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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chosun] 주혜란 경기도의 힐러리 고깃집 주인 되다/ 2007.11.09

영국신사77 2017. 12. 4. 13:20

[weekly chosun] 주혜란 경기도의 힐러리 고깃집 주인 되다

입력 : 2007.11.09 20:16 | 수정 : 2007.11.11 10:33

“친구 식당 일 도와 주는 데 서빙이 너무 신나더라고. 아예 내가 차렸지”
작년엔 노인요양병원 열어… 오전엔 치매노인 돌보고, 오후엔 식당으로
<이 기사는 weekly chosun 1980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서울 강남의 고깃집 '경도정'에서 손님들에게 고기를 구워주는 주혜란씨. photo 유창우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1월 4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경도정’이란 고깃집에서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왔다. ‘대니보이(Danny Boy)’ 라는 팝송이었다. 등산복 차림의 일행이 “웬 고깃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나느냐”며 들어왔다.

“누가 피아노를 치나요?”
“우리 사장님이오.”

“재미있는 사장님 얼굴 좀 봅시다.”

앞치마를 두른 식당 주인이 나오자 손님들은 “고깃집 주인 같지 않다”고 했다. “아줌마, 옛날에 뭐했어요?” “고깃집했죠.” “몇 년이나요?” “30년쯤~.”

 

주혜란씨의 원장실엔 그가 김대중 전 대통령등 유명인사와 함께 찍은 사진 액자가 수십여개 놓여 있다.
술잔이 돌아간 뒤, 일행 중 한 명이 불판을 갈아주던 식당 주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거참, 신기하네. 내 친구 부인을 꼭 닮았어.” 이 식당 주인은 “친구분이 누구시냐”고 했다. “창열이라고 경기도지사 했던 친군데, 그 부인이 주혜란 박사라고 유명한 사람이에요.”

바로 이 고깃집의 사장은 임창열 전 경기도지사의 전 부인 주혜란(59)씨다. 보건소장 출신의 ‘에이즈 박사’로 유명했고 도지사의 부인일 때 ‘사교계의 여왕’ ‘경기도의 힐러리’라고 불렸던 그다. 1999년 7월과 2002년 7월 알선수재 혐의로 두 번이나 구속되기도 했다. 지난해 치매 노인을 위한 요양병원을 연 그가 이번엔 고깃집 사장이 됐다.
지난 11월 6일 오전 경기도 정왕동에 있는 시흥현대요양병원 원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주 원장은 한쪽 면엔 병원장, 한쪽 면엔 식당 회장이라고 쓴 명함을 내밀었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시흥현대요양병원에서 주혜란 원장이 환자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갑자기 고깃집은 왜 차린 건가요. “평생 아픔이 있는 사람들만 보고 살았잖아요. 보건소에 있으면서 에이즈 감염자들을 만났고 의사니까 평생 환자를 만나야 하고, 나도 전과자이지만 전과자들도 만나봤고요. 이렇게만 지내다가는 우울증에 걸릴 것 같더라고요.” (알선수재혐의로 두 차례 구속된 적이 있는 그는 자신을 ‘전과자’라고 표현했다.)

어쩐지 고깃집과는 좀 안 어울리는데요. “실은 친구가 운영하는 가든식당에 우연히 갔다가 일을 도와봤어요. 고기를 굽고 불판을 갈아주는데 신이 나더라고요. 하루 팁으로 16만원이나 벌었다고요.”

그래서 고깃집을 열게 된 건가요. “몇 년 전부터 단골로 다니던 식당을 인수했어요. 주변에 ‘도와달라’고 손 내미는 사람들만 있었는데 건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게다가 돈까지 버니까 너무 좋아요.”

얼마나 벌었나요. “첫 달엔 본전이었고 그 다음달엔 세금을 제외하고 2000만원 벌었어요. 벌써부터 프랜차이즈 열자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는 오전에 병원 진료를 마치면 매일 식당에 출근해 자정까지 일한다. 테이블도 닦고 불판도 갈고, 손님이 주는 소주잔도 받아마신다고 했다.

그런 게 거슬리진 않나요. “무슨 소리, 손님이 왕인데.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요.”
병원 내 직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그를 따라 병실에 가봤다. 80세 할머니들은 그를 보자 웃기 시작했다. “엄마, 나 좀 안아줘” “나는 원장님이 젤로 좋아요” “노래, 노래…”. 주 원장은 130여명 되는 환자들을 ‘엄마’ ‘아빠’라고 부른다. “엄마, 내가 얼마나 엄마 사랑하는 줄 알지?” “아이구, 손톱이 또 지워졌네. 주말에 예배드리면 또 이쁘게 발라줄게” “우리, 오동추야~ 불러보자”. 그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자, 누워있던 할머니들이 양손을 맞추며 손뼉 치는 시늉을 했다. “주사 한 방보다는 노래 한 곡이면 다 해결되지 뭐. 나는 우울한 얘기는 잘 안 해. 뽕짝 노래를 불러주면서 신바람 나게 하는 거지요.”

치매 노인을 돌보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평상시에 정신이 멀쩡하던 분들이 자신이 외롭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요. 저도 외로워 본 적이 많잖아요. 인생은 다 혼자인 거고요.”

그는 “구속됐다가 풀려나온 뒤 연락해보면 ‘지금 좀 바쁜데’ 하면서 피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인터뷰 도중 몇 차례 눈시울을 붉힌 주 원장은 이 대목에서도 눈가가 빨개졌다.  주 원장은 1999년 7월 경기은행 퇴출을 막아준다는 조건으로 4억원을 받았고 2002년 7월엔 경기 성남시 분당 파크뷰아파트 건축허가를 사전에 내주는 조건으로 1억원여를 제공받은 혐의로 두 차례 구속됐다.

구속됐던 시기가 6개월씩 두 번, 모두 1년 정도이지요. “상상도 못한 일이죠. 그렇다고 억울하기만 한 것도 아니에요. 몸의 자유가 없을 뿐이지 정말 나만의 시간을 보냈거든요. 그동안 반성도 많이 했고요.”

파란만장한 인생이었지요. “순간순간 고통스러웠죠. 인터넷에 내 기사가 떴다고 하는데 볼 수도 없었고. 또 봐서 뭐하나요. 나라는 사람의 단면만을 보고 말하는 건데요. 비난의 목소리는 내가 받아야 하는 거고.”

사람들의 관심이 왜 자신에게 쏟아진다고 여기나요. “나에 대한 기대가 커서 그렇다고 봐요. 동네에서 버스를 타도 버스기사가 ‘임 지사님 선거운동하는 걸 봤다’면서 인사해요. 요즘도 ‘구속되는 걸 보고 충격 받고 실망했다’ ‘더 큰 뜻을 펼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는 내용의 편지들이 와요.”

주 원장은 쏟아지는 관심을 부담스럽다면서도 무조건 싫어하진 않았다.

서울에 매니저를 따로 두고 계신데 세상과 담 쌓고 지내겠다는 건 아니죠. “네.” 그는 고깃집 열었다는 내용으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 할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지사의 부인일 때 ‘경기도의 힐러리’로 불렸는데요. “저는 힐러리 클린턴을 원래 좋아하기 때문에 처음에 그 말이 좋은 뜻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임 지사가 당선된 뒤 파주에 큰 수해가 났을 때 ‘경기도의 힐러리’ ‘도지사 위의 주지사’라고들 했어요.”

그런 말이 억울했나요. “몇 천 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었는데 수해민 물품이라고 겨울 코트와 부츠가 와 있대요. 그래서 보건소장에게 모기약과 아기 기저귀, 여성 생리대, 먹을 물부터 챙기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도지사 부인이 설친다고 하대요. 기자들을 관저로 불러서 ‘18년간 보건행정 분야에서 일한 전문가가 도지사의 여편네라고 치마만 두르고 있어서 되겠냐’고 했어요.”
주 원장은 1999년 구속되기 직전, 검사에게 들은 말을 했다.

검찰에서도 ‘힐러리’라고 불렀다고요
. “해비타트 프로그램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대통령께 보고할 자료를 준비할 때였어요. 그때 검찰에 불려갔는데 평검사가 대뜸 ‘임창열씨가 차기 대통령이 되고 본인은 차차기 대통령을 노린 것 아니었냐’고 묻데요.”

뭐라고 답했나요. “나는 30대에 이미 보건소장이 된 여자다. 그리고 내 꿈은 반쪽 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라 세계 UN 사무총장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당신도 사법고시 치르고 검사됐는데 내가 그런(남편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꿈도 없이 결혼했겠느냐’고 했어요.”

주 원장은 구속돼 있던 2002년 가을 임 전 지사와 이혼했다. 1990년 12월 IMF(국제통화기금)와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대리대사로 있던 임창열씨를 만나 3개월 만에 결혼한 지 11년 만이었다.

이혼은 누가 먼저 하자고 했나요. “그 전부터 이혼은 내가 원했지만 구치소에 있을 때 하고 싶진 않았어요. 임 지사 미래에도 좋지 않을 것 같았고요. 그런데 하자고 하대요.”

섭섭했나요. “섭섭하다고 여길 가치는 없지요. 그래, 내가 해줄게 했어요.”
굳이 이혼을 서두를 필요가 있었나요. “그에게 가서 물어보세요.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겠죠. 나도 누가 싫으면 떠날 수 있는 거고.”

병원복도와 원장실에 이혼한 남편의 사진도 있네요. “실은 거의 다 불태워 버렸는데 몇 장이 갑자기 한 상자에서 나오데요. 그런데 굳이 다 없앨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돌아보면 내 과거이고 인생인 건데요.”

그에 대한 별다른 감정은 없나요. “병원에 원수처럼 얼굴도 안 보고 지내는 치매 노인 부부가 있었어요. 어느날 할아버지가 훌쩍 세상을 떠났는데 며칠 뒤에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꿈에 나왔다. 보고싶다’고 하시는 거예요. 고민하다가 사실을 말씀드리고 ‘이젠 용서하시라’고 했어요. 순간 저도 이 사람을 미워할 필요가 있나 싶데요. 그 사람도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누구의 부인으로 거론되는 게 부담스러운가요. “할 수 없지 뭐. 지금은 내 길을 가는 거니까요.”
주 원장의 방엔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 자신의 학생 때 사진, 경기도지사 부인일 때 도민들과 찍은 사진 등 수십 개의 사진 액자가 놓여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소프라노 가수 조수미 등과 찍은 사진도 있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감사 편지와 재클린 케네디와 힐러리 클린턴의 사진도 액자에 담겨있었다. 과거에 임창열 전 부총리가 “정치를 해보면 어떨까”를 물었을 때 당시 부인이던 주혜란씨는 “여보, 정치는 내가 하게 해줘”라고 답했다고 한다. 실제 그는 용산보건소장으로 일할 때 전국구 의원 권유를 받은 적도 있다.

정치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나요. “정치가 뭐 꼭 금배지를 달아야만 할 수 있나요. 여기서 노인들 돌보면서 사회복지 문제를 다루는 것도 정치 아닌가요.”

구속됐던 게 정치인의 아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나요. “정치라는 게 나 혼자 깨끗하다고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정치는 상대가 늘 있는 것이고요.”

주변에서 정치해보라고 하는가요. “ ‘남의 선거’가 아니라 ‘본인의 선거’를 치르지 그러느냐는 사람이 많아요.” 

주 원장이 문을 연 고깃집엔 요즘 각종 대선 후보 캠프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같이 손잡고 일하자고도 하나요. “그러긴 하지. 그렇다고 내가 움직이나요. 나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아요.”

‘경기도의 힐러리’라는 꼬리표 외에도 그를 둘러싼 각종 ‘말’들이 선거 유세 과정에서 쏟아져 나왔다. ‘사교계의 여왕’으로 알려진 그에 대해선 지금껏 여러 소문이 따라다닌다.

사랑하는 사람은 있나요. “노(No), 노. 아직까지 그런 사람은 없어요.”
애인이 있다고 하던데요. “친한 남자가 어디 한둘인가? (웃음) 고려대 후배들도 있고, 누님 누님하고 따르는 친구들도 있고.”

젊은 경찰을 사귄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지난해 무슨 여성지에서 나왔던 얘기예요. 인터뷰도 안 하고 막 써놓았데요. 어느 경찰서에 있는 사람이라느니 하면서요.”
주 원장은 경찰관 이름과 소속 부서까지 말하면서 그런 스캔들엔 신경 안 쓴다고 했다. 그러면서 책상 옆 벽에 붙어있는 경찰복 입은 사람 사진을 가리켰다.

누구인가요. “경찰대학을 수석 졸업한 내 수양 아들이에요. ‘어머니’ 하고 저를 따르죠. 제가 강남경찰서에서 건강검진을 3년 반 정도 맡았는데 그때 친해진 경찰 후배들이 많아요. 제가 어려울 때 도움도 주려고들 했었고요.”

친해지면 다들 누님과 동생으로 지내나요. “그럼, 다 패밀리가 되는 거죠.”
앞으로 결혼할 생각은 있나요. “좋은 사람 나타나면야 할 수도 있지요. 아직은 이 나이에 스캔들로 이름 알려지고 싶지 않아요. 남편과 헤어진 지도 얼마 안됐고….”

환갑을 앞둔 나이인데 참 젊어보이네요. “매사에 호기심이 많고 즐겁게 사는 게 그 비결이에요. 성격도 다 툴툴 털어버리는 스타일이에요. 오늘 하루 머엇~지게 살자, 그런 식이죠.”

외로움을 느낄 땐 없나요. “그럴 틈이 없어요. 환자들이 ‘손톱에 빨간색 발라 달라’고 하면 기쁘고, 고깃집 손님이 저를 알아보고 ‘박사님, 존경합니다’ 하면 감사드리고요.”
주 원장은 자신이 구속돼 있을 때 하루도 빠짐없이 구치소에 와 성경을 읽어주던 어머니 얘기를 꺼냈다. “ ‘너를 이렇게 쓰시려고 그런 시간을 주신 거야’라고 하세요. 저를 늘 자랑스러워하세요.” 첫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애령씨는 포르투갈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뉴욕에 산다. 회계사인데 얼마 전 한의학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얼굴이 편해보입니다. “아, 그래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사니까 그런 거지.”
예전엔 하고 싶은 것만 하지 못했나요. “그렇지 뭐. 남들 보여주기 위해 한 것도 많았죠. 행사장에 가서 남들이 써준 원고를 읽으라고 하는 거예요. 내 보기엔 노래 한 곡이면 다 끝날 것 같은데요. 저보고 하도 ‘튄다’고 하니까 무릎 드러내는 것도 부담스러워 개량 한복만 입고 다녔네요.”

세상을 향해 억울한 건 없나요.“문제가 생겼을 때 남 탓을 하면 내가 더 힘들어져요. 모든 게 내가 뿌려놓은 씨앗이구나 해야지 문제가 거기서부터 해결돼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내 길을 가야죠. 지금껏 살아온 대로 당당하게 살 거예요. 그게 나의 퍼스낼러티이고요. 요즘은 ‘고깃집 아줌마, 되게 멋있다’ 그 말이 제일 듣기 좋아요.”

의사 주혜란- 1970년대 말부터 윤락여성 대모… 에이즈 박사로도 명성

주혜란 원장이 1991년 2월 임창열 당시 IMF(국제통화기금)와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대리대사와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릴 때였다. 당시 사람들은 “에이즈 전문박사 주혜란씨가 임창열씨랑 결혼한다”고 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주어는 임씨가 아니라 주씨였다고 한다.

그는 1970년대 말부터 윤락 여성의 대모 역할을 맡으며 ‘에이즈 박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 쇼와의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의사가 된 때가 25세였으니 지금껏 의사로 일한 세월만 35년이다.

주 원장은 부모가 모두 의사였고 자녀 7명 중 5명이 의사인 ‘의사 집안’ 출신이다. 그는 과거의 한 인터뷰에서 일반 병원이 아니라 보건소에서 일을 시작한 데 대해 “어려운 사람을 도와 칭찬받고 싶었다”고 했다. 첫 남편과 헤어진 이유도 “내가 의사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30대 때 충북 청원군 현도면에서 보건지소장이 된 뒤 경기도 의정부시, 서울시 강동구·용산구·강남구 보건소장을 지냈다. 미국 국립보건원 소수민족 에이즈 역학 연구위원, 미 국무성 워싱턴시 에이즈 퇴치 특별자문위원, 세계환경기구 보건환경 특별자문관…. 서울 서초동에서 ‘주 클리닉’을 운영할 땐 내로라하는 기업체들의 단체 건강검진을 맡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 경기도 정왕동에 치매 노인을 위한 시흥현대 요양병원을 연 것이다. 이 병원은 바닥을 맥반석 온돌로 시공하고 치매 노인을 위해 월풀 욕조 치료시설 등을 설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 원장은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과 관련해 6개월간 구속됐다 풀려난 뒤 법정 최장인 500시간 사회봉사를 선고받았다. 2개월 넘는 기간 동안 하루에 9시간씩 복지시설을 다니며 노인과 장애인 활동을 돕고 시설 청소도 했다.

그러다 경기도 안양시 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치매센터에서 63세의 한 할머니를 만났다. “저만 보면 ‘엄마, 안아줘’ ‘노래불러줘’라고 하시는 거예요. 무조건 끌어안고 사랑을 쏟았더니 100시간도 안돼 증세가 눈에 띄게 나아지더군요.”

주 원장은 “사실 노인 문제가 5년 뒤, 10년 뒤의 내 모습이 아니겠느냐”며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했던 아버지도 수십 년 전에 이미 노인병원의 필요성을 말씀했다”고 했다.

그는 “치매 정도가 심한 노인 환자분을 상대하다 보면 힘겨울 때도 있지만, 내가 살아있는 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도울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1/09/20071109010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