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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연구② 의사] 開業醫 10명 중 3명 폐업준비 중 8만5,000명 깊은 한숨소리

영국신사77 2007. 2. 6. 16:25
월간중앙 > 특종|심층취재
[직업연구② 의사] 開業醫 10명 중 3명 폐업준비 중 8만5,000명 깊은 한숨소리
“‘공부는 박사, 연봉은 회사원 수준’… 월급 받는 ‘봉직의’로 U턴 심화”
달라진 위상! 한국의 노블리스
대한민국 의사사회가 심각한 위기다. 개업의의 줄을 잇는 폐업이 그 방증. 의사의 사회적 위상 추락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또 그들의 자구 노력은 무엇인가? 의사들의 고민과 절망, 그들의 새로운 희망을 집중 취재했다.

■ 부도 공포증! 개업의사의 고민 갈수록 심각
■ 중세적 도제 시스템 속 신음하는 전공의
■ “외국인 의사 출산 주도하는 시대 온다” 개방 위기감
■ 호황과 불황의 이중성, 양극화로 치닫는 의료사회
■ CEO 마인드, 서비스 경영으로 활로 모색 중

의사 2명을 고용해 서울 노원구에서 산부인과 병원을 운영하던 A씨. 그는 최근 병원 문을 닫았다. 병원을 찾는 환자가 하루에 2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 정도의 환자로는 직원들의 월급 등 인건비와 제반 비용을 제하면 ‘엄청난 적자’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극심해지는 이 같은 적자 운영 상태가 무려 7개월이나 계속됐다. 그는 더 버틸 재간이 없다고 생각해 과감히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의사는 결코 내던질 수 없는 천직이다. ‘배운 도둑질’이 의술이니 그 일밖에 달리 할 일이 마땅히 없다. 그래서 그는 요즘 병원을 재개원할 요량으로 이곳저곳으로 발품을 팔고 있다. 금융기관을 기웃거리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좀 더 나은 조건의 융자를 받기 위해서다. 한편으로 목이 좋은 ‘명당’ 자리를 찾아 부동산을 순례하고 있다.

그는 다시 개원을 생각하면서 수입이 상대적으로 좋은 ‘비보험 의료분야’를 개척할 것인가를 두고도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비만관리·미용관리 등이 바로 그 대상이다.
 
  그런데 앞에 도사린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싼 비보험분야 시술을 위해서는, 고가의 의료장비를 구입해야 한다. 그 비용 염출이 만만찮다. 이런 비보험 의료분야 시장마저 무한경쟁이 시작됐다는 것이 또 부담스럽다. 끊임없는 투자와 새로운 의술 연마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은 그에게도 역시 피곤한 일이다. 익숙한 산부인과 영역을 벗어나려면 당장 개척 분야에 대한 새로운 시술법을 배워야 하는 어려움도 크다. 그보다 “경제적 이유로 외도를 한다”는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도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폐업과 개원의 반복이 단순한 불경기 때문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것도 A씨를 우울하게 하는 대목이다.

A씨는 산부인과에 환자가 줄어든 것이 꼭 출산율 감소 때문만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위생에 대한 관념이 높아지면서 부인병 환자가 현저히 줄고 있다는 것이다. 원치 않는 임신의 발생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 A씨의 진단이다. 임신중절·부인성형 등 비보험 항목의 환자가 급격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전문의 박해성 씨. 그는 요즘 의사가 되기 위해 피땀 흘린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는 전문의 자격을 따기 위해 의과대학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에 전임의(fellow) 1년 등 총 12년의 긴 세월을 투자했다.

레지던트 시절 석사학위를 따고 서울대 전임의, 개인병원 고용 ‘봉직의’를 하는 동안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개업의가 될 때까지 일요일을 포함해 단 하루도 책을 놓은 기억이 없다. 정말로 지겹게 책과 씨름한 것이다.

                     외국인 의사 출산 주도하는 시대 온다

의학 공부를 시작한 지 14년 만에 그는 산부인과 병원을 개원했다. 병역의무가 있는 남자의 경우, 개업의가 되려면 복무기간인 2~3년은 더 걸린다.

박 원장 역시 요즘 병원이 운영난을 겪으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젊은 세대가 결혼해도 아이를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큰 문제다. 게다가 산부인과는 다른 전문 과에 비해 고가 장비가 필요하고 공간도 많이 차지한다. 모든 산부인과에서 기본으로 갖춰야 하는 초음파 장비만 1억 원을 호가한다. 그외 각종 수술장비와 복강경장비, 질 확대경을 비롯한 부대장비가 추가로 필요하다.”

그것뿐일까? 그의 말은 다시 이어진다.

“진찰 침대도 다른 전문과 병원보다 비싼 것을 쓸 수밖에 없다. 분만실을 운영할 경우, 진료실 외에 수술실·분만실·입원실·신생아실을 따로 두어야 한다. 진료보조요원이 적어도 5명 이상 필요해 인건비 부담도 훨씬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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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는 분만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거기에 환자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예전에는 대부분 적당히 넘어가던 경미한 사고에 대해서도 배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발생 개연성이 높은 사고가 대부분인데도 그런 형편이다. 의사들은 형사처벌을 받을 만한 잘못을 하지 않은 경우에도, 법적 해결 과정의 ‘피곤함’을 견디지 못하고 합의금을 주고 무마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로 산다는 것

박 원장은 이렇게 반문한다.

“의료사고가 나면 해당 병·의원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제도다. 의사 중에서도 특히 산부인과 의사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보험 수가는 턱없이 낮은데다,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도 의사가 모두 짊어져야 한다면, 누가 산부인과 의사를 하려고 하겠나? 앞으로 외국인 의사가 우리 아이들의 분만을 주도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현행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은 의료보험관리공단이 주도권을 잡고, 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시스템 아래서 의사는 “절대로 빠르고 효과적인 진료를 할 수 없다”고 우려한다. “시장의 논리를 허용하든지, 아니면 사회주의 국가의 의료 시스템처럼 국가가 의사를 양성하고 병원 개업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미국처럼 돈도 잘 벌고 사회에서 존경도 받는 의사상(醫師像)은 대한민국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의사들이야말로 정당한 대우를 해 주면 정말 열심히 일할 사람들이다. 의사들은 스스로 ‘성실성 하나로 살아가는 전문가 집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실하지 않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힘든 의학 공부를 하고 인턴·레지던트 과정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이를 사회제도가 뒷받침하지 못해 의사의 질이 떨어지면 국민 건강이 치명타를 입게 된다.”

외과 전문의 한성환(44) 씨는 지난해 8월 용인에서 운영하던 일반병원을 폐업했다. “일반병원 운영으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982년 한양대 의예과에 입학한 후 인턴과 레지던트, 군의관 생활과 ‘봉직의’를 거쳐 1999년 개업했다. 의학 공부를 시작한 지 꼭 17년 만이었다.

“얼굴 피부가 찢어진 환자에게 봉합수술을 해 주고 겨우 3만 원을 받는다. 그 수가로는 병원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감기, 피부과 치료, 물리치료 등 내 전공과 상관없는 환자의 진료에 회의가 느껴졌다.”

그는 현재 항문질환 전문병원을 운영하는 선배의 병원에 출근하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그도 올해 안으로 의대 동기생과 항문질환 전문병원 개원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 적당한 장소조차 물색하지 못한 상태다. 임차료와 시설비를 합쳐 4억 원 이상 소요되는 개원비 마련도 만만찮은 부담이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라도 틈새시장을 개척하지 않으면 의사인생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는 절박감을 느끼고 있다.

한씨는 대한민국에서 의사로 살아가는 고통을 이렇게 설명했다.

                        고용 ‘봉직의’들도 진퇴양난

“선진국처럼 하루 20~30명 정도 환자를 봐도 병원이 운영된다면 의사생활을 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낮은 의료수가 때문에, 하루 80~100명 정도의 환자를 보지 않으면 병원 운영이 안 된다. 1시간 기다려 3분 진료받는다는 환자의 불만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는 병원을 유지할 수 없다. 이게 대한민국 의사가 처해 있는 비극적 현주소다.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사 수가 적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의사가 처한 이런 생존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이다. 의료수가가 2배 이상 오르지 않으면 이 같은 상황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한씨가 대장질환이라는 틈새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최근 급격하게 증가한 대장질환 때문이다. 환자도 늘었고, 대장질환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높아져 새로운 전문분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 의사들은 정부가 병원 운영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현행 의료 시스템의 개혁을 수시로 촉구하고 있다.

한씨는 레지던트 시절 전공했던 외과분야에서 위·췌장·간·유방·갑상선 등 모든 외과수술 분야를 섭렵했다. 문제는 외과의사가 개업했을 때 이 같은 분야를 통해 성공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외과수술 환자는 큰 병원을 찾고, 개인병원의 인력과 장비로는 제대로 시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소규모 외과 개업의가 다룰 수 있는 분야가 치질, 유방 전문병원이다.

항문 전문 병원 역시 비보험분야가 많지 않다. 초음파 검사와 무통주사 정도가 비보험으로 처리된다. 치질 환자가 1회 수술에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총 진료비 100만 원 중 25만 원 정도 수준이다. 병원 운영은 기본적으로 보험수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항문 전문 병원은 그나마 일반 병원보다 수입이 낫다는 것이 위안이다.

곤경에 처한 의사 집단은 개업의뿐만 아니다. 최근 의료계의 경영난이 봉직의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의료 포털 사이트에서 봉직의들의 연봉을 검색해 봐도 몇 년 전에 비해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억대 연봉자가 수두룩했던 과거에 비해, 최근에는 8,000만~9,000만 원 정도가 최상위 그룹을 차지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서울 강북의 한 정형외과에서 봉직의로 근무하는 안정호(39) 씨는 올 초 연봉 1,000만 원을 깎였다. 선배인 병원장이 경영난을 이유로 그에게 그렇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수모였지만 끝내 항의하지 못하고 받아들였다. “선배의 입장을 고려한 결정이기도 했지만, 다른 병원 사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여서 선뜻 그만두기 어려웠다”는 것이 안씨의 솔직한 고백이다.

과거 의사들은 대체로 “대우가 마음에 안 들면 개업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봉직의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의사들의 이런 배짱도 이제는 잘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오히려 개업의들이 봉직의로 되돌아오는 U턴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의사 헤드헌팅 전문기관인 ‘HR Survey’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70%에 가까운 개업의가 봉직의로의 회귀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원 10년 이상의 고참 개업의들 역시 기업체나 정부 기관 등 의료사고의 위험이 적으면서 안정적인 조직에 취업하는 것을 선호한다. 개업 3년차 이내의 젊은 의사들은 폐업할 경우 사택을 보장하고 급여 수준이 높은 지방 병원의 봉직의를 원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 의대 졸업생 중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 지망 기피현상은 점점 고착화하는 추세다.

봉직의의 연봉이 갈수록 낮아지는 원인도 이 같은 수급 불균형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병원을 폐업하고 봉직의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피부과 전문의 조인석(36) 씨. 그는 “봉직의를 희망하는 의사가 넘쳐 보수가 낮아지는 현실 속에서도 다시 개업한다는 것은 꿈꾸기 어렵다”고 신세를 한탄한다.

개업의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피 말리는 서비스 경쟁도 불붙었다. 수도권 일대에 나타나기 시작한 24시간 진료병원이 그중 하나다. 수원시 팔달구 H내과는 연중무휴, 24시간 진료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는 원장이 직접 진료를 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당직의사가 돌아가며 진료를 맡아 하루 중 어느 때라도 환자 치료가 가능하다.

24시간 진료한다는 소문 때문에 이 병원에는 하루 100명 가까운 환자가 찾아들고 있다. 이 중 밤 시간에 찾아오는 환자가 30명을 넘는다. 3만~5만 원 정도 하는 추가 응급진료비를 물고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던 동네 환자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병원의 L원장은 “정규 시간 외에 내원하는 환자들로 인해 수입도 늘었지만 병원의 이미지 개선에도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밤에 찾아온 환자들이 주간에 한 번이라도 더 병원을 찾게 돼 24시간 진료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병원의 진료시간이 확대되는 것에 대한 의료계의 해석은 착잡하다. 근로기준법이 완전히 무너진 병원들의 근로환경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가정의학과 개원의협의회 윤해영 회장은 “개업의들의 생존전략은 정말 처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의사가 연간 3,000명씩 쏟아져 나오면서 월세도 못 내는 병원이 속출한다”고 말했다.

윤 회장의 이 같은 말을 반영하듯 최근에는 폐업준비를 하는 의사가 30%, 저축액 없이 겨우 병원을 지키는 의사가 30%, 그나마 수익을 내는 의사가 30%라는 말이 의료계 내에서 정설처럼 회자한다.

한국사회의 화두로 등장한 ‘양극화 현상’은 의사사회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의료 시스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1차 진료기관 내에서도 ‘부자의원’과 ‘가난한 의원’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피부과나 성형외과 같은 진료의원은 부자 의원으로, 산부인과·소아과·외과 등은 가난한 의원으로 분류된다. 매년 전문의 자격증을 받는 의사의 80% 이상이 사실상 개원의라는 점에서 이 같은 양극화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이 같은 상황을 웅변하는 것이 소위 개업의들의 ‘영역파괴 현상’이다. 환자 급감으로 유지가 어려운 개업의들이 주로 비보험분야의 진료 영역 개발에 너도나도 나서고 있다.

산부인과·마취통증의학과·일반외과·내과 등의 전문의가 진료 과목을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으로 바꿔 개업하는 현상이다. 성형외과·피부과 등의 진료 과목에는 비급여 시술이 대거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 추세로 가장 타격을 받은 산부인과의 경우 성형외과 고유 영역이던 지방 흡입 클리닉 등으로 전환하는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그래서 ‘의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CEO 마인드’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한 동네에서 “앞집이 개업하면 뒷집이 폐업하는” 현상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경영 마인드 없이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의사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개원의 사이에서는 공동 개원, 병원 네트워크, 고객관계관리(CRM), 인터넷 마케팅 등 일반 회사에서 도입한 다양한 비즈니스 기법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CRM은 한 번 내원한 환자를 대상으로 철저하게 DB를 관리하는 기법이다. 그리고 이를 분석해 내원 환자에게 건강정보를 제공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활용해 예약을 안내하고 접수를 진행하는 신종 경영 패턴이다. 병원의 홈페이지에는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다양한 연예·문화 콘텐츠, 웹 매거진 등 첨단 정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고강도 노동, 낮은 보수’ 상황 날로 악화

최근에는 개업 병원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부도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복수 시스템 사업자(MSO, multiple system operator)가 활성화하고 있다. 일종의 병원 프랜차이즈라고 할 수 있는 MSO가 개원시장의 화두로 등장한 것이다.

병원의 포화로 인해 네트워크 의원들 역시 신규 개원 형태의 확장보다 기존에 자리 잡은 동네 의원을 네트워크에 가입하게 하는 형태로 운영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 경쟁력 확보를 위해 고가장비 도입이 일반화 되면서 병원 평균 개원 비용은 5억원에 이른다.

병원 MSO 전문가 닥터멤버스 조영림 대표는 “기존 물밑작업으로 프랜차이즈 형태의 사업을 추진 중이던 10여 업체가 본격적인 MSO 설립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트렌드에 편승해 동문·선후배·지인들이 MSO 형태의 프랜차이즈 체인을 추진하려고 한다”는 것이 조 대표의 전망이다.

올해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 개원 방식이 선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파크사이드 재활의학병원 박병상 건립본부장은 “의사들이 돈을 모아 건물을 사서 주주형태로 병원에 참여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트렌드를 활용할 능력이 있는 의사들과 그렇지 못한 의사들 사이에는 또다시 현격한 괴리가 발생한다는 것이 의료계 내부의 우려다.

병원 경영 전문 컨설턴트 조 현 씨는 “향후 병원 성장의 핵심은 고객중심 서비스 경영에 있다”고 주장한다. 잘되는 병원, 성공하는 병원이 되려면 우수한 의료진, 설비, 시스템, 직원의 확보라는 기본 여건이 필수다. 그러나 병원이 장기적 관점에서 건강한 상태로 오래 지명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객만족 중심의 경영이 정착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조씨의 지론이다. 그는 대구의 신경정신과 전문 D병원의 혁신 사례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병원은 2005년부터 정신과 병동의 이름을 바꿨다. 폐쇄병동과 개방병동으로 이분화된 병동 이름을 클래식·레가토·코모도·하모니·심포니아 등으로 바꾼 것이다. ‘클래식’은 정신병원의 고전이며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보호병동이다. ‘레가토’는 이탈리아 악상 기호에서 ‘부드럽게 이어서’라는 뜻인데, 이 병동은 보호병동과 개방병동을 이어주는 반개방병동을 지칭한다.

‘알맞은 템포로’를 의미하는 ‘코모도’는 휴식병동을, 조화를 의미하는 ‘하모니’는 재활병동이다. ‘균형 있게 연주한다’는 뜻의 ‘심포니’는 적응병동을 의미한다. 정신과 병원을 세분하고 거기에 맞는 격조 있는 병동 이름을 붙여 환자와 환자 가족에게 정신병원의 칙칙하고 불쾌한 이미지를 일신해 서비스하는 것이다.”

병원이 과연 ‘서비스업’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서울 강북(회기동)에서 피부과 병원을 운영하는 전문의 P씨는 “최근 미용과 성형에 대한 관심이 폭발해 상당한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대학 때 배운 의학의 정신 구현이 고작 이런 것인가에 대해 회의에 빠질 때가 많다”고 고백한다.

P씨는 지난 한 해 2억 원이 넘는 홍보비를 뿌렸다. 병원 인테리어 비용으로도 그 이상의 돈을 썼다. 그러나 “성형외과·피부과 등 인기 과에 기를 쓰고 지원하려는 후배 의사들을 볼 때마다 깊은 자괴감에 빠진다”고 말했다.

사실 P씨가 지출한 홍보비와 인테리어 비용은 진짜 잘나가는 병원들의 평균에는 훨씬 못 미친다. 잘나가는 강남 성형외과의 1년 평균 홍보비는 5억 원을 웃돈다. 일간지나 월간지의 기사형 광고에 월 300만~500만 원, 인터넷 및 기타 광고에 월 200만~500만 원을 지출한다.

                           공동 개원의 새로운 트렌드

매체 광고에만 연 1억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다. 병원마다 ‘홍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이 정착되면서 그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현재는 브레이크 없는 열차가 달리는 것과 같은 과열 현상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홍보와 경영 마인드는 단지 물량공세에 그치지 않는다.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에 네일아트 서비스를 하고, 수술실에서는 환자의 지루함을 덜어주기 위해 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지방 환자의 경우 성형 시술 이후 부기가 빠질 때까지 호텔 할인과 오피스텔 제공 등의 서비스를 하는 경우도 있다. 서비스의 고급화·다양화 추세는 성형외과·피부과·안과에 이어 비뇨기과·산부인과 등으로 더욱 확산하는 추세다.

현실이 엄혹한 만큼 의대생들의 생존전략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의대 졸업 후 전공 선택 때 비보험분야 진료 비율이 높은 과목을 선호하는 세태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국립대학병원의 전문의 과목별 지원 현황을 보면 이 같은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성형외과(213%)·이비인후과(200%)·피부과(192%)는 높은 경쟁률을 나타낸 반면 외과(91%)·응급의학과(81%)·흉부외과(64%)·방사선종양학과(33%) 등은 매년 지원자가 정원에 미달하는 상황이다. 전공의 과정이 힘든 반면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외과 계열의 기피 경향이 고착화하는 것이다.

▶ 병원 응급실. 의사들의 노동 강도는 다른 어떤 직업보다 극심한 편이다.


서울대 병원의 경우 외과 19명 정원에 18명이 지원해 미달됐으며, 흉부외과는 4명 정원을 간신히 채웠다. 서울아산병원은 흉부외과 4명 정원에 1명이 지원하는 데 그쳤다. 가톨릭중앙의료원과 영남대병원의 경우 흉부외과 지원자는 아예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방송사의 메디컬 드라마에서 화려하고 영웅적인 외과의사들이 등장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우리나라 의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업의 중 일부는 호황을 누리지만 대부분은 심각한 경영난과 극심한 노동 강도에 시달린다. 개원 비용이 평균 5억 원은 들어간다는 것이 의료계의 정설이다. 그만한 비용을 고려할 때 수익률은 터무니없이 낮다는 것이 의사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그럼에도 의사들은 쉴 틈이 없을 만큼 몸을 혹사한다.

최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경영사회팀이 조사한 개업의들의 실태는 참담하다. 동네 의원의 경우 진료 시간이 1주일에 평균 51시간이었다. 의사 중 하루 8시간을 진료하고 있다는 비율은 27.1%에 불과했다. 의원의 90% 이상이 토요일 진료를 실시하며, 일요일 진료를 하는 것으로 조사된 의원도 16.8%에 달했다.

거액의 초기 투자자금과 긴 근무 시간에도 의원의 연평균 수익(종합소득세 차감 전)은 7,000만 원대에 불과하다. 신의료장비 구입비, 4대 보험료 및 소득세 등을 빼고 나면 개원의의 월 가처분소득은 월 300만~400만 원대에 불과하다는 것이 의료정책연구소의 조사 결과다.

의사들이 겪는 고통에도 대한민국 의사의 상당수는 여전히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와 긍지가 강하다. 농활 도중 시골 아줌마들이 겪는 부인병의 고통을 목도하고 산부인과를 선택했다는 마리아병원 전문의 윤지성 씨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산부인과는 내과·외과·진료 지원분야를 망라하는 종합 의술분야라고 할 수 있다. ‘산과 의사’는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 밤잠이 없는 사람들(?)이 도전해 볼 만한 분야다. ‘부인과’는 수술을 좋아하는 타고난 외과 의사나 발암 기전이나 유전자 치료같이 분자생물학적 연구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매력적인 과목이다.

                       의사는 사회적 불행 고민하는 철학도

또 ‘불임 및 내분비’ 영역은 상대적으로 내과적 색채가 강해 성격이 차분하고 끈기 있는 사람에게 더 어울리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기의 적성을 전공의 수련 기간에 충분히 검증한 뒤 신중하게 자신의 갈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산부인과의 매력이다.”

순천의료원의 외과의 박인근 씨는 인기가 급락한 외과의의 사명과 인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외과 의사는 칼을 잡은 내과의사라는 말이 있다. 유능한 외과 의사는 손재주에만 의존하지 않고 끊임없이 의술을 연마해야 한다는 것이 의료계 잠언이다. 외과 전공의 3년차 시절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을 읽었다. 전태일의 마지막 길에도 훌륭한 의사가 등장한다. 당시에는 화상을 외과에서 담당했는데, 외과 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나는 그 상상만으로도 한없는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김승열 씨는 어린이와 미성년자의 죽음을 목도할 때, 장애를 선고할 때, 부모의 주검 앞에서 재산 분배를 두고 싸우는 가족을 볼 때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의사는 냉정한 과학자이면서 사회의 온갖 불행과 직면한 철학도, 인문학도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의사사회의 건강성이 심각한 위기를 맞은 가운데서도 의료행위를 담당하는 의사의 역할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의사의 월급봉투를 엿보다
봉직의 평균연봉은 6,845만 원…
대학병원 부교수 1억 원 수준


의사들의 수입은 좀처럼 알기 어렵다. 쥐꼬리만 한 인턴과 레지던트의 월수입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대학병원 의사들의 월급, 개업의들의 수입은 좀처럼 알려지지 않는다.

대학병원 의사들의 수입도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많지는 않다. 연봉 1억 원 정도를 받으려면 부교수급은 돼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수입이 천차만별인 개업의들의 연 수입은 제대로 알기 힘들다. 세금 문제 등으로 친척들에게도 알리기를 꺼린다.

지난해 의사 전용 서비스인 ‘아임닥터(www.iamdoctor.com)’의 연봉 검색 서비스를 통해 알려진 1,919명의 봉직의 평균연봉은 6,845만 원이었다. 이 같은 평균연봉은 직종 간 연봉 비교에서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그러나 역시 지난해 한 구직 사이트의 직업 선호도 조사에서 의사가 7위에 머무른 것은 의미심장하다. 연봉과 직업 선호도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세태다.

전공의를 빼고 전문의·봉직의 1,125명의 평균연봉은 9,218만 원에 달한다. 인턴·전공의(레지던트) 396명의 평균연봉은 2,872만 원, 293명이 참여한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의 평균연봉은 3,200만 원이었다.

지역별로는 392명이 조사에 참여해 평균 7,538만 원을 기록한 경기도가 가장 높은 연봉을 기록했다. 그 뒤를 부산(6,698만 원, 100명), 광주(6,409만 원, 43명), 대전(74명)과 서울(545명)이 6,231만 원으로 이었다.

전공별 연봉을 살펴보면 치과의사가 9,105만 원으로 가장 높다. 성형외과 의사가 7,360만 원, 안과 의사가 6,383만 원, 그리고 방사선과 의사가 4 733만 원, 외과 의사는 4,344만 원 순이다.

봉직의들은 경력 10년이 넘으면 보통 억대 연봉을 받게 된다. 수술이 많은 정형외과·신경외과 의사들이 1억3,657만 원으로 가장 많은 연봉을 받고 있었고 일반외과·흉부외과 의사가 1억143만 원, 피부과·성형외과 의사가 1억 원, 산부인과·비뇨기과 의사가 9,689만 원, 소아과·가정의학과 의사가 7,135만 원을 받고 있다.


이학승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의사 양성에 국가 역할 전무, 희생만 강요하는 시스템”

이학승(35)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제2대 대한전공의노조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병원 내 전공의에 대한 구조적 폭력행위를 고발하고 이를 이슈화한 중심 인물이다.

그는 현재 의사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젊은 전공의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깊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 교육의 전 과정을 민간에 맡기고 의사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현재의 의료 시스템은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 이 회장의 생각이다.

-지난해 여름 전공의에 대한 한 대학병원에서의 폭력행위 문제는 어떻게 처리됐나?
“전공의들이 원하는 수준과 병원이 원하는 사태 해결의 수준이 다르다. 아직 법에 호소하지 않고 병원 내에서 해결하려다 보니 시간이 걸린다. 이 문제에 대해 1차적 책임이 있는 보건복지부는 병원협회에, 병원협회는 해당 병원에 해결의 책임을 미루고 있다. 병원협회의 권고는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해당 대학도 사태의 마무리에 소극적이다.”

― 전공의에 대한 폭력은 한 병원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장기적이고도 구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지 않나? 의료계 문화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의사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군대와 학교에서도 폭력이 추방되고 있는데 의사사회에서 폭력이 횡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두 번째는 제도의 개선이다. 폭력 문제를 고발하고 싶어도 장래 의사 인생에 미칠 영향이 두려워 용기를 내지 못한다. 선후배 관계로 엮여 평생을 가야 하는데, 그 관계를 깨지 못하는 것이다. 민원이 들어오는 것은 그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것이고, 그 폐해가 굉장히 심각하다는 말이다. 의사협회 내에서 특별기구를 만들기도 했지만 보건복지부에서 강력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매 맞는 의사가 환자에게 잘할 리 없고, 환자도 매 맞는 의사를 존경할 리 없다. 전공의들이 뭉쳐 반드시 고쳐 나가겠다.”

― 큰 병원은 해외 진출을 도모하고 있지만, 개업의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도산을 거듭하고 있다. 의료계의 심각한 양극화 현상,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전공의의 시각이 궁금하다.
“국민은 의사가 금전적 보상보다 사회의 봉사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금전적 보상도 받고 싶고 국민의 존경도 받고 싶다. 그 괴리가 너무 크다. 금전적 보상에 대한 괴리를 메울 수 없다면 의사에 대한 사회적 존중심이라도 지금보다 나아져야 한다. 양극화에 의한 생활의 불안은 의사에 대한 사회적 존중심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의료계의 양극화는 심각하다. 대기업의 거대자본이 들어오고, 기존 대형병원이 더욱 큰 규모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공의들은 불안하다. 요즘에는 전임의(fellow) 과정이라는 것이 생겨 전공의들을 압박한다. 대학병원의 스태프가 되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박사 후 과정’인데, 월급은 시간강사 수준이고, 심지어 무급 펠로도 있다. 전공의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거대 병원자본이 의사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다.”

― 의료보험수가 문제에 대한 의사들의 불만이 크다. 전공의의 관점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나?
“수가가 터무니없이 낮다는 데는 모든 의사가 이견이 없다. 사립 의학전문대학원의 한 학기 등록금은 현재 1,000만 원에 육박한다. 1년에 2,000만 원씩 4년을 공부하다 보면 빚을 지게 된다. 젊은 의사가 빚을 지기 시작하면 진료에 전념하기 힘들다. 그 해결책은 뻔하다. 비정상적이고 무리한 진료 행위다. 하루에 150~200명씩 환자를 보는 의사가 있다는 말도 들었다. 최소 100명은 넘어야 잘된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의 경우 비만 클리닉을 운영해 부족한 매출을 벌충하기도 한다.

여기서 국가의 역할을 생각해 보게 된다. 1년에 2,000만 원의 학비를 내고 죽어라 공부한 의사에게 국가는 하나도 해 준 것이 없다. 그렇게 의대생을 방치해 놓고 졸업 후 낮은 수가를 인내하며 사회에 봉사하고 희생하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수련의들의 교육 과정에 국가가 일정부분 재정적 지원을 한다. 이런 시스템상의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 전공의들의 시각이다.”


남녀차별 심각한 의사 사회
“왜 여자 레지던트는 미움을 받을까?”

한국 의료계는 의대를 졸업한 사람의 90% 이상이 전문의가 된다. 따라서 남녀차별이 가장 심각하게 두드러지는 시기는 레지던트가 될 때다. 왜 그런가? 그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레지던트 선발 과정을 알아야 한다. 인턴들은 대략 매년 9월께 지망하는 과를 결정하고 해당 과의 과장·스태프·레지던트에게 인사를 가게 된다.

선발시험은 12월이다. 그러나 레지던트 선발은 시험 성적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경쟁이 붙는 인기 과의 경우, 과에서 선호하는 사람이 선발되는 경우가 많다. 떨어질 운명의 경쟁자에게는 넌지시 그 상황이 고지된다. 과장이나 레지던트 다수가 싫어한다면 그 사람은 선발되기 어렵다. 선발되더라도 왕따가 되기 때문에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철저하게 도제식으로 배우게 되므로 과에서 거부하는 인물은 선발되기 어려운 구조다.

그렇다면 의사사회에서는 왜 여자 레지던트를 싫어할까? 심지어 여자 의사들도 여자 레지던트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력 문제다.

레지던트는 의사생활 중 가장 힘든 시기다. 레지던트는 대체인력을 쓸 수 없다. 과의 모든 인력을 가동해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일이 쌓인다. 그렇다 보니 결혼·임신 등으로 결원이 생길 소지를 만드는 여의사를 싫어하게 된다. 결원이 생기면 과의 구성원에게 엄청난 업무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여의사에 대한 편견도 작용한다. 여의사는 병원보다 가정 일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조직의 일에 잘 협조하지 않는다는 편견이 아직도 통한다. 그렇다 보니 인기가 있든 없든 대부분의 과는 남자 지원자가 없을 경우 ‘어쩔 수 없이’ 여자 지원자에게 기회를 주는 경우가 많다.

환자들 역시 종종 여의사들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남자 의사보다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여의사를 기피하고는 한다. 남자 환자 중에는 여의사를 의사가 아니라 ‘여자’로 보는 사람도 있다. 부지불식간에 내뱉는 말과 행동 속에서 희롱에 가까운 뉘앙스를 발견하게 된다.

일산백병원 산부인과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는 여의사 전경훈 씨. 그는 인턴 과정에서 겪었던 남자 환자들의 행태에 질려 ‘산부인과’를 선택했다. “주사를 놓기 위해 환자의 팔에 알코올을 묻힐 때 때때로 그들은 나를 의사가 아닌 여자로 본다”는 것이 그의 인턴 시절 경험이다.

사실 의료 행위는 본질적으로 여성에게 더 적합한 분야일 수 있다. 그러나 가부장적 속성과 남녀차별의 편견은 한국 의료사회에 드리운 어두운 장막으로 아직 제거되지 않고 있다.
한기홍_월간중앙 객원기자 [2007년 02월호] 2007.01.3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