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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케이 애쉬

영국신사77 2006. 11. 14. 16:32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들을 대하라:메리 케이 에시 

 

               신입사원 미팅 위해 대통령 초청 거절
                                                                [조선일보 2006-11-11 03:00]    
조영탁의 CEO 리더십 탐구<5>
메리 케이 애쉬 메리 케이 코스메틱스 회장

[조선일보]

리더십은 곧 성과다. 그러나 리더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조직 구성원들을 활용해 성과를 창출하는 데에 리더십의 묘미가 있다. 직원들 잠재력을 극대화해서 탁월한 성과를 창출한 대표 경영자를 꼽으라면 단연 메리 케이 코스메틱스의 메리 케이 애쉬 회장(1918~2001)을 들수 있다.

메리 케이 애쉬는 1963년 45세의 나이에 전 재산 5000달러를 투자하여 메리 케이 화장품사를 설립, 2005년 세계 3대 화장품 직판회사, 매출 10억달러, 37개국에 130만명의 독립 뷰티컨설턴트를 보유한, ‘가장 일하고 싶은 100대 기업’(포천지 선정), ‘여성을 위한 10대 우수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녀는 1985년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5명에 선정됐고, 1996년에는 미국 비즈니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런 외형보다 메리 케이사는 사원들이“다시 태어나도 이 회사에 근무하고 싶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메리 케이 애쉬 회장의 리더십은 숭고한 사명에 기초한 회사 설립과 운영에서 그 원천을 찾을 수 있다. 그녀는 당시 사회적 약자로 많은 차별을 받던 여성들에게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무제한의 성공 기회를 제공했다. 스스로 그와 함께하는 여성 모두가 개인적 성장과 재정적인 독립을 실현하고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꿈의 회사(dream company)를 꿈꾸었다. 그녀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비즈니스 리더였다. 또 회사를 한 가족으로, 즉 영원히 함께해야 할 하나의 유기적 공동체로 보았다. 그녀는‘P&L’이‘손익계산서(Profit & Loss)’가 아닌 ‘ 사 람 과 사 랑 (People &Love)’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익도 중요하지만 이는 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리더는 사람을 잘 다룬다. 이들은 사람들을 격려해 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도록 한다. 그의 리더십에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사랑과 더불어 존중과 배려, 격려와 인정, 경청과 칭찬이라는 인간관계의 핵심이 전부 망라돼 있다. 그녀는 이윤 극대화의 유일한 방법은 사람을 극대화하는 것이라 믿었고,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직원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메리 케이는 황금률(Golden Rule system of management)이라 부르는 경영방침에 따라 회사를 운영했다. 황금률이란 자신이 대우받기를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하라는 것이다. 그는“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가슴에‘나는 존중받고 싶다’라고 쓰여진 목걸이를 차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대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을 잘 다루면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는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직원 사랑을 보여주었다. 신규 뷰티 컨설턴트들과의 선약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 주재 리셉션 초청을 거절한 것은 유명한 일화. 초청 당시 그녀는 사업차 워싱턴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댈러스에 있는 신입사원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달려갔다. 매년 최고의 실적을 달성한 뷰티 컨설턴트들에게 핑크색 캐딜락을 선물함으로써 직원들의 열정에 불을 붙여주곤 했다. 또 그녀는“북적대는 방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 그 방에 우리 둘만 있는 것처럼 그를 대한다. 모든 것을 무시하고 그 사람만 쳐다본다. 고릴라가 들어와도 나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경청을 실천했다.

많은 경영자들은 직원의 헌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높은 급여, 직업의 안정성, 훌륭한 복리후생이 최우선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진심으로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성장을 도와줄 수 있다면 적은 비용으로도 얼마든지 직원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메리 케이 애쉬 회장은 가르쳐 주고 있다.

 

                                                                                                              (휴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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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들을 대하라.
구약성서, 신약성서 모두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들을 대하라고 가르친다.
이 가르침은 종교 또는 윤리적 행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리더십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왜냐고?
사람들은 자신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리더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메리 케이 에시는 이를 경영의 황금률
(Golden Rule system of management)이라 부른다.
촌철살인

리더십 사례중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여성,
우수 판매사원에게 핑크 캐딜락을 선물하는 것으로 유명한
메리케이 화장품회사의 회장 메리 케이 애쉬는
"나는 직원들을 만날때 마다 그들의 가슴에
'나는 존중받고 싶다'라고 쓰여진 목걸이를
차고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대한다"는
말로 더욱 유명합니다.
오늘부터 주위 동료들을 이처럼 대해볼까요?

 

 

 

          회사 업무가 ‘개인적 사명’이 되게 하는 법
사람들은 자기가 시작단계에서부터 관여한 일은
끝까지 지지하게 된다.
상사가 아무리 면밀하고 논리적인 계획을 제시하더라도
직원에게 그것은 그저 명령일 뿐이다.
하지만 직원이 그 아이디어의 시작단계에서부터 기여할 수 있도록 하면,
같은 아이디어라도 이제는 그 직원의 ‘개인적 사명’이 되는 것이다.
- 메리 케이 애쉬 회장.
촌철살인

타인의 의견을 묻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경영기술이 됩니다.
“당신 생각에는 이제 뭘 해야 할 것 같습니까?"
상사가 의견을 물어오면 직원은
스스로를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게 됩니다.
또한 이를 통해 직원은 회사의 사업에 적극 동참하게 됩니다.

 

 

 

 

       화장품산업의 여제 메리케이 애쉬(Mary Kay Ash) 
                                                                               출처 블로그 > 바다
                                                         원본 http://blog.naver.com/bec5483/150010846309
 

      화장품산업의 여제 메리케이 애쉬(Mary Kay Ash)

                           메리케이 화장품 창업자, 명예회장


                                 박영택 성균관대학교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



                      그래, 너는 그것을 할 수 있어!


메리 케이 애쉬(Mary Kay Ash)는 1920년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자랐다. 그녀가 7살 때 아버지가 결핵에 걸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어머니 혼자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서, 저녁 9시가 넘어서 들어왔다. 그래서 어린 메리케이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집안일을 꾸려나가야 했다.


목에 열쇠를 걸고 다녔던 어린 메리케이는 7살의 나이에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혼자 전차를 타고 휴스턴 시내를 다녔다. 또한 하교 후에는 집안청소를 하고,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고, 저녁준비를 해야 했다. 그녀는 어떻게 요리를 준비하는지 막힐 때마다 일터에 나가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어린 메리케이에게 “그래, 너는 그것을 할 수 있어(You can do it!)”라고 말하며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었는데, 이것은 훗날 메리케이 화장품의 좌우명이 되었다. 그녀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바로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늘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너는 더 잘 해낼 수 있어”라고 지속적으로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자신의 의견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졌던 메리케이는 고등학교 시절 전 과목 A학점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받았다. 계속 공부하여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집안사정이 여의치 않아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벤 로저스라는 이름의 지역출신 음악가와 결혼하였다. 매력적이고 잘 생긴 그는 휴스턴의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밴드 연주자였던 그와의 결혼생활 초기, 메리케이는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화려함과 흥분이 가득한 생활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세 아이의 엄마가 되자, 벤은 가정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음악활동으로 인해 그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가 군대에 갔고 다른 여자를 만났다. 자신에게 닥친 일을 깨달았을 즈음 메리케이는 홀로 세 아이를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재능


남편과 헤어지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집으로 스탠리 홈 프로덕트의 판매원 한 명이 아동용 서적을 판매하기 위해 왔다. 메리케이는 그 책을 아이들에게 사주고 싶었지만 책을 살만한 돈이 없었다. 책을 살 수 없어 아쉬워하던 그녀에게 그 판매원은 “만약 당신이 이 책 열 세트를 팔아 준다면 당신에게 그 보답으로 한 세트를 드리겠어요”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에 신이 난 메리케이는 친구들과 가까운 이웃들에게 전화로 책 열 세트를 단 하루 만에 모두 판매하였다. 그녀의 놀라운 세일즈 능력에 감탄한 판매원은 세일즈 우먼으로 나서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하였다. 메리케이의 평생직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세일즈직은 시간을 융통성 있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야 했던 그녀에게는 최상의 직업이었다.


1938년 그녀는 댈러스에 본사를 둔 가정용품 판매회사인 스탠리 홈 프로덕트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메리케이는 방문판매 경험을 쌓아 나갔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댈러스에서 열린 연례 세일즈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2달러의 기차요금을 빌려야 했다. 여행용 가방도 없었던 그녀는 스탠리 홈 프로덕트의 샘플용 가방에 원피스를 넣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치즈 한 파운드와 비스켓 한 통을 함께 가방에 넣었다.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그녀는 이 회의에서 받은 깊은 인상을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서의 3일이 내 인생을 확 바꾸었어요. 최고의 매상을 올린 세일즈 우먼에게 여왕 왕관을 씌워주는 것을 지켜봤어요. 세일즈 여왕 자리에 내가 앉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나는 회의실 맨 끝줄에 앉았어요. 왜냐하면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왕은 모든 면에서 너무나 달랐어요. 나와는 정반대로 날씬하고 키도 크고 짙은 갈색머리를 가진 성공한 여성이었죠. 그러나 나는 땅딸막하고 날씬하지도 않았어요. 세일즈 여왕에게 준 왕관과 악어 백에 너무나 매료되어 그 순간 내년에는 반드시 내가 여왕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스탠리 홈 프로덕트는 판매직원들에게 세 가지 사항을 강조했다. “큰 포부를 가져라,” “나아갈 길을 찾아라,” “다른 이에게 자신의 목표를 공개하라.” 메리케이는 세일즈 여왕을 자신이 따라야 할 역할모델로 여겼다.


목표를 타인에게 공표하라고 하는데, “사장에게 직접 말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생각한 메리케이는 자신의 얼굴을 전혀 모르던 사장에게 당당히 걸어가서 “내년에는 제가 판매여왕이 되겠어요”라고 말했다.


메리케이의 손을 꼭 잡고 한동안 지그시 있던 사장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래요, 당신은 분명 세일즈 여왕이 될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사장의 이 한마디 말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고 그녀는 주저 없이 말했다.


탁월한 판매능력과 승부근성을 지닌 메리케이는 다음 해에 판매여왕이 되었고, 사원모집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다. 메리케이는 스탠리 홈 프로덕트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판매할 상품을 포장하며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이때부터 어머니를 돕기 시작한 큰 아들 리처드 로저스는 훗날 어머니의 든든한 사업동반자가 되었으며, 1987년 메리케이가 일선에서 물러난 후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드림 컴퍼니(Dream Company)


단순한 매니저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 메리케이는 1952년 에 월드기프트라는 회사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가정용 소품을 판매하는 이 회사에서 메리케이는 11년간 직원훈련담당 책임자로 일하였다. 일은 이전보다 더 고되고 힘들었다. 일주일에 3, 4일씩 외근을 하며 세일즈 직원들을 모집하고 훈련시키는 일이었다.


그녀는 항상 여행용 가방을 들고 다니며 막내를 키웠다. 열심히 일한 결과 임원으로 승진하였지만, 그녀의 의견은 단지 여자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남자들은 여자가 두뇌회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1963년 메리케이는 자신이 가르친 후배 남자직원이 두 배나 높은 보수를 받고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하자, 낙담하여 회사를 그만두었다.


메리케이는 지난 25년간 자신이 겪은 사회경험을 토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 회사인 드림컴퍼니에 대한 책을 쓰려고 마음먹었다.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써 내려 가면서 메리케이는 이것이 사업계획서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차라리 자신이 직접 그러한 회사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드림컴퍼니가 추구하는 P&L은 이익과 손실(Profit and Loss)이 아니라 인간과 사랑(People and Love)이다. 즉, 돈을 버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에게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여성이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하며, 여성의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사업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녀가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주변사람들은 말렸다. 전 재산을 투자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고, 또한 회사설립과 관련하여 재정적 업무를 맡아보던 그녀의 두 번째 남편 조지가 회사 문을 열기 한 달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변사람들의 만류와 남편의 사망에도 굴하지 않고 그때까지 자신이 모은 전 재산 5,000달러를 투자하여 1963년 9월 13일에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였다. 서양에서는 결코 좋은 날로 치지 않는 13일의 금요일에 메리케이 화장품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었다.


                           뷰티컨설턴트의 도입


회사를 설립할 당시에는 자본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메리케이는 댈러스의 작은 상점을 빌려서 시작하였다. 회사의 규모도 작고 상품을 보관할 장소도 없어서 손님이 원하는 상품이 품절되면 조금 떨어진 창고로 뛰어 다니며 힘들게 일하였지만,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새로운 판매방식을 생각해냈다. 메리케이는 화장품 판매에 뷰티컨설턴트를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뷰티컨설컨트란 단순히 화장품을 파는 판매원이 아니라 피부 관리 전문가를 의미한다. 이들은 회사에서 상품을 직접 구매하고 독립적으로 상품을 판매하였다. 메리케이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하여 기존의 방문판매는 이미 낡은 기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판매원이 고객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화장품을 찾는 쪽으로 판매방법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컨설턴트가 ‘뷰티쇼’를 개최하여 잠재고객들을 모으고, 그들 각자에게 적합한 상품과 올바른 사용법 및 그 효과를 직접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기존의 화장품 회사들이 백화점 등에서 제품을 판매할 때, 메리케이는 여성들의 집에서 뷰티쇼를 개최하고 그 자리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다. 여성들이 직접 화장을 하는 곳이 화장품을 판매하는 가장 편안하고 좋은 장소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댈러스에서 메리케이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시내의 여러 백화점에서 메리케이 매장을 설치하자고 제안하였으나 이를 모두 거절하였다. 또한, 당시 스탠리 홈 프로덕트와 같은 방문 판매회사들이 수십 명의 고객들을 불러 놓고 모임을 갖곤 했지만 메리케이는 5~6명의 고객들을 대상으로 모임을 가졌다.


소수의 고객들을 대상으로 뷰티쇼를 개최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접대할 만큼 충분한 커피 잔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 흔치 않을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피부 관리나 메이크업 등과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리케이사의 뷰티컨설턴트들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만이 아니라, 고객들의 피부를 평가해주고, 개인의 피부유형에 맞는 화장법을 알려 주었다. 고객들에게 적합한 상품과 올바른 사용방법을 알려주면 상품판매가 저절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은 현실로 나타났다.


5,000달러를 투자하여 시작한 조그마한 사업이 창업 1년 만에 20억 달러의 매출이라는 경이적 성장으로 나타났다. 메리케이 화장품은 1963년 9명의 판매원으로 시작하였으나, 설립 2년이 채 못 되어서 종업원이 1만 명으로 늘어났다.


                                    땅벌의 기적


메리케이는 스탠리 홈 프로덕트에서 자신의 의욕에 불을 붙인 연례행사를 그녀의 회사에 도입하였다. 이 연례모임을 통해서 뷰티컨설턴트들이 서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하고, 우수한 성적을 올린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성공의 사다리”라는 독창적인 시상제도를 마련하였다. 판매수수료 수입과 같은 금전적 보상뿐 아니라 다른 형태의 보상과 인정을 받을 때 자부심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여, 다양한 보상방법을 도입하였다.


최고의 성과를 올린 직원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은 땅벌모양의 다이아몬드 핀이다. 메리케이는 땅벌이 여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생각하였다.


기체역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 의하면 땅벌은 몸통이 무거운데 반해 날개가 약하기 때문에, 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벌은 기적처럼 날아다닌다.


메리케이의 눈에는 마치 만물이 땅벌을 향하여 ‘너는 날아서는 안돼’라고 이야기하지만, 창조주 하나님만은 ‘넌 날 수 있어’라고 속삭이는 것 같이 보였다. “땅벌은 꼭 우리여성들 같아요.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열심히 오르지만 결국은 정상에 오르거든요”라고 말하곤 했다.


핑크색 캐딜락은 최고의 컨설턴트들에게 수여하는 또 다른 선물이다. 오늘날 만 명이 넘는 메리케이사의 뷰티컨설턴트들이 핑크색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데, 이제는 ‘메리케이 핑크’란 색상명이 캐딜락을 생산하는 GM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메리케이사에는 칭찬이 사람들에게 의욕을 북돋우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인식 하에 ‘연례모임’과 ‘월요미팅’을 개최하고 있다. 댈러스에서 열리는 연례모임에는 4만 명 이상의 컨설턴트들이 함께 모이는데, 이곳에서 메리케이는 누가 신참인지 쉽게 알아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냥 의자에 앉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그저 듣기만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십중팔구 신참 컨설턴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임이 끝날 무렵이 되면 신참과 고참 컨설턴트들이 함께 손뼉치고 노래하는 화합의 축제로 변한다. 이 모임에서 메리케이는 탁월한 판매성과를 올린 컨설턴트들에게 칭찬과 더불어 축하의 선물을 증정한다.


연례모임과 더불어 메리케이사는 컨설턴트들을 위한 월요미팅을 만들었다. 메리케이는 컨설턴트들에게 “만약 지난 주 당신의 실적이 좋지 못했다면 여러분들에게 세일즈미팅이 필요합니다. 또한, 만약 실적이 좋았다면 세일즈미팅이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라고 말하며, 열정을 불어 넣었다.


메리케이는 뷰티컨설턴트들의 표정에 따라 판매에 많은 변화가 있으므로, 항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라고 권유했다.


월요미팅은 컨설턴트들이 지난주에 있었던 판매 성공사례에 관하여 서로 정보를 나누기 위한 시간이다. 한 사람의 발표가 끝나면, 곧 다른 사람이 지난주에 겪었던 신나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난주에 실적이 저조했던 컨설턴트들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자랑을 듣노라면, “그녀가 그것을 할 수 있다면, 나 역시 그것을 할 수 있다”라고 마음을 다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회사의 사가를 부름으로써 사기를 고조시키고 소극적인 마음을 적극적인 마음으로 바꾼다. 처음 월요미팅에 참석한 사람들은 마치 교회 부흥회에 참석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즐겁고 신나서, 미팅을 마치고 다시 돌아갈 때에는 서운한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고 말한다.


메리케이는 적극적인 마음과 태도가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치며, 자신이 세일즈우먼으로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믿는다면, 그런 자신감이 고객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에 늘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라고 메리케이는 말한다. 병에 걸린 여성이 회복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한 가지 신호는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을 하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아름다워지면 기분도 좋아지므로 늘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고객을 대하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아담은 습작, 이브는 작품


메리케이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남성들은 “당신은 여자처럼 생각하는군요”라고 말하며, 여자처럼 생각하는 것이 마치 뭔가 잘못된 생각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맹세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여성처럼 생각한다는 것이 부채가 아니라 자산이 될 것이다”라고.


그녀는 여성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유리하며, 하나님이 여성에게 주신 특별한 자질 중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이브를 만드셨으나, 얻어맞고 두려움에 떨며 위협당하도록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또한, 아담이 1달러를 벌 동안, 이브는 75센트만 벌도록 만드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음, 괜찮은데. 하지만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하시면서, 다시 창조하신 것이 우리 여성입니다”라고 직원들에게 말하곤 했다.


메리케이의 뷰티컨설턴트들은 모두가 독립된 사업가들이다. 일하는 시간도 각자가 정하며, 지정된 판매구역이 따로 없기 때문에 어디서라도 판매할 수 있다.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고객들이 상품을 찾을 때 즉시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메리케이는 뷰티컨설턴트들에게 고객들의 요구를 지체 없이 충족시키기 위해 10여 가지의 상품을 항상 가지고 다닐 것을 권하였다.


뷰티컨설턴트들은 자신들이 판매할 상품을 현금으로 구매한 뒤, 이를 팔기 위해 고객들의 집에서 뷰티쇼를 개최하고, 여기에 참석한 고객들 역시 필요한 상품을 즉석에서 현금으로 구매한다. 메리케이가 생각해 낸 이러한 아이디어는 큰 성과로 나타났다. 현재 미국에서 일하는 여성 가운데 연간 10만 달러이상의 고소득을 올리는 사람은 3%에 불과한데, 그 중 90%이상이 메리케이의 뷰티컨설턴트들이라고 한다.


매리케이는 탁월한 지도력이란 단 한명을 지도하든 수만 명을 지도하건 간에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말하기 보다는 듣기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귀는 두 개, 입은 하나로 만드셨다”고 연설하곤 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학교에서 읽기와 쓰기, 말하기는 배우지만, 듣기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않는다. “듣기”는 커뮤니케이션의 기술 중에서 가장 경시되는 부분이지만, 스티븐 코비의 이야기처럼 “먼저 경청한 다음 설득에 나서는 것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메리케이는 1981년 자서전 「메리케이(Mary Kay)」의 출판을 시작으로 1984년 「메리케이의 인재관리(Mary Kay on People Management)」, 1995년 「당신은 그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다(You Can Have It All)」를 출판하였는데 모두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1995년에 출판된 「당신은 그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다」라는 책에서 슈퍼우먼이 되려는 여성은 감당하기 힘든 여러 가지 목표를 세워서 어리석게 이들을 동시에 달성하고 싶어 하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메리케이는 항상 “여성이여, 우선순위를 정하라”라고 외친다.


그녀는 아름답고 행복한 삶은 하나님과 가족, 일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확신하고, “하나님이 첫째, 가족이 둘째, 일은 셋째”라는 우선순위를 정하였다. 직장이란 삶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가정이 없다면 일하는 의미가 없다. 또한, 하나님과 가정을 우선한다고 해서 일에 소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성공은 자신감에 비례한다


메리케이는 다른 어떤 여성기업가들보다도 많은 시련을 겪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병환으로 인한 가정경제의 고난, 첫 남편과의 이혼 후 세 명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일터를 찾아 나서야 했던 일, 남성중심의 직장생활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좌절, 첫 사업을 준비하고 있을 때 후원자가 되어주었던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망 등 갖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역경에 굴하지 않고 큰 성공을 만들어갔다.


어린 시절 시절 “그래, 너는 그것을 해낼 수 있어!”라는 어머니의 격려는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메리 케이는 늘 자신감과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했다. 1985년 10월 20일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만약,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한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1980년 세 번째 남편이었던 맬 애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 비영리 단체인 메리케이 애쉬 자선재단을 설립하여, 여성들에게 발병하는 유방암, 난소암, 자궁암 등의 진단과 예방 및 치료를 위한 기금을 출연하였다. 이처럼 메리케이는 사회에서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여 존경받는 기업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1987년 메리케이가 아들 리처드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나자, 사람들은 회사의 앞날을 자연스럽게 논하게 되었다. 마법사가 자리를 떠나는 순간 마법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대두되자, 어느 고위경영진은 “교회와 같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메리케이의 가르침은 영원합니다”라고 말했다.


1995년 한 인터뷰에서 메리케이는 자신의 사명을 이렇게 해석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 자리로 이끄신 게 아닌가 생각해요.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의 존귀함을 깨우치도록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그날까지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존귀함을 깨우치도록 돕겠습니다.”



 

 

 

 

                                     메리 케이 애쉬 여사 
                                                      출처 카페 > 메리케이화장품은 / 매리케이
                                                                    원본
http://cafe.naver.com/omr1102/61

  어린나이에 병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면서 집안일을 꾸려나가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자랐으며,어려움속에서도 고교를 전과목 A학점으로 졸업 하였으나 대학

 진학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17살에 지역음악가와 결혼하여 7년동안 세 자녀를 낳았으며 일을 하려

하였으나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였었다.

 

 

  1930년대 중반 아동용책을 팔러온 여성판매원에게서 책10질을 판매하면 한

질을 무료로 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친구들에게 연락하여 이틀 만에 모두 팔았

다. 책을 보고 구입한 친구는 단 한 사람도 없었으며, 오로지 열정뿐이였고 그

후 9개월 동안 총 2만5천달러 어치의 책을 팔았다. 자신의 판매능력을 발견

한 그녀는 판매부분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 하였다.

 

  2차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남편은 이혼을 요구 하였고 3명의 자녀를 혼자 키우게 되었다. 이혼후 모든면에서 실패하였다고 회의를 느꼈었지만 7년 동안 3 자녀를 혼자 키우면서도 판매직원 10명을 관리하는 간부가 되었고 더 좋은 회사로 옮겼다. 아이들도 엄마를  거들었고 3 아이들은 자신들의 관심분야로 진출하였다.

 

 

  한편 회사의 교육담당 국장으로 있던 그녀는 출장에서 돌아온후 남자부하직원이 자신보다 높은 자리로 승진한 사실을 발견하였고 그후에도 좋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녀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처리했다고 할지라도 여자한계점을 깨달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45세의 메리케이는 직업도 양육할 자식도 없었고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메리는 "그 때보다 더 비참한 시절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체안치소에서 나와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유령과 같았다."라고 표현하였다. 우울증 치료를 위해 메리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과 극복해야 할 것들을 종이에 적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동안의 판매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모아, 경영에 관련된 책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이 책의 개요로 "꿈의회사"라고 규정한 일련의 요소들을 정리하다가 직판회사를 직접 설립하기로 하였다. 수십 년 동안 남성 위주의 기업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일터에서 남편없는 어머니로 일하면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회사를 운영하기로 했다.  그녀는 회사의 조직을 시간제로 운영하면서 종업원들이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마음속의 최대의 목표는 "여성들에게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였다." 꿈의 회사에 대한 뼈대를 세우면서 메리는 판매품목을 정해야 했다. 그러던 중 피부와 연관된 사업을 떠올리게 되었으며, 메리케이 판매원이나 컨설턴트들을 통한 `메리케이뷰티쇼`라는 친근한 파티를 열어 상품을 구매자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판단하도록 했으며 직판회사생활에서 겪었던 불공정한 경험들을 자신의 종업원들에게는 겪지 않게 하기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재혼한 남편과 함께 사업을 준비하던중 회사가 문을 열기 한 달전 남편 조지가 아침식사후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으며 1963년 9월 13일에 메리케이회사는 출발을 하게 되었다.

 

  다른 직판회사들은 판매원들의 빚으로 인하여 문을 닫았지만 철저히 현금거래를 관리해온 메리케이회사는 오히려 급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손익계산서는 사람과 사랑이다. 
                                                           출처 카페 > 색깔있는 자기창조 / 장비
                                                                         원본
http://cafe.naver.com/iamceo/400

손익계산서는 사람과 사랑이다. 
 
메리케이 애쉬는 회사를 한 가족으로,
즉 영원히 함께 해야 할 유기적 공동체로 보았다.
그녀는 P&L이 ‘손익계산서(P&L : Profit & Loss, 혹은 PL)’가 아닌
‘사람과 사랑(People & Love)’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메리케이 애쉬 회장은 이익은 중요하지만,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직원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하여 신뢰와 충성의 고리를 만들고,
직원의 가족에서부터, 수천만명의 고객까지를
하나의 가족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기업의 궁극적 목적이라 생각했습니다.

=== 조영탁의 행복한 경영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