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 간증

위험천만 토마스 주남 : 천국은 확실히 있다

영국신사77 2013. 4. 6. 22:31

 

위험천만 토마스 주남 : 천국은 확실히 있다

 

 

특별기획.토마스 주남 저.‘천국은 확실히 있다!’에서
 
서평: 림헌원(한돌교회 담임목사, 예장합동)
onestone3@hanmail.net



 

 

토마스 주남 저.‘천국은 확실히 있다!’에서 비성경적인 심각한 허점 발견,위험천만

 

 성경적 신학과 성경적 교리 등을 도외시하고 기적과 환상 등의
신비체험만을 성령체험이라고 강조만하면 신비주의로 빗나갈 뿐 아니라
결국 만신(萬神)이 우글거리는 원시종교로 회귀하자는 것밖에 안 된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우리 앞에 보일 때, 하나님의 영광은
더럽혀지며 그 분의 진리는 거짓에 의해 타락해 버리게 된다 -칼빈




 ◈영향력이 막강한 지도자들이 영적 분별력을 상실할 때
    교회가 얼마만큼 영적 혼동과 피해를 입게 될지 심히 우려가 된다

◈진실로 성경적인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이제 엄청난 영적 전쟁을 치를 각오를 가져야만 하는 때가 되었다 


연재 순서
시작하는 말
1. 계시관의 문제점
2. 천국관의 문제점
3. 구원론의 문제점
4. 기독론의 문제점
마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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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사람이라 하면 누구나 사후 미래인 영적인 천국(낙원)과 지옥(음부)의 존재에 관심이 크다. 구원에 합당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성도는 영적인 천국(낙원)과 이 땅에 시작된 천국(하나님의 나라, 통치, 주권)과 완성될 천국(새 하늘과 새 땅)이 있음을 믿는다. 이것이 믿기지 않는 분은 불신자이거나, 구원에 확신이 없는 분이 일반이다. 여하지간에 천국(하나님 나라)이 확실히 있다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를 믿지 않거나 비성경적인 천국을 체험으로 인식케 하려는 것이 문제이다.
세기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여전히 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고 주장하며 내어놓는 간증집들이 전국 서점에 난무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과 비교하며 그 진위를 놓고 상당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천국 경험이 꿈이든 환상이든 사도 바울은 침묵을 하였는데도 일부 신비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이 야심차게 세상에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는 성경의 의도를 넘어서는 겸손치 못한 사람들의 것으로 그 신빙성은 없다고 하겠다. 그저 책만 많이 팔아 버리면 그뿐! 누구도 잘 모르는 천국 경험이니까 아니면 말고 식의 종교적 영업행위(딤전 6:3-5)라 한다면 심각한 기독교계의 위기이다.


천국과 지옥에 관한 경험을 말한다고 하여서 더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서 인식하고 마음에 영접한다고 할 수 있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대신하겠다. 주의 말씀은 기록된 성경말씀으로 듣고 믿지 아니하면 제아무리 기적과 신비체험을 제시한다 할지라도 권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간증을 통해 회개를 촉구한다는 것 자체가 비성경적 발상임을 증명하는 주님의 말씀이다.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 16:30,31).
그렇다면 구약과 신약의 선지자와 사도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무시하는 그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토마스 주남 저. 조용기 목사 번역 ‘천국은 확실히 있다!’에서는 대부분의 내용이 정통 기독교 신자들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것들로 가득하다. 한 마디로 그 천국은 성경말씀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교회에 영향력이 막강한 번역자 조용기 목사(여의도 순복음교회)는 “이 책은 신학적이거나 교리적인 저서는 아닙니다. ……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신학적이거나 교리적인 논쟁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주님과 함께 천국을 구경하신 토마스 여사의 진솔한 체험이 사실 그대로 담긴 기록으로 받아들이고 읽으면 좋을 것 …… ‘주님의 크신 복을 받게 될 것”(4,5쪽-번역에 부쳐)이라고 추천하여 국내외 서점에 선전판매까지 할 수 있었는지 매우 유감스럽다.
번역자 입장에서 볼 때 신학적 또는 교리적 논쟁거리도 안 되는 것처럼 말하면서, 한국의 정통 기독교 신자들로 하여금 비신학적이고 비성경적인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것인가? 그렇게 비신학적 비교리적인 것을 갖고 ‘주님의 크신 복을 받게 될 것’이라 하니 경천동지 [驚天動地]할 일이다. 성경적 내용과는 전혀 다른 비성경적 독초를 하나님의 어린양들이 분별을 못하고 먹으면 ‘주님의 크신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의 방향으로 가지 못하게 되니 스스로 위기를 자초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를 욕되게 할 것이다. 결국 그 수많은 영혼들이 병들고 시들어져 갈 바를 모르게 되어 악한 영의 포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중하게 사랑하였다면 신앙양심상 이와 같이 무책임한 번역서를 내어 놓지 말았어야 했다.
성경 말씀을 두려워 할 줄 모르는 토마스 주남은 자기 저서를 성경권위 위에 놓는 우를 범하면서도 자신의 ‘천국 체험들을 철저하게 성경적 사실’이라고 주장한다.(17쪽) 자신의 체험에다가 성경 말씀을 다량으로 인용하여 넣으면서 마치 성경적인 것인 양 최면을 걸듯이 암시를 주며 호도하는 것은 성도들이 주후 1세기 초대교회 당시 베뢰아 교인들처럼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옳음과 그름을 분별’하려는 노력을 사전에 봉쇄하여 거짓되고 악한 것에 ‘눈멀고, 귀먹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바른 신앙은 바른 신학에서 나오며, 바른 신학은 바른 성경 해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천국은 확실히 있다!’(‘Heaven is so real!' 토마스 주남 씀, 조용기 옮김, 초판 40쇄, 서울 말씀사, 2004)라는 책은 ‘계시관. 천국관. 기독론’ 등이 비성경적, 비신학적으로서 수용하기 어려울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거룩성에 흠집!’을 내고 있고, ‘십계명의 제2계명과도 충돌’되며, ‘제2의 계시록?’처럼 주장함으로써 ‘성경계시의 최종성과 만족성’을 위협하는 등의 몇 가지 문제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계시관의 문제점 (‘제 2 의 계시록?’처럼 주장)
1.1 성경계시의 최종성과 만족성을 부인한다

(16,17,96,117,149,152,159,178,182,203,205,206,291,338,348,354,394,491쪽 등에서)
“주남아, 너는 할 일이 많이 있다. 나는 네가 책을 한 권 쓰기를 바란다. 그 책은 종말에 관한 중요한 책이다. 그 책은 많은 언어로 번역될 것이다.”(117쪽) “예수님이 요한에게 주신 메시지는 주님이 내게 주신 것과 같았습니다”203쪽)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내게 그토록 중요한 이유란다. …… 네가 환상 가운데 본 것들은 매우 가까운 장래에 지상에서 일어날 일이다”(291쪽) “그러나 주님은 내게 자신이 재림하시기 전에 자신의 백성들에게 스스로를 정결케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실 것이라고 확신을 주시면서 그 때문에 나를 택하여 이 책을 쓰게 하셨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믿지도 않고 또 주님이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곧 오시리라는 것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또한 이 책이 수백만의 영혼들을 구원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354쪽)


이 책은 사도요한의 요한계시록과 하박국과의 ‘동등함’을 넘어서 마치 구원효과의 시효가 만료되어 무능력해진 66권의 성경말씀을 능가하는 구원의 도구로서 예수 재림 직전에 마지막 기회로 주어지는 제2의 계시록!?(394쪽) 인양 주님의 계획에 따라 명하여 쓰여진 책(491쪽) 이라고 시종 주장하고 있으니 성경계시의 최종성과 만족성을 철저히 부인하는 것으로 비쳐진다. 우리 주 하나님께서는 성경 66권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고 신구약 전체를 통하여 엄히 경고하고 계신다는 점을 확실히 해두고자 한다.(신12:32 ; 잠30:6 ; 계22:18-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신12:32).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30:6).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18-20).

1.2. 자칭, 살아서 변화된 몸으로 천국 체험한 소수 중에 하나-말세의 여선지자!가 전하는 다른복음이다.(205,206,338쪽 등에서)
저자는, “엘리야는 회리바람을 타고 천국으로 올라갔습니다. 나는 천국으로 올라간 것을 이와 유사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렇게 주님이 높여 주신 택함을 받은 소수 중에 내가 속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인지요!”라고 말함으로써 사도요한과 엘리야처럼 살아서 천국 방문을 한 자신을 매우 특별한 듯이 드러내고(205,206쪽), 구약의 엘리야와 하박국 선지자, 그리고 신약의 사도 요한과 맞먹는 ‘말세의 여선지자(“내 딸아, 너는 말세의 여선지자이다, 너는 나의 말과 예언의 산 증인이다”)’(338,491쪽)로서 마치 제2의 계시록!?을 쓴다는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성경 계시의 최종성과 만족성을 부인하고 있으니 이는 신.구약의 성경적 복음이 아닌 다른복음(갈1:6-9)을 전하고 있다고 하겠다.

 

3. 구원론의 문제점

3.1. 천국은 순종하고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갈 수 있는 곳이라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68,69,89,116,136,291,487쪽)
저자 토마스 주남이 전파하는 거짓 교리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행위 구원”이다. 토마스 주남이 본 예수님(사실은 예수님이라 할 수 없다)은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순종하고 마음이 청결한 자녀들뿐이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자녀들은 불순종하는 자녀들이다.”(69쪽) “오직 마음이 물처럼 깨끗한 자들만이 이곳에 올 수 있다.”(89쪽) “내 딸아, 천국은 들어가기 힘들다고 내 말은 가르치고 있다.”(116쪽) “……마음이 깨끗하고 순종하는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다.”(291쪽)
다시 말해서 죄지은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철저한 이교적 교리이다. 이 세상의 어느 누가 완벽하게 정결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은 천국의 소망을 주기 위해 쓰였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만을 가져다 줄 뿐이다. 반면 십일조 잘하고, 율법적으로 의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자신하게 된다. 마치 바리새인들처럼 말이다.
물론 성경에서도 보면 천국문은 좁은 것으로 나온다. 미련한 다섯 처녀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리고 야고보 기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에 구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천국의 한 변방에서 저자 토마스 주남이 “예수님”과 나눈 대화를 주목하여 보자. 그곳은 끝없이 펼쳐진 골짜기, 회색 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낙심이 완연한 모습으로 방황하고 있다.(135쪽) “주님, 이 사람들은 누구예요?” “그들은 죄를 지은 ‘크리스천’들이다.” “무슨 일이 그들에게 생기나요?” “그들은 대부분 심판 후에 불못으로 들어갈 것이다.”(136쪽)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이 상황을 곧장 그리스도의 심판석(고후 5:10)으로 연결시킨다(136쪽). 그러니까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만약 죄를 지어도 죽기 전에, 혹은 휴거되기 전에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것이다(136쪽).
죄지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불못으로 던져지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 믿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란 없으며, 누구도 죽을 때까지는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논리이다.
저자 토마스 주남은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한다. “나는 '구원받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누구든지 천국에 가서 아름다운 혼인 예복을 입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만큼 거룩하지 않은 자들을 위해 골짜기들(천국 외곽의 골짜기들)을 예비해 두신 것입니다.”(487쪽)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도 불못에 떨어질 수 있으며,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믿어야 하고, 특히 십일조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이 얼마나 삼중축복과 잘 일치되는 말인가?) 자, 이것이 과연 성경적인 구원의 교리인가?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여주시고, 그것을 기록하라고 하셨다는 말인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면 그가 과연 예수님인가 아니면 마귀인가?

3.2.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받은 것이지 행위로 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선한 행위 없이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 “은혜”란 “자격이 없어도, 공로가 없어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값없이 받는 것”을 말한다. 이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해서 우리는 구원받은 것을 보장받고, 또 확신할 수 있다.

 

“이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서”(딛 2:11),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것이 은혜를 따라 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되거니와

마침내 그 약속을 모든 씨에게 확고히 하려 함이며

율법에 속한 자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들에게도니라.

그는 우리 모두의 아비라”(롬 4:16).

 

이와 같이 구원이란 사람들의 수고나 노력으로, 또는 개인적인 선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받은 것이지 행위로 된 것이 아니다.

 

갈라디아서 2:21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릴 수 없나니,"

라고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의 구원을 잃어버리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그의 구원을 행위로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가 99%만 유효하고 나머지 1%는 사람들이 완수해야 한다면 그 1% 마저도 사람들이 완수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보장할 수 없다. 그러나 단 1%의 예외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완전한(100%) 은혜이기에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보장받는 것이며, 그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이 100%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기 때문에, 이 구원을 유지하거나 지탱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그 어떤 노력도 요구되지 않는다.

3.3.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키로 예정하였다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구원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음으로 그는 결코 타락하지 않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영원함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의 확신을 의심하게 한다. 그래서 마음 속 한 곳에서 "내가 정말 구원받은 것인가? 확실하지 않아!"라는 생각을 일어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그리스도인의 기쁨과 영적 성장과 기도와 평안을 빼앗고 방해하는 사탄의 속임수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의심은 그리스도인이 죄와 연루되어 죄를 직접적으로 짓거나 그 죄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령충만한 성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일점의 흠도 없는 구속을 완전히 성취하셨고 이것은 “사실”(fact)이다. 이 사실에 대한 “믿음”(faith)이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며, 이 믿음이 그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feeling)을 좌우하는 것이다. 결코 인간적인 생각이나 느낌이 하나님의 말씀(사실)과 믿음(믿음의 결과, 곧 구원 - 벧전 1:9)을 좌우하거나 무효화 시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영원한 구원의 보장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인간적인 생각이나 느낌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다. 성경대로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보장에 대해 확신함으로 평안을 얻는 것이다.
“한번 은혜 안에 있게 된 자는 항상 은혜 안에 있게 된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키로 예정하였다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구원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음으로 그는 결코 타락하지 않게 된다. 구원에 대한 “영원한 보장”(eternal security)의 교리는 다음과 같은 성구가 있다. 요10:28, 요17:6, 롬8:35, 롬11:29, 빌1:6, 벧전1:5 등이다.
이처럼 잘못된 간증은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영적인 일을 육신적으로 해석하여 혼란을 주고 있는 경우도 있다. 반드시 성경과 비교하여 복음적이지 않으면 간증을 말하거나 믿는 것을 재고하여야 한다.
그런데도 상기와 같은 거짓된 가르침의 교리를 예수님의 말씀으로 전파하고 있는 현실에서 동조내지는 침묵하는 다수의 교계지도자들 앞에서 그것은 아니다 라고 말하며 외치는 소수의 교계 지도자들과 올바른 신앙인들이 도처에 있음을 바라보게 되면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된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도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너희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저주받을 이단들을 비밀리에 불러들여서 자기들을 사신 주마저 부인하며, 급격한 파멸을 스스로 불러들이느니라”(벧후 2:1).

 

4. 기독론의 문제점(그리스도의 거룩성에 흠집! 그리고 십계명의 제 2계명과 크게 충돌!)

4.1. 저자가 주님과 팔짱도 끼고 어깨에 기대고 서로 안기도 하였다고 하는 표현은 불경스런 표현으로 비친다.(이와 유사한 표현이 이 책 전체에서 주류를 이루며 연애 소설 같은 느낌으로 천국계시록(?)을 쓰고 있다.138,145,176,182,185,186,199,210,211,218,230,238,242,244,254,260,266,277,278,282,309,
322,323,324쪽 등등 다수)
“우리는 서로 끌어안았고, 주님은 ‘딸아, 사랑한다’라고…… ‘저도 주님을 사랑해요’(266쪽),”주님은 나를 불러서 옆에 앉으라고…… 나는 주님의 팔에 손을 끼고 얼굴을 주님의 어깨에 기댄 채……“(210쪽).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랑은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아낌없이 희생한 ‘아가페 사랑’ 곧 ‘영적인 거룩한 사랑’인데도 남녀 간의 애정행각처럼 ‘에로스적 사랑’ 곧 상대적 사랑으로 거룩한 아가페적 사랑을 지상의 남녀관계의 만남수준으로 끌어내려 표현하는 시도는 아주 불경건하며 매우 위험천만한 발상인 것이다.
그것은 거룩한 성자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성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이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욕이며, 비성경적인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이단들이 하나님과의 아가페적 거룩한 사랑의 관계를 남녀 간의 애정행각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작업을 자주하여 온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4.2. 거룩한 신성과 온전한 인성을 동시에 갖고 계신 주님의 생김새(머리카락, 키, 나이, 손, 옷차림, 입)를 논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서양의 미남수준으로 묘사함도 합당치 않다.
“골격이 크고, 머리카락은 구불구불, 목은 비단같이 희고, 손의 피부는 올리브 색깔, 손가락은 길고 날씬, 나이는 30-40사이의 젊은이, 키는 약 180센티미터를 약간 넘는 것 같다?”(14쪽).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몸은 고고학적으로도 증명을 못한다. 예수님의 몸이나 천사의 몸을 서양의 백인 우월주의 시각으로 보고 있으며, 마치 얼짱!과 몸짱!으로 존재하는 이 시대에 유행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에 매력을 느껴서인지 성자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불경스럽게 그런 식으로 꾸며 쓰고 있다. 그것은 동양아시아계 여인이 흠모하는 남성적 매력의 한계가 서양남자들에게서 찾아지고 있다는 점과 그동안 서양인들의 외모 앞에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보상심리는 아닌지 생각을 하게 한다.(이사야53장과, 마가복음16:12을 통해 주 예수님의 모습을 정확히 보라!)

4.3. 예수님의 생김새를 거론하는 것은 십계명의 제 2계명과 심각하게 충돌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단호한 진술은 하나님을 우리가 아는 가장 고귀한 피조물인 인간으로 묘사하는 그림들과 상(像)과 환상들을 사용하는 것 역시 배제되어야 한다.(출24:9,10; 신4:15,16; 요4:24; 롬1:20; 딤전6:16; 약1:17) 그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으로 묘사한 그림과 상을 사용하는 것을 배제한다. 비록 하나님(제 2위이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자신이 과거에 인간의 몸을 입으셨고 아직도 여전히 그 몸이 부활하시어 뼈와 살을 갖는 인간의 몸을 갖고 계시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모든 환상체험과 그림과 형상은 필연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됨을 ‘닮은 모습’으로 만들어지거나 상상이 되며, 따라서 제 2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칼빈은 이렇게 썼다. “하나님의 참된 형상은 세상 속에서 발견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우리 앞에 보일 때 하나님의 영광은 더럽혀지며 그 분의 진리는 거짓에 의해 타락해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고안해 내는 것은 그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의 존엄성이 훼손되며, 하나님은 실제의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존재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나님 또는 예수님에 대한 상상, 그림들과 형상들을 반대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그것들이 자신이 묘사하는 신적 존재의 인격적 본질과 특성에 대한 진리의 대부분을 -전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숨기게 되기 때문이다. 아론의 금송아지가 어떻게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 의로우심, 선하심, 오래 참으심 등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겠는가? 성경 말씀의 계시 이외에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계시를 받았다면서 성경 이외의 또 다른 특별계시를 운운 하거나 철학적 추론에 의거하고 있는 모든 사변적인 신학은 이 점에서 잘못 되어 있다.(이러한 문제는 주의 말씀을 특히 주목하라 ☞ 마24:4,5,11-14,23-27; 요8:47) 바울은 이런 유의 신학이 결국 어떻게 되는가를 말한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고전1:21).
요점은 분명하다.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눈에 보이는 환상적 체험이나 상징을 보여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롬10:8-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시48:12; 빌2:12; 약2:22; 고전4:20; 요일1:1; 눅16:19-31을 주목하라.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환상과 상징들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인간이 만든 하나님의 모든 형상은 주물을 부어서 만든 것이건 정신적인 것이건 환상적인 것이건 실제로 죄 많고 불경건한 세상의 도구들로부터 빌려 온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어떤 형상을 취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으로부터가 아니라 인간적 출처나 물리적 현상에서 취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형상이나 환상과 상상을 취하는 일이 잘못된 까닭임을 밝혀두는 것이다.

 

마치는 말
끝으로 저자와 번역자 그리고 독자들에게 고한다. 상기와 같이 계시론, 천국관, 구원론, 기독론 등에 큰 문제를 일으키며 성경을 심각하게 훼손하는데도 “신학적으로나 교리적으로 논쟁을 지양하고 입을 다물라.”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실까 마귀(사탄)의 세력이 좋아 할까를 분명히 해야 한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신‧구약 성경(66권)말씀은 천국에 대한 소망과 신앙생활을 독려하는 일과 ‘천국이 확실히 있음’을 믿는 일에 지극히 충분하며 결코 부족함이 없다(딤후 3:16-17). 하나님의 계시가 그렇게 오락가락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와서『천국은 확실히 있다』(토마스 주남 저, 조용기 목사 번역)에 대한 신학적‧교리적 논쟁을 함구시키면서까지 인류의 구원에 관련한 새로운 계시가 내려오게 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확실히 밝혀 두고자 한다.(신명기13장을 묵상)
또 저자와 번역자와 독자들은 성경이라는 특별 계시와 최근에 내려오는 하늘의 계시 중 어느 것을 인정할 것인가에 분명한 대답을 하여야 한다. 만약 『천국은 확실히 있다』처럼 두 계시가 서로 달라서 충돌이 된다면 그 얼마나 혼란스러워 할 것인가를 상상이나 하여 보았느냐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질서의 하나님은 그토록 무질서와 혼돈을 야기 시키는 하나님이 결코 아니시다(고전14:33). 무질서와 혼돈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는 마귀(사탄)의 세력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세력을 향하여 지금은 참고 계시지만 때가 되면 엄위로운 심판을 말씀대로 분명히 실행하실 것이다.
신‧구약 성경말씀을 통해서‘천국이 확실히 있음’을 믿기가 그토록 불충분하던가?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신앙생활(흔히 기성교회가 좋은 신앙이라고 말하는 기준 곧 십일조 잘 내고, 교회 봉사 잘 하고, 헌신 잘하고, 기도 잘 하고 등의 목표)을 독려받기가 너무나 부족하였는가? 인류의 구원사역과 충분하고도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라는 메시지(딤후 3:16,17)가 신‧구약 성경 자체로는 부족하므로 새로운 유익을 찾아 주는 새로운 계시의 책을 말세지말에 나타난 여선지자(자칭)! 토마스 주남이 쓰게 되었다니 정말 있어서는 안 될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고.
『천국은 확실히 있다』서두의 ‘번역에 부쳐’에서 한국교회에 영향력이 막강한 번역자가 교리적, 신학적인 논쟁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자라고 선언한 사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비성경적인 책을 출판하여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 자체가 마치 종교적 흥행을 염두에 둔 상업적 발상이라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을 수 있으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진실로 두려워하고 성경적 상식과 원칙을 갖고 있는 신앙인이라 하면 마땅히 자제 했어야 할 일이었다.
성경적 신학과 성경적 교리 등을 도외시하고 기적과 환상 등의 신비체험만을 성령체험이라고 강조만하면 신비주의로 빗나갈 뿐 아니라 결국 만신(萬神)이 우글거리는 원시종교로 회귀하자는 것밖에 안 된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 즉 너희는 가서 ‘빛과 소금’이 되어 ‘이미 이 땅에서 시작이 된 하나님의 나라(마12:28) 사상’에로의 삶의 변혁과 이 어둠의 세대에 대하여 갱신을 추구하며 진리의 복음(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적 교리)을 위해 좁고 험한 길을 각오하는 ‘예수 제자의 도’는 어디에 가서 찾겠느냐는 것이다.(마태복음5장과 28장을 묵상)
“『천국은 확실히 있다』에는 ‘성경이 없다!”(림헌원 의 서평)라는 강력한 비판의 글이 2004년 여름 인터넷을 타고 흐른 지 약 두 달 정도 지난 이후에 번역자가 시무하는 여의도 순복음교회(당회장-조용기 목사)홈페이지에 간접적인 우회 답변이 올라와 있었다. 혹여 다음과 같은 생각은 안 했을 것이라 믿고 싶지만, 거기에는 번역자 스스로 무책임한 답변(‘신학적, 교리적으로 다르다 해도 토마스 주남의 주관적 체험을 읽고 감동을 받아서 십일조 잘 내고, 교회 봉사 잘 하고, 기도 잘 하면 그 뿐!’)을 했던 것을 스스로 기억할 것이다.
단지 신앙생활을 독려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 사용하려고 영적인 천국(낙원)의 상황을 이 땅에 있는 형이하학적 수준으로 끌어내려 표현하려고 했다면 신‧구약 성경 말씀과 바른 신학의 객관적인 측면에서 살아계신 하나님 앞과 기독교인들의 심령을 두 번씩이나 혼란하게 하는 무책임한 발상이므로 화급히 철회하여야 마땅하다 할 것이다. 분명히 언급하지만 올바른 성경신학과 바른 성경적 신앙을 위해서는 주관적, 객관적, 역사적 방법(체험)이 특별계시인 성경적 교리 안에서 동시에 조화가 있어야 하는 것임을 확실히 밝히고자 한다.
최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계시라 빙자하여 비성경적이며 잘못된 계시 안으로 하나님의 어린 백성들의 영혼을 유인해 영적포로가 되게 하는 미혹이 넘쳐난다. 이 책 역시, 그런 부류이기에 실망스러움을 넘어서 참으로 무섭고도 섬뜩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 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갈2: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다서1:4).
그러므로 참된 주님의 목자라면 공교회 안에 있는 주님의 어린양들을 다양한 적그리스도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하고 올바르게 양육하기 위하여서라도 이 세대에 난무하는 수많은 설교 내용과 출판 도서들을 신‧구약 성경말씀으로 비교‧비판을 자주하여 그 진위를 가려내는 건강한 작업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마땅히 계속해야 할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색안경을 끼고 비판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색안경은 불편하다.
이제 진실로 부탁하는 것은 다음의 내용을 깊이 묵상하길 권하는 것이다. 희생의 어린양이 되신 주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대가로 얻은 구속역사를 죄인인 자신과 분명한 관계가 있음을 회개하고 믿으면 성령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모시게 될 것(행19:2,고후1:20-22)이며, 그 때 신.구약 성경 66권을 읽거나 듣고 믿으면 잔잔한 감동과 영적인 깨우침이 분명해지고 비로소 정상적인 성도들과 같아질 것이다.(주목해야할 성경 ☞ 요 8:47; 요16:4, 7, 13, 14; 요 18:37; 고전 2:9-16). 그렇게 되는 것은 성령하나님이라는 같은 영을 비로소 받았기 때문인 것이다. 이제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올바른 감동과 영적인 깨우침을 위해서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미 기록된 복음 신‧구약 성경 말씀의 바른 교리를 믿고, 거짓된 것을 분별하며 구원받는 성령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세상과 교회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번역자와 저자가 이러한 책과 관련하여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앞에 반성과 사과를 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할 용기를 갖는다면 신‧구약 성경 안에서의 바른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며 그들의 용기 있는 결단을 기대하여 본다.
영향력이 막강한 지도자들이 영적 분별력을 상실할 때 교회가 얼마만큼 영적 혼동과 피해를 입게 될지 심히 우려가 된다. 진실로 성경적인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이제 엄청난 영적 전쟁을 치를 각오를 가져야만 하는 때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교묘하게 흐르는 유혹의 강물을 따라 배도의 대해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지만 그러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시력마저 상실한 지금의 상황은 안타까움 그 자체이다. 아무쪼록 깨어 있는 소수라도 우리의 신앙 세계를 파고드는 유혹의 통로를 잘 분별하고 끝까지 말씀을 붙잡는 대열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제 기독교 개혁주의 교회 영적 지도자들은, 성도들이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메시지를 올바로 깨달아 분별하는 능력을 받을 수 있도록 성도들을 바른 말씀으로 깨우치고 잘 가르쳐야 하며, 비 성경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려야 한다.
1992년 10월 28일 시한부 종말론의 예수 재림(휴거계시 사건)에 대한 빗나간 거짓예언 직전에 한국교회에 선전되어 절찬리에 판매되었던 『내가 본 천국』(펄시콜레 씀)이라는 책의 영향력이 한국 교회들의 종말론적 판단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지 않았던가?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과 성경 그리고 한국 교회를 향하여 허구와 거짓이라며 모욕을 주던 그 시절을 잠시라도 기억을 하는가? 그 당시에 예수그리스도의 재림(휴거사건)에 대한 빗나간 거짓예언과 잘못된 종말관에 대하여 그래도 영향력이 있다는 교회와 교단들 그리고 차세대 개신교 4 인방 리더를 자처하는 목사들조차 비판다운 비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벙어리가 되었던 악몽이 되살아난다. 그들은 지금도 뜨레스띠아스, 알파코스와 관상(경청,침묵)기도 등으로 교인 숫자 모으기와 관리하기에 분주하니 이 보다 더 안타까우랴!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십자가의 고난을 짊어지고 따르는 제자라고 한다면 바른 복음을 위한 시대의 나팔수로 광야(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상징)의 들 소리를 내질러야 할 시대의 사명자들이 아닌가? 그래도 늦지는 않았다. 무엇이 교회 내부에 위기를 불러들인다고 생각하는지 성경적 기독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 심각한 오류들을 이끌어 내어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을 갖고 혁신하여 한 시대의 길라잡이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다 가야 할 것이다.
“Protestant always protest" 기독교 교회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갱신(Renewal)하기 위하여 Protest(항변, 이의주장)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유다서1:3).“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15:58).


림헌원(한돌교회 담임목사, 예장합동)
onestone3@hanmail.net
Profile
연세대학교(Ed.M)
총신신대원(M.div. Equiv.)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 candidate)
전, 명지대학교 학부 및 사회교육원 강사
현, 협성대학교 학부 강사
현, 성남시 건강가정지원센터 가족상담팀 면접상담원

 

출처: 크리스챤 인사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