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제럴드 포드
강인선 논설위원 insun@chosun.com
입력 : 2006.12.28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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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 린치 킹 주니어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가족에게 칼을 들이댈 만큼 거칠었다. 킹의 어머니는 제럴드 루돌프 포드라는 페인트상과 재혼했다. 킹은 열다섯 살 돼서야 생부의 존재를 알고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공부도 잘했고 프로팀 제의를 받을 만큼 뛰어난 미식축구 선수였다. 어떤 아버지보다 아버지다웠고 언제나 용기를 북돋워준 의붓아버지 덕분이었다. 소년 킹이 엊그제 떠난 38대 미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다.
▶포드의 인생 목표는 하원 의장이었다. 그러다 1973년 부패 혐의로 물러난 애그뉴에 이어 부통령이 됐고 이듬해 닉슨마저 워터게이트로 사임하자 대통령이 됐다. 아내 베티까지 “남편은 우연히 대통령이 됐다”고 했다. 취임 직후 포드가 베티에게 아침으로 빵을 차려주는 모습이 방송됐다. 언론은 “이 정도면 나라를 경영할 수 있는 선량한 사람”이라며 ‘잉글리시 머핀 이론’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줬다.
▶국민과 언론의 호감은 취임 30일 되는 날 식어 버렸다. 포드는 닉슨을 조건 없이 사면한다고 발표했다. 지지율이 하룻밤 새 70%대에서 40%대로 곤두박질쳤다. 미국인은 닉슨이 국민 세금으로 자유로운 은퇴생활을 즐긴다는 것을 참지 못했다. 포드가 닉슨과 어떤 ‘거래’를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위대는 “포드를 감옥으로 보내자”고 외쳤다. 포드는 그때부터 레임덕이 돼 버렸다.
▶포드가 오스트리아 방문길에 전용기에서 내리다 넘어졌다. 코미디언 체비 체이스는 포드의 실족을 TV쇼 ‘Saturday Night Live’에서 흉내내 사람들을 웃겼다. 그는 이 바보스러운 포드 패러디를 무려 2년에 걸쳐 수시로 우려먹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런 체이스를 포드는 백악관에 불러들여 함께 식사했다. 은퇴 후엔 고향으로 체이스 부부를 초청해 두루 구경시켰다.
▶포드는 미국이 워터게이트라는 고뇌를 뒤로하고 정상적인 삶을 되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닉슨도 충분한 고통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훗날 미국인들은 포드의 결단이 국가를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케네디의 딸 캐럴라인은 2001년 ‘케네디 용기있는 사람 상(賞)’을 포드에게 주면서 “자신의 정치적 미래보다 나라를 더 사랑한 사람”이라고 했다. 체이스는 포드의 운명 소식을 듣고서 그를 “다정한 사람(Sweet man)”이라고 불렀다. 너그러운 포드의 등장은 한 시대의 상처를 치료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시기에 미국이 얻은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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