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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목사 성서도시](27)바울이 감옥에 갇혔던 빌립보

영국신사77 2007. 2. 24. 22:54
[이원희 목사의 성서 속 도시 이야기] (27) 바울이 감옥에 갇혔던 빌립보
[국민일보 2005-08-31 17:21]

네압볼리에서 역사적인 하룻밤을 보낸 나는 택시를 빌려 그리스의 북부지역에 있는 빌립보로 향했다. 빌립보(필리피·Philippi)는 에게해에서 내륙으로 16㎞쯤 들어가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있는데 남쪽으로는 심볼론 해변 지역,북쪽으로는 발칸 고대의 지방,서쪽으로는 판가이온,그리고 동쪽으로는 오르벨로스와 접해 있다.

네압볼리에서 바로 북서쪽으로 높은 언덕길에 오르자 네압볼리 항구가 한눈에 들어왔고 다시 내리막길을 지나 평지를 달리자 왼쪽으로는 바울이 걸어갔던 로마때 만들어진 에그나티아 가도가 숲 사이로 보였다. 바로 성경에 나오는 바울이 복음을 들고 유럽 선교를 위해 지나갔던 길이다.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선교사이며 최고의 복음 전도자였다. 그로 인해 유럽 선교의 장이 열렸다. 지금은 아스팔트 길에 밀려났지만 바울이 전한 기독교의 복음은 에그나티아 가도를 통해 세계 각처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언덕을 내려와 20여분을 달리자 로마 제국의 운명을 바꾸어놓은 빌립보에 도착했다.

성경에서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행 16:12)이라고 소개되는 이곳은 서쪽으로는 스트림몬 강과 동쪽으로는 네스토스 강을 경계로 하는 마게도냐 동쪽에 소재한다. 빌립보의 옛 명칭은 크레니티였으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 마게도냐 왕 필리포스 2세(재위 BC 359∼336)가 이 지역을 크게 확장하고 자기 이름을 따서 빌립보라고 바꾸었다. 이 빌립보는 기원전 42년 카이사르를 암살한 부루터스가 참패한 후 자결한 곳이며 이 결전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가 후에 원로원에서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얻게 된 배경이 된 곳이다.

빌립보는 대규모의 유적지로 아테네의 에콜 프랑세즈(Ecole Francaise)에 의해 1914∼1937년까지 고고학적 발굴이 행해졌다. 도시의 대광장은 에그나티아 도로 바로 옆에 있으며 그 면적은 길이 91m,폭이 46m가 넘는 장방형이다. 그리고 북쪽 중앙에 연사들이 연단으로 사용한 것이 틀림없는 장방형의 주춧돌이 있다. 또한 대광장의 북동쪽과 모서리에는 2개의 대신전이 정면으로 마주보고 서 있다. 그리고 도서관 건물,줄지어진 기둥들,건물의 현관,분수,목욕탕 등이 발굴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광범위한 지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입장료를 내고 유적지 입구에 들어서자 다른 로마 유적처럼 예외없이 야외극장이 오른쪽 산 언덕에 세워져 있다. 극장을 지나 로마 때 건설된 에그나티아 길을 따라 조금 지나면 바실리카A라고 불리는 지역이 위치해 있다. 바실리카는 회당식 교회를 말하는데 빌립보에는 바실리카가 두 곳이 있다. 바실리카A에서 바실리카B로 가려면 중간에 현대에 건설한 아스팔트 길을 지나가야 하는데 길을 건너기 바로 전에 바울의 감옥이 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에 따르면 이곳은 바울이 귀신이 들려 점하는 여종을 고쳐줌으로써 그 주인에게 고소를 당해 갇힌 감옥이다. 그는 쇠사슬에 발목이 묶인 채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미하자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감옥을 지키던 간수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기독교를 믿는 기적이 일어났다(행 16:16∼34). 이 일로 기독교 역사상 이곳에서는 기독교가 왕성하게 되었다.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바실리카B의 웅장한 기초석을 보면 당시 교회 규모가 얼마나 컸던가를 알 수 있다.

다시 한번 바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이 이곳 빌립보에 일어나기를 소원하며 바울이 루디아를 만났다는 곳으로 향했다. 자동차로 5분 정도를 달리자 바울이 기도처를 찾다가 루디아를 만난 곳에 세워진 루디아 기념교회에 도착했다. 이 교회는 바울이 세례를 베푼 간지테스 강변에 세워져 있는데 지금은 강이라기보다는 도랑 같았다. 교회는 루디아의 신앙을 상징하듯 엽서에 담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담하고 정감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당시 루디아는 자주 옷감 장사를 하는 여인이었다. 그는 바울을 만나 복음을 받아들여 빌립보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행 16:11∼15). 후에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에게서 받은 신앙의 유산을 잘 간직하여 바울이 마게도냐를 떠날 때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 여러 번 도왔고(빌 4:15∼16) 바울이 로마 옥중에 있을 때에도 에바브로 디도를 통해 위문품을 보냈다(빌 4:18). 이에 바울은 빌립보서를 써서 그들을 위로했다. 이런 기독교의 역사를 가진 빌립보를 찾았다는 감격은 이후 오랫동안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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