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7.08 08:00
개혁 실패 70%가 내부의 면역 시스템 작동 때문… 적은 용량의 이질적 요소 투입 후 서서히 확산시켜야
시장 예측도 정확했고 기술도 있었던 코닥이 망한 원인은 백신 투입 시기를 놓쳤기 때문
온라인 판매 아마존에 위탁했다 망한 서점 체인 보더스는 다양한 백신 옵션을 준비하지 못한 탓
- ▲ 김경준 딜로이트 안진경영연구원 원장
전통 기업 혁신의 장애물은 면역 시스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새로운 사업도 새로운 프레임에 담아야 한다. 그렇지만 기존 핵심 사업에서 대부분의 수익이 나오는 상황이라면 이물질에 가까운 신사업 부문의 발언권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 신규 사업의 불확실성과 높은 위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직 내부를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항체와 면역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존 사업을 둘러싼 기득권이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사내 역학관계의 변화를 가져오는 사업 모델의 혁신은 조직원 대부분에게 경계심, 심지어 적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변화의 속도가 날로 빨라지는 디지털 격변 시대에 조직 내부의 면역체계도 강하게 작동해 실제 조직 변화 프로그램의 약 70%가 성공하지 못한다.
미래 사업 모델 재편과 조직 혁신을 추진하려는 기업 리더들에게는 이 같은 면역 시스템을 우회하는 백신 전략 접근이 효과적이다. '백신 전략'은 조직 내부에 혁신을 위한 이질적 요소를 투입하는 방식이다. 적절한 시기에 적은 용량으로 거부감을 최소화하고 이후 항체 형성 경과에 따라 다양한 백신을 강도 높게 투여하면서 조직 전반적으로 확산시키는 변화 관리 전략이다.
- ▲ 정다운
다이어트는 건강할 때 해야 효과가 있다. 허약한 상태에서 무리한 다이어트는 오히려 몸을 망친다. 조직 혁신의 백신이 부작용 없이 변화를 견디는 항체를 형성하려면 조직이 건강해야 한다. 부 실한 조직에 백신이 늦게 투입되면 부작용은 커지고 효과는 반감된다.
20세기 아날로그 필름 시장을 지배했던 코닥은 1975년에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개발했다. 1979년에 코닥 경영진들에게 '2010년까지 필름 시장이 디지털로 바뀔 것'이라는 내부 보고서가 회람됐다. 하지만 당시 영업이익률 70%에 육박하는 필름 사업에 비해 디지털 사업은 기대수익률 5%에 불과했다. 코닥 경영진은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활성화되는 시점에 시장에 합류해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20년간 유지되던 필름 사업의 높은 수익성이 2000년대 들어 일순간 급락하며 타이밍을 놓쳤고, 2007년 스마트폰 출현으로 디지털카메라 시장 자체가 붕괴되면서 코닥은 파산했다. 코닥은 디지털 이미징(화상처리)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고, 시장도 정확하게 예측했다. 하지만 기존 사업의 높은 수익성이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백신 투입의 적기(適期)를 놓쳤다. 필름 사업이 건강한 시점에서 백신 투입을 시작했다면 디지털 시장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쌓이고, 변화를 위한 에너지와 공감대가 내부에 확산되면서 코닥은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2. 주변에서 시작해 경계심 줄여라
인체에 침투하는 바이러스는 초기에 주변부로 침투해서 조심스럽게 면역체계를 우회하면서 교두보를 구축한 다음 본격적으로 세력 확장에 나선다. 조직에서도 새로운 사업을 접목하고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주변부에서 작게 시작하여 기존 조직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방식으로 내부 저항을 우회해야 한다. 또 신생 조직을 기존 조직과 독립적으로 운영하여 기존 사업의 개념으로 신규 사업에 접근하여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신규 사업이 초기 단계를 지나서 성공 사례가 창출되고 미래 가능성에 대한 조직 내부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본격적으로 신규 사업을 부각시키고 주력 사업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전통 제조업 디지털화 대표 사례인 GE의 혁신도 2005년 비행기 엔진이라는 주변부에서 작게 시작했다. 센서를 부착한 제트엔진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항공사들의 유지 보수를 지원하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여기서 성공한 모델을 발전기, 의료기기 등 다른 사업 분야로 확산시키면서 GE는 2020년까지 10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3. 다양한 방식으로 투입해 효과 높여라
아날로그 시대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면 디지털 시대는 경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과거 3~5년의 시야를 가진 사업 단위 전략조차도 급변하는 디지털 기술 변화 흐름에서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작고 빠르게 시도하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경로를 찾아가는 연속 단거리 경주, 스프린트의 개념을 접목시켜야 한다. 즉 다양한 단거리 경주를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유효 대안을 도출하고 역량을 집중하여 경로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존슨앤드존슨은 미래 성장 플랫폼을 탐색하고 개발하기 위하여 기존 사업 부문에서 분리된 투자회사가 회사의 다양한 전략적 선택을 장기적으로 관리하는 체제를 도입했다. 투자회사가 관심 회사에 소액 지분을 투자해 관련 시장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체크했다. 경험을 축적하고 오류를 수정해 합작, 직접투자, M&A(인수합병)로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1990년대 세계 2위 오프라인 서점 체인이었던 보더스는 1995년 설립된 아마존의 온라인 서적 판매가 성장하자 아마존에 온라인 판매를 위탁하는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였다. 온라인 유통의 미래 잠재력을 이해하지 못해 고객 정보를 아마존에 넘겨준 보더스는 2011년 파산했다. 만약 보더스가 온라인 유통이라는 새로운 변화에 대해 스타트업 지분 투자, 소규모 M&A, 내부 조직 신설 등 다양한 옵션을 병행했더라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4. 지속적으로 투입해 변화를 확산하라
신규 사업은 겉으론 화려할 수 있지만 아직 수익성이 낮고 미래도 불투명하다. 반면 기존 사업은 진부해 보이지만 안정적으로 현금이 창출된다. 기존 사업은 현재이고 신규 사업은 미래를 상징하는 상황에서 현재에만 집중하면 미래가 없고, 미래에만 집중하면 현재가 불안하다. 따라서 현재 안정성과 미래 비전의 합리적 균형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백신을 지속적으로 투입하여 변화를 확산해야 한다.
1998년 설립되어 디지털 격변을 주도해온 구글의 경우 사업 포트폴리오를 기존의 핵심 사업(core), 인접한 유망 산업(adjacent), 도전적 혁신 산업(transformational)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경영 자원을 핵심 사업 70%, 유망 산업 20%, 혁신 산업 10%로 배분하고 있다. 소위 '구글 비율(Google ratio)'로 알려진 이 기준은 사업의 현재를 경시하지 않으면서 미래 투자도 적절한 위험도로 유지할 수 있는 이상적 배분 비율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형태의 명확한 투자 포트폴리오 기준이 조직 내부에 확립돼 있다면 미래 사업이 기존 사업과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를 일으키지 않고 새로운 변화에 대항력을 길러주는 백신 역할을 할 수 있다.
적절한 강도와 경로가 백신 전략의 요체
1970년에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정보화 혁명으로 기술·사회적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개인과 집단의 적응이 어려워진다며 '미래 충격(future shock)'을 예언했다. 인체가 약한 수준의 세균·바이러스 감염에서 항체를 형성하고 건강을 유지하듯, 변화를 추진하는 리더 또한 적절한 강도와 정교한 경로로 백신을 투입해 외부 충격을 흡수하고 내부 변화를 이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