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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중견기업]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

영국신사77 2007. 1. 21. 22:24
[파워!중견기업]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 [중앙일보]
`어릴 때 고생이 든든한 사업 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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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최씨 고집'. 광동제약 최수부(71.사진) 회장을 아는 주변 인사들은 그의 뚝심이 지금의 광동제약을 키운 원동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돈을 벌기위해 한 눈 팔지 않고 일만 했다"고 말했다. 1936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5남2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나 광복과 함께 귀국한 그는 12살의 어린 나이에 아홉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소년 가장이 됐다. 나무를 베다 팔기도 하고, 돈벌이가 된다면 가리지 않고 장사를 했다. 초등학교 4년 중퇴의 학력으로는 번듯한 직장을 잡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최회장은 어렵사리 경옥고를 파는 제약회사의 외판원으로 들어가 제약사업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버스비가 아까워 걸어다녔고 담배도 제일 싼 파랑새를 피웠다. 그렇게 절약했더니 3년만에 300만원을 모았다. 당시론 큰 돈이었다. 그는 "얼마나 뛰어 다녔는지 두 달에 한 번은 구두 밑창을 갈아야 했다"고 회고했다. 모은 돈을 종잣돈 삼아 1963년 광동제약사를 설립해 경옥고를 직접 생산했다. 사장이 됐지만 외판 영업은 여전히 그의 몫이었다. 광동을 세상에 알린 제품은 쌍화탕. 75년 서울신약이라는 회사를 사들여 품질로 승부를 걸었다. 질 좋은 재료로 쌍화탕을 만들어 다른 회사 제품값의 두 배인 100원에 시판했다. 주변에선 질 낮은 재료로 써 가격을 낮출 것을 권했지만, 최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품질이 좋으면 값이 비싸도 살 것이라고 믿었다. 광동쌍화탕은 출시 첫 달에 30만병이 팔리며 '히트상품'이 됐다. 약사들이 감기약을 제조해주면서 광동의 쌍화탕을 붙여 팔았다. 광동쌍화탕은 지금도 쌍화탕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쌍화탕의 질주에 힘입어 탄탄대로를 달리던 광동제약은 98년 외환위기때 회사존폐 위기에 몰렸다. 우황청심원의 주재료인 사향을 대신하는 천연물질 '영묘향'을 개발해 적극적인 영업을 추진하던 때였다. 경쟁업체인 C사와 우황청심원 시장을 놓고 과당 경쟁을 벌인게 화근이었다. 그해 4월 갑작스럽게 돌아온 어음 32억원을 막지못해 1차 부도를 냈다. 최 회장이 직접 뛰어다니며 최종부도는 간신히 틀어막았다. 이때 최 회장은 직원의 애사심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노동조합에서 상여금을 전액 자진 반납키로 결의하자 최 회장은 곧바로 자신의 광동제약 주식 10만주(당시 시가 9억원 상당)를 종업원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 최 회장은 "회사가 어려워지자 탈출구가 필요했고 그때 만든게 바로 비타민 음료인 '비타500'"이라고 말했다. 비타500이 성공을 거두자 그는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올 들어 최 회장은 또 다른 고집을 부리고 있다. 비타500이 잘 팔려 자금에 여유가 생기자 연구개발(R&D)에 승부를 걸고 있다. 한방.건강음료회사란 이미지에서 벗어나 의약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 전문치료제 제품개발에 팔을 걷었다. 요즘 천연물 신약과 함께 차별화된 제너릭(특허가 끝난 오리지널 의약품의 카피 제품) 의약품 개발을 독려중이다. 이달 들어 식욕 억제제 '마자놀'을 출시한데 이어 미국 제약사의 구토 억제제 '젠사나'의 국내 독점 판매권을 들여오는 등 전문의약품 사업의 틀을 차츰 갖추기 시작했다. 최 회장은 "좋은 치료제품을 갖고있는 제약회사가 매물로 나오면 언제든지 사들여 의약품 사업기반을 다지겠다"고 밝혔다. 광동제약의 올해 매출 목표는 2450억원. 이중 200억원의 자금을 신약개발과 물류기지 확보 등에 투입할 계획이다.

한편 올 7월, 광동제약은 서울 삼성동 시대를 마감하고 서초동 시대를 연다. 서초동 법원 앞 8층 건물을 매입했다. 경기도 송탄에 있는 연구소까지 이 건물로 옮겨 R&D부터 판매 업무까지 한 지붕아래서 이뤄지게 할 방침이다.

글=심재우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 광동제약은

▶설립: 1963년 ▶자본금: 524억원 ▶종업원 수: 700여명

▶대표제품: 비타500.옥수수수염차.우황청심원 등

비타500은 '광동의 구원투수'

광동제약의 효자상품 ‘비타500’은 연간 5억병 가량 팔린다.우리 국민 한사람이 한해에 10병 이상의 비타500을 마신 셈이다.
비타500은 2001년 2월에 시판됐다. 비타민C와 농축 사과 과즙, 액상 과당에 타우린과 비타민B2, 칼슘 등을 넣어 만는 ‘마시는 비타민 제제’다. 100㎖ 한 병에 700㎎의 비타민C가 들어있다. 이 정도의 비타민C는 레몬 20개, 사과 60개, 귤 15개 정도를 한꺼번에 먹어야 섭취할 수 있는 양이다. 알약 형태의 비타민C를 마시기 간편하게 만든게 비타500의 성공 비결이다. 비타500은 6개월의 산고를 거쳤다.

사업본부장인 김현식 전무가 회장실에 들어와 마시는 비타민C를 만들어보자고 하자 최수부 회장은 무릎을 쳤다. 그리고 최회장은 일반의약품이 아닌 음료로 허가받을 것을 지시했다. 시장성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발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우선 비타민C의 강한 신맛이 문제였다. 첫 시제품은 신맛이 너무 강해 마시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최회장에게 퇴짜를 맞은 시제품은 20개에 달했다.

비타500은 발매 첫해에 53억원 어치의 제품이 팔렸고 이듬해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히트상품 반열에 올랐다. 2005년에는 비타500 하나로 1210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광동제약의 매출액을 2000억원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시련도 있었다. 비타500에 들어있는 방부제를 일부 환경단체가 문제삼은 적도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방부제와 카페인이 없는 비타500을 내놔 방부제 유해 논란을 잠재웠다. 또 비타민 음료에 벤젠이 포함돼있다는 뜬금없는 소문 탓에 한때 매출이 떨어지기도 했다.

2007.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