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루터-1520년 종교개혁 논문들(종교개혁이야기 - 3)
김진흥 교수가 풀어주는 종교개혁 이야기
기사입력 2014.10.10 14:51
네덜란드의 화가 이싱스(J.H. Isinghs, 1884-1977)가 그린
‘1521년 신성로마제국 국회 석상의 루터’(Luther opde Rijksdag te Worms 1521)라는 그림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Here I Stand)라는 루터의 유명한 선언으로
잘 알려져 있는 역사적 장면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1517년에 발표한 95개 조항의 논제 이래로 로마교회의 요주의 인물이 된 루터는,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로마 교황청으로 소환되는 대신,
1521년 보름스(Worms)에서 개최된 신성로마제국(독일제국)의 국회에서
자신의 신앙과 신학을 검증 받게 되었습니다.
루터로서는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종교개혁의 불씨가
그냥 사그러들어 버릴지도 모를 결정적인 위기였습니다.
‘1521년 신성로마제국 국회 석상의 루터’(Luther opde Rijksdag te Worms 1521)
네덜란드의 화가 이싱스(J.H. Isinghs, 1884-1977)
당대의 모습을 잘 고증하고 역사 기록을 충실히 반영한 이 그림에서,
왼쪽에 붉은 모자와 흰 망토를 걸치고 앉은 이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 카알 5세이고,
그 맞은 편에 아우구스티누스회 엄수파 수도사의 복장(服裝)과 두발(頭髮)의 모습으로 서 있는 사람은 젊은 수도사이며 사제이고 또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교수였던 마르틴 루터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을 구성하는 독일 지방의 종교제후와 세속제후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루터에 대한 심문은, 그가 한 해 전에 출판하였던 여러 저작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1520년에 루터는 소위 ‘3대 종교개혁 논문들’로 알려진 ‘기독교의 개선에 관하여, 독일 그리스도인 귀족들에게’(An den christlichen Adeldeutscher Nation von des christlichen Standes Besserung), ‘교회의 바벨론 포로에 관한 서문’(De captivitate Babylonicaecclesiae praeludium),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하여’(Von der Freiheit eines Christenmenschen)을 비롯하여, 이신칭의(sola fide)의 교리가 선행을 불필요하게 만든다는 잘못된 주장을 논박하는 ‘선행에 관한 설교’(Sermonvon den guten Werken), 그리고 교황의 특별한 사도적 지위를 주장하는 라이프치히의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알벨드트의 저작을 논박하는 ‘로마의 교황청에 대하여, 라이프치히의 유명한 로마주의자에 대한 반박’(VomPapsttum zu Rom. Wider den hochberhmten Romanisten zu Leipzig) 등의 종교개혁 작품들을 잇따라 발표하였습니다
그 이듬해 보름스의 제국국회에 소환된 루터는, 바로 이런 저술들에서 주장한 바를 철회할 것인가 아니면 변함 없이 지킬 것인가 여부를 선택하여야 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그의 선택에 따른 결과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철회 한다면, 루터는 다시 그의 옛 지위로 복귀할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불꽃은 소멸할 것입니다. 만일 철회하지 않는다면, 그는 제국의 법의 보호를 박탈당하고 무법자의 신세로 전락할 것인데, 그럴 경우 그의 목숨은 지극히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운명이 달린 절체절명의 선택에서, 루터의 선택은 사람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황제 폐하와 고관들께서 명료한 답변을 원하시므로, 저는 애매함 없이 분명하게 대답하겠습니다. 성경의 증언들이나 혹은 명백한 이성의 증거에 의하여 제가 틀리다고 증명되지 않는 한 (왜냐하면 저는 교황도 공의회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황이나 공의회들이 반복적으로 오류를 범하였고 서로 모순된다는 것은 이미 확실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인용한 성경 말씀에 압도당합니다. 그리고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아무 것도 철회할 수 없고 또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정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루터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하였던 신념,
곧 1520년의 저작들을 통하여 주장하였던 내용으로 쏠립니다.
특히, 3대 종교개혁 논문들로 알려진 세 작품에서
그가 주장한 바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번 호에서는 그 첫 번째 논문의 내용을 함께 살펴봅시다.)
‘기독교의 개선에 관하여, 독일 그리스도인 귀족들에게’
신학자들이 아니라 독일의 귀족들에게, 그리고 대중적으로 읽혀지도록
라틴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작성된 이 논문은
크게 다음의 세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 로마주의자들이 교황제를 보호하기 위하여 쌓아 올린
세 개의 벽과 그것들을 개혁할 방안;
둘째, 로마 교황청의 개혁 과제;
셋째, 그리스도인을 통한 개혁의 수행 - 27개의 개혁 요점들.
루터는 이제껏 교회의 개혁을 방해한 커다란 요인들을 ‘세 개의 벽’이라는 이미지로 제시합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313)한 이래,
교회의 역사에서는
종종 세속 권력이나 성경이나 공의회가 타락한 교회를 꾸짖고 개혁하여 왔는데,
중세 말의 타락한 로마교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담을 쌓아
그런 개혁의 시도에 효과적으로 저항하였습니다:
(1) 영권이 속권보다 우위에 있으므로,
세속 권력은 영적 권세(교황권)를 다스릴 힘이 없다;
(2) 교황 외에는 아무도 성경을 해석할 수 없다;
(3) 교황 외에는 아무도 공의회를 소집할 수 없고,
공의회의 결정도 교황의 비준이 없이는 효력이 없다.
이런 담들을 허물어 버리기 위하여,
루터는 우선 성직자 계급과 평신도 신분의 구분이 비성경적이며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개혁에 참여할 의무’를
만인제사장주의에 따라 주장합니다.
만일 교회의 직분자들이 개혁을 거부한다면,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 특히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세속 정부가
개혁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사제직’이라는 성경적 가르침을 막아버린 것이
바로 ‘교회의 바벨론 포로’라고 루터는 올바르게 지적합니다.
7성례를 통하여
사제 계급을 특권화시킨 로마교회의 오류를 철저히 비판하는 루터의 논문이
바로 ‘교회의 바벨론 포로에 관하여, 서문’입니다.)
두 번째 담에 반대해서는
고전 2:15(“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에 호소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도움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유일한 권위를
‘오직 성경으로써’(solascriptura)의 원리로 제시하였고,
성경의 올바른 해석과 관련하여서
‘성경은 자신을 해석한다’(scripturasacra ipsius interpres)라는 원리를
제시합니다.
루터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성경의 중심이며,
따라서 성경의 교훈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론적으로 분명합니다.
세 번째 담과 관련하여,
루터는 ‘교회의 대분열’(Schisma,1378-1417)로
망신 창이 되었던 중세 말의 로마교회를 개혁하려 했던
공의회운동(Conciliar movement)의 정신을 잘 이해하면서,
그런 공의회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와 연결시키려 합니다.
만인사제직에 근거하여 특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세속의 정치가들은
성경을 척도로 삼아 교회의 개혁을 완전히 수행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의회를 소집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타락한 교황제가 스스로 개혁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루터는 독일의 제후들이 신성로마제국의 경건한 옛 황제들이 수행하였던
교회개혁 사역을 회고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 잘못된 특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쌓아 올린 세 담들이
무엇인지 루터의 안내를 따라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천주교는 물론이고 개신교도 마찬가지로,
성경의 올바른 가르침을 굳게 붙들고 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이런 식의 담벼락들이 교회와 성도들을 에워싸게 될 것입니다.
특히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자신의 소명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만인제사장주의’가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에서 얼마나 희미해졌는지 우리는 곧장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선지자 되기’를 소원하였던 모세의 심정(민 11:29),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구속의 경륜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풍성하게 깨닫기를
간절하게 기원하였던 사도 바울의 마음(엡 1:17-19)과 비교해 보면,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많은 목사들은
성도들이 ‘목사의 말만 듣고 그대로 순종’하기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통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뜻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종교개혁자들이 만들어낸 요리문답을 가르치는 일이
장로교회에서 낯선 모습이 된 지 수십 년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성도를 섬기기 위하여 세워진 목사 장로 집사라는 장로교회의 직분들이 천주교의 계서제적 조직처럼 서열화되고 세속화 된 것은
말씀에서 멀어진 교회 현실이 가져다 준 불가피한 현실입니다.

다시 루터의 말을 인용해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를 수종 드는 사제들은
(그들이 주교든지 교황이든지) 그들의 직분을 수행할 뿐이며,
이런 점에서 세속의 권세 역시
악한 자를 처벌하고 경건한 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 손에 칼과 막대기를 쥐고 있다.
신발장수나 대장장이나 농부 역시 각자 그 직분과 손으로 하는 일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직분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유익을 끼쳐야 한다.
마치 우리 몸에 사지(四肢)가 서로 돕고 섬기듯이.”
말씀에서 떠난 당대 로마교회는 직분을 신분 혹은 계급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오직 성직자들만 하나님의 소명(召命)을 받았다고 주장하였고,
소위 ‘평신도’(layman)는
그의 직업적 일 자체가 죄악에 연루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런 영적 형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한테서 소명을 받은 자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두신 바로 그 일터에서
다른 이들을 섬기도록 부름 받은 자라고 가르친 루터의 주장은
‘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견해를
혁명적으로 바꾸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성경을 통하여 배우고 가르칠 때에만 올바르고 풍성하게 이해되는 교훈입니다.
종교개혁의 동력은 바로 이 말씀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갱신도
바로 이 말씀에 대한 우리의 헌신에 달려 있습니다.
이 논문의 두 번째 주제인 ‘로마 교황청의 개혁의 과제들’에는
교황을 특별히 구별된 존재가 아니라 단순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만 영적 직분을 맡은 자로 보도록 관점을 교정하는 일부터 언급합니다.
그런 다음, 비대해진 교황청 기구의 축소,
특히 엄청난 수의 추기경들을 대폭 감소시키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진단합니다.
그런 다음 타락한 교회의 특징적인 현상인 ‘탐욕’의 결과들,
곧 온갖 종류의 종교적 세금과 관련된 현실을 폭로하고 그 개혁을 촉구합니다.
사실상 성직록 취득세로 변한 초수입세, 교화의 사면, 은총의 서신, 특별법, 교황의 달,
예복비, 교황의 마음 속의 보류, 면죄부 등, 그 내용을 읽어가노라면,
타락한 교회가 얼마나 돈의 노예가 되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의 세 번째 주제로서, 루터가 제시한 27가지의 개혁 과제들에는
성지순례, 탁발수도회, 성직자 독신제도 반대, 과도하게 많은 교회적 축일들 축소 등
제도적 개혁안들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대학 교육에 대한 개혁안들이 돋보입니다.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교과과목들을 제안하고,
교부와 교황의 칙령들 대신
무엇보다도 성경을 직접 가르칠 것을 제안합니다.
루터의 3대 종교개혁 논문들 중 ‘교회의 바벨론 포로에 관하여, 서론’(1520년 10월)은
만인제사장주의를 제도적으로 막아버린 7성례를 성경적으로 비판함으로써
‘로마교회의 등뼈를 꺾어놓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하여’(1520년 말)는
이신칭의 교리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고
신앙과 사랑의 삶으로 이해되는 루터의 구원론을 잘 표현한 글입니다.
다음 번에 이 두 논문을 차례로 살펴봅시다.
<본 글은 RE와 필자의 허락을 받아서 게제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