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한강 이후 싹트는 문학 한류
한국문학 수입 전문 출판사 생기고
국내 출판사 직접 작품 세일 나서
외국 출판사 수입 경쟁 붙기도
“학자 겸 번역자 키워야 오래 간다”
해외 문학 에이전시가 국내 에이전시를 끼지 않고 한국 작가를 직접 외국에 소개하는 현상도 이전에는 없었다. 영국인 켈리 팰커너가 2013년 설립한 아시아리터러리에이전시(asialiteraryagency.org)는 국내 소설가 배수아·천명관·한유주·김이설을 소속 작가로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의 중개로, 배수아의 장편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가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 번역자인 데버러 스미스의 번역을 통해 현지시간 5일 영국에서 출간됐고, 천명관 장편 『고래』를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의 번역자인 재미 변호사 김지영씨가 2022년 출간을 목표로 번역 중이다.
이런 변화는 출판 계약에 반영된다. 한국문학을 출판하려는 해외 출판사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출판사들끼리 경쟁이 붙어 계약금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소설가 조남주와 김혜진이 그런 경우다. 2016년 가을 출간돼 지난해 가을 국내 판매 100만 부 판매를 찍은 조남주의 페미니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미국의 출판 공룡 사이먼앤슈스터의 계열사인 스크리브너가 수만 파운드 규모의 선인세를 지급하고 영국 판권을 사들였다.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의 소설을 내는 출판사다. 동성애를 다룬 김혜진의 장편 『딸에 대하여』는 영국에서는 3개 출판사가 경합한 끝에 피카도르 출판사가 판권을 가져갔고, 프랑스에서는 명문 갈리마르에서 책이 나온다.
해외가 뜨거워지자 국내 출판사들도 바빠졌다. 민음사는 국내 에이전시의 도움 없이 직접 해외 에이전시를 상대한다. 그만큼 보상이 뒤따른다는 판단에서다. 출판사 창비도 2018년부터 수출 담당 직원을 따로 뒀다. 김혜진의 경우 액수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경쟁이 붙으면 계약금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문턱 높은 일본 시장도 문 열릴 듯
이런 흐름 속에서 조남주 소설이 폐쇄성 높기로 악명 높은 일본 시장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점도 전례가 없던 일이다. 일본에서 2018년 말에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은 지금까지 15만 부를 인쇄했다. 서울대 윤상인 교수(아시아언어문명학부)는 “그동안 한국의 어떤 문학 작품도 일본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고 하기 어렵다. 조남주 소설이 일본 내에서 화제가 된 것은 앞으로 한국소설의 일본 진출에 긍정적인 교두보가 되지 않을까 한다”고 평했다.
이런 변화의 출발점은 역시 2011년 신경숙, 2016년 한강이 거둔 성공이라고 봐야 한다. 아시아리터러리에이전시의 켈리 팰커너는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미국 시장 진출이 해외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혔다면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인터내셔널상 수상은 센세이션이었다”고 표현했다. 신경숙 미국 진출을 성사시켰던 KL매니지먼트 이구용 대표는 “신경숙·한강 이전까지 띄엄띄엄 이뤄지던 한국문학 수출이 이제는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느낌”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그렇다고 문학 한류가 본격화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학은 성격상 K-팝처럼 선풍적인 인기를 얻을 수 없다. 아직 지류 수준이다. 남유선 이사는 “올라야 할 고지가 100이라면 아직 30수준”이라고 했다. 여전히 우리가 알아서 챙겨야 할 몫이 크다는 얘기다. 번역원 고영일 해외사업본부장은 “한국문학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일회성이 되지 않으려면 과거 일본이나 중국처럼 한국문학 작품을 현지 실정에 맞게 맥락화해 한국문학에 대한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학자 겸 번역자를 키워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 방안으로 외국의 한국학 연구자 지원을 지금처럼 외교부 산하 국제교류재단에서 할 게 아니라 문체부에서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