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무덤 된 임상3상, 선진국 대학·연구소와 손잡아라
[중앙일보] 입력 2020.06.05 00:04 수정 2020.06.05 00:54
포스트 코로나 한국 산업의 길 ② 위기 속 기회 맞은 K바이오 〈하〉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도입한 국내 기업 중 하나인 유한양행의 중앙연구소 연구원이 신약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유한양행]
“처음부터 글로벌 제약사는 없습니다. 그들도 처음엔 스타트업으로 시작했습니다. 노력하고 좌절하다 기술 수출한 노력이 쌓여 대박으로 이어진 겁니다.”
수천억 드는 임상시험 엄두 못내
해외 맡겼다 파트너사에 휘둘려
신약 개발 수조원 들고 10여년 걸려
메가펀드 만들어 리스크 줄이고
경쟁 덜한 RNA치료제 등 공략을
수도권의 한 제약바이오기업 대표의 하소연이다. 이들에겐 꿈꾸는 롤모델이 있다. 글로벌 톱10으로 손꼽히는 미국 바이오제약사 길리어드사이언스다. 1987년 29세의 의사 마이클 리오던이 바이오벤처로 창업한 회사다. 1996년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를 개발, 글로벌 제약사 로슈에 기술 수출(라이센스 아웃)을 하면서 ‘돈방석’에 올랐다. 길리어드는 최근 다시 한번 대박을 예약하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를 위해 개발했던 렘데시비르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치료제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K바이오가 신약 개발 성공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지난달 한미약품의 3조원 규모 당뇨병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 기술수출 반환과 지난해 신라젠·헬릭스미스 등의 글로벌 임상 실패는 뼈아픈 대목이다.
세계 바이오신약 시장 규모 전망.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특히 한미약품의 경우 임상 실패가 아닌 글로벌 제약사의 전략 변경으로 인한 결과였지만, 힘 없는 한국 제약사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꼽힌다. 국내용 신약은 30여 개 정도가 개발됐지만 모두 합성 의약품인데다가 최근 성적도 부진한 편이다. 30개의 신약 중 13개는 판매가 중단됐고 10개는 연간 매출액이 10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 연간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신약은 5개에 불과하다.
임상 전 기술 수출 매달렸지만 한계
글로벌 신약 개발은 평균 1조~2조원의 개발 비용과 10~15년이라는 장기 개발 기간이 필요하다. 글로벌 기준에 맞춘 임상 시험 경험도 필요하다. 최종 출시 직전 단계인 임상 3상은 K바이오의 ‘무덤’이었다. 3상에서는 1000~3000명의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약물 유효성과 안전성을 최종적으로 검증하는데, 보통 3년 정도가 걸리고 수천억 원이 소요된다. 탄탄한 자금력과 실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글로벌 라이센스 아웃 건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국내 제약사들은 그동안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 수출’이라는 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자체적으로 글로벌 유통망이 없는 국내 제약회사들에게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9~2018년 동안 한국의 53개 기업이 달성한 라이센스 아웃은 총 123건이다. 2018년에만 5조원을 넘어섰다.
라이센스 아웃의 가장 큰 장점은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신약이 성공하면 추가적인 로열티가 들어 오고, 실패하더라도 계약금은 온전히 가질 수 있다. 이를 통해 개발에 들었던 비용을 회수하고, 또 다른 기술을 개발하는 마중물로 쓸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파트너사의 개발 전략 변화나 일방적 계약 파기 여부가 항상 변수가 된다. 한미약품의 기술 수출 반환이 그런 사례다.
국가 차원서 임상시험수탁기관 키워야
글로벌 CRO 시장 전망.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연구개발(R&D) 투자의 한계를 극복하고 라이센스 아웃을 뛰어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제약산업은 매출액 대비 R&D 비중(글로벌 상위기업 기준 약 18%)이 일반 제조업(3.1%)에 비해 높은 기술 집약 산업이다. 특히 글로벌 10대 제약사의 경우 국내 10대 제약사보다 R&D에 80배 이상의 자금을 투자한다. 국내 기업의 자체적인 R&D만으로 글로벌 제약회사와의 기술 격차를 극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선진 연구기관과의 공동 연구 네트워크 구축 등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 중요한 전략으로 꼽힌다. 이는 벤처나 대학, 연구 기관과 컨소시엄을 구축하는 등 외부 전문가와 협업하는 기술 확보 방식이다. 주로 후보물질 발굴 단계에서 경쟁력 있는 기술을 도입해 함께 가치를 키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해외 기업과의 M&A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김태억 전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 사업본부장은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완전히 혁신적인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야 한다”며 “경쟁이 치열한 항체 분야 외에 RNA 치료제나 핵산 치료제 등을 공략하는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여러 주체가 자금을 모아 다수의 신약 개발 프로젝트에 나눠 투자하는 ‘메가 펀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흥열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센터장은 “미국에서조차 혁신 신약에 대한 R&D투자가 줄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사실상 하나의 기업이 신약 개발 전 과정의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신약개발의 리스크를 금융공학적으로 감소시키는 ‘메가펀드’를 조성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 생태계 측면에서는 신약 개발에 필수적인 임상시험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을 국가 차원에서 키울 필요성도 제기된다. 제약회사들이 라이센스 아웃을 하지 않고 직접 임상3상까지 진행할 경우 글로벌 임상을 CRO에 위탁하는데, 이때 글로벌 CRO의 입맛대로 휘둘리는 경우가 나오기도 한다. CRO를 통제하고 결과를 분석해 정확하게 원하는 바를 요구할만한 경험이 없어서다.
K바이오의 신약 개발도 결국 글로벌 시장을 향한 치밀한 산업전략이 필요하다. 채수찬 KAIST 대외부총장은 “과거 국내 기업들이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내다보고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을 일궈냈던 것처럼 바이오도 글로벌 솔루션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단번에 황금알 낳는 거위 아닌데…투기자본 때문에 R&D 어려움”
[중앙일보] 입력 2020.06.05 00:04 수정 2020.06.05 00:55
포스트 코로나 한국 산업의 길 ② 위기 속 기회 맞은 K바이오 〈하〉
송형곤 젬벡스앤카엘 대표가 28일 분당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경기도 성남 서판교에 있는 코스닥 상장사 젬백스앤카엘은 바이오제약 중소기업의 신약 도전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신약 후보물질 ‘GV1001’이 이 회사의 희망이다. 노르웨이의 바이오벤처가 처음 개발한 이 물질은 국제학술지 캔서리서치에 게재돼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영국에서 항암제로 임상 3상까지 진행된 상태였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헐값에 매물로 나왔다. 젬백스앤카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수했다.
송형곤 젬백스앤카엘 대표 인터뷰
노르웨이서 신약 후보물질 사들여
반도체필터서 번 돈 고스란히 쏟아
송형곤(사진) 젬백스앤카엘 대표는 지난달 28일 인터뷰에서 “당시 현지 언론에서는 젬백스를 매각하는 것은 북해의 유전을 내주는 것보다 더 심한 짓이라는 성토가 나올 정도였다”며 “GV1001은 알츠하이머병와 전립선비대증·췌장암 등 세 가지 질환에 대한 치료제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 알츠하이머병은 국내에서 2상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현재 3상 임상시험을 준비 중이다. 미국에서도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2상 임상시험의 허가를 받은 상태다. 다만 코로나19팬데믹으로 인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립선비대증은 국내 3상 임상시험 진행 중인데 모집 예정 환자 417명 중 190명이 현재까지 등록했다. 췌장암의 경우 3상 임상시험을 종료한 상태로 내년 상반기 정식 허가가 목표다. 송 대표는 “이 세 가지 치료 분야 가운데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가장 임팩트가 크고 회사에서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중앙일보] “단번에 황금알 낳는 거위 아닌데…투기자본 때문에 R&D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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