偉人*人物

위안스카이 [袁世凱(원세개)]

영국신사77 2007. 1. 28. 21:29

       위안스카이 [(원세개), 1859.9.16~1916.6.6]

 

 

   요약
 중국의 군인 ·정치가. 조선의 내정·외교를 조정·간섭하고 일본에 대항했다. 청일전쟁에 패한 뒤, 서양식 군대를 훈련시켜 북양군벌의 기초를 마련하고, 무술변법을 실패시켰고, 의화단의 난을 진압했다. 신해혁명 발발 때, 청 조정의 실권을 잡고, 임시총통에 취임해 독재체제를 확립했다.

  허난성[] 샹청[] 출생. 과거에 실패한 뒤 경군통령()인 우창칭[]의 막하에 들어가, 1882년 우를 따라 조선에 부임하였다. 조선 궁정의 전쟁에 개입하였고, 1884년에는 이홍장()의 명을 받아 조선 주재 총리교섭 통상사의()가 되어, 서울에 주재하면서 조선의 내정 ·외교를 조정 ·간섭하고 청나라 세력을 부식()하고 일본에 대항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에 패퇴한 뒤 직례안찰사(使)가 되었고, 톈진[] 부근에서 서양식 군대를 훈련시켜 돤치루이[] ·펑궈장[??] 등의 부하를 양성하여 북양군벌()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것이 훗날 위안스카이의 정계진출의 초석이 되었으며, 이곳에서 양성된 부장()이 민국() 성립 후의 북양군벌의 수뇌가 되었다.

 

  1898년 무술변법(:) 때에는 탄쓰퉁[] 등 개혁파의 부탁을 받았으나 그들을 배반하여 변법을 실패시키고, 서태후(西)의 신임을 얻어 산둥순무[]로 승진하였다. 1900년의 의화단()의 난 때에는 산둥성에 있으면서 의화단을 진압하고 외국인을 보호함으로써 열강의 신임을 얻었다.

 

  1901년 이홍장이 죽은 뒤, 그의 뒤를 이어 직례총독() ·북양대신이 되어 자기 세력을 확대시켜 나가며, 자기 밑의 신식군대, 즉 신건()육군을 증강시켜 일종의 독립정권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청나라 귀족들의 시기를 받아 외무부 상서(), 군기()대신으로 전보되었고, 1908년 선통제()가 즉위한 뒤, 섭정이던 순친왕()의 명령으로 정계를 물러나 있었다.

 

  1911년 신해혁명 발발로 다시 군사의 전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11월 내각총리대신이 되어 청나라 조정의 실권을 잡았다. 그는 청나라의 무력()과 혁명군의 약체를 간파하고, 혁명군과 연락을 취하면서 황제를 퇴위시켰다.

 

 마침내 그는 혁명파의 임시 대총통 쑨원[]을 사임시키고, 1912년 2월 임시총통에 취임함으로써 중국을 정식 탄생시키면서,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겼다.

 

 그 뒤 1913년 3월 국민당 당수 쑹자오런[]을 암살하고 다수파인 국민당을 탄압하였으며, 열강과 차관협정을 맺어 그 힘으로 리례쥔[] ·보원위[] 등의 토원군()을 진압하였다. 이것을 제2혁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해 10월에 정식으로 초대 대총통에 취임, 국민당을 해산시키고, 대총통선거법을 개정하여 독재체제를 확립하였다.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품고, 1915년 5월 일본의 21개조 요구를 받아들였으며, 황제추대운동을 전개시켜 1916년 1월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연호를 홍헌()으로 개원()한다고 선언하였다.

 

 1915년 윈난[]봉기를 계기로 도처에서 일어난 반원()운동의 확대(제3혁명)로 인하여, 영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강대국도 황제제도 취소를 권고, 1916년 3월 황제제도 취소를 선언하였다. 그 후 계속되는 반원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었다.

 

 

 

 

                 위안스카이 [袁世凱, Yuan Shihk'ai]
 
  (병)Yuan Shikai (웨)Yüan Shihk'ai.

  1859 중국 허난 성[河南省]~1916. 6. 6.

  중국의 군사지도자이며 청말(淸末)의 개혁파 각료.

  자는 웨이팅[慰亭], 호는 룽안[容庵]. 1912~16년 중화민국 초대 대총통을

지냈다.

 

  위안스카이는 허난 성 샹청[項城] 지방의 군인 지주가문에서 태어났다. 탁월한 재능을 지니기는 했으나, 젊었을 때는 학문보다 운동에 더 뛰어난 재주를 보였고 쾌락을 탐닉했다. 과거시험의 제일 낮은 단계인 향시(鄕試)에도 합격하지 못했지만, 한족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총독이 되었다. 아무런 학문적 배경도 없이 내각 총리대신이 되었으며, 청말에는 후작으로까지 봉해졌다.

 

  그는 이홍장(李鴻章)이 지휘하던 안후이군[安徽軍]에 들어가면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는데, 이 군대는 1882년 일본의 조선 침략을 막기 위해 조선에 파견되었다. 본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조선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정치적 위기상황들을 헤쳐나가면서, 정확한 형세판단과 과감한 결단력과 특히 군사·경제에 있어서의 뛰어난 수완을 발휘해, 본국의 상급자들에게 능력을 인정받았다.

 

  1885년 조선 주재 총리교섭통상사의(總理交涉通商事宜)로 임명되어 청조를 위해 열심히 일했으나, 결과적으로 청일전쟁(1894~95)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중국의 육군·해군이 일본군에게 패배하자, 청나라 조정은 내외 적들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말았다. 그결과 새로운 군대의 육성이 시급한 문제가 되었고, 위안스카이에게 이 일이 맡겨졌다. 그의 휘하에 있던 북양군(北洋軍)은 1900년의 의화단(義和團) 사건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유일한 관군이 되었는데, 이에 따라 그의 정치적 위치도 다른 사람들보다 크게 높아졌다.

 

  1901년 직례성(直隸省) 총독에 임명되었으며 이 직위에 있으면서, 그리고 후에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중국 근대화와 국방계획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직위를 거치는 동안 계속 서태후(西太后)의 신임과 변함없는 지원을 받았으나, 1908년 서태후가 사망하자 그의 반대자들 특히 어린 황제의 아버지인 순친왕(醇親王) 재풍(載)에 의해 모든 관직을 박탈당하고 은퇴해야만 했다. 그러나 신해혁명의 물결이 만주족을 위협하자, 청조는 그를 소환하여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같이 긴박하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위안스카이는 보수세력이나 혁명세력 모두에게 나라의 분열을 막고 평화롭게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간주되었다. 그결과 베이징의 청 황실과 난징[南京]의 중화민국 정부 양자가 모두 위안스카이가 중화민국의 초대 대총통으로 취임하는 것에 동의했다. 당시 국고는 텅 비어 있었고, 각 성은 지방군벌이 장악하고 있었으며 헌법은 제정중이었다.

 

  그는 새로 구성된 의회가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대규모 해외차관 도입계획이 의회의 반대에 직면하자, 그는 국민당의 당수 대행인 쑹자오런[宋敎仁]을 무자비하게 암살하고 의회의 분열을 책동했다. 그결과 1913년 반(反)위안스카이 폭동이 일어났으나, 서구 열강의 지원을 받고 있던 그는 폭동을 쉽게 진압했다. 그결과, 중국에서 의회민주주의를 실현시키려던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뒤 위안스카이는 종신 대총통이 되고자 음모를 꾸몄으며, 1915~16년에는 제제(帝制)를 부활시켜 황제가 되려고 했다. 표면상 그의 목표는 중국 내의 모든 세력을 단결시키고 중앙정부의 지도력을 강화하는 것이었지만, 황제 제제를 부활하려는 시도는 그의 반대파는 물론이고, 지지세력인 보수파 관료와 군부 내에서까지도 불만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를 반대하는 세력은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그의 권위에 도전했으며, 원래 그를 지원하고 있던 서구 열강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 휘말려 그를 지원해줄 여력이 없었다. 사태를 파악한 그는 곧 제제를 철회했으나, 반대파는 그에게 총통직에서도 물러나라고 계속 압력을 가했다. 1916년 궁지에 몰려 있던 그는, 만성 피로와 요독증(尿毒症)으로 사망했다.

 

                                                                                                                      J. Ch'en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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