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폰 사러 용산 몰려가는 외국인들
[국내 손님 끊긴 용산 전자상가… 외국인 '중고폰 메카' 변신]
직원들, 태국·필리핀어로 호객… 영어·아랍어 등 5개 국어 구사도
새 제품의 절반값… 유럽서도 와
일요일인 지난 22일 오후 휴대전화 매장 80여 곳이 몰려 있는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8층은 마치 동남아의 한 거리를 뚝 떼어놓은 듯했다. 매장 곳곳에서 태국어·필리핀어 등 동남아 언어로 손님을 부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한 매장 직원은 지나가는 외국인 일행에게 다가가 "새것 같은 폰 싸게 드려요"라며 호객 행위를 했다. 매장 곳곳에 'Used Phone(중고폰)'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고, 매장 앞 진열대에는 삼성전자의 갤럭시 S시리즈와 LG전자의 G시리즈 중고 스마트폰 수십 대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컴퓨터 등 각종 전자제품을 싸게 팔아 '전자제품의 메카'로 불렸던 용산 전자상가가 외국인을 상대로 한 중고폰 판매 명소로 변신했다. 한국산 중고 스마트폰을 싼값에 사려는 외국인들이 몰리면서 오히려 한국인만 상대하는 매장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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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의 한 휴대전화 매장에서 외국인들이 휴대전화를 고르고 있다. 용산 전자상가는 한국산 중고 스마트폰을 싸게 사려는 외국인들이 몰리면서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중고폰 판매 명소가 됐다. /이태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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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자상가가 외국인을 위한 중고폰 전문 시장으로 바뀐 건 3~4년 전부터다. 전국에 휴대폰 대리점이 많이 생기는 바람에 용산 상가에 불황이 닥쳤을 때였다. 이곳에서 7년째 휴대전화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40)씨는 "몇몇 가게가 불황 타개책으로 철 지난 중고 스마트폰을 외국인들에게 팔았는데 꽤 이익을 냈다"면서 "그때부터 너나없이 중고 스마트폰 판매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했다. 현재 용산 전자상가에 있는 휴대전화 매장의 80%가 중고폰을 취급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외국인 손님은 주로 동남아·중동 지역에서 온 노동자들이지만 유럽·중국 등에서 온 관광객도 상당수 있다. 경기도 광주의 한 양말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인 준(38)씨는 "필리핀에서는 같은 중고폰이 한국보다 10만원 더 비싸게 팔린다"며 "아내와 딸에게 선물로 줄 갤럭시 S3 중고폰 두 대를 22만원에 샀다"고 했다. 네덜란드에서 여행 온 리타(여·55)씨는 "여행안내 책자에 삼성 스마트폰을 싸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용산 전자상가'가 소개돼 있어서 왔는데 유럽보다 훨씬 싸다"고 했다. 한 번에 수십 대씩 중고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외국인도 쉽게 볼 수 있다. 용산에서 산 중고폰을 본국에서 되파는 '보따리상'들이다.
중고 휴대폰 매장들은 외국인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일주일에 한두 차례 중고폰 도매업자에게 중고 스마트폰을 수십 대씩 산다. 한 매장 직원 강모(35)씨는 "보통 들여온 가격에서 15% 정도 마진을 붙여 되판다"고 했다. 중고폰 매장에서 갤럭시 S5는 10만원대 초반, 최신형인 갤럭시 노트5는 40만원 선에 판매되고 있다. 80만원을 넘는 신제품에 비해 중고폰이 절반 이하의 가격에 팔리는 것이다.
중고폰 매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은 보통 모국어 외에도 한두 가지 언어를 더 구사한다. 매장 업주들이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여러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외국인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한 매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인 라시드(28)씨는 "방글라데시어는 물론이고 한국어와 영어, 파키스탄어, 인도어가 가능해서 다양한 나라에서 온 고객들을 상대할 수 있다"며 "주말에는 하루에 50대도 넘게 판다"고 했다.
외국인 손님이 많이 몰리는 주말에는 각 매장이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다. 매장 주인 이모(34)씨는 "토요일과 일요일엔 일당 5만원씩 주고 캄보디아와 카자흐스탄 출신 아르바이트생을 쓴다"고 했다.
[이슬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