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된 내 민족을 어떻게 구원하고 한국교회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은 일생의 과제다. 나는 신앙교육을 통해 이 과제를 조금이라도 이뤄가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게 내 소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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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우리가 처한 사회 안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사회화 과정이다. 단순히 서구 사회의 교육을 모방하거나 이식할 수만은 없다. 그러므로 교육에는 교육 현장에 학생들을 직접 동참시키는 실제적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이상적인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한 교육을 통해 올바른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게 기독교 교육의 사명이라고 믿었다.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토록 하는 것은 각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한다는 의미다. 이로써 더 나은 교회와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 교육자는 사람들이 이를 관념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며 배우게 해야 한다.
사도행전 1장 1절에서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며”라는 구절은 예수님의 가르침 역시 행함이 따르는 교육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도 가르침의 효과를 얻기 위해 실천해 가면서 교육하고자 노력해 왔다.
교육에는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복음의 핵심과 신앙생활의 기본적 가치다. 이는 영원히 변할 수 없다. 그러나 가르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유동적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복음을 깨달아 복음에 기초한 가치를 찾도록 하는 것이다. 그 복음의 가치를 삶의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창의력을 개발하도록 도와주는 게 현대 교육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선배 애국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기독교 교육을 학문으로 배운 일이 없다. 그러나 나라를 살리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지도자 양성의 시급성을 깨닫고 기독교교육에 힘을 모았다. 전덕기 목사의 상동청년학원, 안창호 선생의 대성학교, 이승훈 선생의 오산학교처럼 기독교 학교들을 세워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낙후되고 혼란에 빠진 민족 구원의 길을 열어 왔다.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 일본으로 갔던 박영효 선생이 선교 초기 한국에 입국하려는 윌리엄 스크랜턴 선교사를 만나 부탁한 말이 좋은 표본이 된다. “한국을 살릴 수 있는 길은 헌법을 고치기 전에라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백성을 기독교로 교육하는 것입니다.”
나는 교회와 나라를 살리는 길은 신앙을 생활화한 지도자들을 키우는 일이라 믿고 있다. 나 역시 기독교 지도자 양성에 화급함을 느껴 학문의 부족함을 스스로 알면서도 깊이 있는 학문적 탐구보다 교육에 마음을 더 기울였던 게 사실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의 교회가 이런 소명을 안고 있는 내게 통로를 열어줘 평생 이 일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해 주신 데 대해 하나님과 교회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내가 1970년대에 맡은 과제는 여성들의 신학교육이었다. 당시 총회 결의에 따라 신학교에서 여전도사를 교육하도록 하고 초급대학 과정을 개설해 내게 책임을 맡겼다. 숭실대를 떠날 수 없다고 했더니 숭실대와 장로회신학대가 협의해 각각 ‘반 전임’으로 가르치도록 결정했다. 두 학교의 짐을 지고 번갈아 강의하러 다닐 수밖에 없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