을 쌓고 그 위에 태워드리는 제물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렸다. 거기서 나와 온 식구들이 먹고 마셨다. (xx 8-20)



■ 나가는 말

        

        쿰란 사해 두루마리가 히브리성서 본문비평에 미친 영향은 말할 수 없이 크다. 특별히 임마누엘 토브의 다섯 본문군 설은 기존의 세 본문군 설을 뒤집는 획기적인 이론이다. 또한 사해 사본군들의 발견으로 시작된 “히브리대학교 성서 프로젝트”(The Hebrew Univeristy Bible Project)와 몇 년 안으로 나올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퀸타”(BHQ)는 이 분야의 큰 성과라 말할 수 있다. 또한 잘 알려진 대로 사해 두루마리의 두 메시야 사상은 신약성서 야고보서의 예수 이해를 설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 두 이슈는 언급하지 못하였지만 이 짧은 글로 쿰란 공동체와 사해 두루마리의 개괄적인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쿰란 공동체와 묵시사상(apocalypticism)”


왕 대 일 교수

(감신대 구약학 교수)



I


        구약에서 다니엘서는 묵시문학에 속한다. 묵시문학이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하나의 작품(composition)을 이룬 묵시를 가리킨다. 묵시란 말은 본래 문학 장르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은밀히 보고 들은 어떤 초시간적, 초공간적 실체를 글로 옮겨 놓았을 때 묵시라는 유형이 성립된다. “초현실적인 존재가 특정한 인간을 수령자로 삼아 전하는 계시를 이야기 형식으로 기록해 놓은” 글말이 바로 묵시인 것이다.39) 구약의 다니엘서를 묵시문학이라고 부를 때 다니엘에서 환상, 꿈, 천사와 나눈 이야기 등의 형태로 수록된 일련의 묵시를 기대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구약의 다니엘서에는 세상의 마지막에 관한, 또는 사악한 현실 세계의 종언(終焉)에 관한 묵시적 증언이 치밀하게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유대 전통에서 다니엘이 본래 묵시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대 공동체가 수용한 “거룩한 글,” 곧 타낙(Tanakh)에는 묵시라는 장르가 없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다니엘서를, 비록 그 안에 묵시가 짜임새 있게 수록되어 있다고 해도, 묵시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구약의 다니엘서를 묵시라는 유형으로 분류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이다. 19 세기 성서학자들이 다니엘을 묵시로 분류했던 까닭은 그 책의 바탕이 신약의 요한 “계시록”(apokalypsis)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온 우주의 파멸, 죽은 자의 부활과 심판,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비전 등을 은밀히 토로하는 신약의 가르침이 “요한의 묵시/묵시록”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졌다는 사실 앞에서 성서학자들은 구약의 다니엘서를 묵시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신약의 27번째 책에 붙은 “묵시”(아포칼립스)라는 명칭은  묵시를 세상의 종말에 관한 은밀한 가르침이나 세상을 파국 속에 몰아넣는 대재앙에 관한 계시로 보게 하였던 것이다. 요한계시록 이래 주후 2-4세기의 기독교 신앙공동체 안에 묵시가 하나의 문학 유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이런 점에서 자연스럽다. 베드로, 바울, 마리아, 요한의 이름으로 소개된 여러 묵시록들이 활개를 치던 때도 바로 이 즈음이다.40)

        묵시(apocalypse)의 문자적 의미는 계시(revelation)이다. ‘드러낸다’(uncovering)는 뜻이 거기에 담겨 있다. 하지만 묵시의 의미론적 지평은 묵시를 단순한 문학양식으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묵시는, 다니엘서가 그렇듯, 세상사에 대한 대안적 가치를 제공하는 독특한 형태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41) 가령 구약의 전통적 신앙은 이 땅 위에 실현되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는”(창 1:28; 신 28:1-14) 삶을 생존의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묵시가 표방하는 인생의 목표는 이 땅 위에 이뤄지는 복된 삶이 아니라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단 12:3), 곧 천사처럼 하나님과 영원히 교제하는 삶이다. 그런 점에서 묵시는 묵시사상(apocalypticism), 곧 “묵시적 세계관”(apocalyptic worldview)을 배태(胚胎)하는 문학적 토양이다.

        우리는 흔히 묵시를 예언의 부산물로 여긴다. 전승사적으로 말할 때 다니엘이 전달하는 세상의 끝에 관한 정보는 예언 전승에 친숙한 독자들에게 사실상 낯설지 않다. 은밀한 전달(묵시)이 아니었을 뿐, 구약의 예언자들이 선포하였던 가르침은 모두 계시의 형태로 전달된 대안적 세계관이었다. 이런 점에서 묵시적 계시는 예언적 계시의 뒤를 잇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묵시를 예언의 부산물로 여기거나 묵시와 예언 사이의 연속성을 부각시키려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 묵시와 예언 사이에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묵시가 계시의 전달자를 미가엘(Michael)이나 가브리엘(Gabriel)이나 라파엘(Raphael)이나 우리엘(Uriel) 같은 실명(實名)으로 등장하는 천사로 제시한다거나, 벨리알(Belial) 같은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악마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정면으로 맞선다거나, 이스라엘이나 그 주변 나라들의 종말이 아닌 온 우주의 “끝”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다거나, 현실에서의 삶을 선과 악의 대립으로 규정하면서 역사의 진행과정을 몇 개의 구간으로 결정지어 놓고 악이 주관하는 현실 역사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남아 있는 기간을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거나, 의인의 궁극적 소망이란 천사와도 같은 지위를 가진 자로 변화되는데 있다고 본다거나, 죽음 이후에야 의로운 자가 하늘 나라에 영원히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등은 모두 예언자적 세계관에서는 엿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요소들이다.

        역사적으로 말할 때 묵시적 세계관은 유대주의가 헬레니즘과 조우할 때부터 일기 시작하였다. 예컨대 천사와 악마의 대립에 관한 믿음은 죽음 이후에 맞게 될 심판사상 등과 함께 주전 3세기 이후 유대주의 사회 안에 구체적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현상은 벤 시라(Ben Sira)의 지혜서와 에녹서(the Book of Enoch)를, 또는 마카비 1서와 다니엘서를 비교해 볼 때 어렵지 않게 파악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구신약 중간기 시대 당시 묵시사상을 담은 글들이 반드시 묵시라는 유형으로만 소개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묵시가 아니면서도 묵시적 세계관을 수용한 글들은 폭 넓게 퍼져 있었다. 이런 현상은 구약의 다니엘이 묵시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지 않았으면서도 세계사의 흐름을 묵시사상적으로 읽은 묵시록이라는 데서도 드러난다. 쿰란 공동체가 남겨 놓은 사해사본(Dead Sea Scrolls)도 이 점에서 마찬가지이다. 사해사본에 문학 유형상 묵시록에 해당되는 글은 참으로 드물지만, 사해사본의 형성에 묵시사상이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42) 

        묵시는 본디 “글쓰기 작업”(scribal activity)의 결과이다. 구약의 예언이 처음에는 선포/설교 형태로 주어졌다가 나중 단계에 가서 글/책의 형태로 정리되었던 것과는 달리 묵시는  처음부터 글로 기록되었다. 유대 묵시문학으로 분류되는 책들도 히브리어나 아람어 같은 셈어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다니엘서만 제외하고 현재 남아 있는 책들은 대부분 히브리어나 아람어 판(版)이 아니다. 가령 제 1 에녹서, 제 4 에스라서, 제 2 바룩서 등은 모두 에디오피아어, 슬라브어, 라틴어, 시리아어 등으로 기록된 번역본들만 보존되어 있다. 왜 그럴까? 유대 묵시문학으로 분류되는 책들이 구신약(舊新約) 중간기 당시 유대주의의 정서를 대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대부분의 유대 묵시문학이 유대 전승에서 금기(taboo)로 간주되던 “하늘나라”에 관한 신비를 거침없이 파헤친 불온문서였기 때문이었을까?43) 쿰란 문서에 대한 공부는 이런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일에도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쿰란 문서에 담긴 묵시사상은 주전 1세기 유대인의 정서가 어디로 쏠려 있었는지를 가름하는데 기여하는 이정표를 제공해 준다.



II


        쿰란 문서는 다양하다. 1947년부터 1967년에 걸쳐 유대 사막(Khirbet Qumran, Wadi Qumran, Wadi Murabba'at, Masada, Nahal Hever)에서 발굴된 쿰란문서는 유형상 대략 다음 셋으로 정리된다.44)

     첫째, 쿰란에서 필사된 구약성서본문들이다. 에스더를 제외한 구약본문 전체가 쿰란에서 발견되었다.45) 여기에는 주전 2세기에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는 레위기 16:12-15; 16:18-21의 탈굼(4Q156)과 주후 1세기에 복사된 것으로 여겨지는 욥 3:5-9; 4:16-5:4의 아람어 번역(4Q157), 주전 1세기 후반부에 이뤄진 번역으로 쿰란 제 11 동굴에서 발견된 욥 17:14-42:11의 아람어 번역 등이 포함되어 있다.

    둘째, 쿰란 공동체가 보존하고 있었던 문헌으로 사해사본이 발견되기 이전에 이미 알려져 있었던 외경이나 위경에 속하는 문헌들이다. 토빗(Tobit, 4Q196-200), 시락(Sirach) 또는 벤 시라(Jesus ben Sira)의 지혜서(Ecclesiasticus, 2Q18, 11QPsa), 예레미야의 편지(제 6 바룩서, 7Q2), 시편 151편(11QPsa) 같은 외경들이 여기에 속한다. 또 쿰란 제 4 동굴에서 발견된 11 개의 아람어 사본으로 구성된 에녹서,46) 쿰란의 여러 동굴(제 1, 2, 3, 4, 11 동굴)에서 발견된 희년서(Jubilees)의 단편들, 열두족장의 언약서의 단편들(4Q213-14, 215, 3Q7l 4Q484, 538, 539, 1Q21), 나보니두스의 기도(Prayer of Nabonidus, 4Q242) 같은 위경에 속하는 자료들이 포함된다.

    셋째, 쿰란 공동체의 창작물로 성서본문에 대한 주석(페샤림, pesharim, 1QpHab. 4Q169, 171, 173, 174, 175, 11QMelch, 4Q252), 다메섹 문서(The Damascus Document=CD, 4Q266-73, 5Q12, 6Q15)나 성전 두루마리(The Temple Scroll, 11QTemple) 같은 율법서, 예배와 관련된 감사시인 호다욧(Hodayot, 1QH, 4Q427-33), 종말론적 저작인 전쟁의 규칙(1QM, 4Q491-96)이나 그밖에 지혜 본문(4Q184, 185) 등이 있다. 

        쿰란 지역의 11개 동굴에서 발견된 870여 개의 사본들은 대략 주전 2세기에서 주후 1세기에 속하는 자료들로서 그 중 220개가 성서 본문을 담고 있다. 쿰란 문서가 구약학자들에게 소중한 것은 사해문서가 발견되기 이전까지 현존하던 구약사본들이 대체로 단편적이거나, 시대적으로 퍽 후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47) 쿰란에서 발견된 구약성서 사본은 주전 1세기 이전 고대 히브리어의 철자법을 일깨워 줄뿐만 아니라, 그 당시 유대 공동체가 보존하고 전수했던 다양한 성서본문 전승이나 구약이 정경으로 고정되기 이전 유동적이었던 본문의 배열 등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등 구약성서의 정경화(正經化) 과정과 구약본문의 표준화 과정을 들여다보게 한다.

        여기에서 쿰란공동체와 묵시사상을 다루는 우리 논의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사해사본은 크게 두 종류로 압축된다. 하나는 쿰란공동체가 읽었던 묵시적 글들인데, 다니엘서와 사해사본이 발견되기 이전에 이미 알려져 있었던 외경이나 위경에 속하는 문헌들이 이 부류에 든다. 다니엘서와 제 1 에녹서(에녹서 1-36장)와  희년서(Jubilees), 이 셋은 특히 쿰란공동체에 영향을 준 묵시적 전승의 뿌리를 밝혀주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다른 하나는 쿰란공동체의 창작물인, 이른바 “종파적 문서들”(the sectarian writings)로, 쿰란공동체의 역사와 그 신학적 사회적 종교적 역사적 성격을 드러내는 문헌들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예컨대 “다메섹 문서”(The Damascus Document, CD),48) 공동체 규율서(The Rule of the Community, 1QS), “호다욧”(The Hodayot, 1QH)이라고 불리는 찬송시,49) 전쟁문서(The War Scroll, 1QM),50) “페샤림”(The Pesharim, 예언서 주석서)51) 같은 문헌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다메섹 문서”(CD)나 “공동체 규율서”(1QS), “전쟁문서”(1QM) 등은 쿰란공동체가 유대사회의 전통적, 일상적 조직과 구별된 일종의 “묵시적 공동체”(an apocalyptic community)였음을 파악하는 일에 필수적인 문헌들이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 두 부류의 문헌 외에 쿰란의 제 4 동굴에서 발견된 아람어 사본 같은 자료를 논의의 대상으로 추가하기도 한다. 사해사본 공동체의 메시야 기대를 드러내고 있는 이른바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 텍스트(4Q246)가 그런 경우이다.52) 쿰란 제 4 동굴에서 발견된 아람어 단편들 중에는, 비록 쿰란종파에게 독특했던 어휘나 용어는 나타나지 않지만, 묵시적 사유를 암시하는 역사개관이 담겨 있다. 이런 맥락에서 유사-다니엘 단편(Pseudo-Daniel fragments, 4Q243-245)이나 유사-예언 본문(Pseudo-Prophetic texts, 4Q385-390)이 쿰란공동체의 성격을 다룰 때 종종 언급되기도 한다.53) 그러나 그 본문들은 워낙 단편적이어서 쿰란공동체의 묵시사상을 드러내는 자료로 삼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쿰란공동체와 묵시사상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 사해사본 가운데 한편으로는 다니엘, 제 1 에녹서, 희년서를 개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다메섹 문서”(CD), “공동체의 규칙”(1QS), “전쟁문서”(1QM)에 관심을 기울이려고 한다.

        오래 전 프랭크 크로스(Frank M. Cross)는『고대 쿰란의 도서관과 현대 성서학』(The Ancient Library of Qumran and Modern Biblical Studies)이라는 책을 마칠 때 “처음 기독교 공동체의 언어는, 예수의 어록(語錄)을 포함하여, 유대 묵시문학의 용어로 선포되었으며, 처음 교회는 자기 자신을 진정 종말론적 공동체로 간주하였다”고 힘주어 말한 적이 있다.54) 이것은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을 파악하는 일이 다름 아닌 기독교 공동체 바로 앞에 존재하였던 묵시적 공동체의 신앙과 형식을 파악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음을 드러낸다. 쿰란공동체의 문헌에 대한 연구는 이스라엘 역사의 종장을 장식한 유대주의의 묵시적 전승을 살펴보는 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동시에 종말론적 신앙을 들머리로 한 기독교 신앙공동체가 어떻게 출발하였는지를 확인하게 만드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쿰란공동체가 남긴 묵시적 사유들을 살피는 일은 구약의 대단원과 신약의 서막을 동시에 아우르는 해석학적 작업인 것이다. 우리가 크로스의 말을 다시 새겨듣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쿰란 문서 연구에는 두 부류의 문헌이 서로 구체적으로 만나야 한다. 쿰란문헌의 한 쪽에는 쿰란에서 발견된 에녹서, 희년서, 레위와 납달리의 언약서 같은 문헌들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분명히 쿰란의 종파적 작업으로 여겨지는 문헌들이 있다. 이 두 문헌이 거기에 담긴 신학, 사용된 언어, 절기제도, 제사장적인 관심사 등에서 서로 세밀하게 조직적으로 만나게 될 때 쿰란문헌은 비로소 일종의 단일 전승 같은 지위를 얻게 된다.55)




        쿰란공동체는 묵시를 저술하지 않았다. 물론 사해사본으로 정리되는 문헌들 가운데 그 제목에 묵시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 것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라멕의 묵시”(Apocalypse de Lamech, 1Q20)나 “메시야 묵시”(Apocalypse messianique, 4Q521) 같은 문서들이 그런 경우이다. 쿨린스(J. J. Collins)는 쿰란문헌에 속하는 묵시문학을 거론할 때에 유사-다니엘(Pseudo-Daniel, 4Q243-45)이나 “공동체의 규칙서”(1QS)에 수록된 “두 영에 관한 가르침,” “다메섹 문서”에 나타난 역사개관, “전쟁 두루마리”(1QM) 등을 포함한다.56) 하지만 쿰란공동체는 묵시라는 문학유형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쿰란공동체는 결코 자기들의 묵시를 글로 써 펴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쿰란공동체를 묵시적인 공동체로 규정한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쿰란공동체가 묵시를 비록 편찬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들의 삶이 창조주 하나님과 악의 대립, 역사에 대한 결정론적 이해와 종말에 대한 기대, 메시야 대망, 종말론적인 전쟁, 부활과 영행,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 등 묵시사상에 기초한 이념에 따라서 살았기 때문이다.57)

        하지만 쿰란공동체가 묵시적 공동체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은 쿰란공동체의 삶이 묵시적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사해문서 안에 보전되거나 읽히거나 영향을 준 다니엘서, 에녹서, 희년서 전통 등을 살펴보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쿰란공동체가 살았던 상황은 묵시가 기록될만한 종말론적인 정황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새로운 묵시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들에게 이미 전수된 유대적 묵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은 묵시사상적 유산에서 쿰란에 모인 하나님의 사람들의 오늘과 내일을 해석하면서 묵시적 가르침에 따라 자신들의 삶을 세워나갈 수 있었다.

        쿰란에서 발견된 성서사본 가운데 다니엘서를 기록한 사본은 모두 여덟 개이다(1QDana, 1QDanb,4QDana, 4QDanb, 4QDanc, 4QDand, 4QDane, pap6QDan).58) 이 숫자는 우리 논의에 소중하다. 필사본의 숫자는 쿰란공동체의 성서읽기가 어디에 강조점을 두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통로가 된다. 이 숫자에 근거해서 쿰란공동체에서는 구약의 예언서나 성문서 가운데 제일 많이 읽혔다고 말하게 된다.59)  예컨대 필사된 두루마리 수만 놓고 비교할 때 다니엘서는 창세기(15), 출애굽기(17), 레위기(13), 신명기(29), 이사야(21), 시편(36)보다는 못하지만, 여호수아(2), 사사기(3), 사무엘(4), 열왕기(3), 예레미야(6), 에스겔(6), 잠언(2), 욥(3), 아가(4), 룻(4), 애가(4), 전도서(3), 에스라(1), 역대기(1) 보다는 훨씬 많다. 다니엘의 필사본이 민수기, 열두 소 예언서와 같은 8 개라는 사실은 쿰란공동체가 읽은 문헌 가운데 다니엘이 그리 낮지 않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서지학(paleography)적인 관점에서 쿰란에서 발굴된 여덟 개의 사본(1QDanb,4QDana, 4QDanc, 4QDane)이 하스몬(Hasmonean) 시대(주전 150-30년)로, 다른 여덟 개의 사본(1QDana, 4QDanb, 4QDand, pap6QDan)이 헤롯(Herodian) 시대(주전 30-주후 70년)로 추정된다는 사실도 우리 논의에 소중하다. 현존하는 성서 사본 가운데 다니엘서의 사본은 그 어느 것보다도 최초의 기록에 가장 근접해 있다. 피터 플린트(Peter W. Flint)가 제공한 다음 도표는 쿰란공동체가 다니엘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를 보여준다.60)


쿰란에서 발견된 다니엘서 사본들


1QDana                         8:1-5                          11:1-2. 13-17, 25-29

1:10-17                         10:16-20                      4QDand

2:2-6                          11:13-16                      3:23-25

1QDanb                         그밖에 몇 개의 단편             4:5(?)-9, 12-14

3:22-30                         4QDanb                         7:15-19, 21-23(?)

4QDana                         5:10-12, 14-16, 19-22         4QDane

1:16-20                         6:8-22, 27-29                 9:12-14,15-16, 17(?)

2:9-11, 19-49                 7:1-6, 11(?), 26-28            pap6QDan

3:1-2                          8:1-8, 13-16                  8:16-17(?), 20-21(?)

4:29-30                         그밖에 몇 개의 단편             10:8-16

5:5-7, 12-14, 16-19           4QDanc                         11:33-36, 38

7:5-7, 25-28                  10:5-9, 11-16, 21             그밖에 몇 개의 단편


        플린트가 제공한 위 도표는 다니엘서 본문이 12장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에서 쿰란에서 필사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위 도표에다가 사해사본에 거론된 두 개의 다니엘서 인용구 (4QFlor 1-3 ii 3에서는 다니엘 12:10이, 11QMelch 2:18에서는 다니엘 9:24-27이 언급되고 있다)를 첨가한다면, 쿰란공동체가 읽고 필사한 다니엘서 본문은 실제로 다니엘서 1-12장 전체를 망라하게 된다.61)

        다니엘서는 하스몬 시대(Hasmonean period)에 해당되는 주전 1세기의 쿰란공동체에게 자기들의 정황이 종말론적인 것을 일깨워주는 가르침이었다.62) 쿰란공동체가 남긴 페셰르(pesher)는 쿰란문서의 세계관을 표현할 때 다니엘서 2, 4, 5, 7장에 나오는 신비스런 메시지를 자유롭게 차용하여 활용하였다. 쿰란공동체의 지도자나 백성들을 지칭하는 호칭도 다니엘서에 나오는 지혜로운 자에서 따왔다. 종말에 일어날 전쟁이 선과 악의 싸움(1QM)이라거나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이스라엘의 메시야와 킷팀(Kittim, 로마제국을 상징한다)의 지도자인 벨리알과의 싸움(4Q285)이라는 믿음은 다니엘서 11-12장에서 배운 것이다.63) 자기들이 사는 시대를 노아 때부터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기까지 개관한 것(4QPseudo-Daniela-b)도 쿰란공동체의 묵시가 다니엘서의 종말론적 가르침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아가 쿰란공동체의 정결하고 엄격한 경건생활은 의심할 여지없이 다니엘 1-6장에 나오는 다니엘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쿰란공동체가 인용하거나 쿰란공동체에 영향을 준 묵시적 전통으로는 제 1 에녹서와 희년서도 있다. 특히 제 1 에녹서에 수록된 신화 가운데 으뜸가는 이야기인 죄를 짓고 타락한 천사는 쿰란의 종파적 문헌들 여기저기에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다(CD2:14-21; 4Q180; Genesis Apocryphon 2:1-5:27; 4Q227; 4QGiantsa). 에녹의 꿈(에녹 72-82장)에 담긴 하늘천체에 대한 이야기, 곧 창조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해와 달이 364일의 태양력과 354일의 음력에 기초하여 각각 움직인다는 묵시적 종말론적 풀이는 쿰란공동체가 지킨 절기와 축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64)  에녹에게 준 계시의 형태로 전달된 묵시적 시나리오가 쿰란공동체에게 하늘과 땅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조망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쿰란공동체의 묵시사상 형성에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에녹서 전통보다는 다니엘서이다. 쿰란공동체의 역사인식과 종말에 대한 이해는 다니엘서의 전승에 보다 가깝게 다가서 있다. 토라를 준수하며 사는 의로운 자에게 종말의 날 벌어질 악과의 싸움에서 최후 승리를 기대하게 만드는 다니엘적인 세계관이 쿰란공동체의 묵시사상을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다니엘서가 묘사하는 역사적 정황(바벨론 포로와 박해)과 다니엘서를 기록하게 되었던 문학적 정황(시리아의 통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압제와 종말에 대한 인내)이 다니엘의 이야기와 묵시를 거룩한 말씀으로 읽는 쿰란공동체가 처해 있었던 역사적 사회적 신앙적 정황과 아주 유사하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억압당하는 이교도의 통치 속에서 날로 늘어가는 동료들의 배신에 쿰란공동체가 다니엘서를 읽으면서 담대히 맞서게 되는 의지와 힘을 느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기에 유다광야에서 종말의 도래를 기다리며 정결한 삶을 유지하고자 했던 쿰란공동체의 삶은 다니엘서가 드러내는 묵시적 종말사상에 크게 빚지고 있다. 그랬기에 나보니두스의 기도(4Q242), 유사-다니엘(4QPseudo-Dan.abc, 4Q243-244, 245) 등도 신실한 유대인이라야 하나님의 능력과 영을 받게 되며 장차 일어날 사건을 예고하며 살 수 있다고 기대하였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대망하는 주석인 4Q174(Florilegium)에서 다니엘이 예언자로 호칭되었을 것이다.



        쿰란의 종파적 문헌들은 주전 1세기-주후 1세기 당시 유대인들이 지녔던 자기 정체성을 묵시사상적 관점에서 확인하게 만드는 통로가 된다. 그 가장 단적인 예가 언약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국가와 맺으셨던 언약관계를 쿰란공동체는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 쿰란공동체에 자원해서 가담하는 소수의 남은 자들과 맺은 언약으로 축소시켰다. 다메섹문서(CD)와 공동체규칙서(1QS)가 그런 언약 이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65)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하나님과 맺는 언약을 태생적으로, 인종적으로 이해하였다. 할례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어야 언약백성의 울타리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다메섹문서는 이런 믿음을 크게 수정한다.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이라는 아이디어는 원칙적으로 모든 이스라엘에게 주어져 있다(CD 3:11; 5:12; 7:5; 13:14; 14:2; 20:17).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할례 받은 사람에게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의로운 자들의 모임에 가입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진다(CD 3:12-16). 언약이란 신앙과 순종에 근거하여 이뤄지는 관계맺기이다(CD 2:7-9). 이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철저한 신앙과 순종을 강조하는 요소가 된다(CD 3:18-4:4). 언약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길은 철저한 순종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다메섹문서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쿰란공동체 내부의 지지자들을 언약신앙으로 결속시키는 효과를 보려고 한다. 이것은 할례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은 모두 회개하고 언약을 맺는 일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후손 모두가 이런 회개와 결단에 나서게 되는 것이 아니기에 쿰란공동체가 다짐하는 언약 공동체는 자연히 페쇄적인 공동체의 성격을 띠게 된다. 쿰란공동체가 야웨신앙의 남은 자로 자기들의 정체성을 파악하기에, 그래서 의식적 윤리적 정결과 순종을 엄수하는 것을 강조하기에, 쿰란공동체가 남긴 종파적인 문서는 유대인의 자기 정체성을 크게 수정해 놓고 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인종적 근거에 기초한 언약에서 하나님의 뜻을 믿고 따르며 순종하겠다는 신앙적 결단에 근거하여 형성되는 독특한 형태의 언약으로 언약의 내용과 차원을 옮겨놓았다.

        공동체규칙서(1QS)는 이런 점에서 옛 언약이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중요하게 강조한다. 하나님은 이미 언약의 틀을 다져 놓으셨다. 이제 그 언약관계를 설정하고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다. 언약관계는 언약 조항을 지키고 따르고자 언약공동체에 가담하는 자들에 의해서 비로소 유지되게 된다(1QS 5:8). 여기에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언약을 인간이 수용할 때라야 언약관계가 비로소 성립된다는 믿음이 반영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이냐는 정체성을 새롭게 이해랄 때 언약관계에 대한 이해가 새롭게 변경된다. 다메섹문서의 가르침을 따라 자기를 새롭게 이해하고 쿰란공동체의 지체가 된 자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는 미래적 관계를 회복하는 첫걸음을 내디딘 자들이다. 이제 그들은 정결한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종말의 심판을 기대하게 되고 선택된 백성들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이 완전히 회복되게 될 것을 기다리게 된다.

        쿰란공동체는 역사의 흐름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신념(predeterminism) 속에서 사람들이 걸어가야 하는 길에는 두 종류밖에 없다고 단정한다. 빛의 길과 악의 길, 의의 길과 악의 길이 바로 그것이다(1QS 4:15-18). 이스라엘 사회를 포함하여 온 우주는 이러한 이분법적 구조 속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는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하나님은 한 언약 백성을 선택하셨다. 이 백성은 마지막 때에 의와 진리를 심기 위해서 하나님에 의해 양육된 이른바 “남은 자”이다. 쿰란공동체가 바로 이 남은 자에 속한다. 그래서 쿰란공동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유랑할 때 갖추었던 모습대로 조직화되어야 했다. 제사장과 레위인과 이스라엘로 구별되던 옛 지파 사회를 연상시키듯 공동체의 진영에 거주하는 자들을 천, 백, 오십, 십 단위로 구별하여 조직하였다(1QS 2:19-25). 그들이 바로 “야하드”(yahad), 곧 쿰란공동체이다. 공동체가 누리는 공동생활은 정결한 음식을 먹고, 기도하며, 묵상하고, 성서를 공부하는 일이었다(1QS 6:2-3, 7-8). 이 모든 일을 전반적으로 인도하는 자가 바로 “메박케르”(mebaqqer), 곧 “지도자”(Guardian)이다.

        그들이 사는 시대는 마지막 때이기에, 악한 세력이 가장 기승을 부리는 때이다. 그런 까닭에 새 언약의 공동체의 회원들은 죄악을 멀리하고 온전한 길을 따르는 엄숙한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1QS 5:23-24). 누구든지 이 규율을 지키지 못하면 공동체에서 추방되었고(1QS 8:21-23),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자는 쿰란공동체가 이해한 방식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자 서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렇게 사는 자들은 우주가 진행되는 법칙을 안다. 이 법칙에 따라 제정된 달력 아래서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이 고정해 놓으신 미래를 기다리며 살았다. 그들의 예배는 하늘의 예배에 참여하는 천사들과 나누는 교제이다. 동물희생제사대신 기도와 찬미로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1QS 9:4-5). 이제 역사의 마지막에 하나님이 역사 속에 개입해 들어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 빛의 아들들의 군대를 거느리고 악한 세력을 영원히 무찔러버리는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실 것이다. 이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이기도 하고 제사장의 반열에 따라 오시는 메시야이기도 하다. 이름하여 “아론과 이스라엘의 메시야”(1QS 9:11)이다. 이 메시야가 최후의 심판을 할 때에 하나님이 죽은 자를 다시 일으키게 되고 공동체의 언약백성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하늘의 천사들과 결합하게 되리라. 하나님이 이제 새 성전을 창조하시고 쿰란공동체의 지체들은 새 성전, 새 제사로 단장한 정결한 예루살렘을 차지하게 되리라.  삶 속에 영광의 면류관을 쓴 채 영원히 쇠락하지 않는 위엄의 옷을 입고 한 없이 영원한 축복과 끝없이 영원한 기쁨을 충만히 맛보게 되리라(1QS 4:7-8).

        쿰란공동체는 묵시적 공동체이다. 사해사본이 남긴 쿰란의 종파적 문서 가운데 묵시라는 이름으로 집대성된 작품은 없다. 쿰란공동체에서 기록된 저술들은 본질상 “계시의 보도”(revelation reports)가 아니다. 그렇기에, 문학유형만 놓고 볼 때 쿰란공동체의 종파적 문헌들은 우리가 지금 묵시라고 부르는 글말과는 표현상 크게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쿰란공동체는 묵시적 세계관이나 묵시사상(apocalypticism)으로 무장한(?) 공동체이었다. 프랭크 크로스(F. M. Cross)가 쿰란문헌에 대한 성서학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쿰란 공동체를 “묵시적 공동체”로 규정했던 것은 이 점에서 여전히 타당하다.66) 사해사본에서 문학 형식상 묵시에 해당되는 글은 찾아보기 어려워도 사해사본에 담긴 글의 가락과 마디가 선포하고 있는 묵시적 세계관은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쿰란공동체는 묵시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그래서 묵시사상을 지닌 유대 공동체이었던 것이다.


쿰란 공동체와 메시아


                                                             송 창 현  신부

(대구 가톨릭대학교 신약학 교수)



I. 연구 현황


        1947년에 쿰란의 첫 동굴에서 사본이 발견된 이후 쿰란 공동체의 메시아 사상은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왜냐하면 쿰란 사본은 제2차 성전 시기 특히 그리스도교 이전 시기의 유대 메시아 사상을 증거하는 중요한 문헌이기 때문이다. 첫 사본들의 발견 이후 사본에 명시적으로, 암시적으로 등장하는 메시아적 표상을 해석하고 메시아 사상의 발전 단계를 종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67) 특히 Starcky는 쿰란의 메시아 사상의 발전을 네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68) 그러나 이 가설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69)

        쿰란 공동체의 메시아 사상에 대한 연구는 1991년 이후 새롭게 발표된 사본들에 의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70) 이전의 연구들이 재평가되고 새로운 종합이 시도되었다.71) 특히 4Q246, 4Q369, 4Q534, 4Q541, 4Q491, 4Q521, 11Q13 등의 사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쿰란의 메시아 사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모색되고 있다.



II. 메시아 사상과 관련 있는 쿰란 사본들

        

        쿰란 사본 중에서 메시아가 등장하는 본문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QS72): 쿰란 공동체의 규칙서인 1QS IX 11은 에세네파의 메시아 사상을 분명히 드러내는 본문 중의 하나이다: “예언자와 아론의 메시아와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올 때까지”(לארשיו ןורהא יחישמו איבנ אוב דע). 이 구절은 모세를 닮은 예언자(신명 18,15.18)와 두-메시아 사상(messianisme bicéphale)을 표현한다. 쿰란의 두-메시아 사상의 맥락 안에서 “아론의 메시아”는 종말론적 대사제로서의 메시아를 가리키고, “이스라엘의 메시아”는 정치적인 메시아를 지칭한다. 한편 공동체 규칙서의 다른 사본인 4Q259에는 1QS IX 11의 내용이 없다. 따라서 이 두 본문의 관계는 흥미로운 논란거리이다.

  1QSa73): 1QSa II 11-22은 마지막 시기의 공동체의 모임과 제의적 공동 식사를 묘사한다. 이 식사에는 두 메시아 즉 “아론의 메시아”(ןורהא חישמ)와 “이스라엘의 메시아”(   לארשי חישמ)가 참석하는데, 전자가 후자에 비해 우위를 차지한다.

  1QSb74): V 20-29는 “공동체의 우두머리”(הדעה אישנ)를 위한 축복을 묘사한다. “우두머리”(אישנ)는 다윗의 메시아를 가리키는 에제키엘의 용어이다(에제 34,23-24; 37,25; 45,7-25). 그리고 1QSb의 본문에서 인용되는 이사 11,2-5; 미가 4,13; 7,10; 창세 49,9 등의 구절들도 “우두머리”가 왕으로서의 메시아, 즉 “다윗의 아들”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CD75): CD의 다음 다양한 구절들에 아론과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등장한다: XII 23-XIII 1; XX 1: לארשיו ןורהא חישמ דומע דע(아론과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나타날 때까지); XIV 19: לארשיו ןורהא ח[ישמ](아론과 이스라엘의 [메시]아; XIX 10-11: לארשיו ןורהא חישמ אובב(아론과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올 때까지).

  그리고 CD VII 18-20에는 “별”(בכוכ)과 “왕홀”(טבש)이 등장한다:

הדעה לכ אישנ אוה טבשה .... קשמד אבה הרותה שרוד אוה בכוכהו

“별, 그것은 다마스커스로 올 율법의 해석자이다 ..... 왕홀, 그것은 전체 공동체의 우두머리이다.”

        이 본문에서 “별”은 대사제로서의 메시아인 “율법의 해석자”(הרותה שרוד)이고, “왕홀”은 왕으로서의 메시아인 “공동체의 우두머리”(הדעה לכ אישנ)이다.

        한편 CD VI 11의 “정의를 가르칠 자”(קדצה הרוי)는 쿰란의 두-메시아 사상에서 대사제로서의 메시아인 동시에 마지막 날에 정의를 가르치고 율법을 올바르게 해석할 참된 예언자이다.76)

  4Q16177): 4Q161(pIsa) 7-10 iii 22은 시편 11,1-5를 인용한 후 메시아를 다윗의 후손(דיוד [חמצ])으로 소개하는데 그는 종말의 승리와 심판을 주도한다:

(마지[막 날]에 나타날 다윗의 [후손])דמועה דיוד [חמצ][םימיה תיר]חאב

  4Q17478): 4Q174는 2사무 7,10ㄴ-14ㄱ; 시편 1,1; 2,1-2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다. 특히 1-2 i 10-12에서 왕으로서의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דיוד חמצ)으로 표현되는데, 그는 대사제로서의 메시아인 “율법의 해석자”(הרותה שרוד)와 함께 등장한다. 특히 2사무 7,11-14가 메시아적 의미로 이해되는 4Q174에서, 왕으로서의 메시아는 명확하게 “다윗의 후손”(דיוד חמצ)으로 표현되고, 함축적으로는 “하느님의 아들”로 묘사된다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