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발의 피아니스트가 눈을 감았다. 그의 기억은 눈보라치는 1951년 한국전쟁을 헤맸다. 그해 겨울 서울대 의대를 나온 젊은 군의관 발가락이 얼어터지고 진물이 흘러나왔다. 두 발을 절반이나 잘라낸 날 그는 밤새 울었다.
어느 날 바이올리니스트 안병소 선생(1908~1979)이 병실에 찾아왔다. 안 선생은 "나는 소아마비에 걸려 절뚝거리면서 다니지만 일부러 가슴을 열고 다닌다. '음악이 나에게 있다'는 자존심 하나로 살았다. 비관하지 마라. 너에게도 피아노가 있잖아"라고 위로했다.
잊을 뻔했다. 젊은 군의관은 전쟁 직전에 피아니스트로도 활약했다. 라디오방송국 연주에도 자주 불려갔다. 안 선생이 다녀간 날부터 '한국 피아노 음악의 대부' 정진우 서울대 명예교수(84) 음악인생이 다시 시작됐다. "음악이 죽음과 절망을 밀어냈죠. 속상할 때 죽으라고 치면 화가 풀렸어요. 피아노는 내 말을 다 들어주는 친구이자 선생이었죠."
이듬해인 1952년 11월 15일 부산에 피난 온 이화여대 강당에서 첫 독주회를 열었다. 전쟁 중이라 그랜드 피아노를 겨우 빌려 리어카에 싣고 왔다. 그 독주회 이후 '비운의 삶을 딛고 일어선 의지의 피아니스트'와 '소생한 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들이 붙었다.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음악이 깊어졌어요. 음악 속에 뛰어들어가 몸무림쳤죠. 내가 깊게 느끼니까 남도 내 마음으로 들어오더군요."
1957년 그는 또 한 번 도전을 한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로 유학을 떠난다. "한국인이 한 명도 없었어요. 외로워서 천장을 보고 '이 놈아, 저 놈아'라고 소리쳤죠. 한국어를 잊어버릴까 걱정됐어요."
어렵게 공부하고 귀국한 그는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신수정 전 서울대 음대 학장(70), 이대욱 한양대 교수(65), 강충모 줄리아드음대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52) 등 한국 대표 피아니스트들이 그의 제자다.
그는 화를 잘 내지 않고 레슨할 때 노래를 불러주던 선생이었다.
"손 모양과 움직임을 일일이 지적하지 않았어요. 대신 음악 흐름을 가장 중요하게 가르쳤어요. 학생이 음악을 이해하면 어느 정도 연주 능력이 생기거든요."
거동이 불편한 그는 아파도 제자들 독주회는 꼭 참석한다.
일주일에 3~4번 음악회에 간다. 제자들도 그의 참된 사랑을 잘 안다.
죽고 싶었다.
어느 날 바이올리니스트 안병소 선생(1908~1979)이 병실에 찾아왔다. 안 선생은 "나는 소아마비에 걸려 절뚝거리면서 다니지만 일부러 가슴을 열고 다닌다. '음악이 나에게 있다'는 자존심 하나로 살았다. 비관하지 마라. 너에게도 피아노가 있잖아"라고 위로했다.
잊을 뻔했다. 젊은 군의관은 전쟁 직전에 피아니스트로도 활약했다. 라디오방송국 연주에도 자주 불려갔다. 안 선생이 다녀간 날부터 '한국 피아노 음악의 대부' 정진우 서울대 명예교수(84) 음악인생이 다시 시작됐다. "음악이 죽음과 절망을 밀어냈죠. 속상할 때 죽으라고 치면 화가 풀렸어요. 피아노는 내 말을 다 들어주는 친구이자 선생이었죠."
이듬해인 1952년 11월 15일 부산에 피난 온 이화여대 강당에서 첫 독주회를 열었다. 전쟁 중이라 그랜드 피아노를 겨우 빌려 리어카에 싣고 왔다. 그 독주회 이후 '비운의 삶을 딛고 일어선 의지의 피아니스트'와 '소생한 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들이 붙었다.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음악이 깊어졌어요. 음악 속에 뛰어들어가 몸무림쳤죠. 내가 깊게 느끼니까 남도 내 마음으로 들어오더군요."
1957년 그는 또 한 번 도전을 한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로 유학을 떠난다. "한국인이 한 명도 없었어요. 외로워서 천장을 보고 '이 놈아, 저 놈아'라고 소리쳤죠. 한국어를 잊어버릴까 걱정됐어요."
어렵게 공부하고 귀국한 그는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신수정 전 서울대 음대 학장(70), 이대욱 한양대 교수(65), 강충모 줄리아드음대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52) 등 한국 대표 피아니스트들이 그의 제자다.
그는 화를 잘 내지 않고 레슨할 때 노래를 불러주던 선생이었다.
"손 모양과 움직임을 일일이 지적하지 않았어요. 대신 음악 흐름을 가장 중요하게 가르쳤어요. 학생이 음악을 이해하면 어느 정도 연주 능력이 생기거든요."
거동이 불편한 그는 아파도 제자들 독주회는 꼭 참석한다.
일주일에 3~4번 음악회에 간다. 제자들도 그의 참된 사랑을 잘 안다.
지난 4월 30일 제자 67명이 그의 독주회 60주년, 그가 창간한 잡지 월간 '피아노 음악' 창간 30주년을 축하하는 연주회를 열었다. 제자들은 "선생님은 우리의 영웅"이라며 찬사를 보낸 후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피아노 8대로 연주했다.
[전지현 기자]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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