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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2년 이탈리아 태생의 니콜로 파가니니에게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라는 별명이 늘 따라다녔다. 그의 연주가 악마를 연상시킬 만큼 특별해서인지,심하다 할만치 깡마른 그의 독특한 외모 때문인지,신비스럽다 못해 쓸데없는 상상을 불러일으킬 만큼 비밀스러웠던 그의 생활방식인지는 모르지만 당시의 신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파가니니에 대한 소문이나 평가는 확실히 그가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고 악마의 음악을 전수받았다고 믿을 만큼 충분히 주도면밀하다. 7세부터 부친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리만치 혹독한 맹훈련을 받았다. 골방에 갇혀 아침부터 밤까지 연습을 시키고 정확하게 해내지 못하면 매를 때리고 끼니를 굶길 정도였다고 한다. 그 후 13세부터는 당대의 최고 바이올린 주자에게서 지도를 받으며 작곡공부도 하기 시작 했고 19세가 되어서야 부친의 감독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연주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그의 연주는 청중을 울리고 웃기며 조롱하는 듯 했고 심지어는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호흡장애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유럽순회공연은 황제와 시민들을 열광시켰고,1년에 100회가 넘는 공연을 통해 최고의 기술과 큰 감정적 표출력으로 사람들을 압도했다. 화려했던 그의 무대위의 삶에 비해 파가니니 자신은 늘 외로움과 싸워야했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끝없는 소문들을 애써 무시하려했으나 결정적으로 ‘악마의 파가니니’라는 별명은 청중의 발길을 완전히 끊어 놓았고 이웃의 항의에 의해 원하는 곳에서 살지도 못했으며 결국 죽어서도 그의 시신을 한곳에 안치하지 못하고 비밀리에 아들의 노력으로 알려지지 않은 어디엔가 묻혔다고 한다. 그의 음악을 연주하거나 감상해보면 참으로 강한 열정과 그 감수성이 애틋하다 못해 안쓰러울 정도이다. 바이올린 협주곡 1번 2악장을 들어보면 비극의 오페라 여주인공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며 울고 웃는 듯하다. 그가 이 시대에 태어나 그의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했더라면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별명이 전혀 붙을 이유가 없으나 천재성이 두드러졌던 그의 화려한 기교와 음악이 그 시대의 ‘유명세’를 감당하기엔 너무 뛰어났던 것이다. 유명세…. 요즘도 이 유명세를 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작게건 크게건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입장에 놓인 사람들 말이다. 그들이 노력해온 땀방울에 이제는 손벽을 쳐줄 수 있는 너그러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선이(바이올리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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