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예숙이랑 결혼하겠다” 폭탄 선언… 부모님 반대하자 가출/ 홍예숙 사모의 신유의 은혜 <17>

영국신사77 2019. 11. 2. 11:44

“예숙이랑 결혼하겠다” 폭탄 선언… 부모님 반대하자 가출

홍예숙 사모의 신유의 은혜 <17>

입력 : 2019-10-31 00:06
홍예숙 사모는 1995년 2월 부산 창대교회에서 
당시 전도사였던 오창균 목사와 결혼했다.

“예숙이랑 결혼하겠습니다.” 오창균 전도사님은 집에서 가족끼리 대화하다가 폭탄선언을 해버렸다. 교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전도사님의 부모님은 주일예배 후 결혼을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 앞에 아무것도 몰랐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전 교인이 놀랐다. 

전도사님 부모님의 주장은 이랬다. 당신의 아들은 이제 다 나을 수 있는 정상인이고, 담임목사의 딸인 나는 평생 나을 수 없는 몸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에 결혼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 교인이 놀라며 웃었다. 두 분은 아들 전도사를 끌고 가듯 데리고 가버렸다. 며칠이 지나도 전도사님이 나타나지 않았다. 부모님과 같이 집으로 간 뒤로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소식도 없었다.

교인들은 날이 갈수록 궁금해 했다. 말도 많았다. 내 앞이라 그랬는지 “비교할 수도 없는 사람인데, 자기들이 먼저 비교하며 웃기고 있다”고 했다. 이유야 어쨌든 참 괴로웠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속담이 맞았다.

기가 막혔다. 배신감도 들었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전도사님의 어머니 집사님이셨다. 
“내 아들이 장기금식을 하고 있네. 
 순진한 아들 옆에서 꼬시지 말고 좀 놔 주면 안 되겠나.” 
그냥 안수해 주고 사역을 같이하던 사이였을 뿐인데 황당했다.

갑자기 사람이 싫어졌다. 집에서는 또 다른 말이 나를 괴롭혔다. 
“우리 딸이 어때서? 오 전도사 한 트럭 갔다 줘도 안 바꾼다.” 

교인들도 나만 보면 한마디씩 말을 건넸다. 
‘언제 그렇게 가까워졌느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네가 100배 낫다’ 등 내게는 한마디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을 다시 불렀다. 
그러는 상황에서도 환자들은 여전히 몰려왔다. 
기도원으로 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한 달이 지나갔다. 
사건의 파문도 조금 가라앉고 있었다. 
그런데 전도사님이 교회에 나타났다. 
난리가 났다. 
“빨리 나와 보세요. 오 전도사님이 오셨어요.” 
철야기도를 마치고 잠시 누워 쉬고 있을 때여서 만사가 귀찮은 시간이었다. 
이유라도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전
도사님이 집을 완전히 나온 것이었다. 
그의 입을 통해 그때까지 사정을 자세히 듣게 됐다. 
그때부터 알고 싶지 않던, 
그러나 알아야만 하는 문제 속 주인공이 돼버렸다.

전도사님의 아버지 집사님이 아들에게 
부모와 홍예숙 전도사,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해서 나를 택했다고 했다. 
아들의 충격적 고백에 부모님은 다른 교회로 가버리셨다. 
집을 나온 전도사님은 한 학기 휴학까지 했다. 
교회 옆에 방을 얻어 계속 교회에 붙어 있었다. 
밥 먹을 시간만 되면 우리 집으로 쳐들어왔는데 완전 진드기 같았다. 
그의 목표는 담임목사님인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께 결혼을 허락받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어머니는 펄펄 뛰셨다.

몇 달 뒤 또 다른 사건이 벌어졌다. 
서울대 졸업을 앞둔 전도사님의 동생도 집을 나와 버린 것이다. 
동생까지 형의 결혼에 찬성하자 부모님은 노발대발했다. 
“너도 똑같은 놈이야. 집을 나가라.” 
이 한마디에 집을 나왔다고 했다. 
동생이 집을 나온 바람에 오히려 나와 전도사님의 결혼은 빠르게 추진되기 시작했다. 
설마 하던 결혼이 이뤄지게 되자 
전도사님의 부모님이 아들들 모르게 나를 만나자고 하셨다.

그렇게 잘 대해주셨던 집사님들이 하루아침에 굶은 이리처럼 달려들었다. 
매몰차게 몰아쳤다. 
한참 말을 듣다가 무의식적으로 입에서 한마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아, 아니 전도사님이 한참 아플 적에, 
 저 학교 그만두게 하셨을 때 
 ‘내 아들 평생 책임져 달라’고 하신 말씀은 거짓이었습니까.” 
그 말을 건네는 순간, 서로의 관계가 극도로 나빠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목회를 하고 계셨기에 될 수 있으면 좋은 쪽으로 일이 마무리되길 바랐다. 
전도사님의 신학교 동기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다들 결혼해야 한다며 이구동성으로 돕고 나섰다. 
전도사님은 힘을 얻었다. 
부모님을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잠시 하나님의 더 큰 뜻을 위해 헤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결혼을 강행했다. 
우리 부모님도 끝내 허락하셨다. 
온 교인이 연합해 전도사님을 도와줬기 때문이다.

그 무렵 전도사님의 동생도 서울신학대 신대원에 진학했다. 
부모님 밑에 있었더라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집을 나온 바람에 신학교 진학까지 해버렸다. 
부모님 입장에서 보면 서울대를 나온, 
장래가 촉망되는 아들 둘 다 하나님께 빼앗겼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결혼이 빠르게 진행됐기에 준비할 시간도 별로 없었다. 
결혼 날짜는 교회사역과 환자들 안수를 피해서 잡았다. 
1995년 2월 14일, 날짜를 잡고 보니 밸런타인데이였다.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내 가족, 교우들, 몇 명의 지인, 
그리고 오 전도사의 동생과 신대원 동기 전도사들이 결혼식 하객의 전부였다. 
물론 오 전도사의 부모님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보호자가 바뀐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홍예숙 사모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05171&code=23111111&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