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결국 품성이 당신의 운명이다(Character is your destiny)’. 헤라클레이토스의 오래된 격언이 요즘 우리 정치를 알 수 없는 곳으로 휩쓸어 가고 있는 요즘, 필자는 근래 가장 뛰어난 품성을 바탕으로 성공한 대통령 반열에 오른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에피소드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2008년 가을 미국 대선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무렵, 촌음을 아껴 써야 할 민주당 오바마 후보는 오후 3시쯤이면 커다란 운동가방을 둘러멘 채 수행보좌관 한 명만 대동하고 체육관 안으로 사라지고, 경호원들이 건물 전체를 차단하는 일이 거의 매일 벌어지곤 했다. 언제나 소문에 목마른 워싱턴 정가에서는 오후의 그 한 시간이 오바마 후보가 비선 실세를 만나 선거 전략을 의논하는 시간이라는 풍문이 널리 퍼지게 됐다.
나중에 명확히 확인된 바로는 당시 오바마 후보는 대선 레이스의 중압감을 견디고자 매일 한 시간씩 수행보좌관과 단둘이 농구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달랬던 것이다. 살인적 스케줄과 중압감 속에서도 한 시간씩 운동을 하는 여유, 가장 정상적이고 실질적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오바마의 품성은 이후 8년간 굵직굵직한 역사적 업적과 더불어 임기 말에도 높은 인기를 누리는 대통령으로 남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오바마에게도 비선에 가까운 조력자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 출마 여부부터 모든 것을 함께 의논하는 가족과도 같은 밸러리 재럿이라는 (여성) 친구가 있었다. 오바마는 대통령 취임 후 그녀를 아예 백악관 특별고문으로 임명하고 공식적 의논 상대로 공개하고 격상시켰다.
요즘 우리는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 논란으로 엄청난 충격에 빠져 있고, 우리 민주주의의 제도화 수준과 운영 능력 자체에 대한 깊은 회의에 젖어 있다. 필자가 오바마 대통령의 사례를 새삼 꺼내는 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세련됨과 우리 정치의 참담한 현실을 도식적으로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무려 200여 년간 대통령제의 정교한 절차와 제도를 숙성시켜 온 미국에서조차, 선출된 제왕으로서의 대통령의 성패는 결국 어떠한 제도적 장치보다도 품성이 좌우한다는 것을 오바마 임기 8년이 입증하고 있다. 흑백 혼혈이라는 소수자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편모·조부모 밑에서 성장하며 갖은 심리적 콤플렉스를 가질 법한 오바마 대통령은 그 시련을 넘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정신적으로 강인하고, 건전하고, 균형감 있는 품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탁월한 품성이 임기 말까지 오바마 대통령을 성공적으로 이끈 비결은 두 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