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속으로] 북 위협 속 현장근무 자청하고, 인도 전통 옷 입어 환심 사고
해오외교관상’ 받은 두 여성 외교관
예전 같으면 여성이 근무하는 일 자체가 드물었을 험지에도 여성 외교관이 다수 배치돼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백윤정(48) 주선양 총영사관 영사, 박은진(34) 주인도 대사관 1등서기관이 해오외교관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도 이 같은 이유였다. 고(故)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가족들이 설립한 해오재단은 국익을 위해 소임을 다한 외교관들에게 2013년부터 매해 이 상을 주고 있다. 백 영사와 박 서기관으로부터 ‘국가대표’로 뛰고 있는 여성 외교관으로서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연중 계속되는 위협
북·중 접경지역 관할하는 곳서 근무
북한인으로 보이는 남성들이 감시
“아이 귀가 조금만 늦어도 가슴 철렁”

백윤정 주선양 총영사관 영사는 북한 문제 등을 다루는 게 임무다. 신변 위협도 받지만 “현장에서 부딪치며 배우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
그가 근무하는 선양 총영사관은 북·중 접경지역을 관할한다. 항상 안전이 가장 신경 쓰인다. 지난가을 단둥에 대북관계 일 처리를 위해 갔을 때의 일이다. 호텔 로비에서 중국 기업인을 만나는데 건장한 남성 4명이 주변을 둘러싸고 왔다 갔다 하며 이야기를 엿들으려 했다. 눈매며 턱선, 얼굴색 등을 볼 때 영락없는 북한인들이었다. “의도적으로 압박하려고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제 얼굴을 익히려는 것처럼 계속 눈을 마주치더군요.”
숙소 침실 창문이 깨지는 일도 있었다. 백 영사는 대북 업무를 중단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결론은 계속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일에 겁먹고 일을 그만두면 그게 바로 북한이 의도했던 대로 되는 것이었다. 그건 싫었다”고 말했다.

2015년 단둥의 중국동포 민속놀이 행사에 참석한 모습.
힘든 환경이지만 외교 최일선에서 태극 마크를 달고 뛰는 일은 그에게 여전히 매력적이다. 현지의 중국동포들과 친해지기 위해 술자리에서 주는 대로 백주를 다 받아 마셨다가 기절한 적도 서너 차례 있다. 그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중국동포들이 꿀까지 보내며 안부를 챙겨줘 친해지기도 했다”며 웃었다.
전통 복장에 길거리 음식도 섭렵
인도 옷 입고 길거리 도시락 먹으며
현지 공무원과 친해져 양국협상 성공
“외교관은 사람의 마음을 사는 직업”

박은진 주인도 대사관 서기관은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기울인 작은 노력들이 응답받을 때만큼 짜릿한 순간은 없다”고 말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스운 생각이었다. 근거도 없는 선입견과 편견이 얼마나 많은지 현지에서 직접 느꼈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스스로 그런 선입견에 도전하기도 했다. 인도에 있는 한국 여성들에겐 인도 옷을 입지 말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국 여성이 인도 복장을 하면 생김새가 비슷한 인도 동북부 출신 가사도우미로 오해받고 무시당한다는 이유다.
하지만 박 서기관은 공식 면담에도 인도 옷을 입고 나갔다. 인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패션 트렌드대로 두파타(스카프), 쿠르타(상의), 파자마(하의)에 색을 맞춘 귀고리까지 했다. 이렇게 입고 나간 항공협정 개정 협상에서 냉랭하기로 외교가에 소문난 인도 민간항공부의 담당 여성 과장이 “당신처럼 제대로 갖춰 입은 외국인은 처음 본다”고 호감을 표했다.

인도 복장을 한 박 서기관이 현지인들과 어울리는 모습.
이런 생각은 인도 철도부와의 협상에서도 빛을 발했다. 논의가 길어지자 인도 측 공무원이 직원을 시켜 노점에서 도시락을 포장해 왔다. 인도의 열악한 위생 상태 때문에 외국인들은 통상 길거리 음식은 먹지 않는다. 한국 측 대표단은 당황하며 “예약해 놓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했다. 하지만 박 서기관이 설득했다.
“우리 쪽 대표는 과장급인데 인도 측은 차관보급이 나와 성의껏 대해 줬어요. 우리가 사업 수주만 할 수 있다면 헛것을 보면서 일주일간 설사를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도시락을 다 먹고 토론을 계속했습니다.” 배앓이를 각오한 끝장토론 덕에 이날 협의는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박 서기관은 “외교관은 속도로는 기자를 이길 수 없고, 전문성으로는 해당부처 담당 사무관을 이길 수 없다”며 “하지만 인도 사람들과 수많은 차이(인도에서 많이 먹는 밀크티)를 나눠 마시면서 맺어 놓은 인맥은 외교관만의 무기”라고 말했다.
아이 데리고 대사관 출근



[S BOX] 외교부 거센 여풍…작년 5·7급 공채 70명 중 44명이 여성
외교부에서의 여풍(女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6년 입부한 70명(5급·7급 공채 합계) 중 여성이 44명이다. 입부 외교관 중 여성이 수석이란 사실은 더 뉴스도 아니다.
본부에는 요직을 맡고 있는 선구자 격의 여성들이 있다. 백지아(54·외시 18회) 기획조정실장은 올 3월 여성 외교관 최초로 외교부 실장급 간부가 됐다. 국장급으로는 국립외교원 유혜란(51·외시 23회) 기획부장이, 심의관(부국장)급에는 남아시아태평양국의 김은영(47·외시 28회) 심의관이 있다. 김효은(50·외시 26회) 주세네갈 대사는 현 정부 첫 여성 대사다. 여성 사무관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시절 입부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여성 외교관들이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 남성들이 강세였던 부서들에서도 변화가 보인다. 북미국 북미2과장은 강수연(43·외시 33회) 과장이 맡고 있고, 동북아국의 동북아협력팀장도 여성(나용욱 팀장·41·외시 35회)이다. 북한 핵 문제와 관련된 외교정책 수립 업무를 맡는 북핵외교기획단의 북핵협상과는 과장을 제외한 전 직원이 여성이다.
이런 현상은 점차 가속화할 전망이다. 현재 과장 이상의 간부급 여성은 약 50명이지만, 과장급 이상으로 승진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여성 외교관은 향후 5년 내에 약 100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본부에는 요직을 맡고 있는 선구자 격의 여성들이 있다. 백지아(54·외시 18회) 기획조정실장은 올 3월 여성 외교관 최초로 외교부 실장급 간부가 됐다. 국장급으로는 국립외교원 유혜란(51·외시 23회) 기획부장이, 심의관(부국장)급에는 남아시아태평양국의 김은영(47·외시 28회) 심의관이 있다. 김효은(50·외시 26회) 주세네갈 대사는 현 정부 첫 여성 대사다. 여성 사무관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시절 입부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여성 외교관들이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 남성들이 강세였던 부서들에서도 변화가 보인다. 북미국 북미2과장은 강수연(43·외시 33회) 과장이 맡고 있고, 동북아국의 동북아협력팀장도 여성(나용욱 팀장·41·외시 35회)이다. 북한 핵 문제와 관련된 외교정책 수립 업무를 맡는 북핵외교기획단의 북핵협상과는 과장을 제외한 전 직원이 여성이다.
이런 현상은 점차 가속화할 전망이다. 현재 과장 이상의 간부급 여성은 약 50명이지만, 과장급 이상으로 승진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여성 외교관은 향후 5년 내에 약 100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사람 속으로] 북 위협 속 현장근무 자청하고, 인도 전통 옷 입어 환심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