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페라 <다윗왕>, 신선한 충격과 남겨진 숙제
기사입력 :[ 2012-09-24 17:24 ]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지난 주말 예술의 전당에선 네 명의 ‘다윗’이 탄생했다. 그 중 에너자이저 다윗(테너 조르지오 카루소), 로맨틱 다윗(테너 김경여), 회개하는 다윗(테너 양인준) 이렇게 모두 3명의 다윗을 만나고 왔다.
블레셋인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돌팔매로 쓰러뜨린 이스라엘 양치기 소년 다윗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성경내용. 그렇다면 인씨엠예술단이 선보인 오페라 속 ‘다윗’은 어떤 인물인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노래하길 포기 하지 않는 시인이자 몽상가이며 수금 연주자이다. 상을 바라고 사람을 해치기 보다는 지혜와 성령의 권능으로 왕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본처인 미갈이 있음에도 전장에 보낸 신하의 여인 밧세바를 아내로 취하는 죄를 짓는 연약한 인간이다. 결국 선지자 나단을 통해 진정으로 회개하게 되는 인물이다.
테너 조르지오 카루소는 에너지 넘치는 강한 성량으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반면 김경여는 보다 신중하고 로맨틱한 면모를 선보였다. 골리앗과 대적하기 전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는 모습, 2막 사울의 군대를 피해 도망가기 전 미갈의 이마에 사랑의 입맞춤을 하는 장면 등이 그러했다. 또 다른 다윗 양인준은 3막의 회개 장면에서 존재감을 아로새겼다. 우렁찬 소리는 아니었지만 서정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소리로 차근차근 하나님께 부름 받았음을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프롤로그에 더해 총 3막으로 이루어진 오페라 <다윗왕>은 알베리코 비탈리니(Alberico Vitalin)가 작곡한 음악에 라파엘로 라바냐(Raphaello Lavannia) 대본을 쓴 작품. 직접 만나본 <다윗왕>은 ‘웅장하고 다이나믹한 음악적 완성도’를 강점으로 내세운 오페라답게 합창(인천오페라합창단, 인씨엠오페라합창단, 인씨엠 소년소녀합창단)의 여운이 강렬했다. 또한 다윗의 아리아는 낭만적인 선율로 버무려져 시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했다. 성경오페라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신선한 충격이었음은 물론이다.
방정욱 연출가와 손혜진 무대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친 무대는 파격적인 연출보다는 심플한 해석에 가까웠다. 다만 눈에 띄는 점은 1막 사울의 궁전공간과 3막 다윗의 궁전공간을 뒷 배경막의 유무로 구분한 점이다. 초반엔 광기에 휩싸인 왕좌의 뒤가 뚫려 있어 사울의 내면 속 공허함과 불완전한 심경등을 암시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후반 나단 선지자의 출현 장면에서는 은혜의 빛이 들어오는 듯한 환한 조명과 다양한 효과음을 사용해 주의를 집중시켰다. 다만 3막 밧세바의 목욕씬은 지나치게 사이드로 설정해 일부 관객들의 시야를 방해했다. 또한 다윗이 한눈에 반했다는 극적설정에 논리를 부여할 연출이 지나치게 밋밋하게 흐른 감도 없지 않다.
주요 배역 중엔 카리스마와 광기를 적절히 표현한 바리톤 박태환•박경종(사울)과 풍요로운 음색과 함께 청량감 가득한 소리를 뽐낸 소프라노 최영주(미갈)이 돋보였다. 박태환은 배역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능숙하게 조절하는 소리를 들려줬다. 말을 씹어서 뱉어 내는 능력에 더해 악령에 시달리는 사울 역할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박경종은 1막 다윗의 결혼식 장면을 지켜보는 장면에서 왕권의 불안함을 부각하려는 듯 머리 위 왕관을 신경질적으로 만지는 등 보다 디테일한 연기에 힘을 쏟았다.
최영주는 저음부터 고음까지 풍요로운 음색과 뛰어난 표현력을 보였을 뿐 아니라 장식음 기교 역시 완벽히 소화해내며 청중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또 다른 미갈 역 정성금은 강건한 음성으로 객석을 집중시켰지만 연기면에서 너무 미갈을 표독스럽게 설정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 점은 아쉬움이 남게 했다.
돋보이는 조역은 테너 김태남(요나단), 바리톤 장철유(셈마), 베이스 손철호(골리앗), 바리톤 권서경(우리아), 소프라노 강민성(밧세바)이었다. 김태남의 소리에는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그 무언가가 있어서 다른 공연 주역으로 다시 한번 보고 싶게 만들어졌다. 울림의 깊이가 있는 장철유• 손철호, 젊은 성악가 권서경 모두 오페라 감상의 기쁨을 선사했다. 강민성은 청아한 고음이 일품이었다.
스테파노 로마니(Stefano Romani)가 지휘한 인씨엠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뭔가에 쫓기듯 다소 템포를 빨리하며 극을 이끌어간 점이 아쉽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보다 다채로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이고은 발레단은 3막 초반을 장식하며 다윗이 두 여자를 가슴에 품게 되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암시했다.
한편 <다윗왕>은 국내에서 초연되는 작품으로 완성작이라기 보다는 발전될 소지가 더 많은 오페라다. 이번 공연에선 무대 전환 장면이 매끄럽지 않은 점이 자주 지적됐다. 무대 막이 내려가고 자주 암전이 되다보니 관객들의 집중도를 끊는 약점을 수차례 노출했기 때문이다.
특히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손꼽을 수 있는 사울이 격분해서 창을 던지는 장면의 마무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다. 음악이 갑자기 끊기면서 사울이 창을 던지자 붉은 빛 조명을 쏘인 뒤 엉거주춤 서 있던 가수들이 급작스럽게 퇴장했기 때문이다. 장엄한 음악으로 긴장감을 차근 차근 고조시켰다면 충분히 오페라 <토스카>의 테데움 장면 이상으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을 장면이다. 또한 사울의 죽음이 병사의 입을 통해서만 들리는 점도 설득력과 긴장감이 떨어진다. 내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그 때는 보다 수정보완 작업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인씨엠 오페라단,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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