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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엔 사랑·기독인엔 감동 남기고 ‘아름다운 작별’… 별세 강영우 박사의 삶과 신앙

영국신사77 2012. 8. 25. 23:51

장애인엔 사랑·기독인엔 감동 남기고 ‘아름다운 작별’… 별세 강영우 박사의 삶과 신앙

   

 2012.02.24 18:26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박사인 강영우 박사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24일,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과 슬픔을 나타냈다. 특히 강 박사는 한국에 올 때 마다 전국 교회를 순회하며 신앙간증을 겸한 기독교육 강의를 펼쳐 수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신앙적 도전과 감동을 선사했었다.

1944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난 강 박사는 중학생 시절 축구공에 눈을 맞아 실명했다. 이후 그는 온갖 고통과 사회적 편견, 차별을 기독교 신앙과 굳은 의지로 극복해 재활의 세계적 귀감이 되었다.

그는 서울맹학교 고등부를 졸업하고 연세대 교육학과에 입학, 72년 문과대학 전체차석으로 졸업했다. 72년 2월 아내(석은옥 여사)와 결혼하고 그해 8월에 한국 장애인 최초 정규 유학생으로 도미했다.

그는 3년 8개월 만인 76년 4월 피츠버그대에서 교육학 석사와 심리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후 교육전공 철학박사 학위까지 취득해 한국 시각장애인 최초의 박사가 됐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교육을 가르치던 강 박사는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을 만들어 한국의 장애인 재활사업과 복지발전에 기여했다. 특히 2001년부터 8년 동안 조지 W 부시 전 미국대통령의 임명으로 미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역임했다. 또 세계 장애위원회 부위원장, 루스벨트 재단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96년 한국이 루스벨트 국제 장애인상 첫 수상국이 되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신체장애를 극복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미 주류사회에서 우뚝 선 그의 감동적인 생애는 ‘눈먼 새의 노래’란 드라마로 제작됐고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의 대표적 저서 ‘빛은 내 가슴에’(A Light In My Life)는 수십 개국에 번역 소개됐다. 이 책을 조지 부시 대통령이 감동적으로 읽은 뒤 “당신의 책에는 언어와 문화를 초월해 존재하는 인간의 고귀한 가치들이 있다”는 친필편지를 써 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에 출간된 ‘성공적인 자녀 교육법’, ‘교육을 통한 성공의 비결’,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 등 13권의 저서는 모두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난 1월 국제로타리재단에서 감사패를 받은 강영우(오른쪽) 박사와 부인 석은옥 여사

특히 강 박사는 아내 석은옥 여사와 함께 두 아들을 모두 명문고인 ‘필립스 아카데미’를 졸업시키는 영재로 키워내 화제가 됐다. 큰 아들 강진석 박사는 조지타운의대 안과교수이며 변호사인 둘째 아들 크리스토퍼 강(한국이름 강진영)은 현 오바마 행정부 입법담당 특별보좌관에 발탁돼 눈길을 모았었다.

강 박사는 강단에서 주로 ‘오늘의 도전은 내일의 영광’이라는 주제로 간증했다. 그는 “누구든 큰 고난에 직면하면 이제 나는 끝났다, 기회는 ‘아무데도 없다(nowhere)’고 하며 절망한다”며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며 우리를 인도하고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켜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노 웨어(nowhere)’는 ‘나우 히어(now here)’, 즉 ‘지금 여기에 기회가 있다’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또 강 박사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잃어버린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감사할 것을 요구했다. “실명은 장애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명에 쓰이는 도구다”라고 선언하며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말 자신이 췌장암에 걸린 것을 안 강 박사는 죽음조차 담담히 받아들이며 오히려 “여러분이 저로 인해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길 바란다”며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을 살아 온 제가 이렇게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 할 시간을 허락받아 감사하다”고 이메일을 보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또 “여러분들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했고 은혜로웠습니다”라며 감사인사를 잊지 않았다.

얼마 전 아들들과 함께 모은 장학금 25만 달러를 국제로타리재단에 쾌척하면서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했던 강영우 박사. 교회 강단에 설 때마다 활짝 웃던 그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그가 남긴 ‘긍정의 언어’와 ‘재활의 표상’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김무정 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