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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기술 한국’ 여기서 주저앉을 순 없다

영국신사77 2007. 2. 1. 15:16

               [아침논단] ‘기술 한국’ 여기서 주저앉을 순 없다

 

                                                                이기태 삼성전자 부회장
                                                                    입력 : 2007.01.31 22:47 / 수정 : 2007.01.31 22:55

    • 이기태 삼성전자 부회장
    • 지난해 국내 기업들을 어려움에 빠뜨렸던 치열한 글로벌 경쟁과 환율하락, 고유가 등은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런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원동력과 추진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끌어온 원동력 가운데 우수한 ‘기술인재’를 빼놓기 어렵다. 1964년 1억 달러에 불과했던 수출이 지난해 3260억 달러를 돌파한 것은 ‘기술입국’으로 대표되는 국가적 지원과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탈출해 보자는 국민의 염원이 한덩어리가 되었기에 가능했다. 앞으로도 ‘성공신화’를 이어가려면 한발 앞선 기술력이 필수적이고, 기술력의 근간은 인재에 대한 과감하고 전폭적인 투자에 있다.

      하지만 최근 접하는 현실은 ‘기술한국’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모 대학의 수시모집 미등록자의 대부분이 공대, 자연과학 계열이었다는 소식은 공대 출신으로 자부심을 잃지 않고 살아왔던 필자를 포함한 많은 기업인을 우울하게 했다. 공대생들이 연구실을 떠나 ‘의·치·한(의대·치대·한의대)’으로 쏠리고 도서관에서 전공 서적 대신 고시 수험서와 씨름하고 있는 풍경도 전혀 낯설지 않다.

      1980년대만 해도 3 대 7 정도였던 일선 고교의 문과·이과 비율은 어느 순간 역전됐고, 급기야는 고교시절 수학·과학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실력이 떨어진 신입생을 대상으로 각 대학이 ‘보충수업’까지 벌인다는 소식도 접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 과학고는 19개로 불과 3585명만이 과학기술에 특화된 교육을 받고 있다. 반면 문과의 특성화 교육을 대표하는 외국어고는 29개이고 학생 수는 2만1687명으로 과학고의 6배가 넘는다. 우리보다 훨씬 앞선 과학기술을 보유한 선진국도 학생들의 수학·과학 능력이 떨어지자 과감한 교육개혁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마당에, 이제 겨우 먹고사는 걱정을 벗어난 단계인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가벼이 여길 수는 없다.

      과학기술 인재의 공급부족과 부실한 과학기술 교육의 직격탄을 맞는 곳은 다름아닌 기업이다. 대학 가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과를 선택하지 않고, 이공계 대학생들이 기업체 연구원보다 변호사나 의사, 공무원을 훨씬 더 선호하는 풍토에서는 더 이상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웹 2.0, UCC 등 이용자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는 환경에서 전 세계 정보통신업계의 최대 관심은 어떤 기술, 어떤 제품으로 고객을 만족시킬지에 쏠려 있다.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 기술은 순식간에 도태된다. 따라서 제품을 경쟁력 있게 만들어 판다는 전통의 ‘제조업 논리’를 뛰어넘어 기술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면밀히 분석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첨단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이과적 지식과 인문학적 교양을 기반으로 한 감성, 창의력, 상상력을 고루 갖춘 ‘통합형 인재’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통합형 인재를 길러내는 밑거름이 돼야 할 인문학과 이공계가 동시에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고교 과학 시간을 한 시간 더 늘리거나 공대 신입생들이 고교 수학과정을 ‘보충’받는 수준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공계 기피현상의 여러 원인 가운데 IMF 당시 일부 기업들의 연구개발 인력 ‘홀대’가 거론되고 있지만 현재 많은 국내기업들의 신규채용 인력 가운데 80% 이상이 이공계 전공자다. 국내 주요 CEO의 출신 전공도 요즘은 이공계 비중이 가장 높다.

      과학기술 인력의 가장 큰 수요자인 기업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이들이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일과 생활에 만족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리 교육도 이제 기업들의 애로를 헤아리고 현장의 요구에 적극 부응해 한 차원 높은 인재를 육성해 줬으면 한다.

      환율하락은 기업의 수출경쟁력과 수익성에 타격을 가하는 수준이지만 우수한 기술인력 부족은 ‘성장엔진’을 꺼뜨릴 정도로 위험하다. 10년 후 보다 발전된 대한민국을 기대하려면 과학기술 인재들이 일시적인 ‘직업 선호도’에 휘둘리지 말고 꾸준히 기업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국가와 기업의 책무는 이들이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이런 조건만 갖춰진다면 환율이나 유가 같은 외부환경 악화는 전혀 두렵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