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을 떠난 바보 음악가들 - WMF 음악친구들 (- WMF란 어떤 모임입니까? 결성하게 된 계기를 좀 알려주세요. - 팀원이 열두 명이나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이태리 유학파 성악가들이라고 들었는데요, 지금의 팀원들이 모이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 모임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4년전인 2004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이 모임이 탄생시킨 중요한 두사람이 있습니다. 그중 한분이 지금 숙명여대교수로 계시고 당신 경기문화의전당 사장이셨던 홍사종교수님과 성악가 우주호였습니다.홍교수님 정동극장 극장장으로 계실 때 정오음악회를 처음으로 시작하신분인데 지금은 아주 보편화 되어있는 찾아가는 음악회라는 것을 피가 산소를 모세혈관을 통하여 신체끝까지 전달하듯 문화가 사람을 향하여 끝까지 찾아가는 모세혈관 운동이라는 것을 계획하고 저희 음악친구들을 그 매개체로 사용한데서 모임이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태리 유학시절 어려움을 함께 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탤런트를 자신만을 위하여 쓰는것이 아닌 남을 위한 일에 사용하고 싶어하던 마음들이 열두명의 마음을 하나로 묶게 되었고 지금의 음악친구들이 탄생을 하게 된겁니다 (- WMF는 이웃에게 직접 찾아가는 공연으로 유명합니다. 첫 공연 이야기가 궁금한데요, 어떤 공연이었고 그 공연이 WMF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 그 후 주로 어떤 장소에서 어떤 분들을 모시고 공연을 하였나요. WMF의 주요 활동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모세혈관 운동으로 시작한 첫 공연은 성남소재의 외국인 노동자의 집이었습니다. 아직은 찾아가는 음악회에 익숙치 않은 선생님들의 어색함도 있었고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 어색함도 있었지만 사람과 사람이 음악을 통하여 하나가 되는것에는 인종도 나이도 성별도 방해가 될수 없음을 알게하는 시간이었습니다.지금까지 약 400여회의 찾아가는 음악회를 통하여 고아원 양로원 지체장애인의집 병원 농어촌등의 문화의불모지라고 할수있는 곳에서의 연주를 통하여 우리 음악친구들 선생님들도 더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을 배웠고 그 시간들의 소중함을 배워가는 중이랍니다 (- 극장에서 진행되는 클래식 성악 공연이라면 시청자들도 다들 경험이 있을 텐데요, WMF의 ‘찾아가는 공연’은 분위기가 어떨지 궁금합니다. - 공연을 할 때마다 뮤지션으로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예술가로서 느끼는 점도 많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느낌도 좋지만, 혹 공연 중 있었던 에피소드, 기억에 남는 관객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외국에서 어렵게 공부를 하고 한사람의 성숙한 뮤지션으로 무대를 설때에 화려한 극장과 무대를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전 그 대답에 대하여 유명과 저명함의 차이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유명하다는 것은 대중음악가들 처럼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 주고 인지되어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고 할것이고 저명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의 행동이나 삶이 사회속에 영향을 미쳐가는 것을 말하는것 같습니다.사람들은 우리 음악친구들은 바보같다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화려한 무대가 있음에도 사람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를 향한 말인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오랜 유학생활과 음악활동을 하면서 느껴진 것중 하나가 그곳은 조그마한 마을축제시간 하나 하나를 통하여서 쉽게 문화적 생활을 접할수 있고 그리고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너무 좁은 범위내에 묶어두고 우리의 선입견에 의해서 그 외의 사람들을 문화의 불모지 속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있었습니다. 음악미학에서 음악의 순기능에 대하여 정화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음악회를 한번하고 보는 것이 무슨 그런 영향력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시는 분들도 많을겁니다.저희도 처음에는 단지 위로 공연 정도로 생각하고 출발하였지만 음악회의 시간들을 통하여 저희를 보는 사람들의 얼굴은 환한 미소가 번져가고 마음속에 체증이 풀린다는 말을 들을때 아 이것이 바로 음악이 가지고 있는 순기능이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저희들도 마찬가지입니다.누구를 위로한다는 교만한 마음으로 선 무대가 그들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들이 치유되어지는 것을 느낄때 비로소 음악을 통한 행복감으로 한데 어우러지는것을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 WMF로 활동하시면서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도 많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혹, 팀원들끼리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던가, 아니면 그런 생각을 새롭게 하게 만든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소개해주세요.)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면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태이겠지만 장애우들의 시설을 방문하다보면 방에서 노래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미리 검은색 양말을 준비해 오지 못하신 분들이 흰색 양말이나 어떤때는 발가락 양말을 신고서 노래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그리고 모두 바쁘신분들이 한번에 지방에서 모이다 보니 교통 체증으로 연주가 마칠때 무대로 뛰어 올라오는 경우도 있고 반주자가 오지 못하여 무반주로 노래하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 팀원 한분 한분이 모두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WMF의 공연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스케쥴 조절에 문제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모두가 현역 오페라 가수로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라 12명의 선생님들로 로테이션을 하면서 최대한 스케줄을 맞추지만 어쩔수 없는 상황에는 최소인원인 8명이 가지 못하고 6,7명이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다 좋은 연주를 위하여 저희 선생님들이 자신의 스케줄을 최대한 양보하고 귀한 일을 우선으로 배정해 주어 아직까지는 큰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답니다. (- 팀원들이 WMF활동과 관련해 가장 만족하는 점, 크게 느끼는 보람은 무엇일까요.) 먼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일겁니다. 음악을 하다보면 많은 경험이 자신의 음악에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이러한 만남들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음악이 성숙되어 지고 그리고 그러한 만남들을 통하여 새로운 활력을 줄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할수 있을겁니다. 또한 우리 사회속에 여러 가지 문제를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조금씩 풀어갈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보람을 느낀답니다. 음악회를 끝나고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는 사람 가운데는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시도를 하였던 사람이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는 말과 그리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는 사람도 있었고 남자들이 주는 에너지를 가득 받고 돌아간다는 사람도 있었고 평생에 최고의 순간이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말을 들을때면 그래 우리가 지금 사회속에 아주 작은 날개짓이지만 이 날개짓을 통하여 나비효과 마저도 기대할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여 본답니다. (- 올해부터는 WMF가 좀 더 탄탄한 기반과 준비를 가지고 활동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법인화도 하셨다고 하던데 어떤 기획을 가지고 계신 건가요.) 올해는 저희 음악친구들은 사단법인 농어촌 미래 문화 연구소라는 단체를 설립하였습니다. 가장 문화의 불모지라고 한다면 역시 농어촌이며 농어촌에 산재한 문제인 다문화가정의 문제 예술교육의 문제 귀농자들의 문화적 충족감을 위한 문제등을 마음에 품고 다가가가 보자는 엔지오 성격의 비영리 법인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아직은 많은 일을 시작한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이런문제들에 대하여 포럼이나 소식지등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 공감을 얻어내고 문제를 문화적 관점에서 푸는 노력을 해 보고자 하는 것이 저희 사단법인의 목적이랍니다 또한 농촌 뻘밭까지 찾아가는 음악회를 통하여 그들의 피로를 그리고 마음의 스트레스를 함께 덜어주는 작업도 병행하여서 할려고 합니다. (- 다른 분야는 저변이 빠르게 넓어지는데 음악분야는 조금 속도감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유명한 공연은 비싸고, 젊은 우리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동네마다 소극장이 활성화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음악계를 이끌어갈 미래주역으로서 음악과 대중의 간격을 좁히기 위한 노력은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말을 하면 돌을 맞을지는 모르겠지만(하하) 조금은 음악가들이 선민의식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100가지 일이 있다는 그중에 노래라는 한가지 일을 잘하는것이 음악가가 아닐까요 나머지 99가지중에 하나씩의 잘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그런 의미에서 선민의식보다는 그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남을 위한 탤런트라 여기며 선민의식에서 조금은 벗어나 사람속으로 다가갈수 있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수억의 재정을 들여서 연주장을 농촌까지 지을수는 없을겁니다.조금만 선입견을 버리고 무대위에서 내려와 객석과 동등한 입장에 선다면 많은 사람들과 자신의 음악을 나눌수 있을것이고 그리고 그 시간들을 통하여 자신도 성숙하며 더 많은 클래식 관객들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관계기관들도 음악을 단순히 고정된 몇몇 사람의 전유물로 여길것이 아니라 함께 공유할수 있는 많은 상설무대들이 열린다면.... 우리 젊은 음악가들은 세계에 내어 놓아도빠지지 않을만한 실력을 갖추었거든요. 그런 상설 무대들을 통하여 음악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고 공감도도 높아지리라 확신합니다.cafe.daum.net/arthill |
출처 : 아트힐
글쓴이 : 초록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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