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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김익달 선생, 빚까지 내서 장학금 줬대요/『학원 김익달 평전』 낸 윤상일 변호사

영국신사77 2016. 8. 26. 17:26

‘학원’ 김익달 선생, 빚까지 내서 장학금 줬대요

 

『학원 김익달 평전』 낸 윤상일 변호사

여성종합지‘여원’등 만든 출판 1세대

산업화세력 못잖은 문화세력 재조명

“학원장학회 출신들 매년 2억 보태”

중앙일보

고 김익달 선생(사진 왼쪽)이 만든 학원장학회 출신인 윤상일 변호사가 잡지 ‘학원’ 창간호(복사본)를 들고 있다. 윤 변호사는 “그가 남긴 밀알들이 앞으로 다른 무수한 밀알을 키워낼 것”이라고 했다. [사진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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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투기사(投機師)’. 청소년 잡지 ‘학원’, 국내 최초의 여성 종합지 ‘여원’ 등을 만든 출판계의 거물에겐 이런 별명이 따라다녔다. 출판 1세대 원로인 고(故) 김익달(1916∼85) 선생 얘기다.

“별명은 투기사였지만 자신은 사업가가 아니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그만큼 이익을 남기기보다는 항상 사람을 보고 과감한 투자를 했죠.” 22일 서울시청 시민청 갤러리에서 만난 윤상일(60) 변호사는 김 선생을 이렇게 회고했다. 6권의 소설을 쓴 ‘작가 변호사’로 유명한 그는 최근 김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학원 김익달 평전』(지상사)을 출간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두 축이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김익달 선생 같이 국민을 교육하고 문화를 발전시킨 문화세력이 있었죠. 요즘 세대는 잘 알지 못하는 그분의 삶을 재조명하고 싶었어요.”

서울 시민청 갤러리에선 29일까지 김익달 선생의 업적을 돌아보는 ‘출판문화의 거장’ 전시가 열린다. 전시장에서는 김 선생이 발간한 수백 권의 출판물을 볼 수 있다. 윤 변호사가 기자에게 낡은 잡지 한 권을 건넸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김 선생이 대구에서 출간한 ‘학원’의 창간본이다. ‘배움의 뜰(學園)’이란 뜻을 가진 이 청소년 잡지에는 박목월의 시에서부터 김용환의 만화 ‘코주부 삼국지’까지 다채로운 내용이 실려 있었다. “전쟁 중이라 학생들이 읽을 거라곤 전시독본밖에 없다보니 학원이 나올 때마다 줄을 서서 읽었어요. 당시 학원을 탐독한 세대를 일컬어 ‘학원세대’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였죠.”

이후 그는 첫 여성 종합지인 ‘여원(1955~70년)’과 농민 대상 전문지 ‘농원(1964~68년)’ 등을 발간하며 독자의 저변을 넓히는 데 주력했다. 1958년에는 국내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백과사전』을 발간했다. “엄청난 자금과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들 안 된다고 말렸지만, 한국의 지식 수준을 높여야 한다며 밀어붙였어요. 결국엔 35만 부를 팔 정도로 대히트를 했죠.”

그는 출판 못지 않게 장학 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1952년 그가 설립한 학원장학회는 한국 최초의 민간 장학회다. 학원 창간호를 통해 중학교 2학년생을 대상으로 장학생을 모집한 이후 지금까지 852명을 후원했다. 그 결과 세계적인 천문학자인 이명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무선충전 전기차를 개발한 조동호 카이스트 교수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배출했다. 2006년 당시 여야 파트너였던 고(故)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도 학원장학생 선후배 사이다.

평전을 쓴 윤 변호사 역시 가난했던 학창시절 학원장학회의 도움을 받으면서 김 선생과 인연을 맺었다. 윤 변호사는 “장학사업을 했다고 그의 형편이 결코 넉넉했던 건 아니었다”며 “매달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돈이 없을 땐 사채를 끌어다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선생의 장학사업은 그의 사후에도 장학생들의 모임인 ‘학원밀알회’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학원밀알회는 해마다 2억원의 기금을 출연해 장학재단을 운영 중이다. 올해도 장학생 18명을 선발했다. 학원밀알회장을 맡고 있는 윤 변호사는 “김 선생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 852명의 회원들이 형편에 따라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매년 기부한다”고 했다. “사람에 대한 투자는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그가 남긴 밀알들이 앞으로 또 다른 무수한 밀알들을 키워내는 삶을 이어나갈 겁니다.”

글=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천권필.장진영 기자 fee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