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대성전(2), 헤롯(헤로데)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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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데 성전(Herod's Temple)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기원전 37년, 이두매 출신 헤로데(기원전 37-4년 재위)가 로마 황제의 총애를 받아 유대 왕이 되었다. 헤로데는 비록 유대인 행세를 했으나 부계와 모계 모두 아랍 혈통이었으며, 정치적 목적으로 하스몬 왕가의 공주 마리암과 재혼을 하였다. 그리스-로마 문화의 예찬자였던 헤로데 대왕은 거대한 성전과 왕궁, 원형 경기장, 목욕탕, 도로, 광장과 요새들을 지어 위대한 건축가로서의 명성을 날렸다. 헤로데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제2성전을 재건하고 부속 건물과 주변의 요새들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사두가이들의(Sadducee, 기원 후 70년 제2차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당하기 전의 약 2세기 동안 번성했던 유대교 제사장 분파) 열렬한 지지를 얻은 성전 재건축은 기원전 20년에 시작되었다(유대고사XV, 380). 헤로데는 즈루빠벨이 지은 제2성전을 부수지 않고 희생 제사나 제물 봉헌도 중단시키지 않으면서 새로운 성전을 만들었다. 성전 건물 자체는 1년 반 정도 걸려 완성되었다. 요한복음 2장 20절에 의하면 성전은 46년이나 걸려서 완성되었다고 하지만 예수님께서 활동하실 당시에는 성전이 완성되지 않았었다(마르 13,2참조). 역사가들은 헤로데가 죽고 68년이 지난 뒤인 기원후 64년 헤로데 아그리빠 2세에 의해서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1.안토니아요새 2.행각 3.솔로몬의 행각 4.왕실의 행각 5.이방인의 뜰 6.난간 7.여인의 뜰 8.사제들의 뜰 9.성전 10.윌슨의 아치
11.로빈슨 아치 12.훌다문 13.수산문(오늘날 황금문)
14.미문 15.니카노르문(Nicanore) 16.이스라엘의 뜰 17.분향제단 18.분향제단으로 오르는 경사 19.정결례 욕조 20.희생제물을 잡는 곳 21.현관 22.성소 23.지성소 24.성소 방 25.나병환자 창고 26.장작 창고 27.나자렛인 창고 28.기름 창고 29.기타 창고 30.행각 31.출입문
헤로데 대왕이 만든 성전의 제2차 성전
1.창고 2.지성소 3.휘장 4.성소(본관) 5.향제단 6.제사 빵을 차려 놓는 제대 7.일곱촛대(메노라) 8.금포도나무로 장식한 금을입힌 기둥 9.현관 10.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사 지내려 했던 바위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경내에 있는 제2차 성전 모형도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새 성전은 코린트(Corinth) 건축 양식을 따라 하얀 대리석 기둥이 쭉 늘어서 있어 역사가 요세푸스의 표현을 빌면 먼 곳에서 보니 마치 ‘눈 덮인 산 같았다’고 한다. 헤로데는 성전을 더욱 큰 규모로 세우고 외벽을 흰 돌로 입혔다. 성전 본체 주변은 높은 돌담으로 성전 전체를 둘러쌌다. 일반인이 들어가지 못하는 성전의 가장 거룩한 부분을 건축하기 위해서 천여 명의 사제들이 벽돌공과 목수로 훈련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성전 건물 자체는 벽이나 난간으로 둘러싸 거룩한 영역을 이방인의 뜰과 분리시켰다. 사방 벽에는 이방인들이 그곳에 들어올 경우 사형에 처할 것이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방인들의 뜰은 이방인과 유다인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는 커다란 뜰이었다. 성전 안에는 세 개의 뜰이 있었는데 바깥쪽에서부터 여인들의 뜰, 유다인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이스라엘의 뜰, 사제들의 뜰이 차례로 있었다. 헤로데는 성전 뜰 남동쪽의 경사진 면과, 현재의 오펠쪽을 메우고, 동과 서로 높은 돌담을 쌓아, 성전 뜰의 넓이를 솔로몬시대의 2배로 확장했다. 성전 북쪽 길이는 314m, 남쪽 길이는 280m, 동쪽 길이는 469m 그리고 서쪽 길이는 485m로 불규칙한 장방형을 하고, 예루살렘 구시가의 약 1/6의 면적을 차지한다.
헤로데 대왕이 만든 성전의 제2차 성전의 모형
예수님께서 사십일 밤낮으로 단식하신 후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아래로 몸을 던지라는 유혹을 했던(마태 4,5-6; 루카 4,9-10) 장소라고 하는 성전 뜰 동남쪽의 거대한 돌담과 성전 서쪽의 통곡의 벽은 오늘도 볼 수가 있다. 통곡의 벽은 오늘날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순례지가 되고 있다. 성전 자체는 동쪽 가장자리에 있는 ' 여인들의 뜰'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뜰은 사방에 문이 하나씩 있고, 각 모퉁이에는 방이 하나씩 딸려 있었다. 이 뜰에서 반원형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서쪽 문을 지나면 ' 이스라엘인들의 뜰'이 나오는데, 이 뜰은 모든 유대인 남자들에게 개방된 '사제들의 뜰'의 일부였다. 성소 바깥을 둘러싼 ' 사제들의 뜰'에는 제단과 사제들의 정결의식을 위한 청동 대야가 있었다. 이 뜰의 가장자리는 문들과 방들로 담이 둘려 있었다. 성소에는 제단에 올리는 빵을 놓는 상, 등잔대, 향 제단이 있었다. 천정에서 바닥까지 쳐져 있는 휘장으로 성소와 지성소는 구분되어 있었다(마태 27,51; 마르 15,38; 루카 23,45 참조). 성전 본당은 뒷면보다 앞면의 폭이 넓었다. 동쪽 정면에는 현관으로 통하는 문 양쪽에 기둥이 2개 서 있었다. 현관 안에는 다시 성소로 통하는 큰 문이 있었고, 성소 서쪽 끝은 지성소였다. 봉헌된 구역 가장자리에는 돌담과 성벽을 쌓아 이방인들의 접근을 막았다.
헤로데 대왕이 만든 성전의 제2차 성전의 모형
헤로데 성전은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민족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헤로데 성전은 종교의식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성경 및 그 외 민족문학 자료들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했고, 로마 시대에 유대인 최고법정이었던 산헤드린의 집회소이기도 했다. 성전 밖으로는 주랑이 딸린 성벽을 쌓고 대문을 만들었다. 예수님과 율법 학자들이 가르치거나 토론하고 상인들이 장사를 한 곳이 주로 이 주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마르 11,15-17; 루카 2,46 참조). 새 성전 광장은 집회 장소로 활용 되었고, 상인들과 환전상들이 자리 잡았다. 신약 시대에 와서 유다인들의 생활에서 회당의 역할이 커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전의 중요성은 구약에 비해 덜해졌지만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과 초대 교회 역사 안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와 아기 예수님의 봉헌, 소년 예수님과 학자들의 토론이 이루어졌던 곳이 바로 성전이었다(루카 1,9-23; 2,22-38.46-49 참조).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중에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토론하고 기적을 베푸셨다(마태 21,14.23; 26,55; 마르 12,35; 14,49; 루카 22,53; 요한 7,14.28; 8,20; 10,23-25; 18,20 등 참조). 예수님께서는 경건한 유다인의 한 사람으로 성전을 존중하셨는데 성전을 ‘하느님의 집'(마태 12,4; 마르 2,26; 루카 6,4), '내 아버지의 집'(루카 2,49; 요한 2,16), '기도의 집’(마태 21,13; 마르 11,17; 루카 19,46)이라고 부르셨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대한 사랑과 열정 때문에 성전을 정화 하셨다(마태 21,12-13; 마르 11,15-17; 루카 19,45-48; 요한 2,14-17 참조). 성전 정화와 성전 파괴를 예고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성전보다 더 위대하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마태 12,6; 요한 2,20-21). 성전과 관련된 예수님의 행위는 후에 죽음으로 내몰리는 주요한 죄목의 하나가 되었다(마태 26,59-61; 27,40; 마르 11,15-18; 14,55-58; 15,29 참조).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전하며 기적을 베풀었다(루카 24,53; 사도 2,46; 3,1-12; 5,12.20-21.25.42; 21,26; 24,12.18 등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성전이라고 밝히고 있듯이(요한 2,19.21-22 참조)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롭고 결정적인 성전이 되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음은 이를 반영한 것이다(마태 27,51; 마르 15,38; 루카 23,45 참조). 이것으로 옛 유대교의 성전은 더 이상 하느님 현존의 상징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제 예루살렘 성전이 더 이상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유일한 곳이 아니며 이제부터 믿는 이들은 영과 진리 안에서 그분을 예배하게 되었다(요한 4,21-24 참조). 예수님께서 몸소 세우셨고(마태 16,18 참조) 그분을 모퉁이 돌로 하여 세워졌으며(에페 2,20 참조) 그리스도의 몸 자체인 교회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장소이다.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는 주님이 거하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이다(1코린 3,9.16-17; 6,19; 2코린 6,16; 에페 2,20-22 참조).
헤로데 대왕이 만든 성전의 제2차 성전의 모형
그 후 예루살렘은 바르 코크바(Bar Kokhba)가 이끄는 2차 유대 항전(132-135년)이 일어나지만 실패하고 하드리아누스 황제(Hadrianus, 117-138 재위)의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 되었다. 2차 유대 항전을 진압한 하드리아누스는 티투스가 했던 것처럼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을 완전히 추방했고, 1년에 딱 한번 히브리 달력으로 아브 달 9일에 성전의 파괴를 애도한다는 목적으로만 입성을 허락했다. 이때부터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시가지 안에 얼씬도 못 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될 때까지 나라 잃은 민족이 되어야 했다. 하드리아누스는 할례를 금지키셨고 유대인들의 명절을 지키는 것, 유태교로 개종하는 것, 토라 설교, 랍비의 임명을 금지했으며 할례를 한 사람이 예루살렘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예루살렘 시가지에는 로마의 신전과 광장들이 들어서고 점차로 로마 양식으로 변모되었다. 성전 터에는 주피터 신전이 들어섰으며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가족명인 엘리우스(Aelius)와 로마의 수호신 카피톨리누스(Capitolinus)의 이름을 따서 예루살렘은 이제 이름마저 빼앗긴 로마의 식민지 도시 ‘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콘스탄티누스 황제(306-337년 재위)에 의해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팔레스티나 전 지역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325년). 로마 신전과 석상들은 허물어지고 예수님과 제자들의 발자취가 담긴 유서 깊은 곳에 기념 성전들이 곳곳에 세워지게 되었다. 유다인들은 이때부터 예루살렘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가 있었다. 로마의 승리 이후 비잔틴 시대가 되면서 300년에 걸친 그리스도교 통치시대가 이어졌다. 이 기간 중 비잔틴 황제들은 예루살렘에 교회와 수도원을 수도 없이 지었다. 그러나 기원 후 614년 봄, 페르시아 사산 왕조 호스로우 2세(Khosroes II)가 파견한 페르시아 군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킴으로써 그 화려했던 비잔틴 시대는 기울기 시작하였다. 성당들은 털리고 불태워졌으며, 수도원들은 파괴되고 사제들과 신자들이 발견되는 대로 학살되었다. 특히 예수님께서 못 박혔던 십자가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조르아스터교를 믿는 페르시아군은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님 성탄 성당(동방박사가 예수님께 예물을 봉헌하는 벽화가 페르시아 인들의 복장을 하고 있어서 화를 모면했다고 한다)을 제외하고는 골고타와 예수님 무덤 위에 지어진 예수님 부활 성당을 포함하여 모든 성당들이 파괴 되었다. 그러나 페르시아인들의 통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소중한 예수님의 유물인 십자가를 되찾기 위해 비잔틴 황제 헤라클리우스는 기원 후 622년에 메소포타미아 깊숙한 곳까지 침공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627년에는 페르시아의 수도 니네베를 정복하자 페르시아인들은 시리아나 팔레스타인, 이집트 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일부까지도 다시 돌려주는 평화 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비잔틴 제국은 630년에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성 십자가도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불과 8년 만인 638년에 무슬림들은 10개월간의 공방 끝에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그 이후 십자군이 1099년에 예루살렘을 탈환할 때 까지 460년 동안 예루살렘은 무슬림들의 수중에 놓이게 되었다. 638년 칼리프 우마르(Umar)는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638년 이후 이제 예루살렘은 무슬림들의 도시로 변모되어 많은 기념 성전들이 파괴되거나 아니면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팔레스티나의 새 주인이 된 우마르는 그리스도교 총대주교와 함께 솔로몬의 성전과 헤로데의 성전이 있었던 성전 산을 방문하였는데 페르시아인들이 파괴하여 무너진 돌들로 막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자 손수 앞에 있는 돌들을 치워가며 겨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에 대한 경멸의 표시로 유대인들에게 가장 신성한 곳에 쓰레기를 쌓아 놓은 것을 보고 즉각 쓰레기들을 치우도록 했다고 한다.
헤로데 성전의 함락과 파괴
헤로데가 만들고 있던 성전은 복음서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극찬할 정도로(루카 21,5; 요한 2,20참조) 빼어난 성전이었지만 46년을 정성들여 지은 이 성전은 완공된 지 겨우 6년 만에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기원 후 66-70년에 일어난 유다 1차 항쟁을 진압한 로마의 티투스 황제(Titus, 79-81 재위)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돌 위에 돌 하나’(루카 21,6)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 되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이 날은 유대 달력으로 아브(Av. 8월) 달의 9일째 되는 날로서 바로 기원전 586년에 솔로몬의 성전이 바빌로니아인들에 의해 불타 없어진 바로 그 날이었다. 제1차 성전과 제2차 성전이 똑같이 파괴된 이 운명의 날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하며 통곡의 벽 앞에 전날 밤에 모여 밤새도록 예레미야의 애가를 읽고 단식을 하며 지낸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는 해가 진 후 예루살렘 구 성곽 밖을 행렬한다. 로마 콜로세오 옆에 있는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에는 예루살렘 대성전에서 황금 제대, 은 나팔, 금으로 된 일곱 촛대(메노라)를 전리품으로 가져가는 장면이 부조되어 있다. 예루살렘을 빠져 나간 일부 유다인들도 사해 남서쪽에 헤로데가 만든 천연 요새 ‘마사다’로 퇴각하여 최후까지 항쟁하다가 결전의 날에 모두 자결함으로써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다.
헤로데 대왕이 만든 성전의 제2차 성전 조감도
성전 서남쪽 모서리를 중심으로, 서남쪽 모서리에 나 있는 다리는 고고학자 '로빈슨'에 의하여 발견되어 로빈슨 아치라고 부른다. 그 왼쪽으로 있는것이 통곡의 벽이다. 그리고 모서리에서 오른쪽 벽면에 두개짜리 문은 예수님 당시에도 출입문으로 사용 되었던 이중문과 그 오른쪽으로 삼중문이 보인다
성전 동편에 나 있는 수산문, 오늘날의 황금문 자리
여인들의 뜰과 이스라엘의 뜰(사제들의 뜰)을 이어주는 대문, 니카노르 문
지성소로 들어가는 출입문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성전 서쪽에서 바라본 도면. A.암반-원래 모리야 산 B.메워진 곳 C.현재 드러난 부분
1.로빈슨 아치 2.바클레이 문 3.윌슨 아치 4.고리 문 5.웨렌 통로 6.웨렌 문
성전 동쪽에서 바라본 도면. A.암반-원래 모리야 산 B.메워진 곳 C.현재 드러난 부분
1.성전 동남쪽 끝부분-예수님께서 마귀로부터 유혹을 받은 곳 2. 황금 성문 3.벳자타 계곡 4.이스라엘 연못
A는 성전 서남쪽 모퉁이, 그리고 B는 동남쪽 모퉁이. A와 B 사이에 A쪽으로 조금 치우쳐 솟아 있는것이 알 아크사 이슬람 사원. A와 B 아래쪽에 둥글게 굵은 실선으로 나 있는것이 원래 모리야 산 언덕...B 오른쪽 부분은 성전 북동쪽이다.
헤로데 대왕이 만든 성전의 제2차 성전의 모형 (글,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7464788)
붉은 기와집은 성전 남쪽으로 왕실 회랑
윌슨(Wilson) 아치. 지성소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다리로 곧바로 대사제의 집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로빈슨 아치, 아랫도시로 내려갈 수 있었다.
아랫도시로 연결되는 계단
아치 다리가 파괴되어 성벽 벽면에 약간의 흔적만 남았었는데, 이 돌출부를 이상하게 생각했던 미국의 고고학자 로빈슨이 발견하여 아랫도시로 연결되는 아치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그 후 이 아치를 로빈슨 아치라고 부른다. 아래 사진에서 벽면에 조금 튀어나온 흔적이 남아있다.
벽면의 돌출된 부위를 이상하게 여긴 로빈슨에 의하여 아랫마을로 연결된 아치였음이 고고학 발굴 작업으로 확인되었다.
성전 동남쪽 끝부분. 윗쪽에 드러나 있는 부분이 현재 성곽부분이며, 중간 부분은 메워진 곳이고, 그 아래쪽은 원래 모리야 산 언덕 부분. 드러난 부분만큼 땅속에 묻혀 있다. 이 성전 꼭대기가 예수님께서 두번째 유혹은 받은 곳이라고 한다.
동남쪽 성전 모서리
동남쪽 성전 모서리, 동편에서 바라본 모습, 성전 동남쪽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예수님께서 유혹 받으신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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