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 지음
처칠 ‘철의 장막’ 폭로한 연설
드골, 서독 총리와 화해의 담판
흐루쇼프, 스탈린 학정 고발
20세기 후반 격변의 현장 찾아
박제된 위대한 지도력 되살려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되새기는 일은 지혜를 얻는 지름길이다. 중앙일보 대기자인 지은이는 ‘좋고 유능한 지도력’을 찾으려고 오랫동안 세계의 현장을 누볐다. 결정적 순간에 역사를 만든 바로 그 장소다. 현장탐사는 역사 속에 박제된 지도력을 끌어내 오늘날에 활용하는 원천이다.
지은이는 지도력의 구성 요소로 권력 의지와 야망, 승부와 결단, 시대정신과 비전, 역사적 상상력과 대중 장악력, 언어의 생산과 관리를 꼽았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확인한 현장은 의외로 미국 중서부 시골에 있었다. 지은이는 2016년 미국 미주리 주 웨스트민스터대학을 찾았다. 윈스턴 처칠이 1946년 3월 5일 명예법학박사 수락 연설을 하며 ‘철의 장막’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곳이다.
지은이는 이 말이 역사의 틀을 재구성했다고 지적한다. ‘철의 장막’은 인간성 말살을 가져온 소련 체제의 잔혹성과 세력을 확장하려는 공산 제국주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한 수사라고 설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서방 사회에 팽배한 친소련 분위기를 깨고 공산주의에 대항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길을 댕겼다. 처칠은 “우리 운명은 우리 손에 있고, 우리는 미래를 구할 힘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처칠이 예언하자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그 힘으로 소련의 야욕을 막는 행동에 나섰다. 47년 미국이 서방에 대대적으로 경제 원조를 한 마셜 플랜, 서베를린 물자 공수작전, 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설립으로 이어진다. 스탈린의 승인으로 북한 김일성이 50년 6·25 남침을 하자 트루먼은 미군을 급파했으며 대한민국은 적화를 면할 수 있었다.
미국 역사학자 필립 화이트는 ‘철의 장막’을 “20세기 후반의 국제질서를 규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언어”라고 평가했다. 이런 처칠을 두고 소련의 스탈린은 “전쟁광, 음해의 선동가”라며 비난했지만, 서방은 위협의 언어에 넘어가지 않았다. 대신 소련의 야욕을 미리 파악해 대비할 수 있었기에 자유민주주의 세계를 지켰으며 제3차 대전을 방지했다.
지은이는 프랑스의 콜롱베레 되제글리즈라는 시골 마을에서 역사에 끌려가지 않고 스스로 그 고삐를 잡아 이끈 지도력을 확인했다. 샤를 드골 대통령의 집과 묘소, 기념관이 있는 곳이다. “위대하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라며 프랑스인에게 소명 의식을 주입해온 이 위대한 지도자의 묘지는 단순하다 못해 처연했다. 십자가 달린 대리석에 ‘샤를 드골 1890~1970’이라 적힌 게 전부다. ‘내가 곧 역사’라는 자존심과 오기다. 이 시골집에서 58년 9월 68세의 드골은 72세의 서독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를 만났다. 이곳은 전쟁 가해자와 피해자가 적대에서 화해로 가는 출발지가 됐다. 동아시아에도 영감을 주는 곳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를 장기적으로 탐구해왔던 지은이는 이탈리아 피렌체 외곽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거기서 마주친 『군주론』의 한 구절. “군주는 경멸받는 것을 피해야 한다. 경멸받는 것은 변덕이 심하고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생각되는 경우다.” 수많은 통치자에게 ‘지도자의 세계는 결단’이라는 가르침을 준 현장이다.
결단의 현장은 러시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지은이는 2017년 볼셰비키 혁명 100주년을 맞아 현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핀란드역을 찾았다. 모스크바의 역 이름은 기차가 오가는 지역 이름을 딴다. 스위스 망명 중이던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이 러시아와 전쟁 중이던 독일 제국이 마련한 봉인 열차를 타고 핀란드를 지나 도착한 역이다. 이곳에 유물로 전시된 증기기관차는 레닌의 말을 간직한다. “역사는 미적거린 혁명가를 용서하지 않는다.”
20세기 최악의 폭정을 주도했던 스탈린의 권력을 계승한 니키타 흐루쇼프는 56년 소련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미적거리지 않고 독재를 폭로하는 비밀연설을 하며 스탈린 격하 운동을 시작했다. 모스크바의 흐루쇼프 무덤 앞에 선 지은이는 위험을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하는 ‘파르헤시아’의 진수를 목격했다. 지도자는 자신의 의지로 바른말을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소다.
지은이는 2차대전 뒤의 세계와 한국의 운명을 결정한 회담이 열렸던 카이로·테헤란·얄타도 찾아 분단의 뿌리를 캔다. 그 발길은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 이탈리아 파시스트 베니토 무솔리니, 스페인의 군사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일본 우익의 뿌리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등 문제적 인물이 살았던 어두운 장소로도 이어졌다. 문제를 알아야 예방과 치유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눈길이 가는 곳은 대한제국 시절의 미국 워싱턴 공사관이다. 국력의 뒷받침이 없어 좌절했던 외교 현장이다. 지은이가 실존을 확인하고 제보함으로써 한국 정부가 매입해 오늘날 역사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비감이 서린 이 건물은 부국강병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지은이는 지도자란 역사의 연출가이고, 리더십은 그 동력이라고 강조한다. 이 현장 보고서의 의미는 ‘리더십은 역사를 연출한다’는 부제에 함축돼 있다. 한국의 지도자는 역사를 주체적, 능동적으로 이끌 준비가 돼 있는가.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