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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공연장 아닙니다, 녹음실입니다/악당이반’ 스튜디오

영국신사77 2017. 1. 10. 14:58

여기…공연장 아닙니다, 녹음실입니다



음반이 점점 안 팔리는 시대임에도 좋은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만든 ‘악당이반’ 스튜디오. 연주자 20여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녹음 공간이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음반이 점점 안 팔리는 시대임에도 좋은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만든 ‘악당이반’ 스튜디오. 연주자 20여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녹음 공간이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유난스러운 공간이다. 경기도 파주시 출판단지의 3층짜리 ‘악당이반’ 스튜디오. 1층에 있는 녹음 공간은 벽 두께가 90cm다. 보통 건물은 20cm 정도다. 바닥은 허공에 떠 있다. 땅속 기둥 40개가 녹음 공간을 떠받치고 있다. 두꺼운 벽은 바깥 소리를 막아준다. 바닥이 떠있어서 외부서 지나다니는 차의 진동도 차단된다. 이 곳에선 전기도 조용하다. 조명이나 난방장치를 틀어도 아무 소리가 안 난다. 전기의 종류를 바꿔주는 장치와 전선을 따로 구비했기 때문이다.

국악 음반사 ‘악당이반’ 스튜디오
두께 90㎝ 벽으로 소음 완전히 막고
기둥으로 건물 바닥 띄워 진동 차단
한 쌍 4000만~6000만원 마이크까지
김영일 대표, 국악인 사진 찍다 인연
“최고의 소리, 최고 기술로 담고 싶어”
총 비용 80억 중 장비·시설비가 60억

한쪽엔 그랜드 피아노가 있다. 2000석 넘는 공연장에서 쓰는 콘서트 사이즈다. 피아노의 양쪽 벽엔 바닥부터 천장까지 14m를 덮을 수 있는 커튼이 있다. 커튼은 소리를 만들어주는 영국제 장비다. 천장엔 수평으로 눕히거나 수직으로 세울 수 있는 음향판이 있다. 음향판과 커튼을 조절하면 소리에서 높은 음과 낮은 음의 비중을 바꿀 수 있다. 소리가 울리는 정도도 통제한다.
김영일 대표.

김영일 대표.

이렇게까지 해서 얻으려는 것은 좋은 소리다. 국악 음반회사 ‘악당이반’의 김영일(55) 대표가 20여년동안 좇아온 것이다. 그동안 국악 음반 98장, 음원 1400종을 녹음했다. 좋은 소리를 얻기 위한 스튜디오가 필요했다. 15년 전부터 부지를 알아보고 설계를 시작했다. 강원도 평창에서 공사를 시작하려던 찰나 근처에 풍력발전기가 들어서면서 계획이 무산되기도 했다. 4년 전에 파주시로 눈을 돌려 300여평 부지에 터를 잡았다. 지난해 10월 스튜디오를 완공했고 시험 녹음을 해보며 마지막으로 소리를 점검하고 있다.
7명이 각각 들어가 동시 연주하며 합주를 녹음할 수 있는 스튜디오.

7명이 각각 들어가 동시 연주하며 합주를 녹음할 수 있는 스튜디오.

스튜디오를 짓는 데 80억원이 들어갔다. 그 중 건물에 들어간 돈은 20억원이다. 장비와 시설에 투자한 비용이 더 많다. 대표적인 고급 장비가 마이크다. 한쌍에 5만달러(약 6017만원)짜리 마이크도 있다. 김대표가 4년 전부터 찾다가 최근에야 뉴욕에서 손에 넣었다. 따뜻하고 점잖은 소리에 반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구입한 마이크 120개의 개당 가격이 평균 2000만~3000만원이다. 이처럼 공연장의 실연 음향까지도 넘어서기 위해 만든 설비로 음악계에 벌써 입소문이 났다. 그동안은 제대로된 녹음 전용 공간이 없어 연주자들은 공연장을 빌려 녹음하거나 외국으로 나가야했다.
국악 보컬 유리나의 녹음 장면.

국악 보컬 유리나의 녹음 장면.

김대표는 본래 사진가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나왔고 영상·출판 사업을 하는 회사를 차렸다. 국악인의 사진을 찍던 중 운명적으로 음악을 만났고 업으로 삼았다. 전국의 고수를 찾아내 한옥에서 국악 녹음을 시작했다. 보통 CD보다 음질이 좋은 수퍼오디오CD(SACD)로 녹음해 그래미에도 출품했다.
녹음 사운드 체크를 위한 토렌스 턴테이블.

녹음 사운드 체크를 위한 토렌스 턴테이블.

음악을 가장 좋은 소리로 기록해두려는 것이 사진가의 습성에서 왔다고 그는 말한다. “좋은 공연에 가면 음악이 한번 연주되고 사라져버리는 게 안타까웠다. 사진가는 좋은 것을 기록 안 하면 못 견디는 사람들이다. 기왕 소리를 보관하려면 가장 좋은, 이 시대의 최고 기술을 이용해 담아놓고 싶었다.” 김대표가 스튜디오를 깐깐하게 지은 이유다.

DA 300


이 호화판 녹음 시설에서 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 김대표는 한 마디로 “이익은 당연히 나지 않을 것이라 본다”고 했다. “연주자들에게 녹음실로 대여해주고 받는 값으로는 물세·전기세 정도 낸다”고 덧붙였다. 대신 온라인으로 눈을 돌려 새로운 수익구조를 계획했다. 음원 사이트 오대오닷컴(odaeo.com)을 이달 오픈했고 그동안 녹음해 놓은 국악 음원을 판매하고 있다. 앞으로는 클래식, 월드뮤직까지 범위를 넓힌다. 보유한 음원은 1400종. 규모는 크지 않지만 수익의 분배구조에 혁신을 꾀했다. 수익금을 연주자와 회사가 반반, 즉 5대5로 나눠갖는 것이다. “음악가들의 수입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거대 음원 사이트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 최고의 시설에서 녹음한 음원으로 ‘공정음원’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다. 그는 사람들의 귀가 높아질 거라 믿는다. 좋은 소리에 대한 수요가 눈에 띄게 늘어날 거라는 믿음이다. 사재를 털어가며 유난스러운 소리의 집을 지은 이유다.

글=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출처: 중앙일보] 여기…공연장 아닙니다, 녹음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