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新約]강해/메시아 계보 대장정
다윋과 밧세바 (메시아계보대장정19 )
역사 상
가장 현인으로 꼽히는 왕 솔로몬은
아버지 다윋에 이어 이스라엘의 전성 시대를 이어갑니다만..
그는 다윋 왕과 밧세바 왕비 사이에 태어난 둘째 아들입니다(슈무엘B=삼하 12:24).
'언약의
딸'
밧세바 왕비는 마태복음의 메시아 족보에 나타나는 네 번째 여인이지요(마태
1:6b).
이방 여인은 아니지만 특유한 케이스로 다윋 왕가와 메시아 계보에 등장합니다.
그녀와 왕 다윋과는 처음부터 합법적인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밧세바는 성경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의 하나입니다.
의문의 베일에 싸인 듯한 여인이지요.
기독교계는 물론 세속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곤 합니다.
흔히들 이름의 뜻부터가 분명하지 않다는 말들을 하지요.
그러나 그다지 어려운 이름은 아닙니다.
밭/바트(Bath)는 단순히 '딸'이라는 뜻이고..
쉐바(Sheba)는 베에르쉐바(메시아계보대장정 2의 부록 '베에르쉐바' 참조)에서처럼
'언약' 또는 '일곱'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언약의 딸', '약속의 딸'이라고 옮길 수 있겠지요.
[당초 언약과 7이 무슨 관계인지도 위
부록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이름은 뜻밖에
예언적입니다.
밧세바는 결국 다윋의 합법적 계승자 슐로모 왕의 어머니이고 메시아의 선대이기에.
일명 '밧수아'(Bathshua)라고도 했습니다(연대기A=대상 3:5).
'풍요의 딸'이란 뜻이지요.
야콥의 넷째 아들 유다의 아내 이름과도 같습니다
(창 38:12 '슈아의 딸'로도 돼 있지만
이름 자체가 밧수아).
여러 모로 추측컨대 밧세바는 다윋의 정실들 중 가장 젊은 듯
합니다.
여태로선 가장 늦게 얻은 아내인 데다
슐로모 이후로도 시므아/소밥/나단 등 유달리 많은 아들을 낳았기 때문입니다(대상 3:5).
첫아들까지도 살았더라면 더 많았지요(삼하 11:27, 12:14~23 참조).
다윋이 왕권으로 그녀를 겁간하다시피 했을 당시,
밧세바는 이미 한 남성의 아내였습니다(슘B 11:3b).
헽 족 출신 장군 우리야의 아내였지요.
[헽 족에 관해서는 지난 회에서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우리야란 이름은 '주/야웨님은 불빛'이란 뜻입니다.
그는 이방인임에도 불구,
다윋의 용맹한 장수들 37명 그룹에 속한 가장 젊은 장수로 추정되며..
야웨 신앙에 투철한 사람이었습니다(23:39).
성경은 어쩌면 밧세바의 출신배경을 귀띔해 주는 몇 가지 사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사무엘 하 23:34에서 보는 대로,
다윋의 장수들 특히 37명 중에는 우리야
말고도 길로(Gilo) 사람 엘리암이 있었지요.
이 엘리암은 다윋의 용사들 중 한 명이자
밧세바 왕비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는 일명 '암미엘'로도 불렸습니다(대상 3:5).
그렇다면 밧세바는 다윋의 전략가
아히토펠의 손녀일 가능성 역시 높습니다(연A 27:33, 슘B 15:12, 23:34).
엘리암과 그 아버지 아히도벨은 다윋이 밧세바와 간통 죄를 범하기 전에
이미 다윋의 신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까닭은..다윋이 유부녀 밧세바를 범하려고 그녀에게 밀사를 보내기 전,
그녀의 배후에 관해 사전 내사했을 때
다윋의 '국정원' 사람이 이런 식으로 보고했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엘리암의 딸이며
헽 족 사람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가 아닙니까?"(삼하 11:3)
이 묘한 어조의 반문형 보고는 다윋이 이미 집안 내력을 들어 알고 있기에
보고자가 확인 차원에서 되레 묻는 의미일 수가 있습니다.
길로 사람 아히도벨/엘리암 부자, 아히도벨의 손녀사위이자 엘리암의 사위인 우리야 등
세 사람을 다윋이 이미 익히 알고 있다는 뜻일 수가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윋은 우리야의 아내를 뺏습니다.
그렇다면 다윋은 밧세바의 본 남편인 우리야를 무시하고 희생시킨 것 뿐 아니라
자신의 전략가인 아히도벨과 엘리암 부자도 역시
무시하고 욕보인 셈이 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다윋이 밧세바 간통 사건 후 합법적인 결혼을 한 뒤,
왕후의 할아버지이자 자신의 장조부인 아히도벨의 전략을 높이 사,
전략가로 삼았을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 점을 누누히 설명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본래 다윋의 명 전략가였던 아히도벨은
훗날 왕을 모반하고 반역왕자 압샬롬의 초빙에 응해 그쪽 전략가가 되어
압샬롬을 아버지 다윋의 후궁들과 대낮에 동침하게 할 뿐더러,
반란에 쫓기던 다윋에게 커다란 불운을 안겨 줄 수도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삼하 15:12,31~34,
16:20~22).
아히도벨이 밧세바의 조부가 틀림 없다면
그는 분명히, 왕이 자기 손녀를 더럽히고 손녀사위를 간접 암살한 데 대해
평소 앙심 또는 혐오감을 품었을 수 있이며
따라서 보복 차원에서 그랬을 터입니다.
그는 속전속결을 제안, 자신이 직접 군사를 데리고
현재 성에서 쫓겨나 피신 중인 다윋 왕과 그 무리를 재빨리 추격,
다윋만 죽이겠다는 것인데,
사실 이 전략은 매우 위력적이었습니다(17:1~4).
그만큼 아히도벨의 아이디어는 탁월했고
다윋 일행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던 거죠(16:23).
그러나 하나님은 다윋 편이셨기에
다윋의 또 다른 전략가 후새를 통해 아히도벨의 전략을 무산시켜
피신 중인 다윋 일행을 살려내십니다.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갔음을 직감한 아히도벨은
그 길로 낙향하여 목매어
자살합니다(17:23절. 참조: 5~22).
손녀를 욕보여 왕비를 삼고 손녀사위를 암살한 왕에 대한
보복이
실패로 돌아가 버린 천추의 한을 안고 말입니다.
또는 손녀 덕에 왕의 전략가가 되는 영광을 안고도 일말의 회한을 품고 말입니다.
밧세바의 배후엔 이런 복잡한 사연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윋의 겁간
일각에서는..밧세바가 하필이면 왕궁 부근의 자택에서 목욕을 하여
다윋을 충동질 했을까며
밧세바가 다윋을 고의적으로 유혹했을 가능성을 내어 짚습니다.
그러나 사건 전말을 보면,
다윋이 밧세바를 거의 겁간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습니다.
물론 여인 쪽에서 왕에게 반항하면서
자기 정절을 지키려는 적극적인 노력의 흔적도 보이지 않지만,
어쩌면 거인 골리앝도 쳐 죽인 정도의 군장인 왕의 절대권력이 무서웠기 때문일 테지요.
밧세바 자신, 본디 장군의 아내였기에 군인의 생리를 익히 알았을 것입니다.
이 큰 죄를 저지르기 전,
다윋 왕은 군장 출신 답지 않게 다소 '군기'가 빠지고 해이해진 듯한 모습입니다.
성경 기자는 해가 돌아 와 '왕들의 출전 시즌'이 됐다고 밝힙니다(11:1).
즉 지난해 다소 완결 짓지 못한 대 암몬
전쟁에 응당 출전했어야 한 듯한 인상이 짙지요.
암몬 족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아들 벤암미의
후손들로
대대로 이스라엘의 숙적이었습니다(창 19:38, 신 23:3~6).
그런데 다윋은 왠지 국방장관 요압이 이끄는 이스라엘 전군에게 출전령을 내려 놓고,
정작 평소 전쟁을 즐기던 타잎인 용장/명장인 자신은
왕궁에 죽치고 남아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두 가지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우선 영적으로 볼 때, 싸탄은 이 때를 절호의 찬스로 다윋을 크게 해치기로 마음 먹었고,
둘째로는 다윋이 바로 전년도의 승전에 크게 교만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윋은 그동안 주 야웨 하나님의 도움으로 필승불패, 승승장구해 왔습니다.
용장이자 지장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하나님이 번번히 당신께 자문을 요청하는 "마음 맞는" 다윋을
기특하게 여기시고 거의 매 번 작전을
지시하심으로써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그 결과 그는 현재까지 패배했거나 실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더욱이 요압을 비롯한 그의 부하들은
모두들 두려움을 모르고 왕과 조국을 위해 목숨 다해 싸우는 충신들이었습니다.
바로 전년도에도 다윋과 요압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이
암몬-아람 등 5개국 연합군을 통쾌하게 물리친 바 있습니다(10장 참조).
이번 출전은 그 뒷마무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상황을 볼 때 당시 다윋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더 할 나위 없는 평화와 만족 가운데 지내던 시절이었습니다(7:1, 8:6b, 14b).
이런 혁혁한 전과와 전공들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잊고
그만 교만하고 해이한 마음을 품게 된 듯 했고 이것을 싸탄이 노린 것입니다.
일생일대에 결정적, 치명적인 과오를 범하게 되지요.
"나는 승전왕인데 이 정도야 어떠랴..감히 누가 나를?"
식의 오만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온 국군이 전쟁터에 나가 목숨 걸고 싸우는 사이
다윗은 왕궁에서 남의 여인과 섹스를 즐깁니다.
이 전말을 성경은 비교적 상세히 묘사합니다.
진실을 밝히는 단순한 역사 기록보다
더 나아가 훗날을 위한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지요.
다윋은 저녁 때 침상에서 일어나 서늘한 왕궁 옥상을 거닙니다(11:2).
이스라엘은 저녁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지요.
그가 침상에서 뭘 했는지는 모르나
응당 침상머리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라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한가롭게 지붕 위를 걸어 다니며 주위를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사뭇 방만한 자세이지요.
왜 왕궁 지붕 위를 돌아다녔을까요? 자신은 출전하지 않고 부하들만 내 보낸 것이 일말이나마 양심에 켕겨설까요, 아니면 든든한 부하들을 출병시키고 나니 기분이 흐뭇해설까요.
아무튼 마치 저녁 먹이를 잡으려는 짐승처럼 바깥을 어슬렁거리던 그의 눈에 번쩍(!) 한 여인이 목욕하는 광경이 들어 왔는데 노을 빛 때문인지 등불 때문인지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강렬한 인상이었죠. 아마도 목욕이 끝날 때까지 내내 주시하며 정욕을 불태웠는지 모릅니다.
다윋은 용의주도하게 사람을 보내어 누군지를
탐문한 뒤 강제로 데려 오라고 명령하여 여인이 도착하자, 이미 목욕을 했기에 부담 없이 즉각 침실로 이끌어 동침을 합니다.
얼마 후 밧세바는 자신이 임신했음을 발견하고 왕에게
보고합니다(4,5절).
우리가 아는 대로 다윋은 이미 최소한 십 여
명의 비빈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모두 한결같은 미인일 테고 더구나 아비가일처럼 재색을 겸비한 현숙한 왕후도 있었지요. 또 첫사랑 미칼도
되찾았습니다. [본 시리즈 15번 참조.]
그러고도 왕은 성이 차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말하자면 만족을
모르는, 끝 없는 불만이었던 셈이죠.
다윋을 하나님이 그지없이 괘씸하게 여기시게 된 요인입니다(27절끝.
참조: 12:8,9).
자고로 옆집 뜰의 감이 더 달아 보이고 훔치는 떡이 더 맛있어 뵙니다. 그래서 초장에 탐심의 싹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지식의 열매를 쳐다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했습니다(창 3:6). 즉 삼중으로 입체적 유혹을 받은 것입니다. 싸탄의 상투적인 꾐 방식이지요.
다윋이 설령 방만하고 해이한 마음으로 지냈다 하더라도 자신의 눈 관리, 몸 관리만 잘했다면 큰 불행을 면할 수도 있었을 터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저 맘 먹은 대로 일사천리로 일을 저지르고 진행합니다.
여인이 임신했다는 소식에 다윋은 내심 적지아니
당황하면서 대뜸 요압을 시켜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궁으로 보내라고 합니다. 최전선에서 열심히
참전하고 있다가 아닌 밤중 홍두깨 격인 급거 후방귀환령에 영문을 모른 채 도착한 우리야에게 다윋은 짐짓 전황을 묻고, 귀가해서 "발을 씻으라"고
합니다(6~8절). 고대 이스라엘의 전통에 따르면 발 씻음은 우회적으로 부부관계를 암시합니다.
이를테면 왕이 알뜰하게도 신하 장수의 성생활까지 챙겨 주는 셈이
됐지요. 하지만 알고 보면, 자신의 죄를 가리고 상대방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비겁하고도 음흉한 꾀이며 아울러 철저한 위선입니다.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가끔 생깁니다.
그러나 장군 우리야는 이같은 전시에 영 걸맞지
않은, 과분하고 상상 못할 특혜라고 느낍니다. 역시 충신입니다. 오히려 자기가 섬기는 왕보다 올곧고 명석합니다! 우리야가 일단 왕 앞을 물러나자
그 뒤엔 왕궁 음식이 따라 나갑니다. 부부가 더불어 왕실 특식을 즐긴 뒤 잠자리도 나누라는 왕의 치밀하고도 각별한
배려입니다.
하지만 우리야는 그날밤 돌아가지 않고 왕궁 앞에서 다른 신하들과
함께 잡니다(11:8~10). 여느 군인에게선 보기 드문 대단한 충성이지요.
다윋이 그 까닭을 묻자, 우리야는 전장에 임한 군인 양심상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고 맹세하면서까지 절절한 충성심을 밝힙니다. 하릴 없던 다윋은 귀대시켜 주겠다며 궁 안에서 우리야에게 어주까지 내리는 거나한 잔치를 배설한 뒤 요압 장관에게 보내는 밀서를 써서 우리야의 손에 쥐어 줍니다(11~14절).
여기서 우리는 다윋이 아주 철저히 타락해 간 모습을 봅니다.
음란의 정욕으로 인한 죄의 씨가 생겨나자
적당히 무마하고 덮으려고 다양하게 위선하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창출합니다.
그런데 자기 아이디어대로 먹혀 들지를 않자 결국 남 손을 시켜 암살하는데,
그나마 암살지령서를 남도 아니고 바로 살해 대상의 손에다 쥐어 줍니다.
그러니까 "니 손의 편지로 니가 죽어라"는 말이죠.
이런 사악할 데가!
지령서 내용도
극악무도합니다(15절).
"그대들은 우리야를 가장 치열한 싸움판에 앞세워
놓고
그대들은 뒤로 물러나 그가
(화살에) 맞아 죽게 하라"
요압도 덩달아 "I've got it"(감 잡았습니다)
하고는
적 암몬 족의 왕도인 랍바 성에서도 적의 용사들이 있는 곳 바로 앞에 배치합니다(16절).
억울하고 안타깝게도 이때 우리야도 죽지만 다윋의 용사들 몇 명이 같이 죽습니다.
요압은 용사인 데다 잔꾀가 많은 사람이어서
늘 다윋의 심리를 앞서 잘 헤아리는 버릇이 있기에
추후 보고도 적당히 잘 꾸며 보냅니다(18~25절).
밧세바는 남편이 전사했다는 비보에 크게 애곡합니다(26절).
여태 좋은 남편이었는데 안 그렇겠습니까?
그런데도 다윋은 우리야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여인을 궁으로 데려와 정식 결혼을 하고
임신한 아들까지
낳습니다(27절).
하나님도 물론 대노하셨지만..
젊고 훌륭한 손녀사위를 잃은 아히도벨이나
사위를 잃은 엘리암의 마음이 어떨까요.
물론 이때는 아직 자초지종을 몰랐겠지만 말입니다.
훗날에 모든 것을 알았을 거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대언자 나탄을 통해
졸부의 양 탈취 비유로써 다윋의 죄상을 통렬히 지적하고
그 죄값으로 임신한 첫 아들이 죽을 뿐 아니라
왕가에 숱한 앙화가 미칠 것을 예언하십니다(12:1~12).
하나님은 다윋이 분명히 남의 아내를 "빼앗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9b).
다행히도 다윋은 나탄의 대언을 듣는 즉시 회개합니다.
엄청난 눈물을 흘리며 뉘우쳤지요.
그래선지 다윋의 시에는 눈물로 침상을 온통 적셨다는 표현도 나옵니다(시6:6 참조).
다윋은 밧세바와의 간통 결과로 태어난 죄의 씨인 첫 아들을 무척 사랑했나 봅니다.
하나님은 다윋을 용서하셨지만 분명히 아들이 죽는다고 예고하셨는데도
아들이 심히 앓자 울며 금식하고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바닥에 엎드렸습니다.
꼬박 칠일 동안 그렇게 했습니다(15~24절).
그즈음 그가 한 회개의 고백이 시편 51편이지요.
다윋은 아들이 죽자 밧세바를 위로하고 다시 아들을 갖습니다.
그가 슐로모였고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셔서
직접 '예디디야'라는 이름을
지어주십니다(24~25절).
[ 필자는 외래어를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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