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증권시장에 도는 퀴즈 하나가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보다
위대한 점 세 가지는?”
답은 이렇다.
①잡스가 아이폰이라는 하나의 1등 제품을 탄생시켰다면
이 회장은 반도체·갤럭시폰·스마트TV·디스플레이·선박 등
훨씬 많은 1등 제품으로 세계를 석권했다.
②잡스가 실리콘 밸리라는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환경에서 성공한 반면
이 회장은 기업하기 가장 척박한 곳 중 하나인 한국에서
세계 1등 기업들을 키워냈다.
③잡스가 제품 디자인에까지 개입했지만
이 회장은 조직 내 인재들이 알아서 최고 제품을 만들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잡스가 병석에 눕자 애플 주가가 요동친 데 비해
이 회장이 입원한 뒤로도 삼성 주가는 잘 오르는 이유다.
이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입원한 지 한 달이다.
그룹 리더십의 공백과 후계구도 등을 놓고
우려가 커질 법도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하다.
삼성의 일상 경영과 주요 의사결정은 흔들림 없이 진행되는 모습이다.
이 회장이 닦아놓은 ‘시스템 경영’의 힘이란 해석이 나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삼성은 이미 가족기업을 넘어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했다.
시스템 경영이란 무엇인가? 오너만 바라보지 않고 그룹 각 부문에 포진한 전문경영인들이 확실한 권한과 책임을 갖고 조직을 이끌어가는 것을 말한다. 삼성에서 이게 가능했던 것은 이 회장이 경영 권한을 과감하게 이양한 데 더해 이를 받아 능력을 발휘할 두터운 인재층이 형성돼 있는 덕분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한국의 다른 재벌들도 인재중시 경영을 표방하고 있지 않은가? 삼성의 전·현직 임원들에게 물어봤다. 돌아오는 답은 대체로 이랬다. “이건희식 성과 보상 시스템과 용인술의 승리다.”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대 초, 이 회장은 엉뚱하게 들리는 경영 방침을 밝혔다. “삼성에서 월급쟁이 재벌이 나오도록 하겠다.” 임직원 대부분이 “해보는 말이겠지” 했다. 하지만 진짜였다. 이 회장은 인사·급여 체계를 뜯어고치도록 했다. 큰 성과를 낸 임직원에겐 엄청난 보상을 해주기 시작했다. 출신 지역과 대학을 따지지 않은 인사는 일찌감치 자리 잡은 터였다. 연봉과 스톡옵션을 합해 수십억~수백억원을 버는 사람이 속출했다. 돈은 인재들을 춤추게 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세계 시장을 누볐다. 외국인까지 가세해 갈수록 많은 인재가 모여들었고 조직의 성과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선순환 구도가 자리 잡았다.
이 회장은 일상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대신 인재들을 끊임없이 경쟁시켜 조직의 균형을 꾀했다. 일부 가신에 둘러싸인 측근 경영을 하지 않았다. 전략·재무·감사·연구 등 각 라인별로 보고를 따로 받았다. 이 회장은 과거에 아무리 큰 공을 세웠어도 더 이상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비리·사고를 저지르거나, 파벌을 조성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내쳤다. 그렇게 물러나는 이들도 군말이 없었다. 잘나갈 때 평생 먹고살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삼성식 시스템 경영은 쉬운 듯하면서도 실행하기 힘든 실험이었다. 다른 재벌과 대비되는 이유다. 적잖은 기업 오너들이 측근을 끼고 경영에 시시콜콜 개입하기 일쑤다. 회사 돈을 내 돈으로 착각해 금고가 섞이고, 임직원 성과 보상에도 인색하다. 그러다 가신들에 약점이 잡혀 끌려다니고, 결국 배임이나 횡령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한다.
이 회장은 그룹 지배구조의 미래 청사진도 구상해 놓았다. 150년에 걸쳐 5대째 창업주 가문이 경영권을 승계해온 스웨덴 발렌베리 그룹이 롤모델이다. 오너경영자와 전문경영인, 그리고 일반 주주 등 외부 감시자들이 정립하는 삼각구도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 회장이 쌓아올린 성과와 시스템만으로도 삼성은 향후 10년 정도 큰 문제 없이 굴러갈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그 이후는 이재용 부회장 등 승계자들의 몫이다. 이 부회장 등이 실패를 두려워 말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길 시장은 기대한다. 혹여 눈앞의 일상 경영에 만기친람하기 시작하면 공든 탑은 생각보다 빨리 무너질 수도 있다.
김광기 이코노미스트·포브스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