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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교수 카네기 홀 출연/'창작오페라 ‘선비’

영국신사77 2017. 8. 22. 08:32

김지현 교수 카네기 홀 출연



창작오페라 ‘선비’는 특별의미 갖는 오페라
대중의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성공
 
손수연 오페라평론가   기사입력 2015/03/12 [15:32]


▲ 손수연     ©브레이크뉴스

2015년 제1회 대한민국 창작오페라 페스티벌의 마지막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 오페라 선비는 여러 가지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 오페라다. 처음 우리 창작오페라의 소재로 선비를 다룬 작품이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요즘 같은 시대에 과연 받아들여질 것인가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오페라 ‘선비’에서 기대된 것은 우리 창작오페라의 본령 한 가지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1950년 첫 창작오페라 ‘춘향전’이 공연 된 이래 오늘날까지 우리 창작오페라는 전래되어 내려오는 우리 전설과 신화라는 소재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잘 알려진 우리의 민담, 설화들은 당장 소재로 다루기에 편리한 장점은 있었지만 가뜩이나 대중들과 거리감이 있는 창작오페라는 구태의연한 것이라는 공식까지 덧씌워졌다. 반면 이번 ‘선비’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팩션(faction)인데 우선 오페라가 선비라는 낯선 소재와 잘 어울리는가, 또 전통 유교사상을 음악적으로 어떻게 풀어냈을까 하는 면에서 일단 대중의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막이 오른 무대에서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은 뜻밖에도 훌륭히 융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대한 단순화 한 무대장치는 안빈낙도를 신조로 삼는 선비들의 정신세계와 어울리며 작품의 메시지를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전달했고 조명이 한국오페라 특유의 과장됨 없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점도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선비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된다.


▲ 선비     ©브레이크뉴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정일의 대본과 작곡가 백현주의 음악이었다. 입말이 살아있어 친근하게 다가왔던 조정일의 대본은 그동안 창작오페라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어려운 가사를 탈피했다는 것에서 큰 의의를 두고 싶다. 워낙 가사가 이해되기 쉽고 귀에 잘 들리니 작품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는데 이런 현실적인 대본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성악가들의 노력이 함께 돋보였음은 물론이다. 


백현주의 음악은 소재에 대한 접근방식이 탁월했다고 본다. 선비와 유교사상이라는 어찌 보면 고루하게까지 여겨지는 소재에 상당히 가볍게 접근한 결과 소재에 대한 부담은 덜어내고 상당히 친근한 멜로디라인을 완성시켰다. 여기에 창작오페라에는 꼭 우리 전통가락을 끼워 넣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나 서양오페라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우리 것의 특색이 느껴지는 재기발랄한 오페라 음악을 만들어냈다. 창작오페라 초연작의 경우, 귀에 남는 멜로디가 없어 더욱 지루해지기 일쑤인데 ‘선비’는 이미 주요 테마를 1막에서 제시하고 그것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서 극장을 나가는 관객들이 흥얼거릴 만큼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제시했다.   


창작오페라의 초연이 재공연으로 이어지지 않는 큰 이유 중하나가 매번 들어도 생소하고 난해한 음악 때문이기도 한데 '선비‘의 음악은 누구든 한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매력적인 악절을 여러 군데 지니고 있는데다 음악적이 깊이는 가지고 있어 앞으로 대중에게 사랑받을 요소를 골고루 갖추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작곡가와 대본가의 의도를 무대에서 잘 살려낸 것은 지휘자 김봉미와 연출자 이회수의 역량이었다. 김봉미는 헤럴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 무겁지 않은 음악에 강약을 줘가면서 속도감 있는 흐름을 유지해 나갔다. 무대 위 성악가들이 자연스런 연기력과 빼어난 가창을 선보이며 오케스트라와 좋은 호흡을 보인 것은 김봉미의 유연함이 돋보이는 지휘와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핵심만을 강조한 이회수의 깔끔한 연출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다.


600여 년 전 유학자와 선비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오페라가 젊게 느껴진 것은 특히 대부분의 출연진이 요즘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신진 성악가들이 주죽을 이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가운데 소프라노 이화영이나 바리톤 제상철 같은 국내 정상급 중견성악가가 포진하여 작품의 중심을 잡아주었고 주역인 테너 김동원이나 메조소프라노 최승현을 비롯한  출연 성악가들 모두가 좋은 기량을 발휘해 이들이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 준비해왔음을 느끼게 했다.


필자가 감상한 공연의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다. 다들 별다른 기대 없이 극장을 찾았다가 뜻밖의 것을 가슴에 담아간다고 했다. 지역의 스토리를 촘촘히 발굴해서 이를 오페라화한 사례도 특기할 만한 일이지만 뭣보다 요즘 같은 물질만능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역설적으로 풍요속의 빈곤을 절감하고 있다. 때마침 정신의 고귀함을 강조한 오페라 ‘선비’의 출현은 이 작품이 비단 창작오페라 뿐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정신을 위무하고 각성시켜줄 문화콘텐츠로서의 역할 때문에 더욱 가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