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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의 리더십 탐구] 몸으로 부대낀 정주영 소통법, 3·4세대들도 제 방식 찾아야

영국신사77 2019. 2. 1. 17:30
[김경준의 리더십 탐구] 몸으로 부대낀 정주영 소통법, 3·4세대들도 제 방식 찾아야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입력 2019.01.29 03:12 

스티브 잡스는 독특한 패션과 프레젠테이션으로 대중 흡인
손정의·리카싱도 조직 안팎과 긴밀 소통하며 일체감 형성
리더는 내면 에너지와 외부 이미지 결합해 '비전' 보여야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미국 역사상 외모가 가장 대통령답다는 평가를 받았던 워런 하딩(1865~1923년)은 최악 대통령으로도 손꼽힌다. 키 큰 미남에 좋은 목소리로 인기가 높아 60%가 넘는 지지율로 당선된 그는 취임 후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이 드러났다. 또 측근들의 부정부패까지 겹쳐 지탄받았다. 화려한 외양으로 허망한 실체(實體)가 가려지는 현상을 일컫는 '하딩의 오류(The Warren Harding Error)'라는 심리학 용어가 생겨날 정도의 참사였다.

사람은 대개 논리보다 이미지에 강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리더로서 가장 바람직한 모델은 역량도 뛰어나고 이미지가 좋은 사람이다. 반면 이미지는 멋져도 능력이 부족한 리더는 공동체를 수렁에 빠뜨린다. 자질이 훌륭해도 부정적 이미지가 새겨진 리더의 성과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리더의 역량과 이미지 일치 여부가 조직에서 희극 또는 비극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소규모 공동체로 살던 과거에는 인간관계가 단순했다.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인간은 진화하면서 생물학적 뇌 용적(容積) 및 집단 생존의 최적점에서 150명 내외로 집단을 형성했다"고 밝혔다. 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정착촌에서 18세기 산업혁명 당시 영국 농촌까지 변함없었고, 고대 로마 군단의 백인대(百人隊·centuria)와 육군 중대병력이 120명 내외인 데서도 드러난다. 지금도 150은 조직 내부에서 직접 의사 소통하고 상호 관계를 맺는 자연적 단위인 '던바의 수(Dunbar's number)'로 불린다.

소집단에서는 리더와 구성원 간에 일상적 스킨십이 자연스레 이뤄져 '실제'와 '이미지'의 간극(間隙)이 거의 없다. 하지만 조직 규모가 커지면 구전(口傳) 등에 따른 이미지와 평판이 한층 중요해진다. 특히 조직이 거대·복잡해지고 글로벌 차원에서 실시간(實時間)으로 정보 유통이 이뤄지는 디지털 시대에는 정치인·연예인은 물론 비즈니스맨, 스포츠 스타, 학자 등까지 이미지와 평판 관리에 따라 생사(生死)가 크게 달라진다.

[김경준의 리더십 탐구] 몸으로 부대낀 정주영 소통법, 3·4세대들도 제 방식 찾아야
/일러스트=이철원
21세기 들어 이런 측면에서 가장 성공적인 이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이다. 터틀넥 스웨터에 청바지와 운동화를 착용하고 정교하게 구성된 스토리라인의 프레젠테이션으로 그가 하는 신제품 발표 무대는 언제나 대중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면(裏面)에 독선적 스타일과 성격적 결함 등 인간적 약점도 많았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과 현실을 타개하는 강인한 의지가 부각된 그의 이미지는 혁신의 상징이 됐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은 매년 열리는 '소프트뱅크 월드' 행사 때마다 단상에 올라가 실적을 발표하고 전략과 비전을 직접 제시한다. 자사 연수원인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에선 강사로 나와 직원들을 교육한다. 홍콩 청쿵그룹의 리카싱 회장은 최근까지 분기 실적 보고회마다 참석해 직접 발표와 질의 응답을 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겸 회장은 매년 여름철 경포대 등에서 열리는 신입 사원 수련회에 참석해 청년 사원들과 샅바를 부여잡고 함께 씨름했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젊은이들과 모래밭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리더이자 동반자로서 강한 일체감과 유대 의식을 이룬 것이다. 이는 모두 조직 안팎과 소통하며 이미지를 구축하는 리더 나름의 방식이다.

하지만 창업 세대에서 3대, 4대로 내려오고 전문경영인 체제가 등장하면서 리더와 조직원 간 심리적 거리는 예전보다 멀어지고 있다. 커뮤니케이션팀, PI(Personal Identity)팀 등을 운영하지만 화초(花草)의 세련됨은 있을지언정 생동감이 떨어진다. 본체를 이미지로 포장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리더십은 내면의 '자질'과 외부의 '추종'이란 접점에서 빛을 낸다. 리더란 따라서 부 단한 성찰과 정진으로 내적 에너지를 강화하는 데서 출발해 외적 소통을 통한 긍정적 이미지 형성으로 조직에 동기(動機)와 비전을 부여하는 존재다. 만약 고(故) 정주영 회장이 환생(還生)해 2019년 다시 조직의 리더로 일한다면, 그는 어떻게 이미지를 연출할까. 지금이야말로 리더마다 자신만의 소통과 이미지 구축 방식을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행해야 할 때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28/20190128026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