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4월 난생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먼저 샌안토니오에 있는 미 국방성 산하 국방언어학교(DLI)에서 2개월 동안 영어교육을 받았다. 이후 몬트레이에 위치한 미 해군대학원(NPS)에서 컴퓨터 석사과정을 공부했다. NPS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첨단 학문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대학원이다. 학생들 대부분이 미 해군·육군·공군사관학교에서 엘리트 그룹에 속하는 정예 장교들로 구성돼 있다. 미국 관료 중에서 선발된 우수한 사람들도 공부하고 있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국가와 미 우방국가의 우수한 군 장교들이 교육받는 다국적군 인재 집합소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장교들도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국방 현대화 전문 요원으로 활약해 왔다. 20여명의 한국 장교 중 대부분은 군 사관학교 출신이었다. 3사관학교 출신으로는 주경로 소령(무기체계 석사과정)과 이주만 대위(경영학 석사과정)가 교육을 받고 있었다. 주 소령은 NPS 석사과정을 취득한 뒤 군에 복귀해 병기대대장을 지냈다. 전역 후에는 미국에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아 현재는 미 해리스버그 지역에서 목회하고 있다. 주 소령은 유학생활 내내 나의 신앙 멘토이기도 했다.
미국 생활이 5개월쯤 지날 무렵 주 소령과 이 대위를 포함해 몇몇 유학생 가족이 야유회를 갔다. 고속도로에서 차를 한 시간가량 몰던 중 급커브 구간에서 사고를 내고 말았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코너에 진입하다 언덕 밑으로 아찔한 ‘질주’를 하고 만 것이다. 비탈길 아래로 떨어진 우리 차는 처참하게 구겨졌다. 차는 5m 언덕 아래로 몇 바퀴 굴러서 완전히 전복됐다. 미국에 도착해 순복음교회 교인의 도움을 받아 구입한 8기통 포드스테이션 대형 승용차였다.
사력을 다해 핸들을 붙잡고 있던 나는 앞 유리가 깨진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탈출했다. 아내는 옆 좌석에서 기절한 채 고꾸라져 있었다. 아내부터 서둘러 차 밖으로 꺼냈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16개월 된 아들과 네 살 된 딸은 펑펑 울고 있었다. 얼마 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911 대원들로부터 응급조치를 받았다.
차는 폐기처분 수준으로 완전히 찌그러졌는데, 놀랍게도 그 안에 탄 우리 가족 모두가 한 군데도 다친 곳이 없었다. 사고 현장을 본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같이 야유회를 가던 이 대위는 “주 대위, 이번 사고를 보고 내가 느낀 건데 네가 평소 예수 예수 그러더니 이번에 예수 믿은 본전을 톡톡히 뽑았어. 예수 믿고 본전 찾은 사람은 처음 봤네”라고 할 정도였다. 이 대위는 “자네 가족이 뒤집힌 차에서 기어 나오는 것을 보고 정말 하나님이 살려 줬다고 느꼈다. 나도 네 가족을 살려 준 하나님을 한 번 믿어봐야겠다”고도 말했다. 이 대위는 이후 교회를 다니게 됐고, 찬양대로 봉사할 정도로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됐다.
교통사고는 우리 가족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차가 비탈길로 떨어짐과 동시에 하나님의 손이 차 안에 있던 우리 가족 모두를 폭신하게 감싸안아 주시는 은혜를 체험한 것이다.
미국에서 2년 동안의 유학생활은 우리 가족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딸은 거의 완벽하게 영어를 구사하게 됐고, 아들은 한국말보다 영어 말문이 먼저 터졌다. 부족한 생활비 충당을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던 아내도 미국 사회를 경험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 유학생활을 돌이켜보면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어려운 과정인데 우수한 성적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것부터가 온전한 주님의 은혜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내가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뿐이지, 하나님께서는 30년 전 유학 당시나 지금이나 내일도 변함없이 눈동자처럼 지키시며 수많은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정리=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