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 논설위원의 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코로나 이후 승승장구 이 회사, 정년이 100세라는데
[중앙일보] 입력 2020.05.22 00:35
온라인 교육기업 휴넷 조영탁 대표
휴넷 창업 20주년을 맞아 사옥 한 벽면에 그린 2050년 미래 비전 개념도 앞에 선 조영탁 대표. 조 대표를 포함해 50명이 1000만원씩 투자해 만든 이 회사는 지금 매출 450억원짜리 회사로 컸다. 코로나 이후 더욱 성장이 가팔라졌다. 김성룡 기자
지금은 상상조차 어렵지만 불과 30여 년 전, 그러니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SKY 명문대생들은 아무 기업이나 골라 들어갔다. 1988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반이던 이 남학생도 그랬다. 한 교수님이 “금호 회장님이 훌륭하시니 거기서 일해봐라”고 추천하길래 금호그룹 입사를 ‘결정’했다. 평생직장 개념이 깊게 뿌리박혀 있던 시절이었는데도 삼성이나 LG 같은 다른 대기업과 견줘 더 마음에 드는 회사를 찾을 노력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달라질 교육 대비 매년 100억 투자
코로나로 완고한 교육시장에 균열
예상보다 빨리 에듀테크 시대 열것
수평적 조직 갖춰야 성장도 가능
힘들게 들어가기는커녕 입시시험도 안 치르고 들어간 직장이라 그랬을까. 이보다 더 게으를 수는 없었다. 위계질서 엄격한 대기업 신입사원이 출근도 제때 안 했다. 매일 5분씩, 10분씩 지각을 밥 먹듯 했다.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무슨 특권처럼 표출했다. 그런 그가 한순간의 경험을 통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전쟁이나 질병 같은 극적인 사건을 겪은 게 아니다. 그저 평범한 회식 자리였다. 더 정확히는, 수학과 출신의 3년 차 선배가 “새벽까지 술을 마시더라도 어김없이 오전 6시 30분에 회사에 나와 남들 출근시간 전까지 경영 공부를 한다”며 지나가듯 던진 말 한마디였다.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금호에서 퇴사한 1999년까지 10년 동안을 매일 오전 6시 30분에 출근했다. 당시는 주 6일 근무제였는데 일요일도 거르지 않고 1년 365일을 매일 출근했다. 행동(지각에서 일찍 출근하기)을 바꾸니 마인드가 덩달아 바뀌었다. 소극적인 자세로 뭐든 수수방관하던 문제 사원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모범 사원으로 탈바꿈했다. 나중엔 경영대학원 다니며 동시에 공인회계사 자격증까지 땄다. 그렇다고 회사 일을 소홀히 한 것도 아니다. 평균 14년 걸린다는 차장 승진을 7년 만에 해냈으니 말이다.
금호 퇴사 후 온라인 교육기업 휴넷을 창업한 조영탁(55) 대표 얘기다. 조 대표는 “사람은 정말 바뀌기 어렵지만 어떤 계기만 있다면 단 0.3초 만에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며 “선배의 말 한마디가 내 인생을 바꿨듯이 지금은 코로나19가 완고하게 변화를 거부해온 오프라인 중심의 국내 교육 시장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고 했다. 서울 구로구 디지털단지에 있는 휴넷 본사에서 조 대표를 만나 코로나 이후 달라질 세상에 대해 물었다.
코로나 이후 대학과 초·중·고 교실까지 온라인 수업이 접수했다. 기업교육 쪽도 온라인 수요가 늘었나.
“재택근무가 본격화하면서 신규 온라인교육 신청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3월 학습자 수는 2월보다 188.4% 늘었고, 4월엔 여기서 117.9%가 늘어 50만명을 넘어섰다. 기업들이 올해 안에 끝내야 하는 필수의무교육을 앞당겨 진행한 것도 한 요인이지만 신입사원 교육이나 승진자 교육처럼 꼭 오프라인(대면)으로만 진행하던 걸 온라인(비대면)으로 대체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특히 실시간 온라인 강의에 대한 수요가 늘어 라이브 중계기가 부족할 정도였다. 강의 중간에 다운되거나 버퍼링 없이 2000여 명을 상대로 라이브 강의를 진행한 적도 있다.”
코로나 전부터 미리 준비를 해왔다는 얘기인데.
“금호 미래기획단 재직 시절 미래학 서적을 읽고 미래 전략을 짜는 게 내 일이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웬만큼 잘 예측해왔다고 생각했는데 2015~16년 즈음 뭔가 불안했다. 내가 감지 못한 새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집어 든 게 미래학자 제임스 캔턴의 『퓨처 스마트』였다. 교육의 형태가 송두리째 달라질 거라는 내용을 읽고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때부터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서 지난 4년간 연평균 100억원(2019년 매출은 453억원)씩 투자했다. 미래는 한발만 앞서가도 모든 것을 선점할 수 있지 않나. 그런 면에서 행운이었다.”
코로나 이후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까.
“수천 년 지속해온 오프라인 교육의 효과가 1이라면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는 이러닝은 10배, AI 등 IT 기술과 결합한 에듀테크는 10만배 효과가 있다고 본다. 영국 정부가 연간 2조원 규모의 에듀테크 바우처 예산을 마련해 학생들이 학교 수업과 병행해 다양한 에듀테크를 경험하도록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분명한 효과 앞에서도 변화에 저항하는 관성 탓에 국내에선 에듀테크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았다. 코로나 직전까지 공교육의 100%, 기업교육 시장의 90%가 오프라인 강의였다. 아주 서서히 바뀔 거라 생각했는데 코로나가 이 완고한 시장에 대균열을 만들어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일부는 오프라인 강의로 다시 돌아가겠지만 그 이전의 세상과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코로나가 인류에 큰 고통을 주고 있긴 하지만 교육에는 정말 좋은 기회가 됐다.”
국내에선 규제가 발목을 잡는데.
“맞다. 2013년부터 아주대와 사이버 MBA를 진행했다. 처음엔 전 강의가 온라인이었다. 경쟁 학교들 로비 탓인지 교육부가 느닷없이 온라인 강의 비중을 50% 이하로 낮추더니 2018년엔 ‘수업 질 관리를 한다’며 고등교육법 시행령까지 개정해가며 20%로 제한했다. 사이버 대학 외에 KAIST와 서울대가 시범적으로 한 것 외에는 대학들이 사이버 강의를 전혀 안 하던 시절인데 굳이 법까지 바꿔가며 규제를 한 거다. 코로나 이후 지금은 어쩔 수 없이 100%로 풀었고, 향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한다는 뉴딜에 에듀테크가 포함돼 있다. 교육부와 고용부·기재부·중기부가 TF를 만든다 하니 대학은 물론 공교육도 바뀔 거라 믿는다.”
온라인 강의 콘텐트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지식 주입식으로 배운 내용은 하루 이틀만 지나도 80%를 까먹는다는 ‘어빙하우스 망각 곡선 이론’이 있다. 복습 없는 대면 주입식 수업은 비효율적이라는 얘기다. 오프라인 수업을 온라인으로 그대로 옮겨오는 게 아니라, 지식 전달을 위한 수업은 온라인으로 먼저 하고 오프라인에서는 토론식 수업을 병행하는 식이 돼야 한다. 또 AI가 복습해야 하는 주기를 일러준다는지 하는 식으로 교육을 혁명적으로 바뀔 수 있다. 가령 수업 2시간 후 수업 요약본을 보내주고, 2주 후 관련 과제를 내주고, 2달 후 다시 반복해 완전학습이 이뤄지도록 도와주는 거다. AI가 개인별 학습수준이나 일으킬 문제를 미리 파악해 학습 거리를 던져주는 예측학습도 2027년이면 상용화된다고 한다. 꼼짝하지 않던 기업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휴넷 본사에서 진행중인 라이브 강의. 코로나 이후 실시간 온라인 수업에 대한 기업들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
시대를 앞서가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1999년 직원 3명으로 창업할 때부터 주 5일제를 도입했고, 직원 350명이 된 지금은 4.5일제 주 36시간제를 하고 있다. 오전 8~10시(코로나 이후 7~11시)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는 자율출퇴근제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정부가 주 52시간을 제도화하면서 어쩔 수 없이 출퇴근 시간을 체크하고 있다. 오히려 주 52시간제 강제 도입으로 직원들의 자율성을 훼손하게 된 셈이다. 이밖에 근속 5년마다 주는 한 달의 유급휴가(학습휴가) 등이 있다. 회사 정년은 100세다.”
정년이 100세라고?
“창업 초기 총무 담당 직원이 노동부에 정년을 몇 살로 써내야 하느냐고 묻길래 ‘정부가 그런 것까지 간섭하나’ 싶은 반발심에 ‘100세로 하라’고 했더니 실제로 100세로 등록을 했다더라. 이때부터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연공서열이 아니라 창출하는 부가가치에 따라 연봉을 조정하는 방식이라면 정년 100세를 못할 것도 없다고 판단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직원이 없으니 아직은 상징적 측면이 강하지만 현실로 못 만들 이유가 없다.”
사장실이 따로 없더라.
“금호에서 일할 때 수직적 서열구조가 너무 싫었다. 결제만 12단계였다. 당시 회장님이 한자(漢字)에 꽂혀있어서 결제 서류를 온통 한자로 만들었는데, 직원이 만들어 올리면 대리가 틀린 거 고쳐 다시 만들고, 과장·차장·부장이 각각 이 과정을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건 결제 하나 올리는데 9개월, 다시 내려오는 데 3개월이 걸리더라. 수평적 조직을 만들기엔 공간을 섞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중점적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분야가 생기면 그 팀에 가서 앉는다. 해보니 장점이 많다. 직원끼리 떠드는 소음도 다 정보다. 4~5년 전엔 고객 중시를 강조하려고 콜센터에서 100일가량 근무하기도 했다.”
앞으로 목표는.
“누구나 손안에 대학 하나씩 들고 다니는 세상이 에듀테크가 만드는 세상의 모습인데, 그 중심에 서고 싶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